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도 수려한 풍경. 돌로미테 Alta Via 1 종주 트레킹. 5

체념의 미학. 산장 호수에 안기다.  산장의 아침을 열고 여장을 챙겨 또 하루 걸음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산장 조식은 판에 박힌 식단입니다. 바게트 빵에 버터나 잼. 돼지 뒷다리 소금에 절여 우리네 굴비처럼 찬 바람에 꾸덕꾸덕 말린 하몽과 치즈. 방목하는 소들이 많으니 자연 요플레가 나오며 시리얼이나 견과류를 얹어서 커피나 쥬스 또는 우유랑 먹습니다. 오늘 아침의 이 음식이 그래도 넘어가는 것은 어제 시간의 여유도 있고 해서 객실 밖의 베란다에서 오랜만에 고슬소슬 쌀밥짓고 황태 미역국 끓이고 각종 밑반찬으로 거하게 한식 만찬을 즐겼기 때문입니다. 와인 한병 시켜서 드넓은 Giau 고개길의 풍광을 마음껏 음미하며 말입니다. 흔히들 이탈리언 음식들이 우리 입맛에 제법 맞는다고들 하지요. 아무래도 마늘을 조미료로 쓰고 버섯이나 야채를 많이 쓰니 그런지도 모릅니다. 아침은 천편일률적이라 해도 저녁 식단 만큼은 산장마다 저마다의 솜씨로 내어놓는데 제법 먹을만 합니다.    끊이지 않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거친 자연과 투쟁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라 투박하고 억세어 정이 없을것 같은데 오히려 그들이 내놓은 전통음식과 친절함은 그런 인식을 다시 일깨워줍니다. 공통으로 사용하는 화폐는 유로. 유럽연합을 일구어낸 것은 유럽은 하나고 조상도 하나라는 동류의식의 발로가 아니었던가! 쓰는 언어도 한 국경을 넘으면 한자씩 변형된 형태. 그래서 지금은 복잡하게 조각난 국경선을 잠시 지우고 나면 사실 가를 것이 없습니다. 하나인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인간을 가장 피폐하게 만드는 전쟁은 없어야하며 항구한 평화와 그리하여 무궁한 행복이 인간세상에 뿌리내리기를 간구해봅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장이었고 이 트레킹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바위산 Chinque Torri를 지나며 지금은 수려한 들꽃들로 가득 수놓은 초록 들판을 바라보며 말입니다. 친퀘 토리 산장을 지나면서 길은 더욱 순해져 숲과 테라스를 지나는 거의 평지의 코스로 이어집니다. 그러면서 Alta Via 1 의 다양한 풍광을 즐길수 있는데 각종 야생화가 화원처럼 펼쳐진 목초지를 지나고 소나무 들이 줄지어 가득한 길도 걷게 됩니다. 간단없이 왔다갔다 하는 길이 어느 정도 갈무리되면 코르티나와 계곡의 풍성한 대자연의 풍광을 풀어내 놓습니다. 또한 부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즐거운 하향길 끝에는 호수를 끼고 있는 곱게 단장한 Croda da Lago G Palmieri (2066m)산장이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길을 놓쳐버렸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대화에 신경을 쓰다보니 빠져나가야 하는 길을 확인하지 못하고 아스팔트 길로 한참이나 내려가버렸습니다. 다시 올라오기도 아득하고 오기도 생겨 휘돌아 가기로 했습니다. 가장 저점을 찍고 다시 치고 올라오는데 무려 두시간 반을 소진해버렸지만 꽤나 근력운동하며 신선한 땀도 많이 배출하여 우린 서로 만족해 합니다. 인생 돌이킬 수 없다면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만족하며 즐겨야하듯이 말입니다.    비탈길 하나 더 만나 굵은 땀을 한바가지 쏟아내며 열심히 오르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라고 산장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겨우 점심먹을 시간인데 말입니다. 경로를 벗어난 길을 과외로 걸었다는 허탈감 때문일까 피로의 누적 때문일까. 슬며시 허물어지는 우리의 오기. 산장 주인장에게 방 있어요 하고 넌지시 물어봅니다. 행인지 불행인지 방이 있답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운명의 굴레라며 방을 배정받고 다시 배낭메고 나와 호숫가에 자리잡고 점심 식사를 끓여 먹습니다. 주변엔 방목된 노새와 망아지들이 가득한데 구수하고 찰진 냄새를 따라 모여드는 노새떼들. 황망하기 까지 한데 물을 뿌리다가 돌을 집어 던지다가 급기야는 라이터 불로 벌름거리며 다가오는 놈들의 코에 갖다 대니 그제사야 뒷걸음으로 물러섭니다. 호수는 티없이 맑고 용감한 처녀 둘이 수영복 입고 저 찬물에 멱을 감습니다. 옆의 어린아기 빵조각을 물에 던지는데 수십마리 고기떼가 새카맣게 몰려듭니다. 뜰채만 있다면 저 청정 빙어를 건져서 배도 안따고 무우채에 식초 고추장 넣고 버무려 쇠주 한잔.. 즐거운 상상이 꼬리를 뭅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내년에는 꼭 뜰채를 그리고 무우와 초고추장 챙겨오겠노라고...   호수와 호수를 에워싼 숲과 그 숲 위로 돌출된 위엄서린 바위산들. 돌로미테는 하늘 아래 자리 잡은 대지의 산물 중 은은한 매력을 발산하는 신의 피조물 중 최고 결정체입니다. 서알프스를 상징하는 프랑스와 스위스의 암봉들은 날카롭고 사납습니다. 반면 줄리앙 알프스의 슬로베니아나 동알프스의 돌로미테 암봉들은 포근하고 애틋합니다. 눈요깃거리로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소통하고 느끼는 대지의 기운이 가득한 듯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부드러운 산세로 인해 누구나 돌로미테를 걷는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또 왠만한 봉우리 사이로 난 고개는 모두 인간의 발길을 허용하여 넘게 해줍니다. 그런 돌로미테가 아직까지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탓에 여행객들로 몸살을 치르는 서알프스의 길들과는 달리 차분한 길을 걷고 싶어하는 우리네  산객들에겐 정이 가는 곳입니다. 사람의 손길을 덜 타서 아직 순수함과 청순함을 지니고 있는 소녀 같은 산이랄까! 돌로미테는 그래서 걷는 사람의 천국이라 불린답니다. 높은 봉우리나 고갯마루에 올라서 장쾌하게 여울져 흐르는 산마루 물결들을 보면서 돌로미테 산군은 서 알프스의 산정을 덮고 있는 빙하들을 모두 벗겨낸 산세라면 너무 상상력이 동원된 지나친 표현일까! 산과 골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장대해지고 수려한 그러나 거친 산. 돌로미테. 동행은 돌로미테 찬가를 부르며 그 매력에 푸욱 빠져듭니다. 식곤증에 다사로운 하오의 햇살에 강행군하는 노독의 나른함에 하루를 마감했다는 완료감에.. 한없이 마음이 부유하고 평화로운 산장의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