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셰난도어 국립공원 트레킹 1. 설국속으로 가는 눈꽃 산행.

셰난도어에 눈소식이 전해와 배낭을 꾸렸습니다. 가는길 계속 비가 내려 오늘 산행 초치는 것 이닌가하는 우려가 마음을 어둡게 하는데 점점 산이 가까울수록 산정에 하얗게 쌓인 눈의 풍경이 시야에 차니 그제서야 안심을 합니다. 고마우신 산님이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낙화. 겨울에 지는 꽃이 비단 동백꽃 뿐이더랴? 셰난도어 국립공원내 산정에도 눈꽃이 하염없이 지고 있었습니다. 간밤에 세속에는 비가 제법 내렸고 아무 기대감 없이 산으로 다가가니 셰난도어 가장 높은 산봉마다에는 하이얀 흰눈이 쌓여있었고 구름 띠를 두르고 우리를 유혹 합니다. 코스를 변경하여 스카이 라인으로 차를 몰고 진입하여 신작로를 달리는데 그야말로 눈꽃 터널이라. 양 갓길을 도열한 겨울 나목들이 눈꽃을 활짝 피운채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늦은 아침나절 올라간 수은주는 나무에 고이 덮힌 눈들을 녹게하여 비장한 설화의 낙하가 슬프도록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약수터 앞에 섰는 나무. 두 그루라 하기에도 한그루라 하기에도 묘한 그런 나무입니다. 전혀 다른 두 그루의 나무들이 아예 통째 붙어서 한 나무가 되어 버린 것을 연리목이라 하고 가지만 서로 만나 붙어버린 것을 연리지라 합니다. 얼마나 그리우면 그랬을까 하는 그 애틋한 사랑을 기리면서 다들 그렇게 이름 지어 주었다 합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연리목이었다가 다시 자라면서 이별을 하고 그래도 아쉬워서 가지가 다시 붙어버린 연리지의 복잡한 구조입니다. 어쩌면 한 커플의 사랑의 역사를 보여주는 듯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나 하나가 되어 살다가 마음이 맞지 않아 헤어진 뒤 그래도 그립고 못잊어 손이라도 잡고 있는 형태. 오늘날 다양하게 일어나는 부부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해서 그만 실소를 금치 못하고 말았습니다. 한번 연을 맺은 사랑 이별 없이 영원할 수 있다면 하는 탄식이.... 드디어 메리스 락 정상에 섰습니다. 속세의 모든 색이 지워진 설공, 여기서 보면 세상도 마음도 얼마나 혼탁했던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순수만이 허락된 이 산정에서 그 동안 집착의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지난날이 회한으로 떠오르며 이제사 저 깊은 순백의 계곡으로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습니다. 푸른 산 능선은 파도처럼 구비치고 골마다 가득 메운 농무는 좀처럼 승천하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저들도 이 수려한 풍경을 맘껏 즐기려 함이겠지요. 일렁이는 바람에 가지마다에 맺힌 빙화들이 서로 부딪히며 청명한 음률을 들려줍니다. 겨울 산의 정취가 그대로 스며드는 꽤나 정직한 시간, 세상을 발아래 두고 서있는 이 순간 세상 두려울 것 없는 삶의 투지와 용기를 가득 얻게 됩니다. 지나치는 한자락 강풍에 또 세월의 하중을 못 이겨 고목 한그루가 얼음 옷을 입은 채 길을 가로질러 스러져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무한하지 않은 법, 저 고사목처럼 덧없이 스러져 갈 삶인데 사랑하기도 부족한 시간에 무슨 연유로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며 살아야 할까 하는 회한이 이는 순간입니다. 올드랙을 오르며. 눈 . 설산. 겨울 산행을 아름답게 마무리 해주는 구성요소의 백미. 올해는 원없이 이 척박한 워싱턴 산에다 눈을 가득 채워주었습니다. 선술집에 앉아 뒤풀이로 치맥을 나누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펑펑. 밤을 쉬지않고 내려 쌓여서는 동화속 은빛 세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부푼 가슴을 안고 셰난도어 국립공원으로 내달립니다. 예상대로 켜켜이 쌍인 깊은 눈밭에는 바람이 떨구고 간 부서진 나무가지 뿐이었고 우리는 누구의 발자취도 남기지 않은 순수의 땅을 밟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자연의 섭리는 거스릴수 없는 법. 돌틈 사이로 녹아 흐르는 봄 여울물의 소리가 청아하기 이를데 없는데 맑고 청명한 겨울 산하에 공명을 울리며 눈을 이고 있는 암반사이로 힘차게 흘러갑니다. 바위산. 올드랙을 이렇게 눈이 쌓인 날은 생명을 담보로 오른다면 몰라도.. 초반은 소방길로 올라가 후미로 정상을 밟는 코스로 정하고 흥겨운 발길을 내딛습니다. 조그마한 철제 다리도 두서너개 건너고 조금은 지겨울 즈음에 바위 산길이 시작됩니다. 바람은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을 식혀줄 정도로 적당하게 불어주고 언제 그랬나는 듯이 장난스레 웃고 있는 밝고 맑은 햇살이 온누리를 축복처럼 내리고 있습니다. 해우소. 중간지점에 인간의 근본적인 근심을 들고 가라고 제주도 똥돼지 키우는 우리처럼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고 대피소 같은 백 칸트리 마니아들을 위해 셸터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범하지 않은 순수의 땅. 오직 먹이를 찾아 나선 사슴의 어지러운 발자욱과 귀여운 산새들의 부산함이 그대로 찍힌 표식만... 인간의 개발을 거부하던 산짐승들도 이렇게 눈이 많이 와버리면 인간이 낸 길을 따라 걸으며 타협을 할줄도 아는가 봅디다. 제법 가파르고 험한 바위길. 이미 대부분은 대피소에서 영원히 대피해버리고 다섯명만 정상 도전. 그러나 길은 모두 눈으로 덮혀버려 눈때문에 힘든건지 돌길이라 힘든건지 분간할수도 없지만 통천문을 지나고 거북바위를 건너고 마침내 일차 정상에 평소 두곱절의 시간이 걸려 도착했습니다. 알티미터에 찍힌 고도. 928미터. 멀리 스카이 라인이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고 한폭의 수묵화를 그려내는 셰난도어의 산풍경. 깊게 숨을 들이키고 내쉽니다. 체내에 쌓였던 온갖 삶의 부산물이 다 빠져나오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얻습니다. 에너지의 재충전도 함께 말입니다. 하이얀 고요 속에 빠져있는 SKY MEADOW . 눈 내린 하늘 정원. 산정에 너른 목초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언제나 볼수록 마음의 평화를 얻고 가는 고향 같은 풍치로 유명합니다. 산정 능선에는 미 동부의 대표적 트레킹 코스인 에팔레치안 트레일 3,600km의 일부가 획을 긋고 지나가는 그런 이곳에 오늘은 순백의 눈들이 쌓여 그야말로 설국을 이루고 있습니다. 산아래 동리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와 지명이 동일한 Paris. 프랑스 어느 시골에 농가들이 한적하게 펼처져 있어 목가적 풍경을 감상하며 마음에 평화를 가득 담아가는 산길인데 평소 봄이면 푸른 들판에 온갖 들꽃들이 만발하여 향기를 피워내고 가을이면 들풀들이 지천으로 피어올라 곱게 채색되니 총천연색의 유화를 그려내는 그런 곳입니다. 오늘은 그 더 넓은 초원에 단색의 하얀 눈꽃들이 피어 흐드러져 있습니다. 겨울나무들이 아름다운 눈꽃으로 새 생명을 피워낸 설원. 순백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갑니다. 자연이 준비한 순백의 향연. 우리는 이곳에 초대받은 귀빈이 되어 원 없이 잔치를 즐깁니다. 그리고 또 이 잔치가 끝이 나고 세속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아름답게도 아득한 기억은 두고두고 그리움으로 남을 것입니다. 오늘처럼 봄이 오는 소리가 꿈결에도 아련한데 그 기다림과 그리움이 엉기고 엉기어 마침내 순백의 은빛 눈꽃으로 맺혀진 듯합니다. 리틀스토니 맨 마운틴. 바위 산정에 오르니 발아래 펼쳐진 자욱한 운해.나목의 가지에는 눈꽃이 만발하고 세월의 나이를 가늠할 수없는 암릉위에도 켜켜이 마지막 겨울의 산물이 쌓여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셰난도어의 최고봉이래야 1300미터 정도이고 자연 환경상 상고대를 보리라는 기대는 애시당초 갖지도 않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셰난도어 산정에서 상고대와의 느닷없는 해후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눈의 산 덕유. 지리에서 보던 그 깃발같은 상고대는 아닐지라도 앙증스런 미니 상고대의 형성에 마냥 신기해 하며 즐거워 한 하루.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겨울왕국으로의 초대에 모두 행복한 시간들을 향유했더랬습니다. 자축의 정상주 한순배가 이리도 달콤할 줄이야... 겨울 산, 사람의 길도 마음의 길도 곧잘 얼어붙어 버리는 계절. 여느 때보다 더욱더 뒤돌아보고 자주 더불어 지낼 일입니다. 산도 그 누구인가와도 말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의 정리로 다시 한 번 세상을 보듬으리라 다짐하면서 산을 내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