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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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행복이라 외치고 싶은 뷔엔 카미노. 호수 위 물안개 아물아물 피어오르는 순례길의 아침을 맞이합니다. 포르토마린. 몬떼 데 그리스또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마을로 1966년 벨레사르 댐을 준설하며 생긴 인공호수를 품고 있는데 수몰지역에 있던 이 마을의 주요 고 건축물들은 모두 이전시켜 현재의 모습으로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중세부터 순례자들이 넘나들던 다리도 호수에 잠겨 있으나 유적들은 고스란히 옮겨놔 여전히 역사적, 예술적 풍성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포르토마린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아주 매력적인 곳이 되었답니다. 새로 조성된 마을인 만큼 순례자를 위한 숙소와 서비스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을 뿐 아니라 비스꼬초 파이(Tarta de Bizcocho)나 스페인의 전통 브랜디인 아구아르디엔떼(Aguardiente) 등과 같이 전통 음식과 주류도 세상에 잘 알려진 곳입니다. 1940년대 스페인 역사 예술 단지로 선정된 이곳도 근대화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어 수자원 이용에 필수적인 인공담수호를 준설하게 되면서 그 수많은 순례자들이 천년을 밟고 지나간 아름다운 다리는 수몰되었지만 산 니콜라스 성당이나 산 페드로 성당, 마사 백작의 집, 베르베토의 궁전 등은 이전 복구하여 문화재로 남아 여전히 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의 땅 포르토마린의 알베르게에서 떡국으로 아침을 만들어 먹고 유독 친절함을 가득 품고 환영해주던 젊은 주인 부부와 작별을 하고 길을 나섭니다. 알베르게란 순례자 전용 숙소에서 머물렀는데 웃돈을 주고 다른 인종들과 섞여 자지 않고 우리 동행들만이 한방을 써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락한 밤을 보냈습니다. 코골음의 소음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도 못했고 나 또한 가해자였지만 말입니다. 이 알베르게는 순례길을 걷는 동안 크고 작은 마을마다 그 많은 순례자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공립과 사립으로 만들어 진 전용 숙박업소인데 성당이나 수도원 등에서 운영하는 공립 알베르게는 저렴하고 어떤 곳은 기부금 형식으로 자발적인 사용료를 내는데 많은 인원들이 한 공간 내에서 각자의 작은 침대를 사용하여 하룻밤을 묵고 떠나갑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 알베르게는 상대적으로 시설이 좀 더 낫지만 꼭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어떤 곳은 식사까지도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른 바게트나 토스트 그리고 커피 한잔을 달랑 주니 영 우리 식성에 차지 않습니다만 자연스럽게 생겨난 이 알베르게는 카미노길 만의 독특한 숙박 형태이며 그 자체가 이 길의 이정표가 되어주면서 힘든 여정에 쉬어가고 목을 축여주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입니다.   오늘은 과거 갈리시아 지방의 총독을 맡아 치세를 펼치며 살던 궁전이 있어 ‘왕의 궁전’(El Palacio de un Rey)이라는 뜻을 가진 팔라스 데 레이라는 마을까지 25km에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좀 더 멀리 있어 30km를 넘게 걸어야하는 고된 일정입니다. 우요아 지역의 중심도시인 팔라스 데 레이는 순례자들에게 여러 눈요기 거리를 제공하는데 선사 시대의 고인돌, 장구했던 로마 시대 이전의 성벽, 웅장한 로마 시대의 건축물과 성, 수도원등과 더불어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 에서는 천년을 넘게 이어온 세월동안 파괴되지 않고 보존되어온 다양한 집들을 볼 수 있는데 중세풍의 화려한 저택들과 화강암으로 지어진 계단과 문장 장식이 아름다운 시청도 방문해 볼만 하다 합니다. 이런 명소를 보기 위해서는 리곤데 언덕에 이르는 9km의 구간은 750미터 해발 고도를 올려야 하는 길이기에 발품 값을 지불해야만 합니다. 마을을 나와 호수로 달려가는 미뇨 강을 따라 오솔길로 접어드는데 곁에는 보기에만도 친근감이 가득한 그러나 유난히 솔잎과 방울이 큰 소나무와 금작화가 아름답게 자라는 작은 산봉들이 이어지고 촉촉이 젖은 길가로 파릇파릇 봄이 피어오르는 모습들을 봅니다. 마을 하나를 지나는데 몇이서 무리지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다가 지나는 우리를 보더니 가게 주인인 듯한 남정네 하나가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 준다고 친절을 보이기에 허름한 기념품 가게로 따라 들어갔다가 그의 상술에 꼴깍 넘어가 배낭에 메는 조가비에 팔찌 조가비까지 덤으로 사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배낭에 메고 팔에 차니 한층 수도자라도 된 듯 어께가 올라갑니다. 새들이 인도하는 길 따라 한참을 오르면서 등에는 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다들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한고개씩을 넘어가니 푸른 하늘 가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평원이 뿌려집니다. 밀밭 길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으니 쾌적하기 이를 데 없는데 비옥한 땅위에는 게으른 울음을 우는 얼룩 배기 젖소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하나둘 나타나는 촌가의 대문위에는 어김없이 오레오가 그들의 풍요로운 삶을 대변하듯 높이 지어져 있습니다. 오레오란 장기간 곡물들을 저장해두는 창고인데 부자들은 돌로 가난한 이들은 나무나 짚풀로 지어놓았는데 가만 들여다보니 그 속에는 거의 옥수수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갈리시아 지방은 강수량이 풍부해 언제나 골로 가득 넘치듯 흐르는 시내에는 잠시지만 우리네 고향마을을 떠올리게 하는 물레방아가 반겨줍니다.    길. 장엄한 북부 스페인의 목가적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 이 길. 여행자는 부푼 마음으로 지나는 길이지만 원주민들에게는 매일같이 일터로 오가는 삶의 길입니다. 다른 트레킹 코스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인데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삶의 길 생활의 길을 걸으며 한번 씩 펼쳐 보이는 장엄한 자연 풍광과 평범하게 살아가는 스페인 북부 시골 마을의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삶의 모습을 음식과 더불어 느껴보는 새로운 경험입니다. 명산과 고산만을 휘저으며 다닌 지난 세월 속에서 이 카미노는 나에게 휴식의 길이며 상념의 길입니다. 그런 이 길에 함께 한 동행들 이외에도 어디서나 가득 들판을 채운 소떼들과 나무들 그리고 푸른 초원을 만나며 맑은 바람 청아한 물 흐르는 소리와 고색창연한 옛날의 건물들을 느끼며 걷는 길. 이곳 갈리시아 지방의 분뇨 내음이 더하니 자연 그대로의 길을 걸게 해주는데 더불어 낮은 돌담길을 걸어가던 아득한 유년의 우리로 되돌아가게 해줍니다. 중세 순례자들의 봇짐을 털며 생명까지도 앗아가던 산적들이 빈번하게 출몰한다던 이 지역 750미터 언덕을 섬뜩한 느낌으로 넘는데 어김없이 갓길에는 순례자들의 무덤 옆에는 빛바랜 십자가와 조화들이 눈비와 햇볕에 노출된 채 남겨져 있습니다. 그제야 시장기가 느껴지고 이 지역 특산물로 그 유명한 우요아 치즈도 먹어 보아야 하겠기에 점심을 해결하러 카페로 들어갑니다. 바게트 속에 돼지고기 절인 하몽에다 덤으로 우요아 치즈를 시켜 층으로 쌓아 먹는데 치즈의 깊은 맛이 허접한 길손의 식성을 채워줍니다. 밤에는 와인 낮에는 맥주. 순간이지만 갈증을 다스려주는 이 시원한 맥주에 매료되어 시켜보는데 갈리시아 지방의 대표 맥주, 별이라는 뜻의 에스텔라가 우리 입맛에 아주 제격입니다. 작은 창으로 스며드는 봄 햇살에 허물어지게 하는 취기까지 번지니 스믈스믈 이가 기어가는 듯한 가려움마저도 느껴지는 나른한 오후 한나절입니다.   뷔엔 카미노! 만나는 사람마다 스치는 순례자마다 이 인사를 나눕니다. 그 인사는 내가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또 얼마나 진심으로 외치냐에 따라 그대로 메아리 되어 돌아옵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하기 위하여 더욱 큰소리로 그들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같은 길 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나가 되고 진심이 가득한 인사를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느림의 미학을 존중하며 천천히 걷는 길. 무엇을 생각하며 걸을까 하던 떠나기 전의 질문이나 각오들마저도 흩어져버려 그저 구름이 흘러가듯 바람 따라 걸을 뿐입니다. 무한한 여유속에서 마음이 정하는 데로 따르며 나를 의지하고 그냥 흘러가면 되는 일. 오늘 가는 길 험난하면 줄여서 가고 오늘 몸과 발걸음이 가벼우면 더 가면 될 것이고 배낭을 내리는 어느 곳마다 우리들의 쉼터는 항상 거기 있으니 세상 무엇 하나 근심거리가 있을까! 이 가슴 가득 채워져 오는 풍요로운 마음의 자족. 감히 행복이라 외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이제 그 수많은 순례자의 하나가 되어갑니다. 이길 위에서 행해지는 하나의 이벤트는 걷기를 시작할 즈음에 스스로 자신에게 편지를 쓴 후 알베르게에 부탁을 하면 원하는 마지막 지점에서 받게 되는데 다시 그 편지를 읽으면서 울지 않는 이가 없다는데 그만큼 감동이 크다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그리 길지 않은 순례길이기에 그저 마음에 편지를 써두고 순례를 마친 뒤 고이 꺼내 보려합니다. 성찰 같은 시간을 소중하게 나누어보는 여유. 산티아고 가는 길입니다. 해는 저물어가고 앞서 가는 순례자들은 저 언덕을 넘어 가는데 석양에 비끼는 그들의 뒷모습이 실루엣으로 그려지는 수려한 풍경입니다. 어느덧 우리도 저들의 무리가 되어 그 석양빛에 물들어가니 오늘 하루도 아름답게 그렇게 저물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