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바로 떠나는 바다여행. 6 미국의 땅끝 마을. 바다와 노인의 키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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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최남단 땅끝 마을, 석양이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운 키웨스트. 육십평생 4명의 부인과 낚시와 사냥을 즐기며 더 없이 인생을 즐겼던 헤밍웨이가 가장 사랑하여 7년을 머물며 바다와 노인을 써 그 작품 배경으로도 유명한 키웨스트. 마흔 두개 섬이 점점이 이어지면서 남서쪽으로 휘어진 플로리다 키즈 군도. 가늘고 뾰족한 모습이 열쇠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그 맨 끝자리에 홀연히 앉은 섬이 키웨스트다. 군도 초입인 키 라고에서 키웨스트에 이르는 100마일 도로는 다리와 섬들이 체인처럼 연결된 환상적인 두 시간 드라이브 코스로 무료해질 때마다 섬과 바다가 번갈아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특히 세계 최장의 세븐 마일 브릿지를 지날 때 느끼는 뿌듯함은 지금도 감흥이 새롭다. 바다위에 떠 있는 길, 이름하여 Oversea Hwy. 보이는 것이라고는 물과 하늘뿐으로 시공의 변화가 멈춰진 풍경. 묘한 희열과 호기심이 교차한다. 바다는 기나긴 열도를 좌우해서 대서양과 맥시코 만으로 나뉘는데 바다의 색깔마저 다르다. 점점이 조성된 조그만 섬 주변에는 맹그로브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 특이하다. 키웨스트는 헤밍웨이 생가와 박물관이 유명하여 연중 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바다와 연관된 Mallory Square 갤러리와 Shipwreck 박물관이 유명하고 수족관 또한 해양도시의 이름과 걸맞게 잘 조경되어 있다. 페리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Dry Tortugas National Pa가에서의 하루는 실낙원의 주인공이 되어도 좋을 만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양스포츠에 몰입할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키웨스트는 석양이 가장 아름답다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멜로리 광장에는 저녁노을을 보기 위해서 인파들이 항상 몰리는 곳이다. 거리공연장으로도 유명하여 다양한 재주꾼들이 지거링이나 마술 등을 선보이며 관람료를 걷기 위해 모자를 돌린다. Duval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거리거리마다 넘치는 인파와 생동감 넘치는 음률이 가득한 노천식당은 일년내내 끊이지 않는 축제의 한마당이다. 땅끝 마을 서쪽 끝자락에서 일몰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라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6명의 회원이 참석한 이번 투어는 경제적 절약과 다양한 바다 풍경을 감상 할 양으로 키웨스트로 직항하지 않고 마이애미에 내렸다. 차를 빌려 세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여유있는 식사도 하고 고즈넉한 비경을 배경으로 사진촬영도 하느라고 다섯 시간이 넘는 자동차 주행으로 호텔에 다다르니 모두 피곤한 기력이 역력했다. 내일부터 강행군하는 전투 다이빙을 위해 한가로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일치감치 모두들 깊은 안식에 들었다. 허나 동호회 수장인 윤회장이 감기 기운이 있어 출발 때부터 좋지 않은 몸 상태를 염려하더니 밤새 뒤척이며 불편해 했다. 그때마다 수시로 찬 물수건을 번갈아 머리를 식혀주며 곁을 돌보는 다른 동료의 정성을 보며 이것이 진정 다이버의 마음가짐인 상호부조와 희생정신의 발로라 여기며 가슴이 훈훈해져 왔다. 이튿날 아침 바리바리 싸가지고 간 보따리를 풀어 풍성한 식단을 마련했다. 든든한 식사가 머나먼 여행길에 지친 몸을 배 멀미로 부터 예방할 수 있게 해주는 법. 된장찌개와 김치로 칼칼한 입맛을 돋우고 가볍게 길을 나섰다. 두고 온 위싱턴은 1월 이라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영하의 추위인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같은 나라 안인데도 반팔 소매가 포근한 초여름의 날씨다. 참으로 넓디넓은 대국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하고 무의식에 빠져 있는데 선착장으로 향하는 열린 차창으로 상쾌한 바닷바람이 조금은 비릿하게 밀려들어 왔다. 지중해의 유럽풍 건축 양식들이 많이 눈에 띄었으나 지붕들의 색은 노란색이 아니라 순백의 눈부심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예상보다 가까운 거리에 선착장이 있어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여 남는 시간 동안 주변에서 사진촬영과 함께 양식장도 둘러보고 맑은 물속의 거대 물고기를 신기한 듯 따라 다녔다.   먼저 멕시코 만 쪽으로 다이빙을 나섰다. 구름이 짜증난 듯이 낮게 깔려있었으나 일기예보는 일시적 현상이며 점점 대체로 맑은 날씨가 계속되리라 했었기에 괘념치 않았다. 쾌적한 바닷바람에 엔진의 배기 개스 내음이 역하게 묻어 날아왔다. 휘돌아보니 모두들 표정이 밝지 못한 것이 분명 외관은 멀쩡한데 다소 노후한 선박이던가 아니면 엔진이 구형인가 보았다. 멀미를 할 것 같은 메스꺼운 속을 넓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심호흡을 하면서 치유하고 시야를 먼 바다에다 두고 애써 다른 생각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카리브해로 진입하는 맥시코만과 대서양의 접점에는 수많은 선박들의 좌초와 침몰이 있어 그만큼 침몰선 다이빙의 포인트가 넓게 분포되어 있다. 부산하게 준비하여 신속하게 입수를 시도했다. 이렇게 배 멀미가 우려될 때는 출렁거리는 선상에 있으면 더 심하기에 그만큼 빨리 배를 떠나는 것이 상책이다. 두 명씩 짝을 지어 하강을 시도하니 발아래 고요히 숨 쉬며 살아있는 듯 대형 선박이 누워 있었다. 시야는 캐리비안과 비교해서 그 만큼 맑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깨끗하고 선명했다. 서둘러 먼저 내린 동료들을 위해 사진을 찍어주고 배 곁으로 다가가 주변을 한 순회 돌아보았다. 배의 형태는 아주 잘 보존이 되어있었다. 선박 가까이에 내려 중성부력을 확보하기 위한 작은 몸놀림에 갑판에 쌓인 먼지들이 일어났다. 그 때문인지 먹이로 착각한 수많은 고기떼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작은 물고기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조용한 해류의 흐름에 따라 하늘거리고 있었다. 침잠한 바다. 그 고요 속에 오늘도 바다 속 전설은 그 세월의 흐름에 따라 깊이를 더해갔다.   다음 다이빙은 대서양으로 향했다. 결국은 일행 2명이 지쳐 2차 다이빙을 포기했다. 오죽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으면 이 소중한 기회를 포기할 수밖에 없겠는가 하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을 부두에 남겨두고 가는 뱃머리가 허전했다. 플로리다 키 군도가 자랑하는 세계에서 손을 꼽을 만큼 방대한 지역에 형성되어 있는 산호 밭. 그러나 그 자연의 보고는 문명의 발달과 지역 개발, 유조선의 좌초 등과 같은 바다 오염 혹은 바다를 범하는 모든 이들의 무례한 행위 때문에 이곳의 해저 산호 밭은 망가져가고 있었다. 총천연색의 화려한 색은 이미 훼손된 지 오래되었고 50% 이상의 산호는 죽어가고 있었다. 허탈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더욱 강렬한 색을 찾아 배회하다가 넓은 스폰지 군락을 만났다. 지천으로 너부러져있는 스폰지는 그 크기가 사람 키보다도 더 큰 것부터 작은 것 까지 저마다의 모습으로 바닷속을 수문장처럼 버티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스폰지(Sponge)란 흔히 식기를 세척하거나 할 때 쓰는 화학제품인데 이런 인조 스펀지가 생산되기 전에는 바다에서 나는 천연 ‘스폰지’를 채취해서 썼었다. 키웨스트 바다에는 이렇게 건져 올린 천연스펀지가 많은데 말려서 기념품 가게에도 많이 팔고 있어 관광객들의 일등 기호품이 된지 오래다.   대군이 이용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벌게 해준 우리 일행을 위한 보트 선장의 배려로 바다가재의 포획을 허용하고 제법 씨알 굵은 가재들이 숨어있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물속에는 곳곳에 바위 무덤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 바위들 틈새마다 반짝이는 눈망울을 수염 속에 감춘 랍스터들이 있었다. 마땅히 가져간 전문 채취 도구도 없어 다이빙 칼을 이용하기도 하고 두터운 장갑을 착용한 손을 사용하여 구멍들을 쑤시고 다녔다. 가재들은 항상 뒷걸음을 쳐 도망을 치며 바위틈 굴은 반드시 퇴로가 형성되어 있어 전면에서 구멍을 휘젓고 뒤에서 잡으면 된다. 다양한 크기의 가재들을 포획한 뒤 부력조절기 조끼의 주머니에 넣기 위해 다리와 머리 부분을 모두 떼어버리고 꼬리만 챙겼다. 그때마다 부서진 가재들의 잔해를 먹기 위해 몰려드는 고기떼들이 어지러울 정도로 무섭게 달려들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구름처럼 몰려든 물고기 떼에 둘러쌓인 동료 다이버의 모습이 신비로운 춤의 앙상블을 보는 듯 했다. 우리 다이버들에게는 무엇을 잡거나 건진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작업이다. 모두 바다가재 수렵 삼매경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나지막한 플로리다 키 앞바다를 휘젓고 다녔다. 뭍으로 나와 그 전리품으로 싱싱한 가재회도 먹고 숯불에 구워도 먹고 했던 먹거리가 풍성한 신나는 여행이었다.   다이빙을 마치고 귀환하니 우리를 기다리며 몸을 추스린 부실한 동료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해거름이 조용히 섬구석 구석을 스며들 때 우리 일행은 저녁식사를 위해 광장 부근 Duval St에 널린 음식점 중 소담스레 꾸며진 해산물 뷔페식당에 들었다. 차림이 그다지 풍성하지는 않았지만 깔끔하고 맛깔스런 음식들이었는데 우리는 연이은 물질로 허기진 배를 게걸스럽게 허겁지겁 채웠다. 다이빙은 전신운동으로 과도한 체력소모를 요구하지는 않으나 짧게는 30분부터 길게는 1시간 까지 간단없이 행해지는 바다 속 항진을 마치고 나면 쉽게 허기가 진다. 이런 까닭에 다이버들은 다이빙 후에 음식들을 참 게걸스럽게도 맛있게 먹는다. 시간은 지나 밤으로 가고 ‘노인과 바다’의 배경답게 서서히 깔려오는 키웨스트의 저녁노을은 노어부가 상어들과 거대 황새치와 홀로 사투를 벌였던 그 고독의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애잔한 바람마저 흘러가는 키웨스트의 서녘 하늘은 대상없는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가슴이 저려오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별리처럼 다이빙으로 깊이 사랑한 키웨스트와의 석별을 아쉬워하는 아픔이던가? 명멸하는 작은 별들이 가득한 하늘 아래에 펼쳐진 키웨스트의 밤바다에는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하루의 여정을 마감하고 돌아온 보트들이 평온한 안식을 취하기 위해 고요히 잠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