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안데스. 산타크루즈 트래킹 5. 안데스를 모두 담아 마시는 한잔의 술.

사람이 주인인지 소들이 주인인지 모를 산타 크루즈 계곡에는 차분한 여명이 깃듭니다. 방목된 소 한마리 곁에 와서 씩씩대는 거친 숨소리에 잠을 깨고 텐트 밖으로 나와보니 오늘도 또 하루의 축복이 온누리에 가득합니다. 텅빈 하늘은 푸르디 푸르게 드리웠고 설산들이 환한 얼굴로 아침인사를 건네옵니다. 바람도 고요히 잠든 이 계곡에서 산과 물과 인간과 짐승들 모두가 하나의 자연물로서 동화되어 살고 있음을 느낍니다. 누가 우월하고 누가 부족한지 구분할 필요 가치 조차도 없는 이 대자연 속에서의 평등한 관계. 잘났다고 내세울 것도 없고 가졌다고 목에 힘줄 것도 없는 자연의 이치입니다. 산타크루즈 트레킹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청명한 오늘 일기만큼이나 모두들 밝은 표정입니다. 오늘은 머리가 조금도 아프지 않고 상쾌하고 맑기만 하다고 아침인사로 서로 나눕니다. 여전히 3천8백미터의 고지지만 그동안 따지면 비교적 고도도 그만큼 낮아진 곳에서 잠을 잤고 또 트레킹 동안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몸이 고소에 적응이 되었기 때문이겠죠. 게다가 서너시간 하산하면 이 종주 트레킹을 끝낸다는 후련함이 함께 작용한지도 모르겠지요. 이 야생의 생활을 끝내고 문명의 세계로 돌아가 그 안온함을 누려보리라는 어쩌면 늘 살아오던 당연한 그 소박한 욕심이 말입니다. 불편하고 힘든 그러나 재미도 있는 이 야영생활을 해본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그리워하는 막장 낙일 것입니다. 야영장을 표시한 입간판 앞에서 모두 환한 모습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산을 시작합니다.    한여름을 지나 이제 초가을로 접어드는 남반구의 3월. 여름내 녹아 흐르는 빙하와 만년설이 내를 이루어 우렁찬 굉음과 함께 힘차게 흘러 내려갑니다. 여기에 보조를 맞추려니 자연 우리의 발걸음도 빠를 수 밖에 없어 그저 물길처럼 신나게 흘러갑니다. 풍성한 물세례를 받으며 자연 식물원으로 변한 계곡길을 따라갑니다. 지대가 낮아질수록 열대성 식물들이 많이들 나타나는데 잎이 넓은 식물들과 음용이 가능한 잘익은 열매를 주저리주저리 맺은 거대한 선인장들이 포진해 있고 늦게사 꽃을 피워낸 수목들이 향기로운 내음을 뿌리고 있습니다. 가혹하리만치 혹독한 기후에서 살아남아 피워내는 꽃들은 그 향기도 그 빛깔도 짙고 화려합니다. 선홍빛으로 타는 들꽃과 보라빛으로 지장한 야생화들. 천연 수목원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 동안 계속 고산증에 시달려온 초보 트레커인 한 여성 참가자도 이제는 즐거운 표정으로 예의 그 속보로 제일 앞장을 섭니다. 난생처음 트레킹 여행을 남편 따라 그것도 5천 미터에 가까운 고도를 넘는 고산 트레킹에 참여하여 그저 불혹에도 이르지 않은 젊음으로 거침없이 치고 오르던 지난 몇일. 서서히 적응하면서 속도 조절을 해야 함에도 막힘없이 잘 걷는다 싶더니 마침내 고산증이 찾아와 두통에 어지럼증에 매스껍고 토할것 같은 증상을 토로하며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다음 날이면 젊음을 바탕으로 거뜬하게 자리를 차고 일어나 앞장서서 걸으니 아예 성을 따서 팀을 인도하니 안대장님이라고 별명을 지워줍니다. 그 체력과 열정을 인정을 해주면서 그래도 늘 선두에서 해맑은 웃음으로 우리의 목표를 견인하니 우리 팀의 이이콘으로 자리매김을 합니다. 그래도 나지막이 전해주고 싶은 말. ‘인생은 속도가 아닙니다 라고’..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할 때가 있고 여유있게 적응을 할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듯이 앞만 보고 달린다고 항상 선두에 서는 것은 아닙니다. 적당히 쉬어도 가고 때론 전력투구도 하고.. 그것이 우리 인생살이의 속도조절이 아니겠습니까.    서두를 것도 기약된 것도 없는 여유로운 하산길. 동행들과 수런한 잡담으로 걷는 길 중간에 우리의 눈앞을 가로막는 기암 하나. 바로 산타크루즈 암봉입니다. 남성의 그것처럼 힘차게 불뚝 솟은 이 바위산 때문에 이 트레킹 이름이 붙여졌구나 하고예감할 수 있는데 이 지역 암벽등반 코스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 표시판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잠시 주전부리로 간식을 먹고 또 걸음을 이어갑니다. 길고도 넓은 계곡 평원을 하루를 넘게 걸었고 마침내 비탈진 하향길을 걸어야하는 협곡이 장대하게 눈아래 펼쳐집니다. 꼬불꼬불 이어진 끝없는 산길. 애초 예정했던 대로라면 이 길을 거슬러 올라왔어야 했는데 너무 힘들었을것 같아 모두들 아찔하다 하며 너스레를 떱니다. 구비구비 물길을 따라 걷는데 한 구간이 거대한 산사태로 무너져 긴급 간이 도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최근에 일어난 불상사인가 본데 신속하게 보수를 한 것을 보니 이 산타크루즈 트레일이 세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긴하나 보다는 생각이 듭니다. 운없이 마침 그 때 이 길을 걷다가 봉변을 당했더라면 하는 상상을 해보니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찰나 같은 인생. 인생은 찰나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야영장에서 아침부터 어슬렁 거리던 따르던 속칭 똥개 황구 한마리. 태무심하고 버려진 개거나 누가 데려왔나 하고 넘겼는데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따라왔습니다. 별반 생각없이 무시하다가 주인도 없고 홀로 따르는 그 놈이 무릇 카샤팜파 마을에서 부터 그 먼 거리의 야영장까지 올라왔던 것을 발견하고도 마음을 두고 바라봅니다. 자세히 관찰하다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내 폰의 사진첩을 뒤져봅니다. 바로 그 놈이었습니다. 작년 이길을 걸을 때 카샤팜파에서 야영장까지 무려 5시간 동안을 따라왔던 그 개임을 확인합니다. 무슨 먹을 것을 준 것도 아닌데 충직하게 우리 곁을 지켰던 그 미물이 무슨 인연으로 일년 후 또 다시 동행하게 되었는지 묘한 연대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함께 길을 재촉합니다. 꼬리를 흔들며 한층 더 곁으로 다가선 그를 곁에 두고 귀향의 기분으로 동네를 향합니다. 이제 마을이 훤히 보이는 고갯마루에서 한숨 돌리며 걸음의 축제를 마감하려 합니다. 한달음에 도달할 거리. 여유있게 걸어도 20분이면 마을에 도착하고 기다리고 있을 페루식 바베큐 한상으로 점심을 먹으며 종주를 자축할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신나는 발걸음입니다.    그런데 막상 로지 식당에 도착하니 아예 조리를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종주 트레킹  시작 전에 힘든 여정을 마감하고 축난 영양분을 보충시켜 줄 양으로 염소 한마리 잡자 했더니 현지 가이드가 페루식 전통 바베큐가 어떠냐고 제안을 해와 혐오식으로 여길 아낙네들을 위해 그러자고 승락을 했더랬습니다. 중간에는 전혀 통신 소통이 불가한지라 미리 주문을 했고 식당을 들어서면 한 상 걸게 차려져 있을 줄 알았는데 기다려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이 서운함. 우리의 걷는 능력을 과소평가 한건지 아니면 잘못 오름길로 계산한건지 5시간이 걸릴거라 예상한 가이드의 계산과 달리 우리는 3시간 만에 하산을 마감한 것입니다. 마침 시간 여유도 충분하고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며 기다리면 될일.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라고이릅니다.   우리 동행 16명에 비록 고생했다며 그들 한달 월급에 버금가는 적잖게 마련해준 봉사료는 차치하고라도 함께 따르며 열과 성을 다해 수발을 들어준 식솔로 여기고 24인분을 마련하는데 거의 동네 잔치 수준의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빨리 만들어내야 하는 조급함에 장정 열명이 붙어 가히 호떡집에 불난듯이 요란법썩 입니다. 우선 땅을 깊게 파고 아궁이를 만들어 그 위에 철근으로 얼기설기 얹고 그 위에 자갈들을 올려놓고 불을 피워 그 돌들을 뜨겁게 달구는 것입니다. 어느정도 뜨거워지면 철골을 빼내고 무너진 자갈들을 일부는 건져내고 그 위에 온갖 먹거리를 잎에 싸서 던져넣습니다. 그리고 한겹 자갈로 덮고 또 그 위에 먹거리 또 그 위에 자갈. 마지막으로 향을 머금은 무성한 나무잎을 가지채 덮고 그 위에 파낸 흙으로 덮고 기다리면 됩니다.    이제 상은 차려지고 페루식 전통 바베큐 음식들이 순차적으로 나옵니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 콩 부터 시작해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양고기를 거쳐 나뭇잎에 싼 밥까지.. 안데스가 품고 자라게 한 온갖 식재료가 은근한 돌불에 구워져 나옵니다. 매콤한 소스와 곁들여 먹으니 자연 그대로를 맛보는 듯 담백하고도 순수한 맛입니다. 이 풍성한 식탁에 한잔 곡차가 빠질수는 없는 법. 마침 브라질에서 참가한 동포 동행이 주신 리시피대로 카이삐리나를 즉석에서 만들어 한잔 씩 돌립니다. 싸구려지만 안데스가 지어낸 주정으로 만든 럼주에 라임을 투박하게 짜서 과육채 큰 그릇에 담고 설탕과 더불어 럼주를 부어 휘이휘이 저어주면 완성되는 피스코 사워와 쌍벽을 이루는 남미의 대표주. 한잔씩 건네받고 샬롯을 외치며 종주의 자축을 한껏 즐깁니다.   한고비 종주 트레킹을 마쳤다는 후련함과 스스로를 넘은 대견함에 주흥은 절로 무성하게 익어갑니다. 지내온 나흘간의 여정. 산타크루즈 트레일에 얽힌 설봉들. 알파마요. 산타크루즈. 아르테손 라후. 퀴타. 타울리 봉들의 순수한 모습들이 이 한잔에 다 녹아있습니다. 50미터도 오르지 못하고 멈추어 헉헉대며 깊은 숨을 몰아쉬면서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올랐던 푼타 유니온 고개도.  그 정상에 서서 땀과 눈물을 씻어내며 바라보던 천상극치의 풍경도. 그 길위에서 함께 고락을 나누었던 동행들의 따스한 미소도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그 잔들을 높이 들어 마음과 마음으로 정을 보태 한잔씩 들이킵니다. 안데스를 모두 담아 마시는 한잔의 술. 트레킹의 클라이맥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