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바로 떠나는 바다여행. 8 미국 다이빙의 보고 플로리다, 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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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키 군도의 초입에 위치한 키 라고(Key Largo)는 아름다운 해양생태계의 세계적 보고라 할 만한 비스케인 국립공원이 연결되어 있는 곳으로 미국내 거주자나 해외에서도 스쿠바를 위해서 많은 발길이 끊임없이 찾아드는 다이빙의 메카이다. 우선 수질이 덜 오염이 되어 시계가 비교적 깨끗하게 확보가 되며 큰 파도가 없는 것이 대체로 잔잔한 물결을 유지하여 보트를 이용한 입, 출수가 용이하며 산호 밭에 넓게 분포된 각양각색의 수중 동식물들의 자태를 관찰하며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 좋은 곳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인공어초를 형성하기 위해 대부분의 퇴역 군함이나 심지어는 항공모함 까지도 인위적으로 수장을 시켜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침몰선 다이빙 포인트로서의 그 대명을 만방에 알리고 있다. 짧게는 수년 전 길게는 수십년 전 수장시킨 거함들은 염분에 부식되어 조금씩 그 형태를 잃어가지만 그 세월의 깊이만큼 수초와 산호가 자라나 새로운 바다 속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촉매 역을 해주고 있다. 난파선 다이빙. 거대 함선의 좁은 내부를 탐사하는 그 모험의 여정은 플로리다 키 라고에서 즐길 수 있는 짜릿한 기쁨이다.   마이애미에 내렸다. 오후 1시에 출항하는 보트 다이빙을 맞추려고 이른 시간에 비행기 예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키 라고로 가는 1번 해안도로가 공사 중이서 지체된 탓에 두시간을 넘게 걸려 겨우 턱걸이로 선착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미리 예약한 보트라 시간이 초과되었지만 서둘러 수속을 해주었고 다른 다이버들도 이해하며 기다려 주었다. 메케한 엔진 내음마져도 그리웠던지라 차라리 향으로 여기고 음미하며 대양을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 파도가 예상보다 높았다. 허나 수심 10미터 이내에 이루어지는 리프(산호초) 다이빙이라 일단 물속에 들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험한 파도가 수면을 할퀴어도 수중은 잔잔하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서둘러 온 탓에 온몸은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버려 그저 우리는 저 푸른바다 속으로 한시라도 바삐 들고 싶었다. 준비된 다이버들이 하나 둘 씩 풍덩 풍덩 물소리를 내며 카리브해를 연한 대서양으로 뛰어 들었다. 파도치는 물결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긴 역류(Surge)가 있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해저 풍광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몇 억겁의 세월 속에 피어난 아름다운 산호들이 온 천지에 만개해있고 품종을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현란한 군무를 선보이고 있었다. 곳곳에는 대형 산호들이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고 큼지막한 조개들은 표호 하듯이 크게 입을 벌리고 있다가 우리가 접근하면 입을 닫고는 하였다. 바닥 쪽에는 아치형으로 형성된 굴이나 터널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에는 대형 바다 장어들이 버티고 있어 접근할 때 마다 공격하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방어태세를 취하기도 했다. 참 못생긴 녀석이라 투덜거리면서.... 한없이 그리웠던 바다. 그 넓은 바다 속 평원을 헤집고 다니다 보니 오후의 햇살은 서녘 하늘 저편으로 쏠리고 있었다.   다이빙 샾에서 함께 운영하는 워터프론트 리조트에서 안락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은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게 준비하여 샾으로 갔다. 오전에는 수심 40미터 가까이를 내려가는 Spiegel Grove 항공모함 탐사 다이빙이 계획되어 있었다. 파도는 어제보다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높은 파도였다. 높은 파도는 입, 출수의 장애 요인이 되기는 하나 수중 깊은 곳에서는 잠잠하니 가능하면 빨리 잠수하는 것이 좋다. 인공 어초를 만들기 위해 수장시킨 전장 510피트 폭 84피트의 대형 화물선을 탐색하기 위함이다. 2002년에 수장된 이 거함은 처음에는 해저 지형에 의해 비스듬히 내려졌으나 점점 세월이 흐르면서 자리를 잡아 지금은 거의 바로 누워있다. 부식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침몰선의 주변 뿐만 아니라 내부로의 진입이 가능한 곳이었다. 이러한 위험성 때문에 반드시 이 거함의 탐사는 상급 자격증을 보유하여야만 허락을 한다. 특히 이 거함은 너무 유명세를 타고 있어 이 배를 탐사하는 것만으로도 스페셜티 다이빙의 자격을 부여하는데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들며 질주하던 수장 전 모습을 담은 기념 메달을 주기도 한다. 배내부로 들어섰다.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모든 장비들이 몸 가까이에 부착되었는지 느슨하게 풀어진 것은 없는지 서로 살펴주면서 앞서 가는 동료 다이버의 오리발에 바짝 접근하여 게이트를 통하여 내부로 진입했다. 사령부가 있던 조타실인 듯 했다. 방향을 조정하는 키는 어떤 분이 어느새 실례 해가고 쇠뭉치만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 각종 계기판들은 부식이 심해 판독은 불가능해도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정도였고 그리 흉물스럽지는 않았다. 어느 회원은 없는 키지만 있다고 가정하고 잠시라도 상상속의 세라복에 파이프를 문 마도로스 선장이 되어 거만하게 항해를 흉내 내기도 하여 모두들 수중에서의 미소를 자아내게 했다. 빛이 비치는 선실 내부로 들어가니 아예 거함을 자신들의 주거지로 점거한 수많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어지럽게 휘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둠침침한 곳을 지날 때는 영화를 통해 주입된 게름직한 장면들의 기억이 떠올라 을씨년스러운 것이 가벼운 전율로 몸을 떨게 했다. 포세이돈호나 타이태닉호의 내부를 두루 구경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머리위에서 부디치는 파도소리가 수중의 공명을 통해 전도되어오는 그 마찰음은 육중하면서도 기이한 굉음을 내는데 어떤 이들은 차라리 두려워하기도 한다. 허나 그 소리가 음악처럼 들리는 나는 천상 다이빙을 천직으로 삼아야 하나 보다 하는 푸념을 자신에게 널어놓으며 조심스레 선박내부를 꼼꼼히 관찰하며 다녔다. 우리 일행은 만일을 대비하여 공기통이 반으로 줄었을 때 일치감치 선박 내부로부터 빠져 나왔다. 다이빙을 마감하고 수면에 오르니 아직도 플로리다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높이의 파도가 잔뜩 화가 난 듯 심하게 출렁이고 있었다.   오후에는 결국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이빙에서의 비는 우리에게 어떤 낭만을 준다. 수중에서 하늘을 쳐다보면 수면에 내린 빗방울이 원을 만들어 퍼져가는 형상이 수없이 반복될 때 중첩되는 그 동그라미들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로 다가온다. 때론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보게도 하는 회억의 매개이기도 하다. 주변이 거의 막혀 호수처럼 형성된 라군 지역에 명물 수중호텔이 있어 입장료를 내고 구경을 나섰다. 수심 8미터 지점에 건조된 잠수정식 주거시설은 단하나의 유닛으로 부부 한쌍이 여유롭게 기거하도록 되어 있었다. 물론 수중에서 취사는 불가능하고 지상에서 다이버가 배달해주는 음식들을 먹으며 다닥다닥 붙여 만들어 놓은 둥근 창을 통하여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천연 수중세계를 보면서 여유를 부리는데 하룻밤 정도면 족하리라 여겨진다. 그 이상은 감금 수준에 가까운 듯 했다. 그래도 하룻밤에 팁까지 하면 오백불을 지불해야 한다는데 예약하려면 몇 달전부터 해야 한다니 스쿠바 다이빙을 하는 우리들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튼 본의 아니게 허니문을 온 신혼부부인듯한 이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잠시 업주의 공식적인 인가 하에 엿보게 되었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인 제주도의 앞바다에도 이런 수중 해저 숙박시설이나 레스토랑이 건축되어 진다면 유별난 우리 민족들이 앞 다투어 경험해보려 하지 않을까 하는 허튼 생각도 해보았다. 수면에는 비오는 날 수국 꽃이 물위에 낙화하며 뿌리는 흔적처럼 쉬지 않고 동그라미를 겹쳐겹쳐 만들고 있었다.   리조트로 돌아왔다. 드넓은 대서양을 바라보며 건축된 리조트 호텔은 탁트인 시야로 가슴마쳐 시원스레 열려진 듯 했다. 바다위로 돌출되게 만들어진 리조트내 식당에는 갈대로 엮어 만든 티키바가 예쁘게 조성되어 있었다. 캐리비안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주변 조경도 그랬지만 주말이라 펼쳐지는 4인조 밴드의 라이브 뮤직이 더욱 분위기를 띄었다. 방파벽에 살며시 다가와 가볍게 부딛치고 돌아가는 파도 또한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마지막 빛을 발하며 지는 해 마져도 넘실거리는 파도와 함께 너울너울 춤을 춘다. 밤이 익어가고 청춘이 익고 사랑과 우정이 익어가는 남국의 밤이다. 시인 박두진이 노래한 나그네란 시 한수가 생각난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비록 타국에서 느끼는 정취지만 바다는 변함없는 그 바다이기에 술이 있고 타는 노을이 있어 우리는 오늘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바다의 나그네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