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도 수려한 풍경. 돌로미테 Alta Via 1 종주 트레킹 특집편.

거칠고도 수려한 풍경. 돌로미테 Alta Via 1 종주 트레킹  트레커들의 최우선 목적지를 히말라야 파타고니아 그리고 알프스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그들만의 독특한 자연과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히말라야, 안데스 그리고 알프스 분명 모두 각기 너무나 다른 산맥들이지만 막상 그 차이점을 구별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 지리학상의 보석이라 일컬어지는 돌로미테(Dolomites)는 한 눈에 그 특별함을 드러냅니다. 하얀 바위 층으로 구성된 산에 만년설이 덮어져 있는데 알프스의 한 산군으로서 끝없이 펼쳐지는 풍경화의 연속입니다. 이탈리아의 북동쪽 트렌티노 알토아디제 주의 남티롤 지방, 알프스의 끝자락에 위치한 돌로미테는 거대 암석의 침봉들이 도열한 산악지대로 이곳에 서식하고 있는 동식물과 자연 생태를 관찰하고 길마다 서려있는 역사의 향기를 맡으며 걷노라면 그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천연의 풍광들을 펼쳐 놓기에 전 세계 트레커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명소로 여겨집니다. 알프스 3대 미봉을 한달반 동안 여러팀들과 트레킹을 즐기고 한 열흘간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내서 샤모니 몽블랑과 마터호른의 체르마트을 잇는 오뚜 루트 종주할 계획이었으나 급하게 연락온 산동무의 간절한 소망으로 동알프스 이탈리아 돌로미테 Alta Via 1. 종주 125km 구간을 7박8일로 백팩킹 트레킹을 하기로 방향을 선회했습니다. 임박한 여정이라 산장 예약이 불가능하여 숫제  의식주를 다 배낭에 메고 하는 백팩킹으로 여정을 감수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종주 백팩킹. 나태해지는 나를 담금질하고 쇠퇴해가는 열정을 향상시키고자 작심하고 배낭을 꾸려 나섰습니다.    돌로미테 트레킹의 거점인 코르티나담페초는 이탈리아 북부의 베네토 주 벨루노 현에 있는 산악 휴양 도시로 돌로미티 산맥이 근처에 있어서 겨울 스포츠의 중심지이기도 하여 1956년 동계 올림픽의 개최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걷는 우리로서는 돌로미테의 특별한 산세와 웅장한 거벽들의 풍치에 매료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알프스의 한 자락답게 소담스런 오래된 목조 건물들이 우리네 마음을 푸근하게 해줍니다. 돌로미테를 상징하는 세 개의 봉우리. 트레 치메를 보며 걷는 트레킹의 시작점인 Auronzo 산장(2,320m)으로 이동하여 몸풀기 산행에 나섭니다. 산장을 떠나 이 웅대한 트레 치메를 한바퀴 도는 라운드 트레킹을 하기로 결정을하고 아론조 산장에서 출발 일반 관광객들을 피해 트레 치메와 가장 근접한 등산로로 치고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걷습니다. 인파에 섞이지 않고 풍경도 마음껏 볼 수 있는참 호젓한 길입니다. 야생화 무리를 지날 때는 강렬한 향기가 후두를 치며 깊게 뇌로 전달되어 옵니다. 북쪽에서 차오르는 안개 때문에 풍경은 마음껏 볼수 없으나 거대한 직벽들의 뿌리를 코앞에 두고 보니 가히 장관이 아닐수 없습니다. 트레 치메 라운드 트레일과 라카톨리 산장으로 가는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개스가 걷히고 푸른 하늘이 드리워지며 오늘 트레킹의 하이라이트 풍경인 수직으로 솟은 세 개의 봉우리 Tre Cime di Lavaredo가 눈앞에 펼쳐보이는데 돌로미테를 상징하는 암봉으로 가장 작은 봉우리는 치마 피콜로(2856m) 동쪽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치마 오베스트(2972m) 마지막으로 가장 큰 봉우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치마 그란데(3003m)입니다. 높이만 600m가 넘는 거대한 바위 봉우리들로 우리들 눈앞으로 불쑥 다가선 세 바위봉우리가 내뿜는 기운에 그저 압도당하고 마는데 특히 해가 저무는 기울기에 따라 이 거대한 세 바위의 색깔이 변하는 장관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분홍으로 자주로 변하다가 마침내 붉디 붉은 장미빛으로 피어나는 트레 치메. 고혹적인 풍경화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게다가 워낙 고지대인데다가 세 바위산이 가로막고있어서 흐르던 구름마저 산봉에 걸려 수시로 주변에 개스를 가득채우거나 비를 뿌리고가는 일이 허다 합니다. 더불어 Tre Cime로 향하는 주변 경관은 경이 그 자체입니다. 때를 맞추어 야생화들이 제각기의 옷을 입고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감흥을 더해줍니다.   돌로미테는 신의 손이 빚은 자연뿐 아니라 인간이 굴려온 역사의 바퀴와 마주하기도 합니다. 서쪽으로 크로다 로사(Croda Rossa)와 남쪽으로 크리스탈로(Cristallo)를 마주하고 선 발란드로 산장 앞에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군의 참호였던 건물이 부서진 채로 남아있으며 돌로미테 전체 구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산장은 1차 세계 대전 중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사이에 벌어진 비극적인 산악전쟁의 현장입니다. 이처럼 돌로미테 도는 길 곳곳에는 제 1차 세계대전의 상흔들이 역사로 새겨져 있습니다. 왜 그토록 무엇을 위해 그렇게 처절하게 싸워야 했을까! 인간의 그 끝없는 탐욕과 위정자들의 폭력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며 비통한 가슴을 부여안고 그 아름다운 7월의 꽃길을 걸어갑니다. 아침이 열리고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십니다. 믿기지 않을 만큼 그렇게 밤을 새워 비가 쏟아지더니만 이 아침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현기증이 일 정도로 맑고 밝습니다. 바위산들에 가려져 손바닥만한 하늘에는 푸른 하늘과 하얀구름이 원색으로 드리웠고 새들의 노래소리 활기찹니다. 진한 원두 커피향으로 아침을 먹고 몸을 추스린 후 드디어 돌로미테 알타 비아 1 종주를 위해  Dobbiaco를 거쳐 1494미터 고도에 있는 이 종주의 공식적 시작점인 스펙타클한 에메랄드 빛 Braies 호수에 당도합니다. 호수와 산이 맞닿아 호수 아래의 세상으로 가는 문이 있다는 전설이 얽혀 있는 곳. 여기서 8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되는 종주를 위한 여장을 단단히 꾸리고 기념 촬영을 한 후 드디어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바위산들의 그늘이 드리운 호수 주변의 송림을 지나면서 피톤치드 가득 흡입하며 호수 끝까지 성큼성큼 걸어가면 가파른 고갯길 치고 올라가는 계곡의 시작점에 당도하게 됩니다. 일단의 무리들이 장도의 산행을 위해 스트레칭들을 하고 있고 이를 신기한듯 소때들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길이 품은 풍경은 참으로 다채롭습니다. 에메랄드빛 맑은 호수 주변으로 잣나무들이 무성한 숲을 이루고 눈앞으로는 바위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길고 가파른 바위 능선길을 지나면 초록빛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초원에 방목된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빽빽하게 자란 침엽수들로 그늘진 숲을 빠져나오면 들꽃 핀 초원 위로 점점이 흩어진 흰 바위들이 만드는 초록과 흰산의 낯설면서도 눈부신 조화를 만나기도 합니다. 백팩킹의 첫날은 언제 고통을 수반하는 힘든 날입니다. 일정동안 먹을 양식에 모든 장비들이 고스란히 배낭에 촘촘히 채워져있는데다 오름길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지만 첫날의 넘치는 호기와 체력이 뒷받침을 해주기에 견뎌낼수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천미터 고지를 오르는 오늘의 여정. 30kg이 넘는 배낭의 무게에 고도를 올릴수록 쉬어가는 시간이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잦게 됩니다. 오름길 중반을 넘기면서는 결국 덜 먹자며 제법 무게가 나가는 간식들을 포기하고 길가 바위위에 나란히 진열해놓고 다시 올라갑니다. 뿌리치지 못했던 욕심이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서야 버리는 못난 인간의 초상입니다.    날씨는 너무도 화창하여 어제 걸었던 Tre Cime의 삼형제 봉이 근엄하게 서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산의 다양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지그재그 길을 오르고 올라  저 아래에 비엘라 산장의 모습을 보일 즈음 고갯마루에 서면 작은 예수상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작은 성호를 긋고 비엘라 산장을 지나 야생화로 가득한 초원을 지나면서 라면 끓여 밥말아 먹고 다시 콧노래 부르며 평지 초원길을 달리듯 걸어 갑니다. 저 아래 보이는 세네스 산장. 딸랑딸랑 워낭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오고 푸른 초원 위로는 들꽃이 하늘거리는데  어디선가 하얀 앞치마를 한 알프스의 소녀가 달려와 갓 짠 우유라도 내밀 것 같은 풍경입니다. 눈을 들면 어디서나 거대한 Croda Rossa (3246m), Cristallo (3221m), Sorapis (3205m), and Tofana (3243m) 산들이 파노라마 처럼 둘러싸여 있어 황혼녘이면 바위산이 펼치는 빛과 그림자의 마술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세계 최고 시설의 산장 덕분에 깃털처럼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곳. 이탈리아가 숨겨놓은 천상의 트레일. 알타비아 1. 생맥주 큰잔으로 시켜놓고 저녁을 기다립니다. 마지막 사위어가는 태양이 식어 갈때 따스한 음식접시가 배달되어 옵니다. 한잔술에 고단한 하루가 취해가고 고산 준봉들이 우리를 호위하고 있으니 이 산장에서는 신들과 함께 겸작하며 정찬을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결코 게으르지 않은 돌로미테의 소들의 묵직한 워낭소리에 잠을 깹니다. 병풍처럼 휘둘러진 산군 아래 한가로운 이들의 모습들은 비스듬히 누워 아침을 맞이합니다. 옅은 구름 안개가 암산들을 휘감고 차오를 산촌의 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돌로미테의 다채롭고 특별한 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이어진 길마다 지어진 오래된 목조 건물의 소담스런 자연친화적인 산장들인데 일찌기 일, 이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돌로미테의 산장들은 세계 최고임을 느끼게 됩니다. 700여개 이탈리아의 산장들은 지금은 이탈리아 산악회에서 전체 관리하고 있지만 대부분 개인들이 지어 운영하기에 저마다 특색이 있고 나름 선의의 경쟁으로 개발해낸 음식맛이 또한 일품입니다. 해발고도 2000미터에서 2500미터를 넘나드는 이곳의 산장에서는 뜨거운 물에 몸을 씻을 수도 있고 심지어 장작불 때서 즐기는 사우나욕이나 나를 위해 조금 투자한다면 다인실이 아닌 독방에 머물 수 있는 호사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우리가 숙박했던 세네스 산장은 혹자들의 입에 회자되는 ‘세계 최고의 산장’ 목록 1위에 올라있답니다. 산장들의 음식을 비교하는 것도 트레킹의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인데 어제 저녁 정찬으로 주문한 쇠. 닭고기 음식들은 탁월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그 맛이 하나같이 깊고 입맛을 충족시킬 충분한 레시피였습니다.   이탈리아 돌로미테. 너비 150Km 길이가  60Km의 5500 평방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으로 이 산군 전체가 유네스코 자연 보호구역으로 보존되는데 석회암과 백운암으로 이루어진 침봉들이 거대한 산군을 형성하고 있는 이탈리아 북동부 트렌티노 주 남티롤 지방의 알프스에 속하는 산악지대입니다. 기암괴석 및 절벽으로 이루어진 27개의 산악군을 보듬고 있는데 돌로미티 풍경의 진수를 다 보려면 긴 시간을 투자해 머물러야 합니다. 시간과 계절 그리고 날씨에 따라 변신하는 색의 마술은 가히 예술의 경지마저 넘는 이 산군은 수려한 바위산 들마다 전설적인 산악인들의 눈물과 희생이 서려있고 산악전쟁이라는 역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3천 미터 이상급 암봉이 18개나 포진해 그 위압감을 더해주고 41여개의 빙하가 산정을 덮고 있어 동 알프스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더불어 잘 보존된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풍성하게 내리는 계곡들은 돌로미테의 빼어난 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구성 요소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잦은 전쟁으로 인한 교류의 역사는 다양한 문화와 전통이 어우러지도록 하여 맛깔스럽고 풍성한 음식을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조촐한 조반을 들고 마음을 보듬는 고요하고 감미로운 돌로미테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오늘의 여정은 Old WWI mountain track 이라고 별칭을 얻은 트레일을 걷는데 아름다운 산들로 둘러쌓인 Pederu 산장(1548m)까지 500미터 고도를 낮추면서 휘휘 돌아 산수를 희롱하다가 다시 마음 단디 먹고 파네스 산장을 향해 오르막을 치다보면 화성에 내려 걷는듯한 황량한 매력을 가진 길을 걷게 됩니다. Rudo 밸리로 연결해 걷는데 Fanes-Senes-Braies 국립공원의 석회암 분지에 위치한 Fanes 산장(2060m)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을 넘어야 하는데 주변에 펼쳐지는 장엄한 Sennes와 Fanes산괴를 감상하게 됩니다. 동행과 체력적으로 비슷하다 보니까 쉬고 싶을 때도 이심전심으로 휴식하고 식사 때도 혹은 생리작용의 시간 까지도 비슷하니 시간의 낭비가 없어 12시에 이미 대부분 자고가는 파네스 산장에 도달하여 버립니다. 더 걷기로 하고 어차피 산장에서 못자면 아무데서나 텐트 펼치면 오늘의 숙소가 되는 백팩킹의 편리함. 하루 꺼리를 더 하기로 합의를 보고 다시 언덕을 오릅니다.    고즈넉한 풍경을 발산하는 호수 Limo (2157m)에서 소들과 함께 호수물로 끓인 라면에 밥말아 먹고 길 따라 AV 1을 이어갑니다. 페인스 산군의 산자락을 오르면서 펼쳐지는 서던 마운틴 산군의 돌로미테 지역의 최고봉 MT. Marmolada의 장관을 가슴으로 읽어줍니다. 그 여유로움도 잠깐. 이제부터 전체 구간에서 가장 힘든 표고 1433미터의 라빌라 마을에서 2533미터의 포르셀라 라바렐라 고개까지 1100미터를 올라야 하는 시간입니다. 물론 편하게 갈라치면 우회하는 길을 선택하면 되겠지만 극적인 풍경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꺼리는 고난의 길을 스스로 자처합니다. 마지막 한 시간 반의 급경사 오르막은 온몸의 남은 기운을 다 짜내어야 하지만 라빌라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Lagazuoi 호수를 품은 발 아래 풍경을 정상에서 숨을 고르며 바라볼 때  그 모든 고통의 시간들을 일시에 날려버리게 됩니다. 속계에서 선계로. 사바세상에서 천상으로 가는 문. 잘자란 목초지가 가득한 고개에 서서 호수에서 불어오는 한결 상쾌한 바람을 폐부 깊숙히 넣으며 바라보는 돌로미테 절경. 거대 암산에 비끼는 붉은 햇살이 장엄하기 까지 합니다.    이제 하산 길. 라가주오이 호수(2182m) 까지 좁은 돌무덤 사이로 엄청 경사진 길을 내려야 하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진땀 꽤나 흘려야 하는 긴장의 연속길인데 지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립니다. 이어지는 능력 한계의 등정. 다시 7백 미터를 치고 올라야 오늘의 숙소로 정한 산장에 도달합니다. 멀리서 어서오라 손짓하는데 걸음은 더디고 발길은 묵직하고 여름 햇살은 땀으로 온몸을 적시게 하고 등에 진 배낭의 무게가 더욱 중압감을 느끼게 하는데 백미터를 올리지도 못하고 주저앉고 맙니다. 마지막 휘휘 돌린 깔닥고개. 오르는 길 왼쪽으로 역사의 상흔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습니다.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수천의 고지에 참호를 짓고 매일같이 오르내린 그 전사들의 절박함을 상기시키며 내가 원해 택한 길 힘들다 누구에게 하소연하랴며 힘을 내어 동행과 서로 격려하며 마지막 고개를 넘습니다.   트레킹 일정 중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라가주오이 산장(2,752m). 해가 서산으로 완전히 기울어가는 즈음에 도착한 우리. 매서운 찬바람이 발가벗은 산정에 몰아치고 땀범벅이 된 우리가 잠시 서있는데 이내 식어버려 감기가 걱정되는 상황. 체감온도는 빙점이하인데 감히 텐트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가련한 표정으로 방이나 침대 있냐고 물었더니 우리의 몰골을 본 직원이 장부랑 컴을 뒤적이더니 다인실에 침대 하나 달랑 여유있다는 섭한 말을 합니다. 이 엄동설한 같은 산정에서 어디서 자냐며 바닥이라도 좋으니 자리를 내어달라고 애걸했더니 창고에 메트리스 깔아 주겠다 합니다. 지금 찬 물 더운 물 가릴 처지가 아닌지라 흔쾌히 승인하고 주린배를 채우기 위해 맥주 대자로 둘 그리고 음식도 이인분 시켰는데 고소증에 탈진한 동행이 아무것도먹지 못하겠다 하는지라 하는 수 없이 틀이킨 두잔의 맥주에 피로감이 더해 걷잡을수 없이 잠이 쏟아집니다. 잠자리라고 안내된 곳은 등산화랑 빨래 널어 말리는 건조실. 그날 하루밤 전 세계적인 발냄새를 음미하며 자야 했고 시나브로 빨래 건조 상태 확인하러 들랑거리는 통에 잠도 설치고 말았습니다. 악몽같은 하루. 그래도 무심한 달도 별도 휘영청 반짝반짝 빛을 발하며 돌로미테의 깊은 밤을 비춰줍니다. 그 적막하고도 고요한 밤을....   하얀 암산들에 비치는 황홀한 일출. Lagazuoi 산장 베란다에서 향기 짙은 아침 커피를 한잔 음미하며 일출을 즐기고 시작되는 하루. 수세기 동안 격리되어 살아온 이 계곡의 사람들은 독일어와 라틴어가 결합된 Ladin(라딘)이라는 언어를 쓰며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유지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돌로미테의 등반사는 전쟁과 함께 이어져왔듯이 봉우리 곳곳에 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군 진지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던 동굴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산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휴식처가 되기도하며 흥미로운 등산로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세계 1차 대전시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간 전투의 선봉이 되었던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지금도 돌로미테를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은 색다른 문화와 이색적인 사람들과 삶이 있습니다. 서알프스 처럼 만년설과 침봉으로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암봉과 구릉 같은 산으로 형성된 이지역 산세이지만 돌로미테가 주는 의미는 큽니다. 과거 로마를 넘본 모든 민족들은 돌로미테를 넘어야 했습니다.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롬바르디평원을 내려다보며 일갈했고 켈트족 고트족 등 로마로 향한 모든 이민족들도 한니발처럼 이 동 알프스를 넘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넘은 알프스가 돌로미테 자락입니다. 로마가 세상으로 나갔던 길이기도 하고 로마를 품으려는 민족이 넘어온 산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돌로미테는 역사와 자연을 품고 있는 길입니다.    오늘은 라가주오이 산장 바로 아래에서 그 치열했던 세계 1차 대전의 격전지인 오스트리아의 제 4 요새를 볼 수 있습니다. 요새에 아직 남아있는 대포가 향하고 있는 저 아래 친퀘토리의 이탈리아군의 진지를 보고 있으면 그때의 긴박함이 자연 느껴집니다. '비아 페레타'라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산악부대의 이동 경로를 볼 수 있는 구간으로 사령부와 대포 진지나 참호 등의 전쟁 시 모습들과 파괴된 흔적들이 남아있는 암반 슬로프를 지나는데 역사의 처참함이 아름다운 자연미 속에 스며있으니 묘한 감정이 입니다. 특히 자연 갤러리가 되어버린 길을 걷다가 돌연 길이 없어져 버리면서 여기가 트레일의 끝이구나 생각하고 되돌아 나가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길은 이어지고 이곳에는 쪽문 같은 출입구가 하나 있어 터널로 들어가 지겹도록 내려가는 하산길의 굴로 된 통로임을 알게 됩니다. 거의 5백 미터나 되는 굴로 암반을 뚫어서 낸 군사용 땅굴입니다. 기묘하기도 하고 그 엄청난 대역사가 가히 놀랠만 합니다. 곳곳에 감시용 망루가 설치되고 대포 거치대. 지휘부 동 등 군사활동을 위한 시설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더욱 춥고 을씨년스럽게 만듭니다. 기나긴 땅굴을 무릎이 시큰하도록 내려와 바깥 세상으로 나오니 인간들의 살아 남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을 배워 야생화들도 벼랑 끝에서 더욱 화려하게 피었습니다.    이제 길은 부드럽고 평탄해지며 향기 내뿜는 솔밭길을 통과하는데 운좋으면 영양 샤모아의 환영도 받게 됩니다. 다시 높은 돌로미테 산군으로 향하여 Falzarego pass를 지나서 Nuvolau 정상을 오르고 넓고 아름다운 전망이  펼쳐지는 산장에서 한잔의 시원한 생맥으로 목을 축이고 휴식을 갖습니다. 까마득한 절벽에 세워진 돌로미테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산장 Nuvolau(2575m)을 오르기 위해 숨고르기를 하는 참입니다. 이 벼랑 끝 명물 산장 전망대에 서서 산하를 굽어보면 협곡에 펼쳐놓은 물길과 폭포 그리고 간헐적으로 얼굴을 내비치는 알프스의 설봉들 그리고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들. 천상 극치의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황제가 부럽지 않은 이 순간. 푸른 초원 뒤로 솟아난 돌로미테의 바위산군은 너무 거대해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데 그 바위봉우리들 사이로 길은 이어져 끝없는 띠를 두르고 차마 갈수 있을까 하는 곳까지 개척해낸 인간의 발이 얼마나 위대한지 새삼 경외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끊이지 않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거친 자연과 투쟁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라 투박하고 억세어 정이 없을것 같은데 오히려 그들이 내놓은 전통음식과 친절함은 그런 인식을 다시 일깨워줍니다. 공통으로 사용하는 화폐는 유로. 유럽연합을 일구어낸 것은 유럽은 하나고 조상도 하나라는 동류의식의 발로가 아니었던가! 쓰는 언어도 한 국경을 넘으면 한자씩 변형된 형태. 그래서 지금은 복잡하게 조각난 국경선을 잠시 지우고 나면 사실 가를 것이 없습니다. 하나인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인간을 가장 피폐하게 만드는 전쟁은 없어야하며 항구한 평화와 그리하여 무궁한 행복이 인간세상에 뿌리내리기를 간구해봅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장이었고 이 트레킹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바위산 Chinque Torri를 지나며 지금은 수려한 들꽃들로 가득 수놓은 초록 들판을 바라보며 말입니다. 친퀘 토리 산장을 지나면서 길은 더욱 순해져 숲과 테라스를 지나는 거의 평지의 코스로 이어집니다. 그러면서 Alta Via 1 의 다양한 풍광을 즐길수 있는데 각종 야생화가 화원처럼 펼쳐진 목초지를 지나고 소나무 들이 줄지어 가득한 길도 걷게 됩니다. 간단없이 왔다갔다 하는 길이 어느 정도 갈무리되면 코르티나 계곡의 풍성한 대자연의 풍광을 풀어내 놓습니다. 또한 부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즐거운 하향길 끝에는 호수를 끼고 있는 곱게 단장한 Croda da Lago G Palmieri (2066m)산장이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길을 놓쳐버렸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대화에 신경을 쓰다보니 빠져나가야 하는 길을 확인하지 못하고 아스팔트 길로 한참이나 내려가버렸습니다. 다시 올라오기도 아득하고 오기도 생겨 휘돌아 가기로 했습니다. 가장 저점을 찍고 다시 치고 올라오는데 무려 두시간 반을 소진해버렸지만 꽤나 근력운동하며 신선한 땀도 많이 배출하여 우린 서로 만족해 합니다. 인생 돌이킬 수 없다면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만족하며 즐겨야하듯이 말입니다.    비탈길 하나 더 만나 굵은 땀을 한바가지 쏟아내며 열심히 오르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라고 산장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겨우 점심먹을 시간인데 말입니다. 경로를 벗어난 길을 과외로 걸었다는 허탈감 때문일까 피로의 누적 때문일까. 슬며시 허물어지는 우리의 오기. 산장 주인장에게 방 있어요 하고 넌지시 물어봅니다. 행인지 불행인지 방이 있답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운명의 굴레라며 방을 배정받고 다시 배낭메고 나와 호숫가에 자리잡고서는 점심 식사를 끓여 먹습니다. 주변엔 방목된 노새와 망아지들이 가득한데 구수하고 찰진 냄새를 따라 모여드는 노새떼들. 황망하기 까지 한데 물을 뿌리다가 돌을 집어 던지다가 급기야는 라이터 불로 벌름거리며 다가오는 놈들의 코에 갖다 대니 그제사야 뒷걸음으로 물러섭니다. 시간마저도 정지한듯한 한적한 심산의 풍경들. 호수는 티없이 맑고 용감한 처녀 둘이 수영복 입고 저 찬물에 멱을 감습니다. 옆의 어린아기가 빵조각을 물에 던지는데 수십마리 고기떼가 새카맣게 몰려듭니다. 뜰채만 있다면 저 청정 빙어를 건져서 배도 안따고 무채에 식초 고추장 넣고 버무려 쇠주 한잔.. 즐거운 상상이 꼬리를 뭅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내년에는 꼭 뜰채를 그리고 무우와 초고추장 챙겨오겠노라고...   호수와 호수를 에워싼 숲과 그 숲 위로 돌출된 위엄서린 바위산들. 돌로미테는 하늘 아래 자리 잡은 대지의 산물 중 은은한 매력을 발산하는 신의 피조물 중 최고 결정체입니다. 서알프스를 상징하는 프랑스와 스위스의 암봉들은 날카롭고 사납습니다. 반면 줄리앙 알프스의 슬로베니아나 동알프스의 돌로미테 암봉들은 포근하고 애틋합니다. 눈요깃거리로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소통하고 느끼는 대지의 기운이 가득한 듯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부드러운 산세로 인해 누구나 돌로미테를 걷는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또 왠만한 봉우리 사이로 난 고개는 모두 인간의 발길을 허용하여 넘게 해줍니다. 그런 돌로미테가 아직까지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탓에 여행객들로 몸살을 치르는 서알프스의 길들과는 달리 차분한 길을 걷고 싶어하는 우리네  산객들에겐 정이 가는 곳입니다. 사람의 손길을 덜 타서 아직 순수함과 청순함을 지니고 있는 소녀 같은 산이랄까! 돌로미테는 그래서 걷는 사람의 천국이라 불린답니다. 높은 봉우리나 고갯마루에 올라서 장쾌하게 여울져 흐르는 산마루 물결들을 보면서 돌로미테 산군은 서 알프스의 산정을 덮고 있는 빙하들을 모두 벗겨낸 산세라면 너무 상상력이 동원된 지나친 표현일까! 산과 골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장대해지고 수려한 그러나 거친 산. 돌로미테. 동행은 돌로미테 찬가를 부르며 그 매력에 푸욱 빠져듭니다. 식곤증에 다사로운 하오의 햇살에 강행군하는 노독의 나른함에 하루를 마감했다는 완료감에.. 한없이 마음이 부유하고 평화로운 산장의 시간입니다.    시리도록 푸른 돌로미테의 하늘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아침 해가 찬란하게 떠 오르면 오늘 하루 몫의 축복을 품고 길을 나섭니다. 종주는 막바지에 들고 알프스 산군의 변방에 있는 돌로미테에 안겨 행복한 시간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우리는 오늘도 비경 사냥에 나섭니다. 분주한 산장의 아침을 맞이하고 오늘도 이어지는 걸음의 축복. 산장에서 고개를 넘기 위해 가는 길이 또렷하게 이어져 있음이 보입니다. 완만한 경사로 2km는 되는 거리. 벌써 차오른 햇살을 등에 지고 오르는 이마엔 어느새 방울방울 땀이 맺혔다가 고개 한번 떨구면  몇줄기로 나뉘어 얼굴로 쏟아집니다. 방목된 소들의 침범을 막기 위해 설치한 특별한 문을 열고 고개를 넘으며 서로 기념사진을 찍어줍니다.  호수가 품은 라고 산장과 그 뒤에 버틴 거벽. 저 멀리 목가적인 산촌들도 평화롭게 누워있는데 그 위로 아침안개가 포근하게 덮어주고 있습니다. 또 그 반대편으로는 스타울란자 고개로 이어지는 산과 길 그리고 발아래 아득한 촌락과 옥색 호수. 신이 그린 풍경화입니다. 그런 감회에 젖어있는데 열심히 반대편에서 올라온 한 노년의 등산객이 인사를 건네옵니다. 80 연세입니다. 어쩌면 당연할 것도 같은 것이 산에서 나서 산에서 자라 산에서 죽어갈 돌로미테 사람들에게는 이 산이 삶이며 친구며 기대어 사는 의지 가지가 아닐런지...함께 기념 촬영을 몇 컷하고 그 노객은 왔던 길로 되돌아 내려갑니다. 우리도 슬슬 여장을 다시 챙겨서 그 분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는데 되돌아 보던 그가 우리를 확인하고선 황급히 되돌아 뛰어 올라옵니다. 그리고는 손끝을 다른 고갯길을 가르키며 따라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지도를 펴서 확인해보니 정말 태무심하고 노객을 따라 내려갔던 것입니다. 어제도 딴길로 들어 버렸었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그 벌로 다시 오르막길을 참회와 성찰로 올라야 했습니다.    알파인 슬로프에 대비된 푸른 목초지에서 Staulanza 산장 이름과 동일한 스타울란자 고개를 넘는 좁은 바윗길을 따라 가면 돌로미테 종주 중 가장 드라마틱한 풍경을 내어놓게 되니 마음껏 즐기라고 산도 하늘도 권장합니다. Pelmo (3168m) 산 고봉을 바라보며 수월하고도 평화스런 길을 나폴나폴 바람이 전하는 노래를 들으며 종주길은 기쁘게 이어집니다. 동토에서 태어나 혹독한 기후속에서 버티며 생명을 유지하다가 이 짧은 여름을 불사르고 생을 마감하는 돌로미테의 야생화들.  고독한 산길을 지키던 이들이 낯선 산객들의 방문에 무척이나 기쁜지 그 작은 얼굴들로 요리조리 도리질하며 함빡웃음으로 환대를 해줍니다. 그 모습 슬프도록 너무 이뻐 가만 자세를 낮춰 이꽃 저꽃 머리들을 쓰다듬어 줍니다. 마냥 좋은지 더욱 머리를 흔들어대며 고운 향기를 내뿜어 주는데 그 향기가 우리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는 듯 합니다. 그 길로 스타울란자 산장까지 단숨에 내치고 생맥 한잔으로 나그네는 목을 축입니다.    그제도 어제도 너무 수월하고도 나태한 선택을 다그치기라도 할듯이 오늘은 콜다이 산장까지 치고 올라갑니다. 거대한 바위산 펠모산을 끼고 울창한 숲을 걷기도 하면서 또는 오르막 내리막 걸으며 동알프스 산맥에 자생하는 식생들과 수인사하며 이어갑니다. 열심히 걷고걸어 산그늘이 드리워진 시각에 마지막 투혼을 발휘해 오르는 콜다이 산장 가는 길. 4백 미터의 마지막 고지가 지친 몸을 뒤로 잡아 당기는데 돌틈사이로 흐르는 찬물 받아 마시고 몸을 식히며 올라가 산장에 이릅니다. 무슨 죄 짓고 온것도 아닌데 조심스레 묻습니다. 방있냐고. 오늘도 로또 당첨입니다. 이 엽서에나 나올 만큼 예쁘고 아담한 Coldai 산장(2132m)에서 하룻밤 정을 쌓고 가게 되었기에 말입니다. 펠모산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콜다이 산장에는 모진 바람이 불어닥칩니다. 계곡들이 모여진 산장어귀에 돌로미테의 모든 바람이 집결하는 듯 몰아치고 체감온도도 빙점으로 뚝 떨어집니다. 반소매 반바지 차림으로 노을을 보려고 나왔다가 벼락맞은 듯 황급히 실내로 다시 들어가 따스하게 지펴놓은 장작 난로 곁으로 바짝 다가가 앉습니다. 한없이 여유로운 산장의 시간. 자유롭게 풍광을 감상하고 그 풍경안에서 따스한 정찬을 맞이합니다. 밤도 함께 말입니다. 장작 난로의 포근함이 참으로 좋은 밤입니다.    아침햇살에 걷히는 안개가 길을 터줄 때 우리는 종주의 마감에 바짝 다가섭니다. 출발점에서 부터 치고 오르는 경사길을 땀을 제법 흘리며 다음 고개인 포르셀라 캠프를 넘으면서 마지막 광대하게 휘두른 산물결의 장관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렇게 숨겨둔 비경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도 우리로 하여금 비지땀을 쏟게하는 높은 고개를 넘게 했나봅니다. 올랐으면 또 그만큼 내려가야 하는 산행의 정직한 셈법. 무릎이 시큰한 급경사 길을 하염없이 걸어내려 가면서 한시름 풀어놓습니다. 대 자연 속에서 보는 돌로미테의 장대하고 광활함을 이렇게 하산길에서나 여유있게 볼수 있으니 자주 걸음을 멈추고 산하를 굽어봅니다. 알프스라고 하면 그저 세인들의 인식에는 스위스를 떠올리거나 좀 더 관심있는 이들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도 끼워줍니다만 유럽 중남부 6개국에 걸쳐 있는 대단한 산군입니다. 이 가운데 이탈리아 쪽으로 형성된 동 알프스 중 일부가 돌로미테 지역으로 고산 준봉들이 즐비하다 해도 스위스 등에 비해 이곳의 풍광은 조금은 부드럽고 여성스럽습니다. 특히 걷기에 열광하는 한국의 등산객들이 매료될 수 밖에 없는데 한번 정을 주면 걷잡을 수 없이 사랑에 빠지듯이 재회의 그날을 간절한 기다림으로 살아들 간답니다. 나도 예외가 아니어 이 가을에도 다시 또 한번 오기로 했으며 매년 일정에 넣기로 했습니다. 산 위에는 만년설이 그 아래쪽에는 푸른 잔디가 어우러진 한 시공 속에서 사계절이 존재하는 이런 기막힌 풍경을 보며 걸을 수 있음이 얼마나 삶의 큰 축복인지....   이런 기쁨에 쌓여 하염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전방 시야가 광대하게 확보된 명당에 지어진  산장에 도달하게 됩니다. 걸음의 갈증만큼 간절한 저 시원한 생맥주의 유혹. 오늘도 한잔씩 들이키며 한숨 돌리면 지친 해가 어서 가자며 나그네의 발길을 재촉합니다. 길게 늘어선 산그림자 깊숙이 들어가는 동행의 뒷모습이 허공을 걷는 듯 아득하고 참 아름답습니다. 언제나 처럼 종주는 끝이 나고 그 고단함이 풀어지기도 전에 그 길 위에서 나누었던 우정 그리고 그 미려했던 풍경들은 어느새 추억이 되어버립니다. 모두가 이제는 그리운 추억이 되어버렸습니다. 한구비 넘으면 또 한구비가 기다리며 그리도 무겁고도 힘겨웠던 발길. 그러나 가슴을 요동치게 했던 그 장대한 돌로미테 산군. 아직도 귓전에 맴도는 소들의 묵직한 워낭 소리, 회색빛 암릉과 푸르디 푸른 하늘, 갖은 조화를 부리는 하얀 구름 그리고 그 풍경화를 완벽하게 마름질 해주는 소담스런 산장들. 그 웅장한 돌로미테의 장관들에 압도되어 찬란한 언덕이라는 의미의 산촌마을 벨루노 까지 묵묵히 걸어온 종주길. 우리는 그저 돌로미테에 흩어진 야생화처럼 작은 꽃이 되어버렸습니다. 아~~ 아직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대고 있는 내 마음을 이제는 데려와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