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의 메카.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1

나마스테. 히말라야에 오면 반기는 인사입니다. 신들이 거주하는 땅. 히말라야. 한번 이 땅에 발을 들여놓으면 언제나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곳. 히말라야는 한번도 안가본 사람들은 있어도 한번만 가고 마는 사람들은 없다고 합니다. 고산 고소증과 경사가 심한 산길 그리고 끝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며 파김치로 만들어버리는 그 고통으로 다시는 히말라야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떠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고난의 시간들은 잊혀져가고 미움이 그리움으로 변하면서 그 장대한 설산 고봉이 보고 싶어지게 됩니다. 그 연모로 다시 찾은 이들과 난생처음으로 히말라야를 밟게 된 이들 등 열명이 팀을 꾸려 세계 3대 베스트 트레일로 세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등정에 나섰습니다. 히말라야에 간다하면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가 하나의 산인줄 아는 경우가 있는데 히말라야는 거대한 산군이자 산맥입니다. 네팔, 티베트, 부탄, 파키스탄, 인도와 중국까지도 품고 있으며 여기에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위시해서 안나푸르나, 마칼루, K2 등 8천미터 이상급의 산 14좌가 퍼져있는데 히말라야에서는 8천미터를 넘지 않으면 산(Mt.)이라고 불러주지도 않고 그저 피크(Peak) 정도로 불러줍니다. 심지어 세계 3대 미봉으로 ABC 트레킹에서 볼 수 있는 신성한 봉우리 마차푸차레와 이번 우리들 EBC 트레킹에서 늘 곁에 두고 볼 수 있는 아마 다브람(6,856m) 도 예외는 아닙니다.    카트만두 공항 공사로 루크라로 가는 길이 더욱 멀어졌습니다. 새벽 두시에 준비하고 먼털리란 인근 비행장으로 4시간을 달려 경비행기를 타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아찔한 공항으로 찍힌 루크라에 내려 11일간의 걸음의 축제가 시작됩니다. 원래 이틀을 고소 적응의 날로 현지 가이드의 제안을 받았지만 팀 구성원 모두 고산 트레킹의 경험들이 적지 않아 4,400미터에서 5,600미터 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고도 적응을 한번만 하기로 했습니다. 히말라야 3대 트레킹 코스로 일컫는 곳은 우선 한국인이 가장 많이 즐겨 찾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Annapurna Basecamp)와 랑탕 벨리(Langtang Valley) 그리고 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 Everest Basecamp)입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보통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만 찍고 돌아오거나 혹은 푼힐 전망대를 경유해서 베이스 캠프로 가기도 하며 안나푸르나 산을 온전히 한바퀴 도는 제법 도전적인 안나푸르나 라운드 서킷(Annapurna Round Circuit)도 있습니다. 랑탕 벨리는 대부분 옥빛 빙하호수인 코사인쿤드 까지 보고 오게 여정을 계획하며 EBC도 5,550미터 지점의 화려한 전망대 칼라파트르까지 오르는 것을 포함합니다.    고 박영석 대장과 친구라며 자랑하는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찾는 루크라 공항 인근 히말라야 로지의 셀파 출신 사장에게 종주를 마치고 돌아와 자축할 소주와 안주감들을 맡기고 길을 나섭니다. 물론 이십킬로그램 씩을 지고갈 우리 셀파들을 위해 짐을 줄여주기 위한 작은 배려이기도 합니다.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여살며 정을 나누며 살아온 셀파족들. 볼이 빨갛게 익은 어린 아이들의 나마스테 쵸콜렛이라는 신조어를 수없이 들으며 동네를 지납니다. 시작부터 건너게 되는 출렁다리. 깊은 협곡이 발아래 있어 제법 아찔한데 덕지덕지 붙어 세찬 바람에 날리는 경전담은 깃발들이 힘차게 펄럭이며 우리의 전도를 축복해줍니다. 물빛 고운 강물이 계곡을 따라 우렁차게 흐르는데 주변국의 유명한 인더스강과 갠지스강, 양쯔강은 모두 히말라야에서 발원하니 이 물도 흘러들어 어느 강으로 합쳐지겠지요. 우리의 EBC종주 동안 이 강을 벗삼아 오르며 어께를 나란히 하기도 하며 이쪽저쪽으로 건너면서 늘 함께 하게됩니다. 완주의 각오를 외치고 출정을 하는데 출발점에서 계속 내려가는게 영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이런 내리막길이 지속되면 그만큼 또 힘들게 올라가야 하니까요. 아니다다를까 6시간 이동 막판 수백미터 오름길이 다들 죽을 맛이라며 올라야 했습니다. 머나먼 미국에서 한국에서 심지어 뉴질랜드에서 까지도 오느라 여독도 풀리지 않았고 시차적응도 되지 않은 상태라 모두 팍딩으로 가는 길을 더욱 힘들어 합니다. 78세 노익장을 보여주는 대선배님의 해마다 다르네 하는 푸념이 남의 말 같지 않아 가슴이 저려오는데 구름에 가렸다가 성큼 다가온 눈앞의 흰눈 가득한 거산이 모든 근심을 일시에 날려버립니다.    팍딩 마을에 들어서는 구름다리 위에서 오늘은 저 빙하녹은 차디찬 강물에 뛰어들어 알탕을 하자며 호기를 부렸지만 방마다 온수 샤워가 가능한 로지를 얻고서는 갈등이 생깁니다. 하지만 편리함과 호사스러운 쪽으로 결국은 마음이 갑니다. 뜨거운 물로 땀을 씻어내고 새털처럼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한없이 여유로운 오후를 즐깁니다. 따사로운 햇살과 상큼한 바람. 산촌엔 저녁밥 짓는 연기와 음식 냄새로 가득하여 시장기가 동하는데 독주만 좋아하는 동행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에 스카치 위스키 딱 한잔이 한병을 다 비우게 되고 저녁 식사를 위해 모여든 모든 동행들과 맥주판으로 이어집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술을 깔끔하게 잘마시는 거포들입니다. 저녁상을 받기도 전에 양주로 시작하여 맥주. 소주로 이어지는데 내 고향 대구에서 온 58년생 개띠들의 나들이 팀과 만나게 되어 질펀한 술자리가 이어집니다. 돈육 삶아 한국식 양념을 얹어 먹는 수육 안주. 술이 답니다. 내일이야 어떻든 오늘만큼 마음껏 취해봅니다. 얘기를 나누다가 그 일행 중에 국민학교 동창생 하나를 우연히 만나니 32년 이국생활에 이산 가족 만난듯 감회가 새롭습니다. 호방한 주연. 그렇게 그렇게 히말라야 어느 산촌의 한 밤이 허물어져 갑니다.    티없이 맑은 하늘이 열리고 오늘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마을을 들어서거나 나갈 때는 어김없이 불교 경전을 새긴 판각이 있고 원통형을 돌리게 합니다. 마을 주변으로는 언제나 깃발이 휘날리고... 깃발에 새긴 복음이 사바세계로 널리 퍼져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염원이 담겨 있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탑을 돌거나 원통을 돌리면서 자신들의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 여긴답니다. 우리도 오늘 하루 청명한 일기를 주십사 빌며 길을 시작합니다. EBC는 테베트 풍이 매우 강합니다. 영토는 네팔이지만 테베트 족인 셀파들이 대를 이어오면서 살고 있는 셀파족들의 고향입니다. 오늘 하루를 내리게 될 남체 바자르가 바로 그 셀파족들이 무수히 모여사는 본향이자 수도격인 대형 마을입니다. 화려한 호텔부터 각종 카페나 음식점 그리고 기념품점들이 가득차 거리들은 생기가 넘치고 티베트 마켓이라고 매일 장도 서는데 오늘은 거기서 닭을 사서 백숙을 해먹으리라 다짐하며 갑니다. 가는 곳마다 의미있는 장소마다 대형 탑과 불교 경전을 새긴 판각들이 즐비하고 이따금 거대한 바위를 빼곡하게 양각으로 새긴 대역사의 경전들도 만나게 되니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그 악착스런 셀파족들이 복속된 중국과 네팔의 분쟁으로 국경이 봉쇄되고 자유로운 출입이 불가능하고 규제가 심하게 되었답니다. 돌아갈 수 없는 셀파족들은 이 계곡의 주인이 되어 상권을 휘어잡고 수전노 같은 양태를 곧잘 보이는데 미국 이민 생활 32년차인 나로서는 이국땅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친다는 동병상련의 연민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나 너무 심한 경우도 있어 아주 질색입니다. ABC쪽과는 달리 순수함이 점점 없어지고 이속만을 너무 챙긴다는 질책이 많아지는 작금의 현실입니다.    히말라야의 산길은 호락호락 하지가 않습니다. 왜 그리 롤러코스터 처럼 오르내림이 많은지 방문객들의 인내심의 한계를 제법 시험합니다. 한걸음 옮기기도 숨이 차고 다리 근육이 묵직해지는데 고무 슬리퍼를 신고 수십킬로 짐을 메고 날듯이 뛰어가는 그들이 부럽기만 합니다. 이들만의 독특한 문화의 하나로 T 자형 굵지만 지팡이로 사용하기에는 짧은 몽둥이들을 하나씩 들고 갑니다. 험한 길을 오르내리다 잠시 숨을 고르며 쉬어가고 싶을 때는 아무데서나 짐보따리를 맨 채 그 T자형 몽둥이에 올려놓으면 됩니다. 18세를 넘어야 포터일을 할수 있는데 막 그렇게 쉬었다 떠나는 가녀린 체구에 앳띤 얼굴의 어린 두 아이를 봅니다. 가만 박스마다 적혀있는 무게를 합산해보니 딱 100kg이라 한동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고 지고 가는 그들의 삶의 무게가 너무도 애처럽게도 무거워보입니다. 스치는 그들의 입에 캔디 하나씩 물려주는 위로를 줄수 밖에 없는...   늘 길위에서 만나는 사람들. 이곳에서도 다양한 군상들을 만나게 됩니다. 특별하게 눈에 띄는 몇 사람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12일간의 종주를 위한 준비가 전혀되어 있지 않은 차림의 여자 친구를 데리고 그 비난과 앙탈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오르는 커플. 저들의 저런 여행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여겨집니다. 그리고 적어도 젊은 시절 산악인이나 등산 마니아였을 아빠의 손을 잡고 오르는 열살도 되지않는 두 아들과의 동행. 하나는 아미 고산증의 고통에 두통을 호소하며 울먹이는데 다른 하나가 등을 쓰다듬어주며 위로를 합니다. 응급처치를 해주는 아빠의 손길. 이 한장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그들은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또 자신들의 아이와 함께 이런 아름다운 동행이 되겠지요. 남체 마을 들어서기 전에 잠시 등록을 위해 동구 밖에 앉아 대기하면서 서로의 나이를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 가장 압권은 독일에서 왔다는 82세의 노인분. 서양인 답지 않은 왜소하고 깡마른 체구에 해맑은 웃음이 떠나지 않는 밝은 얼굴로 아들과 손주들 3대를 데리고 나선 길이었습니다. 서로 챙겨주고 위안이 되어주며 이 힘겨울 종주길을 그렇게 헤쳐나가더이다.    디보채 숙소를 떠나 완만한 경사의 계곡길을 걷는데 일단의 야크 무리들이 워낭소리를 내며 지나갑니다. 등에는 묵직한 짐들이 실려있고 계곡을 따라 오르면서 터를 잡고 사는 이들에게 팔 생필품이나 로지에 대주는 개스통과 물품들이 대부분입니다. 야크는 생각보다 큰 덩치에 추위를 견디기 위해 검은 긴털을 입고 있어 무척 위압적인데다 아주 공격적인 뿔로 호전적인 동물로 보이나 실상은 그렇게 온순하다 합니다. 특히 이 야크의 배설물은 겨울을 나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요긴한 땔감으로 쓰여지는데 아낙들이 검은 반죽을 담벼락이나 돌담위에 덕지덕지 붙여 말리는 작업을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야크 뿐만 아니라 말과 당나귀들도 모두 수없이 이어지는 물품 운반에 동원되는데  힘겨운 삶의 흔적으로 등가죽이 헤어져 있음을 보며 한마디씩 합니다. 어쩌다 이런 곳에서 태어나 죽어라 고생하며 일만하다 죽어가고.. 짐승이나 사람이나 태어나기를 좋은데서 해야지라고... 마을을 벗어나 아직 아침안개가 걷히지도 않았는데 어린 소녀가 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데 큰 밭떼기 하나를 벌써 반이나 파놓고 허리가 아픈지 몸을 일으키며 이마의 땀을 훔칩니다. 설산을 배경으로 한 이 풍경을 담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자 수줍은 표정으로 몸을 돌려 다시 일을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한 괭이질에 폴폴 일어나는 삶의 고단함. 에베레스트 만나러 가는 길의 한 풍경입니다.    에베레스트를 품고 있는 사가르마타(Sagarmarta) 국립공원 깊숙이 들어갑니다.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의 원래 이름은 '사가르마타'인데 영국 식민지 시절에 바뀌어 부르게 되었는데 차츰 널리 통용되다가 이제는 네팔 현지인들조차 에베레스트로 부른답니다. 이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은 에베레스트를 보거나 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또 얼마나 죽어갔는지! 그 많은 사람들 처럼 우리도 오늘 그 길위에 있어 조만간 이루어질 대자연의 멋진 풍경과의 해후를 꿈꾸며 한걸음 한걸음 오천고지를 향해 올라갑니다. 오늘은 700미터 정도를 느슨하게 대여섯 시간 정도 오르면 되려나 했더니 밥값하라며 그저 먹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오늘 정한 우리의 숙소는 4,400미터에 자리잡은 딩보채인데 마지막 3백 미터를 올리는데 사력을 다합니다. 이미 희박해진 산소로 몇발자국만 걸어도 숨이 차 헉헉거리게 되고 산소의 순환을 위한 혈류의 이동이 순조롭지 못하니 말초 부위들이 저려오고 배낭의 무게에 골반까지 아파오며 터질듯한 종아리와 인대의 땡김에 총체적인 고통의 순간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한발한발 숨을 고르며 천천히 오르면서 한번씩 되돌아보면 내가 이렇게나 멀리 왔나하며 대견해 하기도 합니다. 고행을 자처한 수도자의 길. 이 길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수 있을까? 다 자신들이 풀어야 할 몫입니다.    이제 손에 잡힐 듯 마을이 가까워졌습니다. 어둡게 낮아진 하늘은 결국 콩알만한 우박을 내리 쏟아버립니다. 머리가 아플정도라 모자를 쓰고 레인 자켓을 입고 방비합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설 때는 이제 눈으로 바뀌어 소복이 쌓여갑니다. 주변 산들도 하얗게 채색되어져 가고 내리는 눈 뒷편으로 희미하게 에베레스트가 첫선을 보입니다. 로지에 들어 방을 배정받았어도 추워서 아무도 가지않고 식당에 머뭅니다. 야크 똥으로 피워둔 인색한 화력의 난로 옆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눈내리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봅니다. 아무리 훔쳐내도 깨끗해지지 않는 손때 묻은 창으로 여러 풍경들을 둘러봅니다. 제법 쌓인 지붕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새로 짓는 로지의 돌다듬는 소리가 규칙적인 음악처럼 흐르고 속수무책으로 눈을 맞고 있는 야크의 눈망울이 슬프게 보여지는 풍경들. 고산증이 두려워 안마시겠다는 동행 한사람을 결국은 꼬드겨서 소맥 낮술을 시작합니다. 일찍 로지에 들어서 그다지 할 일도 시간 보낼 일도 없으니 그저 잠이나 자게 되는데 그러면 또 밤이 괴로워지니 낮시간을 버티면서 한모금씩 술로 시간을 달랩니다. 어두워지는 산동네에 여전히 눈은 소리없이 내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