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 히말라야 랑탕 밸리. 2

눈만 뜨면 걷고 지치면 자고 또 해가 뜨면 걷는 이제 습성이 되어버린 이 기인 긴  작업. 생각마저도 지극히 단순해지면서 머리가 맑아져 옵니다. 이른 아침 강으로 내려가 머리 속이 텅 비어버리는 빙하녹은 강물에 머리를 감습니다. 강으로 오가는 짧은 길에도 그들의 모진 삶이 담겨져 있습니다. 인간과 동물과의 삶의 경계가 모호한 곳. 구정물인지 식수인지도 분간이 가지 않는 이 비위생적인 생활이 있기에 이렇게 척박하고 험한 자연과 맞싸워 살아남을 수 있는 저항력을 키워온게 아닌가 하고도 넘겨줍니다. 우리도 한시절 모진 가난속에서 살아봤고 이를 잡는다고 몸에 DDT를 뿌려가며 살아봤던 적이 있었으니...  오늘은 이 라마 호텔에서 내려가 Domen에서 길을 꺾어 다시 툴로 샤브루(Thulo Syabru) 까지 치고 올라 가야 합니다. 그래도 오늘은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예약된 로지의 쥔장이 가이드의 인척. 왕복 여덟시간 걸려서 샤브루베시를 오가며 풀품 배달하는 인편으로 미리 닭을 두마리 주문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로지에 도착하자마자 주방을 빌려 요리가 시작되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에 옥상 테라스에서 우리들만의 히말라야 판 잔치가 시작됩니다. 일정의 반을 마감한 지금까지 수고한 가이드와 셀파들 그리고 넉살 좋은 젊은 쥔장 내외까지 동석시켜 거나한 술판이 벌어집니다. 술기운 탓인지 아쉬워 서산에 걸린 채 불타고 있는 황혼빛에 물든 탓인지 모두들 만면에 홍조를 띄고 분위기는 고조되니 가이드며 포터들도 한술 더 떠서 감히 우리에게 말대꾸도 해댑니다. 그 벌로 가이드에게 우리네 아리랑 같은 네팔리 노래 레쌈삐리리를 부르게 하니 기다렸다는듯이 마지막 소절까지 부르는데 산촌의 밤은 점점 흥이 무러 익습니다. 우리도 포크송으로 시작해 결국은 젓가락 장단에 흘러간 옛노래를 부르며 향수를 달래게 됩니다. 내일까지도 고산증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감히 접할수 없을 것 같은 기막힌 우리네 안주가 있어 맥주며 럼주며 위스키며 이 로지가 보유한 알콜은 모두 떨이를 해버립니다. 그나마 히말라야 그들 로지중에서는 5성급 호텔격인 오늘밤 숙소.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우리 음식에 포식하고 얼큰한 안주에 한잔 취하니 이제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후담이지만 동행이 말합니다. 맛있는 한끼 식사가, 온수 샤워가, 판자때기로 막아서 옆방에서 코고는 소리에 몇번씩 깨어나도 눈바람을 맞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내 생에 이렇게 사무치게 감사한 것인지를 몰랐다며 아내에게 전화하며 울었다 합니다.    평소보다 아주 늦게 작정하고 일어들 납니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진탕 마셨으니까요. 장안에 내노라하는 거포들 셋이 뭉쳤으니 상상을 초월합니다. 늘 동이 트면 길을 떠나다가 9시 경에 출발했는데도 마치 해가 중천까지 떠오른 느낌입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1200미터를  꺾지않고 싱곰파까지 꾸준히 올라야 하는 오늘의 일정입니다. 마을을 벗어나 산길을 치고 오르는데 참 죽을 맛입니다. 가장 늦게 까지 또 가장 많이 마셨을 막내가 뒤쳐져서 힘들게 올라옵니다. 그럭저럭 어느 전망이 좋은 쉬어가는 로지에 도착해서 한시름 풉니다. 바람이 붑니다. 고난도 고통도 잠재우며 기분이 상쾌해지는 이 습기 하나 없는 쾌적한 바람. 백만불짜리 바람이라 평가합니다. 따가운 햇살에 골을 채운 아련한 연기로 시야가 투명하지 못한데 멀리 히말의 산들이 빛바랜 그림처럼 풍경을 만들어 보입니다. 그 풍경 아래 산자락 한뼘 땅만 있어도 정착한 촌락들이 산마다 골마다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가고 서로 소통하기 위해 낸 길들이 이리저리 휘어져 선을 두텁게 그어 놓았습니다. 크게 자라지 않는 산죽이 터주는 길을 따라 조그만 동네로 들어갑니다. 이곳 산비탈 작은 채전에도 때가 되니 보리가 영글고 콩밭인가 싶은 무성한 작물 아래서 닭들이 사랑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연속에서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는 농익은 큰애기들 총각들 할매 할배들.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던가. 히말라야에 기대어 사는 그들은 부족하고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늘 그렇게 행복해 보입니다.    해발 3천을 훌쩍 넘긴 싱곰파로 들어서니 이곳에는 계절이 늦게 찾아와 이제야 봄꽃들이 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네 개나리 같은 노란 꽃들이 화사하게 흐드러져 있고 종이를 만들어낸다는 이곳의 페이퍼 플랜트가 그야말로 산기슭을 모두 채우고 화려한 보랏빛으로 오후 햇살에 지천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야생화 천국이며 미려한 꽃동산입니다. 이곳에도 분홍빛 랄리 구라스가 마지막 생을 마감하기 전 절정의 짙은 색을 토해냅니다. 이미 길 위에 가득 떨어져 우리들 발길에 밟히는 랄리구라스의 낙화와 새롭게 생을 여는 화려한 들꽃의 만개. 꽃들의 윤회를 봅니다. 꽃향기에 취해 평탄한 오솔길을 걷는데 주체할 수 없는 흥에 레쌈삐리리를 선창하니 우리 포터들 뿐만 아니라 짐을 진 모든 이들이 따라 부르게 되고 급기야는 산전체에 메아리 되어 울려 퍼집니다. 그런 흥겨움도 잠시 이제 다시 4,400미터 높이에 누워있는 고사인쿤다 호수 까지 고소와 싸우며 올라야 합니다. 바람도 매섭게 몰아치며 손과 얼굴이 시려옵니다. 더욱 무거워진 발걸음. 깊은 숨을 몰아 쉬고 고개를 넘는데 어제의 로지에서 올려다 보던 그 설산들이 이제 우리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니 목전에 펼쳐지는 그 장쾌하고도 미려한 풍경에 저절로 발길이 멈춰집니다. 이 거룩하기 까지 한 풍경을 다 마셔버리고 싶은 충동과 욕심.    랑탕 트레일은 표고 1,410m의 샤브루베시(Syabrubesi)에서 시작해서 3,870m의 캉진 곰파(Kyanjin Gompa)를 찍고 샤브루베시로 내려오는 일주일짜리 트레킹 코스가 일반적입니다. 이 코스는 길을 걷는 동안 티베트 타망 부족의 마을을 경유하며 컁진 곰파에서 더 올라가 4,800미터의 캉징 리(Kangjin Ri) 전망대에 한나절 발품 팔아 올라가면 해발 7,256m의 랑탕 리룽(Langtang Lirung)과 북서쪽으로 펼쳐지는 가네쉬 히말(Ganesh himal)을 비롯해 주변 설봉들과 빙하를 포함한 히말라야의 전형적인 알파인 형의 장대한 멋진 풍경을 내내 감상할 수 있습니다. 내려오는 길목에서 길을 틀어 다시 4,400미터 고지에 성스럽게 누워있는 빙하호수 고사인쿤다(Gosainkunda)를  만나고 처녀골이라는 순다리잘(Sundarijal) 까지 무릎이 시리도록 끝없이 내려가는 고사인쿤다, 헬람부(Helambu) 트레일까지 함께 한다면 랑탕의 그 수려한 비경을 모두 감상 할 수 있습니다. 랑탕과 헬람부 사이에 위치한 코사인쿤드 호수는 시바신 등 힌두의 신들이 거주한다고 믿어지는 신성한 곳으로 매년 8월이면 힌두 축제를 위해 많은 인도인들이 방문하는 힌두교의 3대 성지이기도 합니다. 네팔인들도 85%가 힌두교 신자들이라 하는데 그래서인지 거의 모든 포터들이 우리는 보는 것 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고 전율이 일어나는 고사인쿤다 호수 냉수욕을 합니다. 아직도 녹지않은 얼음들이 둥둥 떠다니는 이 신성한 호수에 몸을 던져 몸도 마음도 영혼까지도 세척을 합니다. 시바신에게 바치는 경건한 그들만의 의식인듯...   이른 새벽. 서둘러 배낭을 꾸려서 탈출하듯이 로지를 떠납니다. 같은 건물 안에 있는 원시적 재래 화장실의 악취가 참기 힘들고 다락방에 꽉채운 가이드와 포터들의 움직임과 소음이 쥐새끼들의 내달음 같고 옆방의 소곤소곤 얘기 소리도 선명하게 죄다 들려오고 곳곳에 구멍난 곳으로 눈보라가 쳐들어 와 새우잠을 자게 하는 이 열악한 환경. 한달 이상은 몸도 씻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았을 것 같은 로지 주인과 주방장. 그들의 파커 자켓의 소매와 목 가슴등 돌출부는 겨우내 한번도 갈아 입지 않았는지 덕지덕지 붙은 때 자국의 윤기가 찬란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차마 곡기 하나 채우지 못하고 술만 마시다가 출발한 새벽. 마지막 정점인 4800미터의 고개를 넘는데 죽을 맛입니다. 칼바람은 뺨을 도려내고 흩날린 물기는 결빙으로 길을 채워 몸을 가누기가 힘이 들고 뱃가죽은 등짝에 가서 붙었는데 설원을 오르는 우리의 하체는 그저 후들후들 떨리니 비틀비틀 힘겹게 올라가는 이 고행의 시간이 언제 끝이 날까 두렵기 까지 합니다. 배낭 속에는 아이젠이 들어 있건만 그것 하나 끄내서 신을 기력조차 없어 그냥 그대로 밤새 다시 얼어버린 비탈진 길을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한발한발 눈을 차며 천천히 이동합니다. 그 긴긴 고행의 길. 어둠을 걷고 차오른 태양이 산마루를 올라설 즈음에야 바람도 칼추위도 한풀 꺾입니다. 바로 눈앞의 작은 언덕에는 무심한 마니탑이 울긋불긋 경전으로 치장을 하고 세찬 바람에 깃발을 날리며 히말라야의 잔인함을 일깨워 줍니다.    바람을 막으려고 쌓아놓은 최정상 돌 무덤 뒤에 몸을 숨기고 긴 한숨을 쉽니다. 이제사 메마른 갈증과 공허한 허기가 어깨동무하고 밀려옵니다. 수통의 물을 반은 단숨에 마셔버리고 비스킷 두어쪽으로 시장기를 속이고 담배 한 모금 깊게 들이킵니다. 그리고 우리가 걸어온 길을 내려다 봅니다. 하이얀 설원 위에 남아 있는 우리의 족적. 이다지도 힘겨운 길을 걸어와 이번 여정의 정점에 서서 돌아보는 멀고 험했던 히말라야 산길과 내 삶의 길. 잠시 설국에 머물게 하며 주는 신의 선물. 이 아름다운풍경. 그 고난의 길 끝에서 와락 달려드는 이 허무함. 우리네 인생도 그러하지 않았던가! 이제 내려가야 합니다. 길은 올랐던 거리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재수 없으면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 할 날이 남아 있는 것 처럼 말입니다. 후련하면서도 착잡한 정상에서의 소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감정도 바람에 흩어져 버릴 것이고 세계 전도를 펴놓고 또 다른 도전의 길을 찾게 되겠지만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여행을 통하여 히말라야가 품은 네팔과 이 산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네팔리들과의 평생 사랑의 시작이 되기도 할것입니다. 그래서 히밀라야는 한번도 안가본 사람은 있어도 대신 한번만 가고 만 사람은 없다라고 하나봅니다. 이 여정을 함께한 동행들. 본인 인생 최대의 시련을 겪고 무엇을 버리면 무엇을 얻을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고 안일하게 살아온 자신에게 모진 벌을 주면서 이제 다시 세상에 나아가 자신있게 살아갈 삶의 힘과 용기를 얻었기를 바라며 변함없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이길 염원해봅니다. 함께한 후배. 50을 맞아 살아온 반생을 되돌아 보고 남은 생의 반을 멋지게 살아갈 삶의 이정을 세웠기를 또한 바랍니다. 나? 나는 약해지는 심신을 추스리고 세계 100대 트레킹의 완주를 위해 더욱 정진하리라는 나 자신과의 굳은 약속을 하며 우리는 그 히말라야를 떠납니다. 다시 만나길.. 히말라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