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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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소망으로 이 길을 걷다. 비 내리는 사리아의 아침. 자욱한 안개 속에서 아직 이른 잠을 깨지 못한 산촌 마을은 조용한 안식의 시간을 향유하고 있는데 순례자들은 습성처럼 일어나 여장을 다시 꾸립니다. 이제 사무소에 들러 순례자여권(Credential)을 발급받은 후 길을 걷기 시작해야 합니다. 길을 따라 가다보면 들리는 크고 작은 마을마다에 있는 순례자 숙소(Albergue)는 이 순례자 여권을 보여줘야 각종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그 확인 도장이 가는 길을 힘나게 만들어 줍니다. 그 한 장의 기록이 무슨 그런 크나큰 의미가 있겠습니까만 묘한 오기를 불러주는 마술 같은 존재입니다. 길 곳곳에 선험자들이 표시해놓은 노란 화살표나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 조개껍질의 빗살 표시를 이정표 삼아 걷는데 최종 종착지인 산티아고 대성당의 순례자 사무소에서 순례자 증서를 발급받고 감격해하는 모습을 그려보면서 말입니다. 저마다 순례자의 표시인 조개껍데기를 배낭에 매달고 숱한 일화를 남기며 오로지 걷는 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마감하기까지에는 다들 한 달에서 달포를 넘깁니다. 평균 10kg의 배낭을 메고 하루 평균 25km 이상을 걷게 되는데 이것은 분명 저마다의 일생에 하나의 도전이기도 한 길입니다.   순례자 모두가 프랑스 길 8백 킬로 미터를 걷기 위해 생장 피에드포르 (St Jean Pied de Port)에서 출발하는 것도 아니고 출발한다고 해서 모두 완주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 퍼센테이지는 참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분명 한달 이상이 걸리는 완주 길은 그들의 삶에 있어 너무도 의미 있는 여정이지만 시간을 내기 힘든 사람들은 단축해서 걷게 되는데 나름 개척한 루트처럼 주요 구간은 빠지지 않고 걸으며 중간 중간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전 구간을 섭렵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 방법 중에서 어쩌면 가장 애호하는 길이 이 사리아에서 시작하는 구간입니다. 지도상 실지거리는 118km인데 이 길을 완주해 100km만 넘겨도 순례자 증서를 증여한다 하니 아마 얄팍한 세속의 욕심이 그리하게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말을 타거나 200km 이상의 자전거 종주도 인정해준다 하니 극한의 체력을 소모하며 지난한 고통을 감내하며 경험하라는 것이 아니라 순례자의 마음을 지니고 하라는 배려가 참 훈훈하게 다가옵니다. 언젠가 자전거 종주도 한번 해보고 싶게 하는 유혹이 문득 다가옵니다. 안개가 자욱한 포도를 걸으며 아침의 장막을 걷는데 언덕길을 올라 옛 마을로 올라서는 사리아는 정감어린 오래된 정원 같은 소담스러움이 넘칩니다. 참 마음이 평화롭고 잔잔해옵니다. 소읍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언덕위에 그려진 막달레나 수도원 (Convento de la Magdalena)은 마을과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기에는 참 좋습니다. 지금은 탑 하나만 남아있지만 무너진 성곽을 둘러보면 아득한 고풍스러움으로 들어가는 것 같고 13세기경에 건축된 고딕 양식의 살바도르 성당 (Iglesia del Salvador)도 눈요기거리입니다. 이 사리아의 제대로 된 역사가 시작된 것은 12세기 중세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이 융성하게 된 이후부터랍니다. 이 도시를 세운 이가 알폰소 9세인데 그는 다시 순례길을 걷다가 마침 그 당시 창궐하여 발병한 전염병 때문에 사리아에서 숨을 거두었다는데 참으로 절묘한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당시의 순례길이 지금과는 달리 그 얼마나 험난하였는지 목숨을 담보로 걸어야 했는지 보여주는 한 역사적 실례입니다. 곳곳에 마련된 순례자들의 무덤들이 더욱 실감나게 하는데 하늘을 우러르니 어느덧 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이 창연하게 드리웠습니다.   수많은 이들에게 이 순례 길은 어쩌면 빛바랜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낮달처럼 지워지지 않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신비스런 여행일 것입니다. 천년 전의 순례자들처럼 믿는 이들에게는 성 야고보의 길을 따라 걸으며 그의 삶을 기리며 또 마음으로 봉헌하며 걷는 길이지만 많은 순례자들은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고 지난 삶의 그림자를 되밟아 보고 또 내 안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소망으로 이 길을 떠납니다. 오직 두발로서 길 위에 서는데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저마다의 인생 배낭을 짊어지고 와서 모두들 삶의 실타래를 풀어놓는 곳. 온전히 나 자신과 만나는 곳이며 그런 후 걷고 걸으며 자신과의 끝없는 대화로 풀어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어쩌면 우리의 삶과도 같은 곳인지도 모르는데 마치 순례길의 시작은 무엇이던 할 수 있는 자신감 그러나 서투르고 항시 실패와 잘못을 반복하게 되는 젊은 날이라면 나중은 무력감과 병에 지친 고통으로 쇠잔해지나 요령을 터득하여 순조롭게 갈수 있는 잘 익은 노년과 같답니다. 저마다 지닌 걷게 된 동기랄까 사연을 들어본다면 사실 그리 거창하지도 않을지도 모릅니다. 행여 우리는 그것을 그저 웃음으로 넘기며 가볍게 치부할지 모르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작은 계기가 깊은 감명으로 다가와 모진 마음을 먹게 된 그들에게는 얼마나 간절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타인의 삶을 허투루 보지 않는 것이 또한 이 길 위에서 배워야 할 배려이며 겸양입니다.   비록 이번 순례길은 아름다운 동행이 있기에 전혀 다른 순례자들과 말을 섞을 기회는 없겠지만 그러기에 더욱 더 동행들의 사연과 이야기를 진지하게 귀담아 들어야겠습니다. 물론 나도 답답한 마음 풀어놓아야겠죠. 그리한다면 우리는 서로가 상담의 의뢰자가 되고 도움말을 주는 카운슬러가 되겠지요. 동년배들 끼리 한 시대를 같이 살며 비슷한 추억들을 가진 길동무들 간의 대화는 분명 내가 살아오지 않은 길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한 좋은 시간이겠습니다. 그래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게 그저 나란히 함께 가는 길. 그래서 우리는 이 길 위에서 만큼은 하나가 될 것입니다. 벌써 어두워지는 하늘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불어오는 바람이 살을 에고 스쳐도 마음만은 넉넉하고 따스합니다. 겨울 카미노의 혹독한 날씨. 그래서 더욱 이 길이 값진지도 모릅니다. 7시간 길 위의 여행. 미뇨 강이 유장하게 흐르는 언덕에 오르니 저 만치 눈앞에 펼쳐진 산촌의 풍경. 저녁밥 준비하는 아낙의 손길이 분주할 부엌 아궁이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포르또마린이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고단한 나그네의 마음을 위로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