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영혼의 킬리만자로. 그 길위에서.. 3
>

만다라 산장을 출발하여 처음 숲길을 얼마간 걷다가 보면 급격히 낮아지기 시작한 나무들이 마운디 분화구에 이르자 대부분 허리춤 아래로 내려가 버립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수목의 성장은 낮아진다는 법칙같은 자연의 섭리. 만다라 산장에서 호롬보 산장으로 오르는 길은 산악초원지대로 들어서고 관목과 덤불이 낮게 자라고 있는데 고운 꽃들이 예쁜 색을 발산하며 향기를 쏟아냅니다. 그중에서도 수풀 사이 잎새들 틈으로 난 새빨간 꽃이 노란 반점과 보라색 수술을 품어 색도 모양도 특별한데 이곳에서만 서식하는 킬리만자로의 꽃이랍니다. 안개비가 사뿐히 내리는 길섶으로 가득 핀 풀꽃들을 감상하면서 오르막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천천히 오르다 보니 히스 나무들이 울창한 계곡을 가로지르는 소담스런 나무다리를 만납니다. 이어 완만한 산등성을 넘어 계속 오르다보면 전망이 트이면서 야자수 같기도 하고 큰 선인장 같기도 한 아프리카 식생에서만 볼 수 있는 키네시오들이 군락을 이루어 우뚝우뚝 서 있습니다. 400년 넘게 산다는 키네시오는 5~6m 높이로 자라고 윗잎이 마르면 밑으로 처져 나무를 덮어주는데 고산에서 추위를 견뎌내기 위한 자연현상인듯 합니다. 그 주변으로 로벨리아들도 함께 춤을 추는데 그 너머로 마웬지봉이 나타나고 왼편쪽으로 흰눈덮힌 킬리의 정상부도 첫선을 보입니다. 고도 1천미터의 완만한 비탈길을 올라 호롬보 산장에 도착하여 오늘 하루치 만큼 걸음의 행복을 마감하고 하루를 내립니다. 호롬보 산장은 킬리를 오르며 밤을 보내는 장소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곳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어느 곳에서나 계곡의 물소리가 바람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들려오고 습지나 계곡 주변에 집단으로 서있는 키네시오가 눈에 가득 밟힙니다. 어둠이 내리고 밤이 깊어가면 산악사막지대는 기온이 뚝 떨어져서 낮과 달리 안개도 구름도 사라지고 더욱 청명해지는데 환상적인 풍광으로 변해갑니다. 달빛이 교교히 흐르면 그 빛을 받은 설사면과 설릉은 짙은 우림 위로 솟구쳐 더욱 반짝입니다. 아득히 먼것처럼 느껴지는 산아래 마을에서 불빛이 하나둘 밝아지고 달빛 받은 키보의 만년설은 보석처럼 반짝입니다. 일년 내내 산봉우리 부근엔 빙하와 빙설을 머리에 이고 있어 낮보다 밤에 더 빛나니 그래서 원주민들은 빛나는 산 혹은 하얀 산이라는 의미로 킬리만자로라는 이름을 봉헌했나봅니다.  오늘은 하루를 투자해서 4천미터 고도에 있는 지브라록(Zebra Rock)을 지나 마웬지봉과 키보봉의 중간지대인 말안장처럼 생겼다고 안부(Saddle : 4,300m)라 이름지은 곳까지 올라갔다 다시 산장으로 귀환하는 고도 적응의 일정으로 여유 있게 하루를 보냅니다. 안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킬리만자로를 이루는 세개의 화산들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데 세계 최대 분화구인 키보의 우후르피크를 중심으로 동쪽에 마웬지가 서쪽에 시라가 솟아 있습니다. 킬리는 원래 케냐 땅에 있었지만 제국주의 열강이 아프리카를 지배하던 시절 탄자니아로 편입되어버립니다. 최고봉 우후루 피크의 초등은 1889년 독일인 한스마이어( Hansmeyer)와 루드비히 푸르셀러( Ludwig Purscheller)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케냐는 당시 영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탄자니아를 복속했던 여왕과 혈족인 독일의 Kaiser Wilhelm 황제의 요청으로 선물하게 되었고 그 명칭도 자신의 이름을 따서 카이저 빌헬름 봉으로 불렸습니다. 다시 2차대전 이후 전승국인 영국의 보호령 아래 있다가 1960년대 초에 독립하면서 비로소 자유를 뜻한다는 원래 이름인 우후루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마치 미국 알라스카의 맥킨리 봉이 원주민들의 원래이름 데날리로 다시 찾았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킬리만자로를 화두에 올릴때면 조용필의 노래 덕택에 표범을 떠올리게 됩니다. 1926년경 이 지역 선교사로 있던 로이쉬가 눈속에 파묻혀 있던 표범을 발견하고 기념으로 한쪽 귀를 잘라왔다는 믿거나말거나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해서 헤밍웨이작 킬리만자로의 눈(Snow of Kilimanjaro)이라는 소설이 탄생했을 것이라고들 추측합니다. 킬리는 마침내 1987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