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되어 걷는 길. 스웨덴 쿵스레덴(Kungsleden) 4.

대자연 앞에서 겸허하게 임할줄 알아야 하는 우리.. 비는 내리지 않아도 파란 하늘이 한뼘도 보이지 않는 흐린 아침입니다. 이른 조식 후 스웨덴에서 가장 높은 케브네카이세 산을 올랐다 하산하는 도전의 하루를 시작합니다. 690미터 고도의 산장에서 2113미터의 산정까지 1400미터의 등정을 하며 하얗게 펼쳐져있는 만년설 설원을 밟아 정상에 오르면 장대한 Lapland의 파노라믹 풍광을 눈과 랜즈에 담습니다. 이 산은 스칸디나비안 산맥의 일부로 두 개의 산봉을 가지고 있고 빙하로 덮힌 남쪽 봉우리는 2,106m, 암산인 북쪽 봉우리는 2,097m 입니다. 북극선(Arctic Line) 아래 약 15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구 온난화로 빙하들이 녹으면서 산정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는데 원래는 높이가 2,117m 였다고 합니다. 산자락에 바짝 붙어 오르기 시작하면 입에서 불 냄새가 날 정도로 가파른 길이 간단없이 이어집니다. 도저히 몰은 숨을 참지 못해 멈추고 토해내며 쉬어 갈 때 산아래 펼쳐진 풍경을 봅니다. 계곡 가득 어느새 영글은 가을색이 완연한데 희미하지만 산을 넘어 또 산이 있어 물결치는 듯 장대합니다. 내를 건너기 위해 건설한 다리를 건너며 잠시 숨을 고르게 하더니 다시 끝이 어딘지 보이지 않는 길을 올라야 합니다. 정상을 가득 덮고 있는 안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높은 까닭입니다. 그 오름길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모래와 잔 자갈이 섞인 지표면 때문입니다. 길게 한발 내디디면 어김없이 반은 미끄러져 내려와버리는 가파른 길. 그래서 등산화 착용이 필수라고 경고했나 봅니다. 다리 근육이 꽤나 혹사 당하고 가슴이 터질것 같이 숨에 차고 그래서 잠시 쉬어가고를 반복하며 겨우 다다른 1차 정상.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세찬 바람이 먼저와 반깁니다. 발 아래 빙하가 누워있으니 그 위를 넘어오는 바람이 냉혹한 것은 당연한 현상. 여기서 팀을 둘로 나눕니다. 정상 정복팀과 이곳에서 마감하는 팀. 하산했다 다시 최정상으로 치고 올라 가는 오기와 의기로 무장한 정복팀들을 출발시키고 남겨진 약체들을 위해 점심을 먹기 위한 라면물을  끓입니다. 아무리 바위뒤에 몸을 숨겼어도 모두들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추위를 이겨내지 못합니다. 물이 끓고 라면이 다 익고 분배된 한그릇씩 먹는데 모두들 입천장이 데서 물집들이 잡혔다 합니다.  작년(2018년) 가을인가? 그냥 여행중에 만나 동행이 된 세명의 한국인 관광객 중 여성 하나가 이곳에서 죽었었죠. 이런 변화무쌍하고 급격히 떨어지는 기온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올라왔다가 저체온증으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것 같습니다. 자연은 인자 할 때는 더없이 온화하고 부드럽지만 미치면 가공할 위력을 발휘해 아무리 저항해도 소용없는 우리의 무력함을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대자연 앞에서 겸허하게 대하며 모든 예측 가능한 변화에 완벽한 준비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다시 바람도 숨죽이고 안개도 걷히니 다들 무사히 하산하고 산장으로 돌아와 작은 갈등으로 잠시 고심하다가 의견을 모읍니다. 원래는 지금 여장을 꾸려서 이번 종주의 공식적인 종결지이자 문명이 시작되는 키루나로 가는 대중교통이 연결되는 Nikkaluokta로 헬기를 타고 이동하기로 하는 것인데 마지막 구간을 헬기로 마무리 한다는 것은 종주의 가치를 훼손시킨다는 것. 하늘을 날며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크고 작은 호수들이 설산들을 안고서 풍광들을 선사하고 우리가 걸어왔던 왕의 길, 쿵스레덴 트레일의 족적을 되돌아 볼수도 있다싶어 계획한 것인데 초행길의 동행들은 종완주의 달성이 더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 길을 몇번 종주했던 나의 건방진 불찰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산장에서 하루 더 머물고 내일 종주 완주할 것으로 종결짖습니다.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종주 마지막 구간을 걷기 시작합니다. 오늘 이곳 왕의 길 날씨는 끝나는 마당이니 좋은 이미지를 남겨 다시 찾아오게 하려는지 얄밉도록 쾌청한 날씨입니다. 마지막 구간은 거의 높낮이가 없는 평지길을 평화스럽게 걸으면 됩니다. BD6 구역의 이 아비스코와 니칼루옥타를 잇는 길은 또한 순례의 길로 알려져 있습니다. Dag Hammarskjöldsleden라 이름 붙여진 이것은 스웨덴 산악 세계의 심장부에 있는 현대판 순례길로 2004년 9월에 개장되었는바 아비스코(Abisko)에서 시작하여 110km를 걸어 이르는 니칼루옥타(Nikluluta)까지 오래전 부터 명성이 자자한 쿵스레덴(Kungsleden) 하이킹 코스를 따라갑니다. 이 순례의 흔적은 Luleå 교구에 있는 스웨덴 교회, Norrbotten카운티 관리위원회 및 스웨덴 관광 협회간의 협력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트레일 중간중간 빼어난 전망이 펼쳐지는 곳에 7곳의 명상 장소가 마련되어 있고 2대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스웨덴 출신 Dag Hammarskjöld의 인용문이 새겨져 있는 기념석이 세워져 있어 그 글들의 행간에 녹아있는 삶의 의미를 짚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어느정도 시장기를 느낄 때쯤 길가에 카페 하나가 나옵니다. 순록(Reindeer)으로 햄버그를 구워서 파는 식당인데 제법 입소문을 타고 한번씩 먹어보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배부르고 나른해지면 호수에 띄워놓은 보트가 유혹을 합니다. 니칼루옥타 까지 배로 이동하라고. 그 동안 몇개의 호수를 지나면서 한번 타보고 싶은 호기심이 다들 있었었겠지만 지금처럼 마지막 길에 부른 배와 나른한 졸음마저 가세한다면 차마 떨쳐버리기 힘든 유혹입니다. 그러면서도 종주의 완성에 흠이 갈까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섭니다. 날머리 마지막 끝에 인디언 텐트의 구조로 나무 관문을 조성해 둔 곳에서 다들 모여 손을 들거나 등산 스틱을 높이들어 기념촬영을 하고 종주를 마감합니다. 서로 함께한 동행들끼리 손을 맞잡고 그간의 노고를 위로합니다. 그러나 먼 훗날 잠시 왕이 되었던 나날들이 차분히 되돌아보면 뿌듯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나는 이 왕의 길이 막 열리는 초여름이나 또 막 길이 닫히기 전 늦가을에 다시 한번 더 찾아야 할것 같습니다. 길이 좀 험하고 불편하더라도 봄이면 전년에 내린 잔설을 보며 걷는 풍경이 대단하고 늦가을이면 내리기 시작하는 첫눈을 맞으며 나무 가지마다 피어나는 눈꽃들을 보며 걷는 맛이 압권일테니까요. 내가 추구하는 트레킹의 목적은 바로 그런 대단한 자연 풍경을 보기 위함인데 어느 곳이나 방문 시기가 참 중요합니다. 잠시 눈을 감고 내 재량 모두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런 길을 걷는 내모습을 그려봅니다. 어느새 내 손은 달력을 넘기고 있고 내년 6월초를 더듬다가 9월말의 어느 길일을 택하고 있습니다. 다들 어린 시절에 읽었던 고전 책을 나이가 들어 다시 읽어본 적들이 있을 것입니다. 분명 그 느낌과 감동이 다른 자신을 보게 되고요. 알게모르게 변해버린 내 내면의 변화만큼 중장년에 갖는 감동의 방향과 깊이는 그만큼 달라져 있습니다. 이처럼 한번 걸었던 길을 다시 걸을 때 처음 가졌던 감동과 느낌이 쇠락한 것만은 틀림이 없으나 여전히 대자연의 깊은 속살과 마주하면 가슴이 설렐 것입니다. 다시 서는 길 위에서라도 새롭게 발견하는 진리와 기쁨들. 그것이 도보여행을 통해서 얻는 수확이자 즐거움이며 그래서 늘 내가 길을 떠나는 이유이기도 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