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 가는 길. 잉카 트레일 둘째날.

찬란한 안데스의 아침. 깨추아어를 쓰는 인디오 포터가 텐트 안으로 들여주는 뜨거운 코카 차 한잔으로 아침을 깨우고 따뜻한 물로 채운 대야를 맞이하여 세수하고 배낭을 꾸립니다. 그러는 동안 포터들은 텐트를 걷고 식사 준비를 하고... 무척 손에 익은 듯 합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길을 걸었고 또 얼마나 많이 이 인디오들도 함께 걸었을까! 고무로 엮은 슬리퍼 같은 신발을 신고서도 길위를 뛰듯 내달리는 차스키의 후예들. 문득 존경심이 우러납니다. 오늘 아침은 식사 후 그들과의 상견례가 있었습니다. 주 가이드 외 부 가이드와 조리장 부조리장 그리고 공동 장비와 우리들 물품 까지도 메고 이동하는 포터들. 우리 16명의 도반들을 빼고도 도합 25명으로 꾸려져 있습니다. 뭐라고 이름을 소개하는데 생긴 외양도 이름도 그 놈이 그 놈 같은데 어린 십대 부터 육순이 넘어 보이는 이들 까지 연령층이 다양합니다. 결국 궁금증이 더해 누가 가장 연장자냐고 확인했더니 65세의 포터가 영광아닌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고산증 예방제인 다이아목스 한알에 양볼에 마른 코카잎을 채워 씹어가며 힘겨울 하루를 걷기 시작합니다.    잉카 트레킹은 대부분 3박 4일의 일정으로 진행되는데 그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른 아침에 숙소를 방문하는 버스를 타고 오얀따야밤바로 한시간 반 달려 이곳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마지막 물품을 점검 구매하고 다시 한시간 정도 우르밤바 강을 거슬러 올라 KM87 지점에 이르면 이곳에서 팀마다 최종 점검을 하고 출발합니다. 첫날은 몸풀기 정도로 300미터 높이의 14km를 6시간 정도 계곡과 평원을 걸어 Wayllabamba까지 가는데 대체적으로 평탄한 길로 별로 힘든 구간은 아닙니다. 둘째날이 가장 힘든 날인데 3000m에서 시작하여 4200m 고개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고산증과의 싸움이며 뻔히 보이면서도 치고 올라야 하는 가파른 길이 분명 도전의 길입니다. 가파른 숲길을 오르고 죽은 여인의 고개를 넘으며 뜨거운 태양과 차갑고 거센 바람도 함께 견뎌내며 고독한 자신과의 전쟁도 치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곳을 거치면 어렵지 않은 내리막이 나타나고 이내 둘째 날 숙소인 Pacamayo 캠프장에 닿습니다. 셋째날은 대체적으로 내려가는 구간이지만 초반에 두 시간 정도 경사가 심한 고갯마루를 넘는 것이 아주 힘이 듭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하향길이라 덜하지만 이미 몸이 많이 지쳐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녹녹치만은 않을 것입니다. 캠프장에서 출발하여 고고학적 유적지인 Winay Wayna까지 16㎞를 이동하면서 잉카인이 건설한 돌길과 계단을 지나며 만년 설산의 수려한 풍경을 감상하며 Phuyupatamarca라는 허물어진 잉카 유적지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날인 4일째는 난공불락의 도시 마추픽추까지는 2~3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지만 이날은 칠흙같은 새벽에 일어나 출발하는 이유는 아침 햇살이 잉카의 도시를 비추는 신비한 광경을 감상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침내 이 길의 끝에 있는 마츄픽추를 조망하게 되는데 그곳까지 가는 짧은 오르막이 죽을 맛이지만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마추픽추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라 그동안 흘린 땀과 눈물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는 시간이 될것입니다.    트레킹의 난이도가 아주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3천에서 4천2백까지 오르락 내리락 하는 코스이기 때문에 충분히 고산증에 적응되어 있어야 하며 이미 3천 4백의 쿠스코에서 하루 이틀 머물며 고산증에 대한 적응시간을  충분히 갖고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이 길은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말이나 노새 같은 가축의 도움을 일절 받을 수 없어 오로지 두 발로만 모든 짐을 운반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탄생 된것이 국가 주도의 트레킹 사업. 주관하는 트레킹 여행사와의 동행이 없으면 허가가 나지 않고 그런 서비스 제공을 빌미로 3박 4일의 트레킹 주관에 7,8백불의 비싼 수수료를 챙깁니다. 20여년 전 까지만 해도 자유롭게 이 길을 걸으며 야영도 가능했으나 방문자들의 쓰레기 방치나 환경 오염이 심각하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국가 관리 체제로 들어갔다 하니 신뢰도는 떨어지나 액면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면 사팔귀정이요 자업자득이랄 수 있겠지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4일 간의 여정에 필요한 모든 짐들을 내가 모두 지고 가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 일일까. 차라리 이렇게 황데 트레킹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이 다행스럽지 않은가 여기며 경사길을 터벅터벅 올라갑니다.    인간이 터잡고 사는 최고점이자 마지막 매점이 설치된 지점에서 긴 휴식을 하다가 붉은 깃발을 높이 걸어둔 곳은 전통술 치차를 취급하는데 기웃거리며 이곳으로 다가갑니다. 천여종의 옥수수를 가지고 있는 안데스. 알갱이 하나가 엄지 손톱 만한 것도 먹어봤습니다만 이런 옥수수로 발효시킨 전통주를 치차라 하는데 우리네 맥주와 막걸리의 혼합주 같습니다. 냉장고가 없어도 고산 그늘에서 한잔 따라주니 시원스레 들이킬 만 합니다. 우선 대지의 여신 파차마에게 예를 올리고 마시라고 가이드가 조언하니 세번 정도 바닥에 뿌리고 마시면 됩니다. 오늘처럼 협곡과 고산의 희박한 산소와 싸우며 오르다보면 나같은 애주가에게 마주치는 이 치차의 유혹은 피할 수 없으며 또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답니다. 가히 회복제며 오아시스이기도 한 이 들이킴은 취기가 살짝 오르면서 고산증에 의해 묵직해진 머리가 둔감해지며 무중력 상태가 되는 마법도 경험하게 된답니다. 전통 복식으로 예쁘게 치장한 치차 파는 아낙의 볼 또한 붉은데 문명과 동떨어져 사니 그들의 전통의상이나 풍습이 그대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또한 잉카 트레킹의 맛입니다. 몸은 힘들어도 기분은 좋은데 이것이 트레킹의 묘미이겠지요. 길가엔 노란 레이디스 슬리퍼란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고 코카차 한잔으로 영육의 휴식을 꾀할 수 있는 시골 특유의 한갖진 풍경이 참 좋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색감의 옷을 지어입고 가장 순수한 삶들이 살아가는 곳. 한가롭게 산등성이에서 풀을 뜯고 있는 라마와 알파카. 그들 주인 만큼이나 착한 표정들입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 평화. 그 목가적 평화가 가득한 시간 여행입니다.    원시림과 다름없는 울창한 숲속을 지납니다. 온몸이 땀으로 적셨으니 말리며 쉬고 가란듯  냇물은 힘차게 흘러가고 오래된 이끼가 가득한 숲에는 써늘하고 청량한 기운이 온누리에 채워져 있습니다. 그 풍요로운 수분을 섭취하고 무던히도 많은 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어있습니다. 다 외우지 못할 이름들이 허다합니다. 그 밀림의 끝 자락 즈음에 도우미들이 점심상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이런 날씨에도 국물 좋아하는 우리 민족을 배려해 우리 라면을 끓여라 주문합니다. 점심을 다먹고 이제 저 멀리 보이는 곳 이 트레킹 중 최고점인 죽은 여인의 고개(Dead Woman's Pass)가 누워있는 곳을 넘어야 합니다. 고산이라 희박해진 산소의 공기를 들이켜며 오르막을 오르면 이내 숨이 차고 오래 가지 못해 정지하고 호흡을 고릅니다. 단내 나는 입에서 하마터면 욕설이 튀어 나올 것 같은 순간도 있으나 내가 택한 내 인생길 누구에게 원망하랴. 그래도 이 지난한 경사길을 두다리로 걸으며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대화마저 끊긴 사이에 고요함만이 거친 숨소리를 삼키더니 그래도 정상은 조금씩 가까워져 옵니다. 걷는 시간 보다 멈추는 시간이 많아도 굳이 서두르지 않는 것은 앞만 보고 달릴 나이는 지났으며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삶이었음을 깨달은 연륜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철학이 다르고 인생의 완급이 저마다 다르듯이 같은 길 걸어도 걷는 양태는 모두 다릅니다. 출발은 같이 하며 늘 함께 하자 했지만 벌어지는 거리는 자연 생기고 뒤쳐지는 동행들은 말미에서 가고 쉬고 걷고 쉬기를 반복하며 저마다의 삶과 투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곁에는 함께 길을 나선 아름다운 동행들의 도움과 길잡이가 훈훈한 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자신의 체구만한 등짐을 진 도우미들이 언덕에 짐을 기대고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고개를 넘는데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인디오들이나 힘들기는 매양 한가지인가 봅니다. 산이 높아지니 숲은 낮아지고 경사는 가파르니 골은 발아래로 자꾸 쳐집니다. 언덕을 올라가다 한번씩 뒤돌아보면 건너편의 산길과 더욱 솟아 오른 베로니카 빙산의 풍경이 처절하도록 아름답습니다. 이런 순간에도 이 길위에 선 기쁨으로 온몸이 적셔옵니다.    드디어 정점 해발 4200m의 고갯마루에 섰습니다. 정상에 오르니 풀어놓는 황홀경에 아찔하게 취해버립니다. 힘겨운 정상을 오른 모두는 전혀 모르는 사람끼리도 악수를 청하고 부둥켜 안고 기쁨을 나누는 자연스런 동행이 되어버립니다.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는 이도 있습니다. 그래도 마침내 등정을 성공했다는 자긍심에 얼굴은 웃고 있습니다. 까마득한 고갯마루. 잉카의 후예들이 달리던 수 많은 길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놓여 있습니다. 잉카족이 멸망하며 길은 많이 사라졌지만 정복자들의 총칼을 피해 더욱 깊숙이 꽃 피운 그들의 문화. 희미한 저들 길을 따라가면 사라져버린 잉카인을 만날 수 있을까? 그들은 가장 높은 고개에서 돌을 쌓으면 자신을 지켜주는 장벽이 된다고 믿고 코카잎을 바친다합니다. 하늘을 지배하는 콘도르. 땅을 관장하는 푸마. 지하를 다스리는 뱀을 상징하는 세잎을 바치며 우주만물의 정령이 있다고 믿는 바 산은 신과 가까운 존재. 그래서 신성한 영령이 깃들어 있어 언제나 영산으로 여기며 삽니다. 골이 얼마나 깊은지 중턱에 구름이 자욱하게 걸려있습니다. 구름도 쉬어넘는 고개. 바람이 세차게 불어옵니다.    한없이 이어지던 급경사의 내리막길. 오른만큼 내리는 것이 매사의 법칙. 그 지겨운 길을 한없이 내려와 3천 6백 고지에 가지런히 설치된 텐트에 여장을 풀고 휴식을 취합니다. 가랑비는 추적추적 내리며 을씨년스러워도 땀으로 젖은 몸을 그대로 뉘우기는 개운치 않아 냉수샤워를 걸리지 않습니다. 빙하녹은 물로 샤워하는 기분. 해본 이들만 아시리.. 텐트에서 잠을 청합니다. 가볍게 두드리는 밤비. 침낭의 감촉이 더욱 포근해지는 이 밤에 낮에 몸으로 읽었던 정상의 풍경에서 헤어날줄 몰라 그 감흥으로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록 다리는 뻐근하고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부담스럽고 염려되었던 구간을 전원이 낙오없이 무사히 끝냈다는 후련함이 안락한 매트리스를 대신합니다. 이제 가장 높은 산을 넘었으니 절반은 성공한게 아닌가. 걸어온만큼 또 걸어가야하는 종반 길. 오직 신들만이 허락된 저 높은 산을 바라보며 내일을 위한 잠을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