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안 드림을 품고.. 4. 빅아일랜드 마우나 로아 등반 트레킹.

오늘은 빅 아일랜드 하와이 섬의 최고봉 마우나케아 산과 쌍벽을 이루는 마우나로아 산 정상을 오르는 일정입니다. 어제 저녁 구름위로 가라앉는 세상 더없이 아름다웠던 일몰 풍경과 청정 하늘 화판위로 별 여백도 없이 촘촘하게 박혀진 보석 같은 별들을 관측하던 마우나케아 산을 비켜서 반대편 진입로로 들어섭니다. 그 옛날 늘 산정에 흰 눈이 쌓여있어 흰 산이라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고 오늘 우리가 가슴으로 만나게 될 마우나로아 산(Mauna Loa)은 4169미터의 활화산으로 산의 부피와 면적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데 하와이 섬을 이루는 다섯 화산 중 하나입니다. 높이는 곁에 있는 마우나케아 산보다 36m 낮은데 원주민어로 "긴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산정이 멀리서 보면 밋밋한 선으로 이어졌는데 그래도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 현지인들은 입에 침을 튀깁니다. 바다 속에 잠긴 길이 까지 합하면 일만 이백 미터가 넘는 산세라고 우기는데 정상에는 길이 4.8 km에 폭 2.4km 그리고 깊이가 180m에 이르는 광대한 칼데라가 형성되어 있는 산입니다. 기나긴 세월동안 거의 평균 6년에 한번 씩은 용암을 내뿜는 화산 폭발이 이어졌으며 가장 최근에 일어난 것은 1984년으로 기록되었고 이제껏 요동을 멈추고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지질학자들은 의구심이 가득한데 머지않아 또 다시 기록적인 대 폭발이 일어날 것이라 예견하는 침묵하지 않는 침묵의 산입니다. 사천 고봉이 온통 검은 용암으로 덮여 있는 천형의 땅 마우나로아 정상을 향합니다.   여명을 비집고 힐로에서 4륜 구동차를 내몰아 칼레도니아 화산 지역을 지나 200번 도로 새들 로드 위를 두 시간 가까이 거침없이 달려갑니다. 렌트카 회사에서 이 지역을 통과하면서 생긴 사고는 보상에서 제외할 정도로 정비되지 않은 험악한 길로 악평이 나있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당국의 관심으로 과거 보다는 훨씬 부드러워진 길입니다. 그래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경사진 길을 달리는데 점점 수목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급기야는 혹성 탈출로라도 되는 것처럼 그저 눈에 띄는 것은 황량한 용암 밭 뿐 얼마나 거대한 화산 폭발이 이어져 이토록 광막한 풍경을 만들었는지 감히 짐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주 스페이스의 또 다른 행성에라도 온 듯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낯선 풍광에 음산한 기운마저 드는데 고도를 높여 올라 갈수록 오른편에서 솟아오르는 또 다른 산봉 하나. 마우나케아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마우나케아로 꺾기 바로 전에 왼쪽에 난 마우나로아로 가는 진입로를 한번 놓치고서는 뒤돌아와 들어서게 되는 사람의 발길이 참 드문 미답의 땅입니다. 이어지는 30여 킬로미터의 길. 여기는 더 이상 지구가 아니었습니다. 잠시도 쉴 새 없이 구비치고 솟구치며 내리 꽂는 야생의 길. 그나마 최근 포장이라도 해두어서 다소 속력을 내봅니다만 예전에는 엄두도 못 냈던 그래서 천연의 길로 남을 수 있는 이방의 땅입니다. 몬순 기후를 따라 흐르던 구름이 갑자기 나타난 4천 고산에 걸려 한바탕 오줌을 질기고 마는데 세우가 촉촉하게 포도를 적십니다. 그 물기에 젖어 검은 용암은 묘한 빛을 발하고 공룡의 비늘처럼 가지런히 덮어가기도 거대한 균열이 층을 이룬 선사시대의 모습도 보여주기도 합니다.   산행이 시작되는 곳은 고도 3400 미터에 위치한 기상 관측소들이 들어선 자갈밭 길입니다. 850미터 정도를 오르며 그저 거리를 나타내는 표식과 대충 그려놓은 트레일 맵이 걸려 있는 게시판 하나. 정상을 향하면서 누가 만들어놓았는지 모를 돌무덤인 케언(Cairn)만을 표식으로 삼아 가야합니다. 그래도 대장정의 길을 오르는데 하며 표시판 뒤에 서서 기념 촬영을 하며 모진 마음을 새깁니다. 숙소인 해수면에서 출발하여 중간에 쉬지도 않고 차로 3400미터를 바로 올랐으니 당연 고산병 징후가 나타나는바 어질하고 멍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다들 전날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를 당부했건만 일탈의 하와이가 쉬이 잠들게 하지를 않고 거의 밤마다 이어지는 친교의 즐거움에 늘 피로하고 잠이 부족하고 말았습니다. 대신 물을 많이 마시게 하고 남미에서 구해온 코카 캔디로 고산증을 좀 다스려 보라 합니다. 참으로 기이하고도 묘한 길입니다. 묵묵히 걸어 오르면서 오로지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구름 위에 떠있는 흰 산 마우나케아의 자태가 너무 신비스럽도록 아름답고 아무렇게나 빚어놓은 검은 화산암의 퇴적 너머로 깔려있는 옥색 바다 그리고 가슴으로 그려보는 장대하게 펼쳐질 산정의 칼데라뿐입니다. 온통 사방이 거무스름한 용암 굳은 암석들만이 그 거대한 산을 덮고 있는 이 특이한 풍광. 별스런 세계에 와있으며 마치 화성을 탐사하는 우주인이 된 듯한 착각. 이 황막한 길을 오르며 눌려오는 고산 증의 무게와 따분하기만 한 주위 풍경. 특별히 가파른 구간은 없어 수월하게 오를 수는 있어도 그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적막감. 백칸트리를 위해 조성된 다른 트레일을 지나고 대피소 역할을 하는 산장으로 가는 길에 이르러서야 한 커플의 젊은 트레커들 만 조우했을 뿐 이 세계 최대 화산 오름길에 우리만이 전세내서 걷고 있다는 외로움과 또 다른 감정의 자긍심. 그런 이유로 걸을 만합니다. 중간 중간 잠시 고산에 적응하며 쉬어 가는데 그때마다 몰려오는 참을 수 없는 나른한 졸음. 참 견디기 힘이 듭니다. 배낭을 등에 받쳐 이내 오수에 빠져드는데 조금의 티끌도 없는 청정 하늘을 그냥 투과한 태양 볕이 예상외로 따갑습니다. 쉬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으로 향한 뺨에는 냉기가 스며드는데 이 묘한 느낌이란.. 결국은 붉게 익어버린 얼굴은 이내 한풀 벗겨지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마침내 분화구를 조망하는 전망대에 섰습니다. 광대한 칼데라를 보면서 30여년전에 있었던 화산 폭발이 얼마나 광폭하고 거대하였는지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는 크기입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 ‘불타는 곳’이라는 원주민어의 모쿠아 웨오웨오 칼데라 (Mokuaweoweo ) 그 깊게 파여진 화산구 안에는 검디검은 용암과 그 거대 암반을 덮고 있는 2월의 흰 눈. 그 절묘한 대비가 이 삭막한 풍경을 다소나마 부드럽게 해주고 정상이 주는 보상 같은 풍경이 되게 해줍니다. 마지막 정상으로 가려면 이 칼레라를 지나야 하는데 고산증에 지치고 너무 시간을 지체한 우리는 그냥 이 전망대에서 자리를 잡고 쉬기로 했습니다. 혹시나 해서 챙겨온 야외용 부루스타 버너. 섬을 이동하며 미개한 원주민들에게 캠핑용 버너를 모두 빼앗겨 버려 부피와 무게가 장난이 아닌 이 부르스타를 반은 오기로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왔었는데 아주 요긴하게 쓰입니다. 라면을 몇 개 끓이고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풀어 산정 점심을 먹는데 그래도 우리가 포기하나 봐라 하는 복수를 이루었다는 야릇한 자긍심으로 어깨에 자꾸 힘을 들어갑니다. 식후 정상주 한잔씩을 권합니다. 오늘의 정상주는 병에 든 스카치위스키입니다. 예전 시원한 맥주를 마시겠노라고 배낭에 채워간 캔이 그 고산 압력에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려 배낭안의 물건들이 다 젖어버렸던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기에 그랬습니다. 안주는 마카다미아. 땅콩과 흡사한 견과류의 하나로 마우나로아라는 브랜드로 제작되는 하와이산은 호주와 더불어 세계적 생산지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에겐 부끄러운 에피소드와 함께 근자에 알려졌습니다.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갑 질이 세상에 웃음거리로 회자 되면서 이 마우나로아 마카다미아도 유명세를 탔고 그 호기심에 엄청난 구매 수요를 불러와 창졸간에 이 산업은 전성기를 누리다가 최근에 미국 대형 초컬렛 회사인 허쉬 사에 매각되었다는 사업유전이 전해집니다. 방문자 센터를 지어놓고 다양한 맛을 가미한 마케도니아를 마음껏 맛보게 하고 판매도 하는데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립니다. 우리 모두들도 제법 사기도 했는데 오늘 이 산행을 하면서 정상주 한잔의 안주거리로 삼고 또 그 이야기의 안주거리로도 삼고 있답니다. 강렬한 도수와 향으로 숙성시킨 위스키 한잔에 마케도니아 안주의 궁합. 제법 괜찮습니다. 세인들의 인식에 바다만을 연상하게 하는 이 하와이 땅에 세계 최고 높이의 산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과 흡사하다고나 할까! 이제 하산을 해야 하니 허리춤을 올리고 배낭을 메고 발걸음을 떼는데 저 멀리 하늘 가득 피어오른 무지개 꽃. 하와이에 그렇게 많은 꽃빛이 우리를 환송하는 저 무지개에 스며들었나 봅니다. 그 영롱한 무지개 사이로 많은 추억들을 남기고 우리는 떠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