페루 안데스. 산타크루즈 트래킹 2. 꽃들의 만개가 산하 가득하고..

오늘은 바케리아에서 3,300m정도까지 내려 갔다가 파샤빰바 캠핑장과 우와라빰바 계곡을 넘어선 카치나팜파(Cachinapampa) 야영장(3,750미터)에서 하루를 접는 일정이기에 그리 힘든 코스는 아닙니다. 가이드 두명과 동키 드라이버 둘이 붙은 긴 행렬이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시나브로 비는 오가고 갰다 흐렸다 덥다 추웠다 반복하니 겉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계속 따라해야 합니다. 길은 각종 방목한 가축들의 배설물로 가득해서 발을 내딛기가 불편할 정도입니다. 언제적 우리의 자화상이었던가 한마디씩 하는데 이제는 아득히 그리워진 시골 내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남반구의 2,3월이면 늦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인데 언제나 풍성한 강수량으로 초목은 여전히 신록으로 푸르르고 다투어 피어나는 꽃들의 만개가 산하 가득합니다. 방치된 오래된 가옥이 이 안데스가 펼쳐놓는 풍경과 어우러지니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됩니다. 깊은 산자락에 기대어 살며 어디있다 튀어 나왔는지 순박한 어린 것들은 쿠키란 영어 한마디 배워서 때뭍은 소매로 코를 훔치며 다가와 조막손을 내밉니다. 하나씩 얻어걸치고는 로또 당첨만큼이나 기뻐하며 의기양양 그나마도 꼬봉들과 나눠먹는 천진스런 아이들. 길가에는 손수 짜서 진열해놓고 호객을 대신한 아낙들의 멋적은 웃음을 뒤로 하고 길을 치고 오릅니다. 두시간 쯤 이어지는 작은 마을들을 지나 전망좋은 곳에서 중식을 취하고 나서는 이제 민가는 없어집니다. 이를 애달파하며 마지막 맥주를 구매해 한잔 씩 출정주를 부딪힙니다.  이제 계곡으로 접어들어 산자락길 치고 오르는데 이제사 짐들을 양편으로 균형있게 묶은채 오르막길을 오르는 우리들의 당나귀 행렬을 보내게 됩니다. 힘든지 코를 버러렁대며 상스런 말로 생똥을 싸대며 오르는 그들을 보며 돌산 4,750미터의 푼타 유니온 고개까지 넘으며 4일간을 동고동락할 처지라 왠지 한식구라는 생각이 들면서 적잖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다들 이구동성으로 힘들겠다 염려해주는 우리 일행들도 오늘처럼 수려한 자연속으로 들어갈 아름다운 마음을 지낸 동행들입니다. 길위의 도반이 된 16명이 다양하게도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을 포함 심지어 브라질과 필리핀 동포들 까지 가세한 그야말로 국제적 팀이 되어버렸습니다. 출발해 온곳은 모두 달라도 한가지 같은 마음은 이 장대한 안데스 산군의 심장부를 걸으며 평소 보지 못했던 수려한 설산군과 옥빛 호수 그리고 안데스만이 품고 있는 자연과 사람들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이미 고산증으로 힘들어하는 약자들을 위해 서로 배려하고 서로 위해주며 정을 나누는 모습들이 참 보기 좋습니다.  짧은 산행을 마치고 배산임수 명당에 자리잡은 캠핑장. 뒤에는 거대 절벽을 타고 내리는 폭포가 장관이고 앞에는 바케리아 계곡이 설봉들을 이고 굽이칩니다. 골마다 우렁차게 흐르는 장쾌한 시냇물들은 긴밤 자장가로 들려지고 텐트촌을 어설렁거리며 코를 박고 다니는 방목된 소들이 합세하니 자연과 동물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진 평화의 모습입니다. 주방을 접수하고 비록 바람에 날라가는 밥일지라도 우리 입맛에 맞게 청국장 끓여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반찬들을 풀어내니 그런데로 한끼 시장기를 속일만 합니다. 소맥으로 시작된 반주 한잔이 몇병이 빈병으로 버려지게 됩니다. 내일의 고되고 기나긴 여정을 모두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 적막한 산속에서 특별히 할일도 없고 헤어지면 잠만 자야하는 아쉬운 별리. 그래서 조금만 더 있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싶은 숨기지 못할 정직한 욕심. 그래도 시각이 흘러갈수록 하나둘 자리를 뜨고 빈자리들이 늘어나면서 마침내 모두 하루를 정리합니다. 시차에 편할리 없는 텐트 야영에 간혹 두드리는 빗소리에 모두 쉬이 잠을 깊이 못이루고 잤다깼다 수없이 반복합니다. 그래도 쪼갠 잠은 수시간이 되고 새벽이면 핫팩과 체온으로 따뜻하게 데워진 침낭속을 빠져나오기 싫어지는 밤을 보내게 됩니다. 물소리도 점점 작아지고 눈이 흐려지는 고요하고도 깊은 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