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로키 트레킹. 9 재스퍼 국립공원 Bold Hill 산 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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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 호수에 영혼을 맡기고.. 볼드 힐 마운틴. 벽옥 같은 자스퍼에 오면 캐나다 로키에서 가장 높은 영봉인 롭슨 산이 멀지 않고 또 다른 명산들이 적지 않은데도 모두들 볼드 힐 마운틴을 찾게 되는 데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겠지만 가장 공감하는 이유는 물과 기암괴석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펼쳐 보이는 수려한 풍광이 압권인 말린 협곡과 그 엄청남 수량의 발원지인 말린 호수 때문 일 것입니다. 볼드힐 산은 반드시 이 협곡을 지나야 하고 트레킹은 호수에서 시작되기에 산을 오르며 내려다보는 호수의 변화하는 색감을 감상하며 걷는 미려한 길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이르는 길에는 말린 협곡이 생성되었는데 신이 축성한 기기묘묘한 바위와 물의 전시장이 경이롭게 이어집니다. 수억년을 물길 하나가 깎고깎은 깊고도 깊은 계곡에 엄청난 양의 물이 흘러가면서 내는 굉음은 선사시대의 거대한 동물이 울부짖는 소리 같아 섬뜩하기조차 한데 우거진 숲속에서 엘크나 곰의 출현이 이들과의 느닷없는 조우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는 쥬라기 공원 같습니다. 또 산의 정상에 서면 퀸 엘리자베스 연봉과 더불어 파노라마 처럼 펼쳐지는 북부 로키의 산군들의 화려한 물결이 가슴을 적셔오기 때문입니다. 유난히 곰의 출현이 많은 길을 따라 메디신 호수를 지나면 평화롭게 누워있는 말린 호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호수를 볼 때마다 십년전 7월 초순에 방문했는데도 엄청난 폭설이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더니 이 호수마저도 순백의 설원으로 만들어 여름 속의 겨울을 경험한 짜릿함이 들추어집니다. 총연장 22킬로미터의 빙하호 말린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고 로키에서는 가장 큰 빙하호입니다. 중간에 그림 같은 스피릿 아릴랜드가 몇 그루의 낙엽송을 안고서 최상의 구도를 형성하는데 자스퍼를 홍보하는 모든 책자에 가장 먼저 선보이는 풍경입니다. 내놔라 하는 사진작가들이 꼭 한번은 오고 싶어 하는 출사지기도 하고요. 아마도 저 스피릿 섬을 고요히 바라보면 세속에서 저며든 풍진들이 가득하여 혼탁해진 우리의 영혼이 말끔히 씻겨 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은 아닐는지.. 시즌 때는 이 호수를 유람하는 크루저도 운항하는데 침잠한 수면위로 미끄러지듯 흘러가면 마운트 볼드힐 설산의 배경에 유리 같은 호수가 자아내는 풍경은 인간의 힘으로도 문명의 이기로도 표현이 불가능한 초현실적 명경을 만들어 내고 평화와 자유로움이 잔잔하게 흐르는 여유미가 압권인 정령이 어린 호수입니다. 이 티 없이 순수하도록 맑고 맑은 말린 호수에다 잠시 영혼을 맡겨두고 오르는 산. 볼드 힐 마운틴. 2300여 미터 높이 밖에 되지 않는 산이지만 특이하게 이 산은 산정이 한그루의 관목도 자라지 못하고 단지 바위와 너덜지대로 형성이 되어 마치 윗머리가 없는 대머리 같이 보여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항상 하얀 눈을 이고 있으니 더욱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릅니다. 산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떠오르는 형상이 일치하여 그렇게 이름 지으니 아무도 이견 없이 받아 들인답니다. 그림 같은 말린 호수를 바라보며 울창한 전나무 숲속을 삼림욕 하며 오르는 볼드 힐 산정으로 가는 길은 피톤치드 자욱하게 뿜어내는 치유의 길이며 힐링의 길입니다.  전날 내려 쌓인 눈이 우리의 앞길을 막지는 않을까 하는 초조한 마음을 달래며 트레킹 시작점에서 전의를 다지며 홧팅을 외치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입간판에는 Bald Hill 까지는 왕복 10.4 킬로미터에 4~6 시간이 소요된다고 안내하고 있고 과거 산불 감시 초소로 이용되던 조망대 까지 3.5 킬로미터 정도는 소방도로로 이어져있어 걷기가 수월합니다. 짙은 더글라스 전나무 숲을 지나며 심호흡으로 청정 로키의 산소를 여유 있게 들이 마시고 내뱉으며 옛날 말 목장으로 사용되는 낡은 마사가 산길 주변에 있어 고즈넉한 풍경들을 앵글에 담습니다. 언제라도 로키의 야생동물들이 튀어 나올 것 같은 정숙한 길 입니다. 2.5 킬로미터 길을 완급을 조절하며 오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 길은 에블린 크릭으로 가는 길이면서 볼드힐로 올라가는 완사면의 순한 길이고 좌측으로 꺾으면 가파른 경사면이라 오를 때는 순한 길을 내릴 때는 급한 길을 타는 것이 좋다 하는데 시간도 줄이고 성미도 급한 우리는 지름길의 가파른 길을 택해서 오릅니다. 이 길이 말린 호수며 주변의 설봉들을 감상하기 좋은데 어차피 인생길 오를 때는 주변을 즐길 여유가 없다가 하산 할 때는 모두 볼 수 있듯이 볼드 힐을 내려올 때 찬찬히 감상하도록 남겨두는 것도 지혜로운 선택. 에블린 크릭으로 가는 갈림길 까지는 그저 전나무 숲에 안겨 걸으니 차분한 마음으로 내 자신과의 대화에 충실합니다. 이렇게 호젓한 길을 눈 내리고 난 뒤 청명한 기후 속에서 걸으니 내 안의 나를 불러다 놓고 얘기 나누기에 제격입니다. 갈림길에서 갈라져 고도를 높이면서 이제야 로키의 설산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제법 멀어져 버린 말린 호수가 더욱 옥색으로 곱게 치장하고 있음이 내려다보입니다. 말린호를 호위하는 무장들처럼 다른 검푸른 로키의 바위산과는 달리 붉은 빛을 제법 띠는 삼손봉과 여러 설봉들이 포진해 있어 성스러움을 더합니다. 그런 명산들이 오늘은 어제 내린 눈으로 가득 덮여 천상의 설국에 든 듯 가슴이 뛴답니다.  이 전망대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두 갈래입니다. 오른쪽으로 꺾어 목초지로 시작되는 화원 길로 평화롭게 걷다가 마지막 부분의 급경사를 타고 정상을 찍고 다시 오른 쪽의 산릉을 따라 내려오는 코스를 택하는 것이 볼드 힐 주변의 풍광을 낱낱이 감상하며 즐길 수 있습니다. 평소 같으면 이 목초지에 가득 채운 로키의 야생화로 눈이 아찔하고 그 향기에 취해 몽롱할 터인데 오늘은 그 위에 잔설이 가득 덮여있어 향기는 눈에 묻혔다 하더라도 그 아름다움은 더한 듯합니다. 거의 휘파람을 불 듯 로키의 하늘을 걷는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도록 즐겁기만 합니다. 삶이 이리도 행복할 수 있는지.. 룰루랄라 폴짝폴짝 뛰면서 주접을 좀 떨어봅니다. 이어지는 가파르게 정상으로 가는 길은 비록 바윗길이라 그 앙증스런 꽃들의 환대를 받지는 못할지라도 막히지 않고 거침없이 보여주는 재스퍼의 비경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어 좋답니다. 저만치 보이는 Bald Hill 정상. 저 정상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려고 저리 숨어있는가. 발길이 점점 빨라지고 호흡도 거칠어집니다. 정상에 올랐습니다.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돌탑을 신앙처럼 쌓고 그 위에 십자가를 올려놓았습니다. 우리나 외국인들이나 이런 영봉에 오르면 소망하는 것들을 마음으로 모아 쌓아 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360도 조망이 가능한 곳. 일망무제의 전망. 어느 하나 막히지 않고 탁 트인 조망 때문에 이 볼드 힐의 정상에 기어코 오르는 이유일 듯 멀리 로키의 최고봉 롭슨 산이 눈발에 가려 희미하게 그 위용을 자랑하고 눈높이로 다가온 퀸엘리자베스 연봉들이 어께를 나란히 하고 파노라마가 되어 믿음직하게 펼쳐집니다. 웅장하고도 광활한 재스퍼 로키의 빙산들과 말린 산맥의 설봉들. 볼드힐 산정 너머로 장엄하게 드리운 거대 분지형 협곡들을 품은 자연 화폭이 시선을 압도하며 가득 채워집니다. 골마다 흘러내리는 물줄기와 낙하하는 폭포들의 굉음들이 모여 바람과 함께 자연의 음률을 만들어 냅니다. 모두들 정상에서 말린 호수와 빅토리아 산군을 배경으로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대며 마음만은 풍요롭고 행복으로 가득 찹니다. 바람을 막아줄 바위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점심도 먹고 정상주 한잔으로 움추려진 몸도 추스립니다. 모두 걸인의 행색일지라도 함께 하니 즐겁고 행복하기만 합니다, 모질게 불어 대는 바람. 그 바람에 대적하듯 당당하게 서봅니다. 옷자락이며 배낭의 줄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느낌이 참 좋습니다. 급하게 흘러가는 구름이 잠시 시야를 터주면 더욱 깨끗해진 산과 호수가 너울거립니다. 내놓아라하는 로키 산맥에 포진한 영봉들의 향기를 품고 불어오는 바람은 가슴 언저리에 얹혀있던 아주 자그마한 근심의 덩어리조차도 모두 부셔 버리니 모두 털어내어 저 청정한 로키의 바람에 날려 보내어 버립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입니다. 지천명을 넘어 이순으로 다가가는 이 나이에도 삶도 사랑도 향방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나날들. 오늘 오른 이 산정의 로키는 그 자리에 변함이 없이 존재하는데 오랜만에 찾은 내가 변해서 달라 보일 뿐이겠지요. 머지않아 다시 찾을 로키. 그때는 이 감동이 사라지지 않도록 성심으로 살고 내 기어코 다시 찾아와 이 감동을 이어갈 것이라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