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이 품은 장쾌한 대자연. Collegiate Loop. 그 길위에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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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크 릿지(Monarch Ridge)를 따라 동부 구간으로 들어서고 북으로 향해 걷습니다. 제법 안개가 자욱한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서는데 덩치 좋은 무스 두마리가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다가 지나치는 이방인에게 무심한 눈길을 줍니다. 먼쩍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계곡으로 내려갑니다. 이 길은 앞으로 동쪽에서 다시한번 50번을 만나게 되고 Chalk Creek과 Silver Creek 및 Clear Creek을 만나 하루밤씩 보내면서 125km를 걷고 5,400미터를 오르내리다가 마침내 Twin Lakes로 돌아가게 됩니다. Antero, Princeton, Yale.  Shavano와 Tabeguache라는 이름을 지닌 웅장한 산봉 14ers를 포함하여 거대한 직벽이 위압적인 Chalk Cliffs와 두곳의 온천장 Mount Princeton. Cottonwood과 물빛 곱기로 정평이 난 Harvard 호수를 즐감하게 됩니다. 이제 길은 트리라인 아래로 이어지니 짙은 숲길을 걸으며 시원하게 흐르는 냇물을 만나면 신발을 벗어 발을 담그기도 합니다. 그렇게 휴식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대단한 대군이 우렁찬 발자국 소리를 내며 내곁으로 다가옵니다. 아이들을 포함한 두세 가족에다가 비슷하게 생겨먹은 개가족 4마리가 모두 완전무장을 하고 요란을 떱니다. 깊지도 않은 물길을 건너면 될텐데 굳이 돌다리를 건너려고 견공들이 나를 향해 옵니다. 자신의 배낭을 모두 하나씩 짊어진 개도 자신이 인간인양 착각을 하고 어린 자녀들도 자신의 체구에 맞는 배낭을 하나같이 매고 다가오니 하던일 멈추고 공손하게 길을 비켜 내줍니다. 사람과 똑같이 우대해주는 그들 행위와 개한테 밀렸다는 나의 묘한 상대적 패배감으로 한없이 초라해집니다. 씁쓸한 마음으로 길을 재촉해 개활지로 들어서니 과거 개척시대 때 광산 활동이 활발했던 곳이라는 흔적들이 길가에 남아있는데 광부들이 기거하던 통나무 집들이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채 버려져 있습니다. 어느 캠프에는 몇동이 그렇게 흩어져있는데 통나무 사이마다 석회를 발라 바람을 막은 공법으로 제대로 지은 캐빈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아직 침대와 화장실을 식별해낼수 있는 흔적이 뚜렸했고 사금 섞인 모래를 퍼나르던 대야가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화풀이로 그것을 걷어차버리고 나와버립니다. 별 어려움없이 순한길을 따라 Chalk Cliffs가 병풍처럼 장대하게 펼쳐진 그 아래 Chalk Creek이 흐르는 주변 적당한 곳에다 텐트를 설치합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한두방울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두터운 검은 구름이 더욱 낮게 내리니 그냥 지나갈 비가 아닌것 같습니다. 폭풍전야의 묵직한 분위기입니다. 서둘러 텐트 주위를 돌로 누르고 필요한 곳에는 물줄기를 잡아줄 간이 수로도 파서 설치합니다. 강한 바람에 혹시 텐트가 날아갈수도 있으니 여분의 팩을 촘촘하게 더 박습니다. 나름 내가 할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하고 마지막 남은 라면을 햇반 하나와 함께 끓여 저녁을 먹고나니 이내 식곤증이 몰려오고 잠이 듭니다.  두어시간을 잤나 싶은데 텐트를 두드리는 굵은 빗줄기 소리와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잠이 깹니다. 이제 본격적인 비가 시작된 것입니다. 텐트 안은 어느새 온기가 사라지고 표면은 이미 미세한 이슬이 맺혀 닿는 피부는 냉기를 느낍니다. 바닥과 벽이 만나는 지점에 트레킹 스틱과 쿠킹 용품등등으로 눌러 공간을 확보하고 천종류는 젖지않도록 서둘러 행동하다보니 어느새 잠은 완전히 달아났습니다. 잦아들지 않는 호우에 하늘을 찢어버릴 듯한 기세로 쳐대는 천둥소리와 번쩍이는 번개의 섬광. 오늘밤 잠은 다 잤습니다. 특히 이 콜로라도 트레일 종주길에서 가장 조심해야할 것중 하나가 뇌우라 했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덜컥 겁도 납니다. 살다보니 본의 아니게 죄도 제법 짓기도 했는데.. 저녁무렵 캠프를 설치한 두팀들은 어찌하고 있나 싶어 우산 쓰고 밖을 나와보니 모두 다 불을 밝힌 텐트안에서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입니다. 그나마 그런 그들이 위안이 되는데 저들 두사람의 그림자를 보니 불현듯 외로움이 몰려오고 괜히 서러워집니다. 이 동짓달 같은 기나긴 밤을 어이 보내야 할꼬 싶습니다. 보조 배터리를 연결한 폰으로 그동안 밀린 글도 쓰고 향후 여정도 짜보고 쪽잠도 자고 하면서 그렇게 긴밤을 보냅니다.  새벽이 오고 느리게 아침이 열려도 비는 개지 않았습니다. 좀 잦아 들었지만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웃 텐트에서는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텐트를 걷고 털고 배낭꾸리고 하는 일련의 과정이 그 소리만으로도 다 짐작이 갑니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더니 주위가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고관절도 부실한데 이렇게 무겁게 비에 젖은 텐트와 장비들을 매고는 도저히 못가겠다는 대상없는 반항의 결론을 내리고 다시 침낭의 매무새를 고칩니다. 한숨 달콤하게 자고 눈을 떠 시계를 보니 10시. 가만 누워 어떻게 할 것인지 장고에 들어갑니다. 하중 때문에 허리나 고관절이 덧나면 어쩌나. 힘들었지만 서부 루트의 더 멋진 풍광을 다 봤으면 됐잖아. 7일간 종주했으면 할만큼 했잖아. 어차피 콜로라도 트레일을 완주하지도 못할바엔.. 용기를 내라거나 다그치거나 채근하는 나는 없고 끊임없이 불가론만 띄우는 또 다른 하나의 나는 이미 완주의 뜻을 접은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곳에서 4,50분 거리에 있는 Mount Princeton 온천 리조트의 식당에 앉아 햄버거를 먹고있는 나를 오후 2시경에 봅니다. 오늘은 이 곳에서 하루밤을 머물며 장비들을 말리고 정비하고 온천욕으로 모든 피로를 풀고 새롭게 태어나리라 다짐하며 자기합리화를 만듭니다. 유황내음이 아련하게 풍기는 풀장에 앉아 반은 잠긴 시선으로 저만치 보이는 어마어마한 초크 병풍바위를 바라봅니다. 마치 갈라진 바위틈은 장도의 산길처럼 보이고 누군가가 그 길을 따라 걷는듯 하더니 그러면서 이어지는 파노라마의 영상들. 내 기억들. 그 장대한 길위에서 맞닥뜨렸던 수많은 멋진 풍경들이 찰칵찰칵 한 장면씩 멈췄다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