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 최고봉 텁칼 마운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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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정점인 Jebel Toubkal(4,165m)의 정상등반에 도전합니다. 조심스럽게 주방으로 내려가 마른 빵과 수더분한 음식들을 아침이라고 내놓는데 커피한잔씩만 마시고 맙니다. 간밤에 꾸려놓은 배낭을 매고 해드램프를 머리에 두르고 산장 뒤 오르막길을 줄지어 오릅니다. 길은 남쪽 서킷길을 에둘러 걸어 산장위의 개울을 건너 끝없는 돌밭길을 따라가는데 긴장감이 더합니다. 그믐에 가까운 월력은 아직 달빛조차 없는데 하늘은 구름으로 가려져 별빛 하나없습니다. 어느새 우리 앞뒤로 인기척과 함께 전등빛이 흔들리는데 얼어붙은 산하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입니다. 그 순간 장신의 트레커가 가이드도 없이 빠른속도로 우리를 지나칩니다. 지금의 고도는 3,600미터. 고산증을 다스려야하는 고도인데 싶은 노파심이 입니다. 고도를 높일수록 세찬 바람이 살을 에입니다. 보온이 완벽하지 않은 말초신경이 얼어 둔감해집니다. 쉽지않은 여정인데 끝없는 바위사이를 헤집고 나아가며 희미한 하늘과 산의 경계를 향해 한걸음한걸음 올라갑니다. 설상가상으로 가이드에게 주문한 대여 헤드램프 두개가 배터리 방전으로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황당한 해프닝에 버럭 질타를 해주고 셀폰 전등을 켜고 다시 천천히 올라가는데 이제 능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후로는 다소의 굴곡진 리지길을 따라서 정상까지 걸어서 갈수 있으며 펼쳐질 주변경관은 매우 아름다워져 여행은 더 가치가 있습니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마라케시 고원을 넘어 북쪽의 안티 아틀라스 산맥의 장대한 풍경과 남쪽의 사하라 사막까지 모든 방향으로 제한없는 전망이 펼쳐질 것입니다. 한겨울 등반때는 아이젠을 착용하고 설원을 올라 정상까지 갑니다. 위대한 로마학자 Pliny는 한때 아틀라스산맥을 "아프리카 전체에서 가장 멋진 산들"로 단정했으며 산정에서 바라보면 그 이유를 쉽게 이해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상상을 하며 능선으로 다가 가는데 좀전에 씩씩하게 우리를 지나갔던 거구의 백인 친구가 길바닥에 퍼져 거의 대자로 누워있습니다. 고산증이 온것입니다. 괜찮냐고 물으니 그렇다며 하산할 참이랍니다. 분수에 맞게 사는 것. 주변 환경에 거역하지 않고 순응하며 사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입니다. 이제 조금씩 하늘끝이 밝아오는데 일행 중 한명이 어지러움과 두통을 호소합니다. 이미 우리는 한명이라도 정상등반이 불가능하면 다 함께 철수하기로는 했으나 아직은 의욕이 넘치는 동행들을 위해 가이드에게 팀을 찢자고 했지만 거부당합니다. 내가 동행들과 정상을 갈테니 니가 환자를 데리고 내려가라해도 그럼 내가 환자와 하산한다해도 막무가내입니다. 모두 자신의 통제하에 있어야한다며 책임을 지지않겠다는 자기보신의 고지식함에 분노를 표하고 다들 포기하고 다함께 아쉬움을 남기고 내려갑니다.  예상외의 이른 하산으로 예약된 점심을 취소하고 왔던길 되돌아 임릴 마을로 내려갑니다. 이렇게 멀게 왔나 의심이 들 정도로 지루하고 오랜 하산 끝에 이제 마을이 멀리 보입니다. 가이드 녀석은 등정하지 못한 정상쪽을 가르키며 저렇게 검은 구름이 채워져있으면 정상에 올라갔어도 아마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그냥 내려왔을거라며 우리를 위로하려 듭니다만 이미 신뢰를 잃은 놈의 립서비스로 치부해버립니다. 안그래도 그놈에게 불만이 가득한데 또 삐끼처럼 신사가 있는 예의 그 카페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머하는 짓이냐고 호통을 치고 그대로 계속 내려가는데 이놈이 비굴해진 표정으로 자기 집에 가서 점심을 먹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옵니다. 당연히 이 유혹같은 제안이 선의가 아니라 영업하려는 짓임을 알기에 거절합니다. 우리에겐 어서 끓여먹어야 할 비상식량 라면에 햇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조리해서 먹을 장소가 마땅히 없었습니다. 하는수 없이 현지인들의 생활상은 어떤지 가옥은 어떻게 지어사는지 확인하고 그들의 집밥은 어떠한지 궁금하여 그 명분으로 속셈을 알면서도 집으로 전화해 준비하라고 명합니다.  모로코 음식은 따진이든 쿠스쿠스든 모두 조리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비탈에 지어진 집은 3층 규모. 테라스격인 옥상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며 라면도 끓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수줍은 듯 신기해하니 남은 사탕과 초콜릿을 모두 세남매에게 줘버립니다. 해맑은 웃음 뒤에 시원한 외모의 아내가 음식들을 내어놓습니다. 약식 따진이랄까? 그나마 그동안 먹었던 것들 중에 가장 나았지만 라면에 밥 때문에 거의 다 남겼습니다. 임릴 마을을 넘어 기인긴 계곡이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테라스에서의 이 시간. 식곤증에다 졸음까지 몰려오니 그 나른함을 참지못해 스르르 눈이 감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