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산이 함께 만들어낸 비경. 오터 트레일. 그 길위에서.. 3
>

인도양을 차오르는 일출을 봅니다. 일출도 일출이지만 이 시간대가 수달(Otter)을 볼수있는 확률이 가장 높은 때랍니다. 오터 트레일에 왔으니 오터를 봐야만 한다는 맹목적인 강박관념이 자리하고 있기에 아침 마다의 이 행사는 일조 점호처럼 되어버렸숩니다. 오늘 길은 시작부터 오르내림이 다소 심한데 더위와 습기에 땀을 흘리며 해안 고원까지 가파르게 오른 첫번째 오름은 Skilderkrans Koppie이란 거대한 바위군인데 그 위에서보는 푸른 대양과 주변경관이 압권입니다. 그 후 Bloubaai Beach까지 내려갔다가 걷는 이들이 좋아할 그늘을 다소 제공하지만 여전히 덥고  습한 빽빽하게 보존된 토착림을 통과해서 다시 해안 고원까지 목도로 깐 순한 길을 걸어올라서면 해안의 착한 풍경을 내어놓습니다. 다시 길은 또 다른 모래사장으로 데려가는데 마침내 오늘의 숙소인 Scott 캐빈이 나타납니다. 사실 4박 5일의 이 일정은 너무 느슨하고 오히려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려 오후에는 너무 시간적 여유가 많습니다. 우리네 성질 같아서는 2박 3일이면 충분히 종주를 끝낼수도 있겠는데 요구되는 일정대로 하자니 권태롭기도 하지만 풍경 세세히 보며 즐기고 휴식하며 힐링하리라 마음 고쳐먹습니다.다시 어둠이 내리면서 해안의 낙조가 시작됩니다. 캐빈 옆 바다로 흘러가는 시냇물은 크고 잔잔한 물 웅덩이가 있는 거대한 모래 삼각주를 형성하여 물빛은 루비색으로 물들어 갑니다. Otter Trail에서의 또 다른 비현실적인 일몰의 풍경. 내 인생에서 그리 흔히 볼수 없었던 아름다운 일몰 중의 하나를 목도합니다. 사위가 어두워지는 듯 하더니 태양은 빛나는 불덩어리로 변했고 하늘은 타오르기 시작하배니다. 야생의 바다 앞 조용한 물 웅덩이에 반사되는 그 석양빛과 하얗게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 사이에서 그 순간은 지상 최고 최대의 놀라운 쇼였습니다.    싱그러운 해안의 아침. 매일 아침마다 멱감고 올라온 순수한 첫 태양 광선이 바다 스펙트럼을 통과하면 전체 풍경은 아름다운 황금빛으로 밝혀집니다. 오늘도 여유롭게 또 하루를 시작합니다. 짧은 거리. 한나절 감입니다. 오터 트레일은 강물을 건너는 행위가 잦은 길로 유명합니다. 썰물 때를 맞추거나 기다려야하기에 이 지역 조수. 간만의 물때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조시기에 무리하게 도강하려다가는 아예 남극까지 떠내려 갈거라는 농담이 트레커들간에 회자된다 합니다. 잘못된 시간에 거기에 있다면 시도조차 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남극 대륙까지 갈 수 있습니다! 라고요. 오늘은 몇번의 도강이 있을것입니다. 비록 맑은 강물을 건너는 것이 신선한 즐거움이 되겠지만 Elandbos River와 Lotterings River에서는 아예 물에 잠긴다는 것을 알고 전자기기 방수처리등 대비를 해야 합니다. 마침내 해변위의 암석지대에 예쁘게 지어진 Oakhurst 캐빈에 도착하고 여유시간을 천연 바다풀장에서 스노클링을 하면서 티없이 맑은 물속의 화려한 생명체들과 함께 유영하며 놉니다. 밤이 되고 달빛이 해안을 비추면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를 걸어보기도 하는데 너무도 고요해 외진 행성에 나 혼자 남아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긴 하루를 접고 잠을 청하는데 한밤중에 뭔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캐빈 밖에서 들려옵니다. 순간 불청객의 방문인가 싶어 손에 잡히는데로 맥가이버 칼을 쥐고 나가봅니다. 후닥닥 줄행랑을 치는 놈은 사향 고양이 같기도 하고 원숭이 같기도 한데 음식이 든 배낭을 손댄 것이었습니다. 하마터면 나머지 기간동안 본의 아니게 체중감량이 일어날뻔 했습니다.    이번 종주 트랙 중에 나름 가장 길고 힘든 일정이 오늘입니다. 때론 암벽등반도 요구하고 가파른 경사를 오르내리고 가장 도전적인 도강도 실시해야 합니다. 흥미진진한 여울이 있는 이 악명높은 Bloukrans River을 건너기위해 조수간만 차이표를 확인하고 썰물때를 기다립니다. 만일 큰물이 지거나해서 도저히 건널수 없는 상황이라면 Escape Route가 있는데 전파가 잡히는 고원지대로 올라가 셀폰으로 레인저를 요청해서 부르면 다음 출발점까지 차량으로 데려다준답니다만.. 다행히 30분 정도 기다리니 완전한 간조 시점에 도달하고 허리 높이의 물길을 혹시 몰라 배낭을 머리에 이고 5미터 정도 건너갑니다. 만조 시기면 30미터 이상을 헤엄쳐 건너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한 상황이 그려지면서 온몸에 전율이 느껴집니다. 이 강을 따라 더 멀리 상류로 가면 협곡이 500미터 정도 깊어지며 250미터 높이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번지 점프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 길을 종주하며 챙겨야 할 필수 지참물 중 하나가 트레킹 폴입니다. 젖어서 미끄러운 길이나 바윗길에서도 도움을 주지만 이처럼 백팩킹 할때는 배낭의 무게가 내 허리나 무릎에 하중이 쏠리게 하니 무리가 가지 않도록 어께나 다리로 힘을 분산시켜주며 특히 이 오터 트레일에서 처럼 잦은 도강을 해야할 때 수심을 확인하고 물쌀로 부터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매우 요긴한 장비입니다. 모두 안전하게 강을 건너고 다시 몇번의 오르내림이 이어지는데 길은 수려한 여러풍경들을 내놓습니다. 아름다운 초목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 사이의 1미터를 즐기며.. 14km의 하이킹으로 지친 우리는 오늘의 종착지인 Andre 캐빈에 이르러 아무 생각없이 서둘러 식사를 준비합니다. 아무도 오늘은 물놀이에는 관심이 없는듯 하네요. 저녁밥도 게걸스럽게 한두그릇씩 뚝딱해치우고 일치감치 누워버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캐빈은 조용하고 정갈한 해변에 지어져있어 종주의 마지막 밤을 즐기기에 최상의 장소입니다. 밤이 깊어가고 오랜만에 다시 접한 문명의 첫 징후를 봅니다. 수평선인지 지평선인지 분간이 힘든 저 너머로  Plattenberg Bay의 불빛이 휘황찬란한데 마치 현세가 아닌 다른 세계에 속한 것 같아보였습니다.   Groot 강이 흐르는 Nature Valley까지 아프리카 검은 대륙의 최남단 남아공의 수려한 해안길인 오터 트레일 종주를 끝내는 마지막날입니다. 청아하고 부드러운 바다바람. 그 바람에 흘러다니는 바다새들. 생각나면 한번씩 물위로 솟구치는 돌고래들. 이 천국의 땅에서 녹색의 계곡과 푸른 바다사이에 난 Garden Route로 알려진 이 순한길을 걸으며 우리는 행복해지지 않을수 없습니다. 마지막 하산 전 절벽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갑자기 많은 돌고래 떼가 발아래 나타났고 100여마리의 다른 돌고래들이 쇼에 합류해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해줍니다. 그 유럽 애들은 쌍안경 까지 가져와서 관찰합디다만 그놈의 무게가 적지않으니 언감생심. 마지막 능선에 오르자 수백 미터 아래로 20km 가량 뻗어 있는 황금빛 해변의 광경에 눈에 가득 찹니다. 이 트레일의 종점인 네이처스 베이(Nature's Bay)입니다. 카누나 카약을 타며 강과 바다를 오가는 이들. 비치 파라솔을 꼽고 한가한 여유를 즐기는 커플들. 티키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흥겨운 음악에 몸을 비트는 젊은이들. 활력이 넘치고 정상적인 삶과 문명의 안락함이 넘치는 속세의 군상들을 헤치고 나가 레인저 사무실에 체크 아웃을 함으로써 여정을 끝맺음합니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카페에서 늦은 점심을 갈증을 풀어줄 아이스 맥주와 함께 나누며 자축의 시간을 향유합니다. 종주 5일동안 생긴 에피소드를 안주 삼아 막힘없이 이어지는 수다같은 좌담회가 펼쳐집니다. 거의 수직 각도로 깎인 퇴적 사암으로 구성된 거친 해안선. 수백 마리 돌고래들의 군무. 야생의 대자연, 놀라운 산과 바다의 절묘한 풍경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일출과 일몰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우리들 기억속에서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