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대표 해안선 트레일. 그레이트 오션 워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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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길. 자족의 길. 바다가 그리웠습니다. 무척이나 그랬습니다. 뭍에서 태어났고 유년을 도회지에서 보내고 청소년기를 지리산 자락에서 청년기를 또 다시 회색빛 도시에서 보내다 보니 바다는 언제나 나에겐 피안에 있는 동경의 세상.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죽이 맞아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나와 책가방 단골 막걸리집 가게에다 맡기고 교복 칼라 꺾어서 속으로 집어넣고 부산으로 달렸습니다. 요즘 같으면 한시간이면 달려갈 길을 거의 네시간에 가깝도록 완행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가슴 졸이며 달려가 그 부산 태종대를 만나고 비릿한 바다내음 맡으며 아나고 회 한접시에 소주 한잔 들이키던 그 맛. 기분좋은 얼큰한 취기로 통통배 타고 부산 앞바다를 달리는데 선수에 서서 바라보던 아스라한 오륙도. 그리고 어디에선가 나처럼 늙어갈 대학 캠퍼스 커플의 첫사랑 소녀와 자주 찾던 포항 앞바다. 바다를 바라보며 미래를 만들어가던 꿈같은 추억의 시간들. 급기야는 군대 소대장 시절 자원해서 해안 소초를 경비하며 다시 만난 그 동해바다. 울진 머무를 때 술친구가 되어주신 프랑스 계 신부님 덕분에 스쿠바 다이브로 접해본 동해 바다 수중세계. 황홀하기만 했던 그 새콤하고도 짜릿했던 전율이 끝내 나로 하여금 워싱턴 출신 최초 한인 스쿠버 강사가 되게 하였고 대서양. 태평양 그리고 캐리비안을 누비며 수중세계에 탐닉하고 살았습니다. 허나 스쿠바 다이빙을 하기에는 너무도 열악한 그 지역의 환경 때문에 한계를 느꼈고 스쿠바 홍보를 위해 시작한 등산이 결국 내 레져 활동의 중심으로 옮겨져버려 바다는 점점 멀어지고 기억 속에서도 하나둘 지워져 갔습니다. 그렇게 잊고 살았는데 화산 트레킹을 위해 지난 늦가을에 방문했던 중미의 보석 코스타리카에서 그 고운 물빛을 보고서는 다시 바다를 향한 연모가 싹트고 키워나가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수중이 아니더라도 애초에 순수하게 사랑했던 바다를 만나고 그 해안선길을 마음껏 걷고 싶었습니다. 그래. 이 혹독하고 차디찬 겨울을 탈출하여 바다로 가서 해안길을 걷자. 더욱 반가운 해후가 아닐런가! 그럼 어디가 좋은가? 태양이 이글거리는 하늘을 이고 걸을 수 있는 세계적인 코스트라인 트레일. 하와이와 호주. 뉴질랜드와 코타키나발루로 이어지는 삶의 엑소도스를 저지르자. 어느새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하와이가 비록 세계 10대 아름다운 해안 절벽길에 선정된 칼랄라우 트레일을 갖고 있다지만 마우나 로아산과 킬라우에아와 할레아칼라로 이어지는 고산 화산 트레킹이 대부분이라 해안선 산행의 갈증이 풀리지 않아 처음부터 끝까지 해안선을 따라 종주가 이어지는 그레이트 오션 워크를 걷기 위해 남쪽 해안에 위치한 호주 제2의 도시 멜브런을 거쳐 아폴로 베이에 힘겹게 도착합니다. 지구촌 각처에서 모이는지라 항공편의 연착이 무질서하게 이어지고 마침 고온의 이상기후에다가 한인으로는 그랜드 슬램 메이저 대회인 호주 오픈에서 최초로 4강에 오르는 신화를 만든 정현선수에 대한 응원 열기로 연일 섭씨 45도를 넘나드는 붙볕 더위의 멜버른에서 땀으로 멱을 감으며 기다립니다. 마침내 모두 집결하게 되고 오션 워크의 출발점인 소담스런 해안 마을 아폴로 베이까지 두시간을 더해 달리니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자정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함께 여행을 해왔던 분들이 태반이라 손발이 척척 맞아 기인긴 항공이동으로 칼칼해진 입맛에 제격인 된장찌개 끓여내고 밥짓고 급한 안주 만들어내서 저녁겸 환영 주연을 베풉니다. 12명이 3주간 엮어갈 호주 완전 정복 트레킹. 어차피 우리들만이 만들어 나갈 자유 여행인데 기쁜 해후의 잔이 몇잔 더한들 내일 좀 늦게 시작하면 되는 일입니다. 공수해온 빨간 뚜껑 국민소주에 호주 본산 맥주로 권커니 잣커니 주고받는 술잔이 더해갈수록 흥겨운 주흥이 더욱 무러익습니다. 굳이 음악이 없어도 교교한 달빛받으며 밀려와서 철썩대고 밀려가는 파도소리가 그보다도 더 운치가 가득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선 도로라고 불리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oad)는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하고 귀향한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착공되었고 13년간의 공사 끝에 준설 완공된 길입니다만 이 도로보다 더 해안가 쪽으로 도보길을 조성한 오솔길이 그레이트 오션 워크(Great Ocean Walk)라고 합니다. 장대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호주에서 가장 자랑하는 세계적인 걷기 코스인데 멜버른 남부 해안 도시인 질롱의 근교인 토키(Torquay)에서 와람불(Warrambool)을 잇는 바닷가의 절벽들을 깎아서 만든 총 연장길이 214㎞에 달합니다만 트레킹은 아폴로만(Apollo Bay)에서 시작해서 가장 드라마틱한 풍경을 선사하는 12사도상(Twelve Apostles)이 있는 104km의 해안 절벽 길을 걷는 것입니다. 빅토리아주 정부와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1960년대부터 트레킹 코스를 조성하기 시작했는데 특별히 높은 산악 지형이나 물때를 맞춰 걸어야하는 바닷길 두어구간 이 외에는 그다지 위험한 구간이 없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라도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습니다. 그레이트 오션 워크는 당일 코스부터 최대 6일 코스까지 다양한 일정을 선택해 걸을 수 있게 편성해놓고 있는데 워낙 광범위한 지역이라서 대부분의 트레킹 여행은 숙박과 가이드를 포함한 현지 패키지 프로그램으로 운영됩니다. 고급 숙소에서 숙박하며 진행하는 럭셔리한 상품과 텐트 야영하며 진행하는 야생의 상품등이 있지만 초로의 참가자들로 구성된 우리 팀들이 좀더 효과적으로 완주할수 있도록 구간별로 나누어서 매일 이어나가며 숙박은 나름 편안하고 아늑한 팬션중 한곳에서 하면서 동행들과 날마다 잔치를 즐기듯 하기로 했습니다. 해안선으로 이어진 협곡과 깎아지른 절벽, 우거진 수풀, 하얀 백사장 등 대자연의 신비와 남극해를 넘어온 차가운 바람이 창조해 놓은 경관과 거대한 몸집으로 달려와 하얀 포말로 부서진 뒤 일렁대는 파도는 세계 최고의 경관으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줍니다. 계절이 반대인 이곳의 1년 중 트레킹을 할 만한 시기는 남반구의 봄철인 9~11월, 가을철인 4~6월이 최적기라 말들을 하지만 뜨거운 여름을 즐기려면 12~1월도 물을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들이 많이 찾으며 걸음의 축제 끝에 깊고 푸른 바다에 몸을 던지고 얼음에 재운 시원한 아이스 맥주를 목젖까지 같이 넘길듯이 들이키는 자신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특별한 여정이겠는가! 이 길을 걸으며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단연 곳곳에 펼쳐놓는 미려한 풍경들입니다. 벨스 비치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도를 만나고 조앤나 비치의 모래사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고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인 케이프 오트웨이를 배경으로 작품 사진 남기는 것도 가치있는 일일 것입니다. 물론 이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남극해를 향해 당당히 솟아 있는 12사도상으로 일컫는 석회암 바위들. 다음은 이 지역만이 품고있는 독특한 대자연과의 만남입니다. 우림지역과 강은 물론 오래된 화산과 거친 해안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자연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레이트 오트웨이 국립공원(Great Otway National Park)에서는 웅장한 폭포와 수정같이 반짝이는 협곡을 감상하면서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오래된 나무들이 두터운 이끼로 덮여있는 아바타 시대도 경험합니다. 인적이 드문 모래 해변, 울창한 숲, 아찔하도록 호주에서 가장 높은 절벽길을 걸어가면 그 탁트인 풍광에 저절로 스트레스가 해소 됩니다. 또 이길 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행운은 다양한 야생 동물과의 조우입니다. 별로 반갑지 않은 굵은 뱀들도 수시로 밟을뻔 하지만 5월에서 9월까지 해안 가까이에서는 흰배 돌고래의 출현 뿐만 아니라 출산 장면도 구경할 수 있으며 넓은 바위위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는 물개 떼의 평화로움을 부럽게 바라보게 됩니다. 그레이트 오트웨이 국립공원에서는 앙증맞은 어린 새끼를 업고있는 야생 코알라에 시선이 뺏기고 왈라비와 나무 늘보도 이따금 만나게 되고 여름이면 지천으로 피어있는 산딸기를 따먹는 다양한 크기와 빛깔의 캥거루가 빈번하게 볼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자연과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생명체들과 감정을 나누며 걷는 길. 평화스런 자족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