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안 안데스의 숨은 보석 2. El Choro 종주 트레킹.

정열의 나라. 혁명의 아이콘. 볼리비아의 새날 새 아침이 밝아오는데 은은하게 번지는 성당의 종소리가 차마 이부자리를 떨치고 나가기 힘들게 하는 스산한 기온입니다. 한낮의 강렬한 태양볕과 한밤의 싸늘한 고산 기류. 이 상반된 요소들이 이어지면서 묘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집마다 건물마다 붉은 벽돌과 기와로 지어져서 온 도시가 연분홍으로 채색된 듯 한데 그 일률적인 단색의 아름다움도 나쁘지 않은데 도시를 가로지르며 하늘을 날으는 케이블카(페니큘라)가 수시로 하늘을 수 놓으니 그것이 또 하나의 풍경이 됩니다. 분지형 도시 라 파즈가 팽창하여 산으로 산으로 집을 짓고 올라가니 산꼭데기를 연결한 케이블카 교통수단이 참 절묘하기도 하거니와 그 편리함이 빼어난데 밤이면 도시의 야경을 즐기며 날라다니는 그 짜릿함은 별 기대감 없이 찾아든 라 파즈에서 얻는 전혀 새로운 맛입니다. 하기야 언제부턴가 우리 한국인들에게 남미 여행이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 잡더니 이 깊은 내륙의 산골 나라 볼리비아에 무에 볼게 있다고 구름처럼 몰려드는데 급기야는 라 파즈에 한인 마트까지 생긴것을 보고 적잖이 놀랬습니다. 물론 우유니 소금 호수에서 사진 하나 찍어 자신들의 여행 블로그에 올리지 못하면 여행가란 축에 끼지 못한다며 기를 쓰고 찾아와 천편일률적인 포즈에 설정으로 지랄들을 떠는 군상들이 한심하다 싶은데 그 덕에 이 생면부지의 이국에서 우리 입맛을 구입할 수 있게 해줘 그것 하나만큼은 감사한 일입니다. 아무튼 페니큘라 타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몽마르트르 언덕에 내려 줄지은 리어카 상인들이 파는  길거리 안주에다 그들 전통주 한잔까지 걸치면 종주의 여독도 말끔히 씻겨집니다.    인간의 마음은 참 간사한 것. 오늘 아침은 하늘이 낮게 내려와 드리워져 있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다면 시야도 확보되지 않아 풍경도 볼 수 없는데 굳이 종주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유혹에 빠집니다. 자꾸만 그 포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는 자신의 나태함을 또 다른 하나의 내가 질책하며 길을 나섭니다. 라 파즈에서 출발하여 한시간 넘짓 고갯길을 중고 소형 택시가 힘들게 올라가는데 서서히 좋아지는 날씨에 하늘이 개면서 구름안개 허리에 휘두른 설봉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니 오길 참 잘했고 포기했더라면 그 얼마나 안타까운 비극이었겠냐하는 비굴하도록 간살뜨는 나 자신을 봅니다. 구비구비 돌아가는 고갯길을 따라 오르고 그 구름들이 모여있는 트레일의 출발점인 라 쿰브레(4.700m)까지  이동합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밖을 나오니 여름 시즌인데도 고도 때문에 한자락 한기가 밀려들어 옷깃을 다시 여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개도 자욱하게 깔려 흐르면서 시나브로 눈을 이고 있는 산정들이 보였다 숨으니 여기가 천계인지 사바 세계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수백만 캐추아의 후예들이 올망졸망 모여사는 일국의 수도가 지척인데 겨우 한시간을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장대한 설산군이 펼쳐지니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신기함이 더합니다.  트레킹이 시작됩니다. 우선 우리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을 넘어야 합니다. 대략 2백 미터를 더 걸어올라가면 일망무제 탁트인 채 360도 안데스 설산군을 조망할 수 있는데 그 풍경이 정말 압권입니다. 5척 단신의 현지 가이드가 스스럼없이 5천 고지를 성큼성큼 올라가는데 6척에 가까운 내가 따라가기도 버거우니 한편 무색하기도 한편 부럽기도 합니다. 대를 이어 살아오면서 그 척박하고도 힘겨운 자연 환경을 견뎌온 이들. 이런 자연에 대한 적응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 그저 한번씩 방문하는 이방인으로선 부러울 따름. 숨을 헐떡이며 뒤따르기 바쁩니다. 오늘만큼은 저 작은 체구의 가이드가 매우 크고 위대해 보입니다. 일단 이 3일간의 종주 트레킹에서 가장 높은 5천미터 산정에 섰습니다. 콜디옐라 레알이 말을 달리듯 산마루가 물결치고 어제 내린 눈이 주위 삼백육십도를 돌아 빠짐없이 포진한 산마다 덥혀있어 설국에 온듯 온 천하가 하얗게 빛나고 있습니다. 한쪽 하늘 언저리는 어느새 구름이 벗겨져 푸르른 하늘이 드리우니 더욱 선명해진 풍경에 작은 감탄사가 신음소리 처럼 나도 모르게 흘러나옵니다. 저아래 목동들의 대피소를 중심으로 무슨 구더기 처럼 야마와 알파카들이 우글대고 있고 색 고운 산정마다 흰 눈이 그리고 그 아래 발담그고 있는 쪽빛 호수들이 누워있으니 나는 어느덧 천하를 얻는 기분입니다. 점점 하늘이 맑아지니 감추었던 장막속의 비경이 송두리채 드러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풍경들의 연속에 마냥 가슴이 울렁거리고 심장이 마구 펌프질을 합니다. 6천 고봉 설산군들이 펼치는 파노라믹 절경이 압권인 콜리옐라 산맥이 품은 엘 초로 트랙. 이 El Choro 트레킹은 콘도리리 트랙처럼 볼리비아의 가장 인기있는 백팩킹 트레킹으로 이처럼 라 파스의 수도에 근접해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La Cumbre(4,725m)에서 시작하여 5천미터의 정점에 올라 360도 조망이 펼쳐지는 기막힌 코르디예라 레알(Cordillera Real)의 설산 풍경들을 마음껏 즐기며 가슴에 가득 비경으로 채운 우리. 이제는 지속적으로 내리며 이어지는 길을 따라 로스 융가스(Los Yungas)의 습한 숲을 지나고 정글로 들어서면서 2,800미터 까지 내려갑니다. 그 곳이 오늘의 야영지가 있는 Challapampa 마을인데 여기서 프리 잉카 트레일 (Pre Inca Trail)을 발견 할 것이고 암산이 가득한 계곡에서 그 뒤로 여기저기 솟아오른 설봉들 또한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니 지루한 내림길이 아니되도록 안데스의 산세가 그렇게 우리를 배려해준답니다. 6 시간 동안 콜디옐라 산맥의 빼어난 풍치에 감동하며 걸었지만 언제 그렇게 시간이 흘러버렸는지도 모르게 하루가 짧았습니다. 졸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 정겨운 갶핑장. 설경이 드리운 알파인 지대에서 시공을 건너 뛰어 트로피칼 식물들이 반기는 따뜻한 밀림 지역으로 들어서니 묘한 생경함이 마음속에 자리합니다. 손수 차린 밥상. 걸인의 찬. 황제의 밥. 더불어 독한 술한잔이 곁들여진 길 위의 밥상. 하늘. 구름. 산. 바람. 달과 별과 함께 겸작하며 이 밤을 맞이하니 이 세상 부러울게 어드메 있더냐!   구름을 허리에 두른 고산들이 병풍처럼둘러싼 야영지에서 오존 향기 짙은 아침 공기를 마시고 오늘 주어진 몫의 길을 걷습니다. 오늘은 제법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구간이 있어 다소 힘들수도 있으나 짙은 숲길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온갖 꽃향취가 가득하니 그 향기에 취해 걷다보면 트로피컬 삭생들이 가득한 전형적인 밀림 지역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식물은 밀도가 높아지고 기후는 더 열대해집니다. 엘 꼬로 트레일은 총 연장 길이는 52km 이며 Altiplano에서부터 정글에 이르기까지 길을 따라 생태계가 극적으로 변화합니다. El Choro 트레일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굳이 나눈다면 고산 만년설의 알파인 지대와 아열대성 밀림지대와 잉카의 삶이 남아있는 유적지로 대별합니다. 볼리비안들은 페루와 형제국임을 서로 시인합니다. 잉카의 후예임을 또한 자랑스럽게 여기고 인종도 물론 같아 외양도 똑 같지만 문화와 풍습 등 모든 것이 흡사하여 그리 인정합니다. 엘 꼬로 트렉 또한 잉카인들이 삶을 지탱하기 위해 잉카의 전사들이 걸었던 길로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래서 이길은 Inca Trail 네트워크에 통합되기 전에 생겨난 Inca 이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루트를 따라 가면 아름다운 풍경뿐만 아니라 Inca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유적들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버텨내기도 힘겨운 고산지대에서 그래도 이 알파카와 라마의 선한 눈망울을 가진 이들이 스페인의 침탈과 횡포에 더 높은 산으로 더 깊은 계곡으로 피신하여 살아온 삶의 흔적들입니다. 이 길을 종주하며 필요한 사람들은 이들 잉카의 후예들을 포터를 고용해서 짐을 맡길수도 있으며 요리사를 동행한 황제 트레킹도 가능합니다. 오늘도 꽃향에 취하고 풍치에 취해서 약 7 시간의 도보 여행 끝에 닿은 SanFransisco 캠프. 하루를 마감하고 아늑한 야생의 저녁을 맞이 합니다.  종주의 마지막 날 오늘 엘 초로 트레킹을 마감하며 Semi Tropical Jungle Trails을 걸어 Sandillani로 들어서며 트로피컬 융가스를 더욱 즐기게 됩니다. 살을 에이는 추위와 칼바람에 떨며 길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후끈한 더위로 옷을 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레인 포레스트 지역을 통과하는데 짙은 잎들이 거대하고 무성한 열대성 식물들이 숲을 만들고 그 사이를 오개는 새들의 움직임도 현란한데 풍기는 꽃과 잎들의 향취가 아찔한 현기증을 유발시킵니다. 독특한 정글같은 주변 환경에 이처럼 특별한 식생들과 화려한 꽃들을 감상하며 새들의 합창소리를 들으며 걷는 맛도 솔솔합니다. 오전거리로서 이 트레킹은 Chairo 마을에서 끝나고 펑퍼짐한 치마에 짧은 중절모 쓴 아낙이 내어주는 시원하게 재워놓은 맥주 한잔씩을 들이키며 종주를 자축합니다. 마을 곁을 흐르는 엘 꼬로 강물 소리가 트로피컬 숲에서 온갖 살아있는 것들의 외침소리가 어우러져 귀가 먹먹합니다. 우리를 위한 환영의 합창으로 여기며  속셈이 안되어 한참 머리싸움을 하고있는 아낙에게 간단히 해결해주고 자리를 털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산허리를 휘감아 기슭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산악 휴양마을 Coroico. 볼리비아의 알프스로 불리는 코로이코에서 진정한 종주를 마감하고 이곳에서 하루를 묵으며 안데스의 기운을 느껴보려 합니다. 파노라믹 뷰로 펼쳐지는 장대한 설산군이 압권인데 주변 거산고봉들에 둘러쌓여 있어서 기온도 높고 포근한게 참 안락합니다. 욕심없이 살아가는 깨추아들이 터잡고 이어와서 그런지 더욱 소박하고 친근감이 갑니다. 나름 현대식으로 지어진 건물들도 있고 침략자 스페인의 영향을 받아지은 고풍스런 레스토랑과 거리들도 하루밤 머물며 종주의 여독을 풀기에 제격입니다. 어느새 산그늘이 이곳까지 기어올라오고 하나둘 불을 밝히는 나름의 번화가. 조망좋은 밥집 발코니에 자리 하나 잡고 술과 음식을 주문합니다. 이런 트레킹의 유랑이 어디 한두해를 넘긴 것도 아닌데 아무 곳에 가더라도 아무 것이나 잘 먹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해서.. 숯불구이 닭고기를 기대하고 시켰는데 쩔은 기름에 튀긴 닭고기가 나왔습니다. 그냥 뒤적거리다가 술만 마시게 됩니다. 술마시는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오래된 지붕. 벽. 탁자 그리고 오래된 사람들. 그들을 벗삼아 한잔 술을 기울입니다. 제법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는데 강렬한 빛이 쏟아져 그 쪽을 바라보니 마지막으로 불타는 노을이 너무도 슬프도록 아름다워 불현듯 나도 모르게 진한 향수를 토하게 됩니다. 와락 밀려드는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 모든 그리운 것들에 대한 갈증. 이 자리에서 허물어질 때 까지 마시고 싶은 밤이 깊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