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안데스. 산타크루즈 트래킹 4. 안데스의 꽃 산타크루즈..

새벽녘 4250미터 지점의 타울리팜파 야영장에서 마지막 숙제를 푼 시원함에 고산증이고 뭐고 간에 풀어놓고 마음껏 마신 소주 탓에 소피가 마려워 텐트문을 열고 기어나오다시피 밖을 나오니 전율같은 충격의 풍경을 보게됩니다. 더없이 맑은 하늘에가에는 타울리팜파 야영장 주변의 설봉들이 모두 눈부시도록 하얀빛을 발하며 깨어나 있습니다. 노란 텐트촌 뒤에는 어제 온힘을 다해 넘었던 푼타유니온을 품은 카라즈 산(6025미터) 줄기도 빙하의 특유한 푸르스럼한 흰빛을 튕기고 그 아래 고이 잠들어 있는 옥색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그림같은 하툰 호수가 한면을 완벽하게 채우고 있습니다. 한쪽 면에는 완벽한 미라미드 형태의 세계 최고 미봉이라 일컬어지는 알파마요산(4947미터)과 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아르테손라후 산(6025미터)이 물결치는 설산의 너울을 만들어 냅니다. 시선을 창공에만 두기를 제법 오랜 시간. 열심히 사진을 찍는데 광각에 잡히는 사람들. 우리 동행들입니다. 모두 똑같은 경악스러운 감흥으로 모두 제자리에 얼어붙은듯 미친 이 풍경을 바라보거나 또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서로 마주치면 엄지를 들어올리며 인사를 건네오고 양팔을 들어올려 보이며 신에게 감사하고 있는 듯 합니다. 행복함이 서로에게 전해오는 순간입니다.    축복의 아침입니다. 새벽의 기후가 그대로 이어져 이제는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이 우리의 아침을 축복하고 기온마저 높아져 온화한 은총의 아침을 맞게 해줍니다. 우리들을 위해 부지런히 모닝 코카차를 배달하고 뜨겁게 데운 세숫물도 텐트 입구까지 가져와 수발들며 지어낸 아침 식사. 이제 하산만이 남았다는 후련함에 그들의 정성이 담뿍 들어있으니 황후장상이 부러울 식단인가! 모두 어제의 무용담을 반찬삼아 시끌법적하며 맛있는 조찬을 즐겁게 나눕니다. 장비를 갖추고 너무나 완벽한 날씨라 그렇지 않았다면 그냥 하산해 버리려 했던 알파마요 산 전망대로 다시 힘을 내어 올라갑니다. 산 그림자에 덮여있는 야영장을 벗어나 개울을 건너 볕이 드는 지점에서 알파마요를 뒤에 두고 단체 기념 촬영을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등정길. 척박한 토양을 품고 혹독한 기후를 지낼수 있도록 날카로운 끝을 내세워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거쎈 억새풀 같은 이 지역 풀들이 산자락을 메운 선에 야생화들이 선명한 빛을 발하며 화려하게 피어 우리에게 예쁜 인사를 건네옵니다. 미풍이 건들거리며 불어오고 부드러운 햇살이 어께위로 내리니 오르는 걸음마다 즐거움이 더해갑니다. 산허리를 돌며 고도를 높이면 더욱 솟아오르는 맞은편 설봉들. 더욱 가까이 다가갈수록 또렷해지는 두 산의 산세. 그래서 이 산타크루즈 길이 안데스의 꽃이라 부르나봅니다. 마지막 전망대에 다다라 가장 만족해할 작품 사진들을 만들기 위해 위치선정과 포즈에 열성을 다합니다. 다시 못올 길들. 다시 보지 못할 이곳 만의 풍경.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우리의 청춘. 우리의 인생. 그저 매순간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노력할 뿐입니다.    이제는 아쉬운 작별을 하고 하산을 할 시각. 산봉이 구름에 가리워진 알파마요와 무언의 작별인사를 나눕니다. 세계 미봉들이 갖고있는 공통점이라면 모두 삼각뿔 형태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고기 꼬리라고 별칭을 얻은 히말라야 마차푸차레나 또 다른 히말라야의 미봉 아블라 마담과 스위스의 마테호른과 같이 이 알파마야도 삼각뿔의 설봉입니다. 미끈하게 잘려나간 사선의 두 정점에는 날카로운 정상에 하얀 만년설이 장식하기 있기에 그 독특하고도 수려한 모습으로 세계 최고 미봉들로 선정된 듯합니다. 창연한 푸른 하늘을 등에 업고 선명하고도 각이 매끄러운 설산봉. 알파마요. 그 자태를 가슴에 품고 흐뭇한 만족감으로 다욱 가벼워진 걸음을 하산길에 보탭니다.  평지로 내려와 호반길을 걷다 풍광이 빼어난 곳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한 여성 도반이 제법 퉁퉁 부은 손을 내밀어 보이며 어떤 조치를 안해도 되냐고 물어옵니다. 간밤에 텐트 안에서 무언가가 물었고 가려워서 긁다보니 붓기도 했다합니다. 현지 페루비안 가이드를 불러 보여주니 신속하게 응급의료함을 가져와 약을 바르고 치료를 해줍니다. 얼굴도 무척 부어있길래 얼굴도 어디 물렸냐고 물었더니 가식없이 3일동안 변을 못봐서 붓는거라고 그침없이 대답을 합니다. 야영지에 도착하면 깊은 웅덩이를 파고 화장실용 텐트를 쳐놓는데 감히 그곳에서 용변을 볼수 없기에 그냥 참는다 합니다. 많은 여성들이 그렇듯이.. 아직도 불혹대의 나이라 젊고도 고운 얼굴이 많이 상해 있으나 괘념치 않아 하며 오히려 세상의 오지를 찾아 만나는 풍경을 즐기는 순례자가 되기를 기꺼이 자원하여 남편과 손잡고 일년이면 서너번씩 나와 아름다운 길위의 동행이 되어 함께 합니다. 내가 내린 트레킹 여행의 정의. 트레킹이란 지구의 이방. 세상의 오지로 들어가 특별하고도 기가 막히는 비경을 보기 위하여 안락함과 편리함을 포기하는 용기있는 여행입니다. 야생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이런 마음을 함께 가진 이들과 만들어 가는 우리들만의 여행. 그 어찌 아름답다 하지 않으리오!   다시 배낭을 들춰메고 가려는데 늘 우리를 따르는 말과 마부가 눈에 들어옵니다. 비상시 이용하기 위해 우리 대오 끝을 따르는데 길도 평지라 승마도 꽤 즐겨했고 해서 한번 타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막상 높은 안장위에 오르니 긴장감이 잔뜩 들고 안장이나 고삐. 발걸이 등이 경험해보지 않은 상이함이 많은데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올라있으니 무게중심이 윗쪽으로 이동해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허벅지를 바짝 말옆구리에 붙이고 안장 머리를 잡고 익숙해지려 노력합니다. 뒤뚱거리면서도 어느정도 마술에 친숙해진 후 마부에게 고삐를 달라고 합니다. 사람의 욕심이란게 끝이 없어 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니 달리고 싶어집니다. 뒷굽으로 배를 차고 고삐를 후려치니 말은 달리기 시작합니다. 천하를 호령하는 대장수가 되어 초원을 달리는 기분. 그 상쾌하고도 후련함도 잠시 덜컹 겁이 납니다. 중심이 불안한 가운데 질주는 낙마 사고발생이 분명하며 주변에는 온통 바위들인데 욕망을 접기로 합니다. 다시 서행으로 터덜터덜 말에게 의탁하고 흔들흔들 무심하게 가다가 한가지 특별한 발견을 하게 됩니다. 자꾸만 말이 트레일을 벗어나길래 고삐를 당겨 돌아오게 했는데 그것이 자꾸 반복되기에 그냥 내버려둬 봤습니다. 그랬습니다. 말도 순한 길을 가고 싶어하는 것이었습니다. 꼭 잔디밭길이나 흙길같이 부드러운 길만 골라가는 것이었는데 자갈길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는 어쩔수 없이 발굽이 미끄러지며 힘들게 갈뿐. 그들도 직감으로 편하게 가고 싶은 마음은 우리와 매양 한가지였습니다. 혼비백산하고 뒤따라 달려온 마부에게 고삐를 인도하고 소나 말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보니 정말 믿지못할 정도로 모두 발이 편한 길만이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오늘은 짐승에게서도 한수 배우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3800미터 지점인 야마코랄 야영장에 둥지를 틉니다. 심산이 다 그렇듯이 어둠이 내리면 급격하게 기온이 떨어집니다. 다운 자켓으로 무장을 하고 저녁상을 준비하는 주방으로 가봅니다. 그들이 만드는 식단에 미역국을 더하기 위해 조리하는데 물고기들이 제법 들어있는 봉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송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 합니다. 일급 청정수에서만 살아가는 송어. 당장 회로 먹을 수 있도록 손질하라 이르고 태공을 찾아내어 상금을 줄테니 신속하게 더 잡아오라고 시킵니다. 맞이한 저녁상. 씨알도 굵지않아 16명 대군이 두세점 먹을 뿐이겠지만 그래도 이 산타크루즈 트레일에서 초고추장 바른 야생의 한점과 소주 한잔의 맛을 어떤 가치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 밤이니 남은 술들을 남김없이 비워버립니다. 통통하니 살찐 유난하도록 밝은 별들이 총총한 하늘이 이 깊은 계곡에서 밤을 맞이하는 우리를 덮고 있고 설산 설봉들이 어둠을 막아주는데 식당 텐트안에는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타는 대신 매달아둔 해드램프가 바람에 흔들리는 산타크루즈의 목로주점. 한잔두잔 권주가에 주흥은 익어가고 이렇게 이방의 밤이 또 다른 감흥으로 깊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