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이 함께 걸어온 차마고도. 그 길위에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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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룡설산의 12봉을 바라보며 하바촌의 아침을 맞이합니다. 겨울임에도 다사로운 햇살이 인자하게 내려쬐는 화창한 산촌의 아침입니다. 하바설산의 '하바'는 현지 나시족 언어로 금꽃 봉오리라는 의미로 만년설이 덮힌 아름다운 산위에 햇살이 비끼는 일출이나 일몰때면 산정이 금색 봉우리로 변하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나시족의 원시신앙인 동파교의 발상지이자 물빛이 미려한 백수대가 있는 곳으로 금사강을 사이에 두고 옥룡설산과 마주 보는 산이라고 보면 됩니다.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한 양자강이 중국 저지대로 힘차게 흘러내리다가 호도협에서 크게 꺾어 휘돌며 두개의 고산을 관통하는데 이 두 개의 산이 옥룡설산과 하바설산입니다. 그렇게 호도협을 중심으로해서 주변에 흩어져있는 하바설산(5,396m), 옥룡설산(5,596m), 메리설산(6,740m)은 운남성의 대표적인 설산들인데 정상까지 등반을 할수 있는 산은 하바설산 뿐이며 해발 4,700m 정도지점부터 정상까지는 연중 눈이 녹지않은채 만년설로 덮혀있습니다. 산들은 높은 해발고도차로 저지대는 아열대기후를 보이다가 서서히 고도를 올림에 따라 점차 온대, 한온대, 한대까지 현저한 고산 수직성 기후대를 형성하는데 하바촌과 정상의 기온차는 20도가 넘는다고 합니다. 지구 지각의 인도판과 아시아판이 충돌한 히말라야 지대에서 대규모 융기가 일어나 생성된 고산 하바는 해발고도 5,396m로 정상은 언제나 만년설을 이고있습니다. 이 정상을 향한 초반길은 매우 급한 경사지대에 있고 정상부는 반구형으로 한쪽 사면이 수직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반대 사면은 다소 경사가 완만합니다. 날카롭게 솟아오른 위성첨봉들과 송곳같은 칼날 릿지와 빙하의 이동으로 생긴 U자형 협곡및 빙하호수 등 고산 빙하지대 고유의 특징들을 모두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하바설산의 산정을 향해 오르는 여정을 시작하는데 원시산림을 지나 고원목장과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호수와 어우러진 풍경을 보고 순백의 설산위를 오르면서 태고적 그대로의 오염되지않은 청정자연을 즐기고 그 정상에 서서 환상적인 설산군의 파노라믹 전경을 가슴에 품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비록 만년설산으로 정상부는 언제나 빙하와 눈으로 덮혀있지만 이웃 다른 설산에 비해 낮은 고도와 비교적 쉬운 등반환경으로 특히 우리 한국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 호도협과 이어지는 쉬운 접근성이 장점입니다. 이곳을 트레킹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꽃피는 5~6월의 봄날과 단풍이 곱게 지는 9~11월의 가을인데 계절마다 옷을 바꿔입는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천혜의 명소입니다. 이 지역은 다양한 동물과 침엽수를 비롯한 고산 상록수와 날마다 염록소가 변하는 활엽수의 분포로 국가지정 환경보호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는데 특히 고산 진달래의 다른 이름인 두견화가 유명하여 정상 부근의 수목한계선 이하에서 근 2백여종이 앞을 다투어 핀다합니다. 운남성에 서식하는 모든 두견화의 70%를 이곳에서 볼수 있다고 하며 이 꽃나무는 하바설산 자연풍광의 일절로 꼽히면서 국내외 식물학자로부터 세계 화원의 어머니라고 불린다고 하나 워낙 과장이 심한 중국인들의 말을 곧이 듣기는 참 거시기합니다. 하바설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강에서 출발하여 금사강을 따라 호도협의 중턱으로 난 도로를 따라 가는데 대부분 호도협을 걷고 티나객잔이나 장씨객잔에서 이동하나봅니다. 해발 2,350m 고도에 있는 작은 산골마을 하바촌은 하바설산을 등반하기 위한 게스트하우스들이 있어서 안락한 숙박이 가능하며 가이드나 다용도의 말과 마부도 구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등반용 피켈과 크램폰을 빌리거나 우리나라 라면이나 간단한 식품들 까지도 구입이 가능한데 이 곳에서 하루 머물고 23km의 길을 2일이나 3일의 일정으로 시작됩니다.   차마고도들 걷던 마방의 후예들과 함께 여장을 꾸립니다. 길의 끝자락에서 시작한 트레킹은 장엄한 자연과 함께 하니 흥분과 더불어 긴장감도 느껴지는데 가파른 비탈길의 계단식 논, 노새를 끌고 가는 농부, 고추를 줄에 줄줄이 매달아 말리는 모습, 담이나 처마에 가득 채워진 마른 옥수수와 말타기를 하며 노는 아이들까지 머지않은 옛날 우리네 농촌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정겨운 모습입니다. 길은 크게 두갈래로 나눠져 있는데 해발 4100m 지점에 있는 베이스캠프 산장까지 어떻게 가느냐입니다. 성질 급한 이들은 캠프로 가는 거의 직선거리로 치고 올라가면 당연히 입에서 불냄새를 풍기며 도달하는데 대략 6시간 이상 걸립니다. 다른 길은 정상풍경과 더불어 하바설산 3대 절경이라고 정해놓은 란화평과 만해를 거치면서 주변 풍경을 마음껏 음미하며 휘둘러가는데 정상의 동쪽으로 얕은 능선을 넘어 빙하호수 지대를 지나면서 원시 침엽수림이 울창하고 폭포가 연이어져 있는 계곡길로 아름답고 원시적인 풍광이 압권입니다. 란화평은 해발 3700m에 자리 잡고 있는 고원목장으로 넓은 초원이 펼쳐진 이곳에서 바라보는 하바설산의 설봉들을 조망할수 있는 최초의 지점이자 설산의 절경을 보면서 밤을 보내는 훌륭한 야영장소입니다. 더불어 발아래 구름이 바다처럼 펼쳐진다는 만해를 거치면서 제대로 중국다운 산세를 감상하게 되는데 오늘은 너무 청명한 날이라 그런지 구름 가득히 깔리는 장관은 없었습니다. 대신 황금빛으로 물든 산하는 겨울 햇살에 반짝이고 짙은 침엽수림 지역을 벗어나 바위지대로 들어서니 고사목들이 그 세월을 이야기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또 하나의 하바설산 3대 절경인 완하이는 바람에 의해 물결이 새겨진 하바 암릉들을 배경으로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빙하호수의 풍경에 빠져도봅니다. 새로운 길을 걷는 설레임은 언제나 나를 성장시키며 새로운 산을 오를때마다 다리에 힘을 실어줍니다. 하지만 1,500미터의 등반길은 결코 녹녹치않은데 힘들면 말을 타라해도 모두들 사양하며 자신을 연마하려는 투지가 엿보이기에 동행들에게 작은 존경심마저 생기게 합니다. 목장으로 조성한 들판의 높은지점에 멈춰서 점심을 준비합니다. 버너불을 지피고 라면에 햇반으로 밥을 먹는데 이제야 눈을 들어 바라보는 병풍처럼 둘러친 설산들은 하늘과 맞닿아있고 아직도 생기를 잃지않은 초원에는 야크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습니다. 고즈넉함과 함께 더욱 평화스러운 시간이 아닌가하며 오수가 밀려오는데 한무리가 내려오며 떠들어댑니다. 요즘들어 산행의 맛을 들인 젊은 중국인들이 변함없는 소란함이 우리들의 오붓한 시간을 무참하게 깨버립니다.  끊임없는 경사길에 고도마저 호흡을 곤란하게 하는데 지쳐가는 몸은 곁에 따라오는 말의 빈 안장에 자꾸 눈이 가게합니다. 약해지는 순간입니다. 여성들을 위해 배려해주고 마지막 깔딱고개를 넘어 베이스 캠프에 도착하니 어느 곳보다 빨리 찾아오는 산속의 어둠 사이로 희끗희끗 눈발이 비칩니다. 큰 막사같은 건물에 들어가 군대 내무반처럼 양편으로 펼쳐놓은 이부자리중 가장 끝쪽부터 차례로 자리를 잡고 밖으로 다시 나옵니다. 저녁식사때 까지 시간도 좀 남았고해서 더 올라가볼까라는 제안도 나왔으나 내일 어차피 갈 길이니 그를 위해 체력을 비축하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결정이 됩니다. 양씨라는 총각 혼자서 운영한다는 이 베이스 캠프 로지는 몇동의 허름한 건물과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이들도 몇몇 보입니다. 한잔술로 시간을 때우자며 주방이라는 곳으로 들어가 다른 서너명의 꽤재재한 총각들을 물리치고 화톳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곡차를 한순배씩 돌립니다. 마방문화가 일상속에 묻어있는 이 지역 사람들의 거친 삶을 생생하게 체험한다 들었지만 적어도 주방안에서는 거칠다는 긍적적인 면보다는 추접고 더러울 뿐입니다. 차가운 바람마저 숭숭 들어오는 뚫린 벽들은 장작피우는 아궁이의 굴뚝을 대신하니 언제나 매운 연기로 가득한 주방이자 식당인 이 공간에서 헉헉대며 고문당해야했고 차를 끓이는 주전자나 밥을 하는 냄비 그리고 마른 고기를 야채와 함께 볶는 팬은 불때와 재가 덕지덕지 붙어서 저걸로 요리해서 밥을 주나싶어 한숨만 푸욱 쉬게됩니다. 차마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음식을 한두점 안주삼아 집어먹으니 불앞에 앉은 화기때문에도 빈속에도 술기운은 더욱 빠르게 번져옵니다. 그래도 우리 동행들과 그쪽 총각 몇이서 별로 잘 통하지도 않는 언어들을 바디 랭기지까지 구사하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밤이 깊어 막사로 돌아가니 하늘은 미친듯이 울고 벽으로 새어드는 찬기운이 바람과 함께 침범을 하여 우리외엔 아무도 없는 내무반의 잉여 이불들과 매트를 쌓아올려서 막아봅니다. 내일 이른 기상을 위해 모두 이불을 둘둘말고 잠을 청하는데 여전히 광풍은 어지러이 불어와 막사를 마구 흔들어댑니다. 그렇게 조마조마하게 잠이 들지못하고 있다가 마지막 소변보러 나가면서 랜턴을 앞장세우고 밖을 나가려는데 불빛에 비치는 자욱한 먼지. 한번씩 바람이 몰아치면 포장도 하지않은 맨바닥에 가득쌓인 흙먼지가 그침없이 치고오르는데 그자리에서 졸도하지 않은게 다행입니다. 아무리 때놈들이라고 해도 아니 이렇게도 열악하게 숙소를 관리하는지 열통이 터지는게 밤을 거의 새다시피하며 보내게 됩니다. 어떻게 잠이들었나 싶었는데 아직도 어둠이 자욱한 이른 새벽을 깨는 소음을 듣게 됩니다. 나가보니 어제 수인사를 나눈 젊은 중국 청년들이 정상을 오른다고 준비들을 하는데 여늬때와 다름없이 호떡집에 불이 난듯 합니다. 고산지대의 특징상 일기변화가 심한데다 예측이 어렵고 일교차가 큰데 오늘도 어두운 하늘이지만 별하나 없이 무거운 느낌입니다. 그들을 올려보내고 우리는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부족한 잠을 더 청합니다. 여명이 트는 시간에도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있다가 느긋한 아침에 일어나 확인해보니 새벽에 올라간 팀이 악천후 때문에 되돌아와서 소란을 피운것을 알게됩니다. 비상 한식으로 아침을 차려먹고 더없이 불쾌한 마음으로 미련없이 하산을 해버립니다. 이 말뿐인 산장의 시설이 업그레이드 되기 전에는 결코 다시는 이곳으로 그 누구도 데려오지 않을 것이라는 각오와 함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