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이 함께 걸어온 길 차마고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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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도 한달음에 건너는 협곡 호도협. 그 장대한 차마고도를 그저 한구간 맛보는 트레킹으로 호도협과 매리설산 및 하바설산을 경험해보기 위해 날아온 중국 서남부에 위치한 운남성은 연중 따뜻한 기온과 더불어 다양한 소수민족들, 그리고 운치있는 자연풍광으로 인해 여행자들에게 최고의 여행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인도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의 충돌로 인한 지각운동은 하바 설산(5,396m)과 옥룡 설산(5,596m)으로 갈라놓았고 그 갈라진 틈으로 금사강이 흘러 들면서 거대한 협곡이 만들어졌으며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 중 하나인 이 곳을 따라 옛 마방들은 운남 지역에서 생산된 차를 티벳, 미얀마, 베트남, 인도 등지로 운송하였습니다. 순박한 산골 마을을 따라 형성된 길을 걷다보면 발 아래로 비취빛 진사강이 흘러가는데 사냥꾼에 쫓기던 호랑이가 강 사이의 바위를 딛고 한달음에 강을 건넜다는 유래를 가진 호도협(Tiger leaping gorge)은 그 만큼 좁은 협곡을 가졌습니다. 여강에서 북동쪽으로 약 6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호도협곡은 장구한 세월동안 침식된 그 좁은 틈 사이로 흘러든 물줄기는 보는 이의 마음마저 탁 트이게 하면서 기운차게 용솟음칩니다. 페루의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피추를 만나러가는 잉카 트레일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뉴질랜드의 밀포드와 더불어 세계 3대 트래킹 코스로 통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 차마고도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는 결코 이 선정에 이의를 달지 않을수 없습니다. 세상 아름답고 가슴 설레게하는 풍경을 지닌 길이 얼마나 많은데 이 세곳 모두 장사속으로 만들어진 과장이라고 단언합니다. 물론 그 길이 만들어진 역사와 의미를 따지자면 세상에서 최고라고 내세울만할지 모르지만 그 길의 미려함이라든지 펼쳐놓는 풍경이라든지를 따진다면 세계 100대 트레일의 끝자리에나 차지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잉카인들의 빼어난 역사적 유적들을 들추며 걸어서 마침내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에 속하는 마추픽추를 보러간다는 의미에서 잉카트레일은 받아들인다 해도 펴놓는 풍경은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습니다. 특히 밀포드 트랙은 뉴질랜드 국가가 앞장서서 반 사기를 쳐먹는 것으로 판단내릴 수 밖에 없는데 그렇게 비싼 경비를 지불하며 종주하는 3박4일간의 그 길은 그야말로 이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냐 싶은 본전생각이 갈때마다 생기며 이곳을 갔다오기만 하면 혈압이 더 올라가있는 나를 확인하게됩니다. 이 호도협도 영국의 BBC가 세계 3대 트레킹 코스의 하나라고 선정했다고는 하나 아마 그들은 차마고도 자체를 말한것이지 단지 30여킬로미터의 이 호도협 트레일만을 뜻한 것은 아니라고 믿고싶습니다. 국내 유수 트레킹여행사도 앞장서서 이 상품을 팔아먹기 위해 더욱 충동질했다고들 말하는데 적어도 차마고도의 연장선에 있는 하바설산이나 매리설산 그리고 옥룡설산을 추가해 걷는다면 그나마 덜 본전생각이 날 것입니다.   아무튼 역사적 의의가 있으며 마방들이 그 장대한 여정의 첫발을 내디딘 출발지로서 그 옛날 차마고도의 원형이 살아 숨쉬는 코스로 여긴다면 그나마 걸을만 합니다. 통상적으로 신서유기2 프로그램에도 나왔던 나시객잔에서 출발하여 차마객잔, 중도객잔을 경유 티나객잔에서 마치는 1박2일 코스인데 전체 구간 중 가장 난코스로 알려진 28밴드는 스물여덟 구비로 굽은 길이란 뜻으로 꼬불꼬불 가파른 길을 올라 정상에 서면 설산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런 이유로 차오터우에서 시작해서 티나객잔까지 가는 이른바 순방향 대신에 티나객잔까지 일반 도로를 이용해서 차량이동한 후 하도협, 중도협, 상도협의 역순으로 하면서 이 28밴드의 오르막길을 내려오는 것으로 하는 꾀돌이들도 있습니다. 어느정도 정점에 올라서 걷다보면 겹겹이 쌓인 협곡와 힘차게 흘러가는 중국 최대의 강인 장강의 상류이자 지류인 진사강 그리고 이 모두를 내려다보며 서있는 거대한 옥룡설산이 조화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을 확인할수 있습니다. 세상 으뜸가는 측간(화장실)이라는 "천하제일측"이 있는 중도객잔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기별이 오지않더라도 그냥 쭈구려앉아서 풍경을 보게 됩니다. 이른 아침 샤시마을을 출발하여 우선 호도협 입구 매표소에서 상호도협 관람대를 왕복하며 협곡과 진사강 장관을 만끽하고 소위 그들이 말하는 산악지대에 있는 객잔이나 가게에다 빵이나 물품들을 배달하는 사륜구동 지프차인 빵차를 타고 지그재그 오르막을 오릅니다. 나시객잔으로 가는 길인데 도전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이 2시간 도보길을 열심히 걸어서 오르기도 합니다. 이제 제법 수려한 풍광이 눈에 잡히는 객잔 툇마루에 앉아 차한잔의 여유를 갖고서 본격적인 트레킹에 돌입합니다. 초겨울의 날씨인데도 화창하고 땀마저 송글송글 맺히는 축복의 정오. 오르는 길이 제법 몸을 젖게하는데 길에 들어선지 얼마 지나지않아 노새를 이끌고 내려오는 초로의 사내가 말을 걸어옵니다. 이 길이 노새의 등에 짐을 싣고 오갔던 차마고도의 길잡이 마방이었지만 지금은 트레킹이나 관광을 목적으로 온 이들을 상대로 노새를 태워주고 돈을 받는 관광상품의 일환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노새를 탈 사전계획은 없었지만 옛날 마방이 된 기분을 느껴보고 싶어서 한필만 빌려 동행들끼리 돌아가면서 한번씩 타보기로 했습니다. 제법 까다로운 28구비를 치고올라가 꺾는 최종 고개에 올라서면 그제서야 하바설산과 옥룡설산이 만들어낸 대협곡과 그 사이를 힘차게 흐르는 진사강의 물결 그리고 주변 흰옷입은 설산들이 펼여지는 풍경은 제법 드라마틱합니다. 이 고도를 오가며 생을 이어왔던 예전의 마방들이 걸어온 생존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면 더욱 의미가 깊어지며 이 길을 걷던 선답자들과 함께 그 이전에 손정과 망치 하나로 이 험준한 길을 개척한 장인들을 떠올리며 작은 존경의 예를 올립니다.   28밴드를 지나 한시간여 가량 더 걷다보니 해가 서녘으로 많이 기울었고 오늘 머물기로한 마을이 멀리 보입니다. 호도협 1박 2일중 하루밤 머무는 곳은 차마객잔이나 중도객잔인데 먼저 있는 차마객잔보다 한시간 반 정도 더 걸어가서 만나는 중도객잔이 여러모로 장점이 있는데 우리는 차마객잔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단 한가지 이유 그것은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인 우리에게 차마객잔의 닭백숙이 일미라고 하여 정했지만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중도객잔에서의 풍경이 더욱 수려하고 천하제일측도 있으니 옥룡설산군의 뒷모습을 보면서 똥도 싸보는 것이 훨씬 나을것이라는 서운함이 남았는데 좀더 깔끔한 숙박시설에 붐비지 않은 조용함도 중도 객잔에서 머물지않았던 것이 더욱 후회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음날 하바설산으로 이동하는 제법 긴 여정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랬었어야 했습니다만 하여간 차마객잔에 자리를 잡고 발코니로 나와서 생기잃은 햇살을 받으며 이 초겨울에 핀 단풍빛을 감상합니다. 물론 손마다 한잔 중국술을 들고서 말입니다. 잠시 후 나시족 아낙이 외치는 소리에 식당에 드니 이미 한상 잘 차려놓고 소주잔을 권커니잣커니 하며 거나한 연회를 즐기고 있는 한인동포들 팀을 만납니다. 옆자리를 배정받아 우리들 저녁상을 맞이하는데 나무로 만든 긴 메뉴판에는 중국식 식단과 함께 어슬픈 한식 메뉴 몇가지와 나름 간단한 양식까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창밖으로 바라보는 황혼의 풍경은 장관이었는데 실내 인테리어도 전혀 없었지만 그저 커다란 창만 내면 훌륭한 인테리어가 되고 그 창문을 열면 문명세계에서 설치된 에어컨바람의 인위적으로 차갑고 건조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청량함을 줍니다. 시간이 걸린다해서 미리 주문해둔 백숙과 함께 이것저것 몇가지 주문해서 음식들을 맞이하는데 백숙의 닭은 오골계에 가까운데 색깔자체도 영 식욕을 죽여주더니 닭대가리를 버리지도 않고 그대로 잘라나와 또 그놈이 하필이면 나를 향해 째려보는 통에 거식증이 생겨버려 빈속에 술잔만 거푸 채우다보니 쉽게 밤이 취해버렸습니다. 이 길위의 객잔이 주는 서정은 차라리 현실감이 있는 새로움이었다면 주변 풍경이 주는 신선함은 오히려 비현실감에서 빚어지는 경이로움으로 다가옵니다. 휘영청 밝은 달이 산마루에 걸려있고 지나가는 바람 그저 시원하니 객잔 옥상으로 자리를 옮겨 이제는 아예 더 가까워진 밤하늘을 이불삼아 긴의자에 반은 누운 상태로 오가는 술잔속에 밤은 더욱 깊어갑니다.   간밤에 비가 내렸는지 촉촉하게 젖은 산하는 싱그럽기 그지 없는데 더욱 맑아진 산의 풍경이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비가 만들어낸 새로운 비경에 마음을 빼앗긴채 마을을 나서는데 간밤의 풍성한 비로 깨끗하게 씻겨진 자연의 맑은 모습과 듬성듬성 자리잡은 흰구름이 푸른하늘과 대비해 펼쳐놓는 한폭의 그림. 하늘과 땅 사이의 공백이 산으로 가득 찬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공간을 제 몸으로 가득 메운 산위로 가벼운 질감의 구름이 찢어져있으니 전혀 시야를 답답하지 않게 합니다. 초록과 백 그리고 청색 이 세가지의 단순한 색감만으로 그 어떤 화려한 총천연색의 그림보다 미려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구름에 가려있던 옥룡설산의 정상급 봉우리들도 푸른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 시시각각 햇살이 비추는데로 변화하는 얼굴을 감상하는 것도 아침을 준비하는 우리들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길을 나서고 큰 낙폭이 없는 길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옮길때마다 서서히 밀려 지나가는 풍경이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장관의 연속입니다. 호도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옥룡설산과 하바설산 사이로 흐르는 금사강인데 장엄한 호도협의 아찔한 협곡으로 진사강이 갑자기 물길을 바꿔 두 산 사이의 좁고 깊은 협곡 사이를 힘차게 흐르며 웅장한 풍경을 자아내는 곳으로 넓은 강폭이 갑자기 좁아진 협곡에 막혀 역류하며 만들어내는 물줄기의 성난 아우성이 협곡을 비좁게하며 사바세계의 혼란처럼 마음의 평정을 어지럽힙니다. 히말라야의 한 자락인 이 곳도 조산 운동에 의해 형성된 전형적인 V자 협곡인데 수억년 동안 물의 흐름에 따른 침식작용에 의해 다듬어지면서 지금의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고 있어 오랜 성상을 인내해온 지구의 아름다운 상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상류에서 녹은 빙하수가 품은 석회물질 때문에 옥빛을 발하고 있으며 길마다 돌출된 부분에는 드넓은 산세와 굽이치는 계곡이 한눈에 보이는 호도협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에 마련된 뷰포인트들이 있습니다. 겨울의 초입에도 불구하고 물길을 뿌려내리는 관음폭포를 지날 때 그 상징성에 사진을 한두장 찍고 길을 재촉하는데 중호도협으로 접어드는 것을 알리는 안내 표지판이 곳곳에 등장하기 시작하고 수천길 낭떠러지 옆으로 높은 절벽이 이어지는 길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숲속길과 절벽길을 수없이 반복하는 길을 걸으며 천혜의 자연환경과 아름답고 웅장한 풍경들을 마주하고 씩씩하게 이어갑니다.   중도 객잔에 발길을 멈추고 차한잔을 주문합니다. 셀프 서비스형태로 만들어놓은 차한잔씩을 손에 들고 옥상에 마련되어 있는 선베드와 흔들 그네를 지나서 단체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차마고도 선상에서 제대로 된 차의 향미를 맛보며 휴식을 즐깁니다. 앞다투어 확인해보는 천하 제일의 측간에서도 바로 위의 옥상 발코니에서도 풍경은 한가지로 진부한 표현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을 걸어놓은 듯한 그 비현실적인 경치는 수묵화로 남겨진 그들의 전래작품과 조금도 다르지않습니다. 속도 그 자체가 이번 여행의 목적은 아니었기에 산마루의 이어달림을 한참동안 바라다보면서 서로 품평도 하며 보이차의 그윽한 향기를 깊이 들어마십니다. 달콤한 휴식 이후에 다시 시작된 트래킹. 걸을 때마다 달라지는 농익은 자연의 향기가 또 다른 감흥으로 젖어오는데 온갖 번다한 잡음으로 마비되어있던 오감이 깨어나는 기분입니다. 유달리 많이 풀어놓은 염소들이 가파른 벼랑에 의지한채 풀을 뜯어먹고 있는데 곁으로 철지난 들꽃들이 화려하게 피어있습니다. 이 지역의 사랑은 박물관에서도 그렇게 확인이 되는데 꽃으로 표현된답니다. 아찔한 절벽에 피어난 청초한 꽃을 꺾어 그 꽃잎만큼이나 청초한 소녀에게 사랑을 전하는 사내들의 무분별한 마음. 거기에는 이세상 가장 희귀한 것을 바치고싶은 목숨건 시도가 있기에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정의를 내린답니다. 풍경하나도 사물하나도 꽃잎하나도 메세지를 던지는 길위에서 얻는 내 삶의 귀한 경험이며 재산들입니다. 호도협 길을 마감한 티나 객잔에서 한가로운 점심식사를 즐기고 난후 주체할수 없이 몰려오는 졸음에 겨워 생각에 생각으로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길의 해석입니다. 여행은 언제나 그렇듯이 목적한 곳에서의 시간보다 가기위한 준비의 시간과 찾아가는 그 과정의 길들이 더 빛나듯이 허무함마저도 드는 이 길의 끝에서 다시 희망을 품고 다음 행선지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