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트레킹 1. 최고의 알파인 트레킹 Routeburn Track 1

삶은 때때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람이 되고 또 내 의향과도 다르게 향방을 모르게 흘러가버립니다. 여행이란 목적으로 길위에 설 때 우리는 때론 비가 되어 내리기도 하고 또는 눈이 되어내리기도 합니다. 미지의 세계를 찾아나서 미답의 길을 걷는 작업이 어디 꽃구름 타고 가는 것이겠냐마는 삶이 그렇듯 허기도 지고 포식도 하고 그런 것입니다. 그럴 때, 삶이 허기질 때 가장 찬란했던 순간들을 회억하고 마음 달래듯이 길 위에서도 비루해진 내 자신이 초라해보일 때면 가장 뜨거운 감동으로 전율했던 풍경을 떠올리며 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만큼 여행에서 가장 눈부신 풍경을 접하기 위해 세상 끝 트레킹의 유랑은 계속 이어집니다. 그 발길은 페루와 볼리비아의 세상 가장 아름다운 길을 한달간 걷고 난 후 이틀을 꼬박 비행하여 겨우 대양주 조그만 섬나라 뉴질랜드를 밟았습니다. 걸음의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기보다 월드 100대 트레킹 완주라는 삶의 이정이 숙명처럼 세워져 있으니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밝아오면 나는 또 다른 지구의 어느 후미진 한켠을 걷고 있을 것입니다.    뉴질랜드의 자연은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뉴질랜드 남섬이 세계를 향해 자랑하는 대표적인 자연경관으로는 밀포드(Milford) 트렉과 루트번(Routeburn) 트렉이 있습니다. 가히 자연 속에서 누리는 가장 완벽한 힐링을 체험할 수 있다는 밀포드와 루트번은 트레킹의 귀공자로 알려져 특별한 대접을 받는 트레킹의 명작으로 1년에 6개월만 개방하며 하루 4-50명으로 입산을 제한하는 진정 특별한 공간입니다. 이렇게 보호받는 자연은 걷는 사람에게 깊은 감흥으로 보답합니다. 영국의 BBC가 ‘죽기 전에 걸어야 할 유명 트레킹 코스 중 하나’로 선정한 곳인 루트번 트레일은 처음 마오리 원주민들이 옥을 찾기 위해 밟은 길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800년대부터 모험을 즐기는 개척자들에 의해 관광 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198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가이드 트레킹이 시작되었고 이후 투자가 이어져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이드 트레킹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세계 자연 유산으로 등재된 피오르드랜드와 어스파이어링 국립공원에 걸친 원시림 계곡과 깎아지른 듯한 알파인 산맥 그리고 만년설, 강, 폭포, 개울 등의 비경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3일간의 이 루트번 알파인트레킹은 세계적으로 가장 드라마틱한 트렉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계절이 다른 남반구. 우리의 혹독한 겨울을 탈출하여 여름으로 날아가 자연으로 귀의해 봄은 어떨까 하여 날아가보는 태초의 자연이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는 나라. 뉴질랜드. 이번 뉴질랜드 트레킹은 남섬의 이 두 트레킹과 북섬의 대표적 트레킹인 통가리로 노던 서킷과 더불어 세계 50대 베스트 트레일에 이름올린 세곳을 종주하는 것입니다. 오가기도 쉽지않은데 머나먼 이국으로 날아와 가능하면 하나라도 더 걷게 해주자는 나의 철학이 담긴 여정입니다. 이른 아침 남섬의 보석같은 도시 퀸스타운을 떠나며 루트번의 2박3일과 밀포드의 3박4일 종주를 테 아나우를 중간 기착지로 이어서 하기에 7일간의 의식주를 모두 배낭에 쑤셔넣습니다. 다만 밀포드 3박4일간의 식량은 서울 사무실로 부터 테 아나우 숙소로 배송되도록 하였으니 그나마 배낭의 무게가 줄어든 것입니다. 아침 일어나니 속이 영 거북합니다. 지난 밤 이번 여정을 함께할 아름다운 동행 12명이 장도의 길을 자축하면서 내놓은 양주를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상당히 과음을 했었나 봅니다. 화장실을 서너번 들락거리다 보니 약간은 기진한 상태. 그래도 내손이 내 딸이다라며 떡국 한그릇씩 끓여 내어 먹고 숙소를 나섭니다.    뉴질랜드 9대 트랙(9 Great Walks) 중 하나로 손꼽히는 루트번 트랙은 총연장 32km로 Routeburn Shelter에서 The Divide까지 혹은 역방향으로 구간 이동(Point to Point) 형태로 진행하는데 여타 세계적인 트레일로서는 매우 짧은 편이지만 어쩌면 가장 광대한 풍경을 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트랙의 최고점이라 해봐야 해발 1,255m 밖에 되지 않지만 그래도 이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정통 알파인의 모습을 그대로 품고있어 아름답기 그지없다고 평가됩니다. 이 길은 여러 빙하기를 거쳐 형성된 피오르드와 이끼들을 머금은 고색창연한 암반으로 된 해안, 하늘을 찌를 듯한 벼랑과 그 절벽을 타고 내리는 장대한 폭포들과 이들을 넓은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호수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트랙이 지나는 숲은 다양한 새들로 가득해 호젓한 길을 동무 삼아 갈만합니다. 이 길을 걷기 위해 이동하는 시작점이 Routeburn Shelter 인데 이 곳을 가기위해 지나는 도시의 이름으로 글레노키가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한 그 글레노키로 생경하고도 남다른 풍경을 마음껏 선사합니다. 이른 아침 자욱하게 깔린 호수위의 물안개와 이끼를 두텁게 덥고 있는 주변 산들은 그야말로 몽환적인 풍경으로 신비함을 더하여 호기심을 더욱 자극합니다. 이 땅 속에는 어떤 특별한 괴물이 존재하고 언제 불쑥 솟구쳐 나올건 아닌지 하고.. 글레노키의 한 찻집에서 쉬어가며 따스한 카푸치노 한잔을 감싸고 메만지며 아직 데워지지 않은 아침 햇살을 아쉬운듯 바라다봅니다.    트레일의 시작 입간판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트레킹 동안 자주 건너야 하는 출렁다리(Swinging Bridge)를 일부러 흔들고 지나며 동심을 건드려봅니다. 수정처럼 맑은 티없는 강물에 혼탁한 마음 씻기우고 푸르디 푸른 하늘 한번 우러러 보고 이끼로 치장한 산하를 굽어보니 눈마저 맑아집니다. 짙은 너도 밤나무의 창연한 고색을 음미하며 시작하여 적당히 오르는 오늘은 고작 두세시간의 산행. 원래 점심먹고 퀸스타운을 여유있게 출발해 저녁무렵 산장에 이르면 되는데 12명 한꺼번에 셔틀 버스 시간 잡기가 용이치 않아 필요 이상으로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잉여시간을 그냥 산장에서 멍때리고 있을수는 없는 우리는 언제나 피끓는 대한남녀가 아니던가! 중식후 루버번 트렉의 북쪽으로 난 사이드 트레일을 탐험하러 나섭니다. 상당한 경험자들이 아니면 시도하지 말라는 경고판이 무색하지 않게 시작부터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강을 건너야 합니다. 빙하가 녹아 깊은 골을 타고 내려온 강물은 시리기 짝이 없는데 아린만큼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것은 잔 자갈을 밟으며 얻는 맛사지 효과. 신발을 목에걸고 억새가 출렁이는 드넓게 펼쳐진 황금빛 루트번 계곡을 맨발로 걸으니 힐링이 따로 없고 이방의 땅기운이 그대로 우리 몸으로 흡입되는 듯 참 좋은 기분입니다. 따스한 햇살은 제법 땀도 나게 하며 골마다 흘러내리는 청아한 물소리에 짙은 녹음 속을 부지런히 옮겨다니는 귀여운 새들의 맑은 노래소리는 우리의 마음도 함께 평화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너무하다 할 정도로 각별히 지켜온 뉴질랜드의 자연. 어디서나 마음대로 마셔도 된다는 이곳의 흐르는 물. 모두 손으로 몇 웅큼씩 들이 마시며 맛을 호평합니다. 수만년 묵은 초목의 뿌리에 머물게 하다 내놓은 약수같아 깊은 향내까지 머금고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