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도 수려한 풍경. 돌로미테 Alta Via 1 종주 트레킹. 3

한서린 나가주오의 라가주오이 산장.  결코 게으르지 않은 돌로미테의 소들의 묵직한 워낭소리에 잠을 깹니다. 병풍처럼 휘둘러진 산군 아래 한가로운 이들의 모습들은 비스듬히 누워 아침을 맞이합니다. 옅은 구름 안개가 암산들을 휘감고 차오를 산촌의 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돌로미테의 다채롭고 특별한 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이어진 길마다 지어진 오래된 목조 건물의 소담스런 자연친화적인 산장들인데 일찌기 일, 이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돌로미테의 산장들은 세계 최고임을 느끼게 됩니다. 700여개 이탈리아의 산장들은 지금은 이탈리아 산악회에서 관리하고 있지만 대부분 처음에는 개인들이 짓어 운영했었기에 저마다 특색이 있고 나름 선의의 경쟁으로 개발해낸 음식맛이 또한 일품입니다. 해발고도 2000미터에서 2500미터를 넘나드는 이곳의 산장에서는 뜨거운 물에 몸을 씻을 수도 있고 심지어 장작불 때서 즐기는 사우나욕이나 나를 위해 조금 투자한다면 다인실이 아닌 독방에 머물 수 있는 호사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우리가 숙박했던 세네스 산장은 혹자들의 입에 회자되는 ‘세계 최고의 산장’ 목록 1위에 올라있답니다. 산장들의 음식을 비교하는 것도 트레킹의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인데 어제 저녁 정찬으로 주문한 쇠. 닭고기 음식들은 탁월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그 맛이 하나같이 깊고 입맛을 충족시킬 충분한 레시피였습니다. 허니 한잔 술이 어찌 감미롭게 목젖을 제치고 넘어가지 않았겠습니까!    조촐한 조반을 들고 마음을 보듬는 고요하고 감미로운 돌로미테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오늘의 여정은 Old WWI mountain track 이라고 별칭을 얻은 트레일을 걷는데 넓은 주차장을 갖춘 제법 규모가 크면서 아름다운 산들로 둘러쌓인 Pederu 산장(1548m)까지 500미터 고도를 낮추면서 휘휘 돌아 산수를 희롱하다가 다시 마음 단디 먹고 파네스 산장을 향해 오르막을 치다보면 보면 달과 같이 황량한 매력을 가진 길을 걷게 됩니다. Rudo 밸리로 연결해 걷는데 Fanes-Senes-Braies 국립공원의 San Vigilio di Marebbe 지역 위의 석회암 분지에 위치한 Fanes 산장(2060m)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Fanes 지역을 넘어야 하는데 주변에 펼쳐지는 장엄한 Sennes and Fanes산괴를 감상하게 됩니다. 한 때 J3에 멤버로 몸 담았던 동행과 체력적으로 비슷하다 보니까 쉬고 싶을 때도 이심전심으로 통해 휴식하고 식사 때도 혹은 생리작용의 시기 까지도 비슷하니 시간의 낭비가 없어 12시에 이미 파네스 산장에 도달하여 버립니다. 만일 예정대로 여기서 하룻밤을 지낸다면 그 긴 나머지 하루를 무얼하며 지낼까 아득합니다. 해서 더 걷기로 하고 어차피 산장에서 못자면 아무데서나 텐트 펼치면 오늘의 숙소가 되는 백팩킹의 편리함. 하루 꺼리를 더 하기로 합의를 보고 다시 언덕을 오릅니다.     고즈넉한 풍경을 발산하는 호수 Limo (2157m)에서 소들과 함께 호수물로 끓인 라면에 밥말아 먹고 길 따라 AV 1을 이어갑니다. 페인스 산군의 산자락을 오르면서 펼쳐지는 서던 마운틴 산군의 돌로미테 지역의 최고봉 MT. Marmolada의 장관을 가슴으로 읽어줍니다. 그 여유로움도 잠깐. 이제부터 전체 구간에서 가장 힘든 표고 1433미터의 라빌라 마을에서 2533미터의 포르셀라 라바렐라까지 1100미터를 올라야 하는 시간입니다. 물론 편하게 갈라치면 우회하는 길을 선택하면 되겠지만 극적인 풍경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꺼리는 스스로 고난의 길을 자처합니다. 마지막 한 시간 반의 급경사 오르막은 온몸의 남은 기운을 다 짜내어야 하지만 라빌라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Lagazuoi 호수를 품은 발 아래 풍경을 정상에서 숨을 고르며 바라볼 때  그 모든 고난의 시간들을 일시에 날려버리게 됩니다. 속계에서 선계로. 사바세상에서 천상으로 가는 문. 잘자란 목초지가 가득한 고개에 서서 호수에서 불어오는 한결 상쾌한 바람을 폐부 깊숙히 넣으며 바라보는 돌로미테 절경. 거대 암산에 비끼는 붉은 햇살이 장엄하기 까지 합니다.    이제 하산 길. 라가주오이 호수(2182m) 까지 좁은 돌무덤 사이로 엄청 경사진 길을 내려야 하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진땀 꽤나 흘려야 하는 긴장의 연속길인데 지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립니다. 이어지는 능력 한계의 등정. 다시 7백 미터를 치고 올라야 오늘의 숙소로 정한 산장에 도달합니다. 멀리서 어서오라 손짓하는데 걸음은더디고 발길은 묵직하고 여름 햇살을 땀으로 온몸을 적시게 하고 등에 진 배낭의 무게가 더욱 중압감을 느끼게 하는데 백미터를 올리지도 못하고 주저앉고 맙니다. 마지막 휘휘 돌린 깔닥고개. 동행은 심한 탈진에 특별하게도 2500에서 부터 고산증세에 시달리는 체질이라 헛구역질에 무척 힘들어 합니다. 오르는 길 왼쪽으로 역사의 상흔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습니다.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수천의 고지에 참호를 짓고 매일같이 오르내린 그 전사들의 절박함을 상기시키며 내가 원해 택한 길 힘들다 누구에게 하소연하랴며 마지막 고개를 넘습니다.   트레킹 일정 중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라가주오이 산장(2,752m).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가는 즈음에 도착한 우리. 매서운 찬바람이 발가벗은 산정에 몰아치고 땀범벅이 된 우리가 잠시 서있는데 이내 식어버려 감기가 걱정되는 상황. 체감온도는 빙점이하인데 감히 텐트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가련한 표정으로 방이아 침대 있냐고 물었더니 우리의 몰골을 본 직원이 장부랑 컴을 뒤적이더니 다인실 침대 달랑 하나 여유있다는 섭한 말을 합니다. 이 엄동설한 같은 산정에서 어디서 자냐며 바닥이라도 좋으니 자리를 내어달래니 창고 메트리스 깔아 주겠다 합니다. 지금 찬 물 더운 물 가릴 처지가 아닌지라 흔쾌히 승인하고 주린배를 채우기 위해 맥주 대자로 둘 그리고 음식도 이인분 시켰는데 동행이 아무것도먹지 못하겠다네요. 하는 수 없이 대충 음식먹고 틀이킨 두잔의 맥주에 피로감이 더해 잠이 쏟아집니다. 잠자리라고 안내된 곳은 등산화랑 빨래 널어 말리는 히팅 룸. 그날 하루밤 전 세계적인 발냄새를 음미하며 자야 했고 시나브로 빨래 건조 상태 확인하러 들랑거리는 년놈들 때문에 잠도 설치고 말았습니다. 악몽같은 하루. 그래도무심한 달도 별도 휘영청 반짝반짝 빛을 발하며 돌로미테의 깊은 밤을 비춰줍니다. 그 적막하고도 고요한 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