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알프스, 그랜드 티톤. 그 길위에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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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의 아침은 자욱한 안개를 비집고 찾아듭니다. 종주를 시작하는 첫날을 축복이라도 해주는 듯 창연하게 열리고 부산한 움직임으로 여장을 챙겨 서부시대의 흔적이 가득한 잭슨홀 시티를 나서서 티톤 크레스트 트레일 종주의 대장정을 시작할 티톤 빌리지로 향합니다. 연못이며 호수에서 발원한 물안개가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들판에는 국립 버팔로 보호구역이 만들어져 있고 그 넓디넓은 초원에는 야생동물들이 무리지어 한가로이 이른 산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 안개를 헤치고 도심을 빠져나오니 멀리 티톤의 장엄한 원초적 자태가 서서히 눈 안에 들어오고 잔설이 희끗한 설봉들이 길게 도열한 채 우리들을 반기는 듯했습니다.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번거롭지만 모두 차에서 내려 저리도 아름다운 태산을 배경으로 한 컷의 기억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동녘에서 이제야 눈비비며 떠오르는 햇살을 받아 더욱 신비하게 그 세봉우리는 모습을 감춘 채 감질나게 일부분만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트램을 타고 3,185m 높이의 Rendezvous 고개까지 올라가 사우스 포크(South Fork) 트레일을 따라 메리온 호수(Marion Lake) 까지 진군함으로써 티톤 크레스트의 곁가지라 볼수있는 Taggart 호수-Valley트레일-Phelps 호수-Granite 트레일 구간을 생략하게 됩니다.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다면 그렇게 오르면서 다양한 풍경을 접해도 좋겠지만 핵심 구간 즉 말하자면 3천미터 이상에서 노는 오리지널 티톤 크레스트를 오롯이 즐기기 위해 그렇게 일정을 짰습니다. 일단 트램에서 내리면 조그만 카페가 있는데 모닝 커피 한잔으로 여유를 갖고 마지막으로 우아하게 볼일을 보고 왼쪽 사우스 포크길인 릿지라인을 따라 완만한 내리막 길로 시작합니다. 아직은 Teton Crest Trail로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Marion Lake으로 가라는 표시판을 참고삼아 다시 오르막 길을 올라 찾아가면 오늘의 여정이 끝나게 됩니다.  화창한 가을 날씨입니다. 양떼구름은 티톤의 산마루를 휘감고 청자빛 고운 하늘은 푸르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시선을 돌려 황금빛 들판을 가로 질러보면 이제사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하얗게 덮인 서리는 깊어가는 가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92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년간 5백만의 관광객이 발자국을 남기는 미 서북부 와이오밍주에 소재한 그랜드 티톤. 일률적인 로키 산맥 창조에 신물난 조물주의 장난기가 발동하여 한웅큼 쥐고 던져버린 곳에 형성된 그랜드 티톤은 4200미터에 육박하는 주봉인 그랜드 티턴(Grand Teton)을 위시해 미들 티턴(Middle Teton), 사우스 티턴(South Teton) 그리고 오웬 산(Mt. Owen)이 남북으로 늘어서 있는 설산고봉들의 장관은 이웃 옐로스톤을 훨씬 능가한다고 평가해줍니다. 티톤(Teton)은 프랑스 말로 세개의 여성 젖무덤을 뜻하는 말로 옛날 프랑스 사냥꾼들이 이 지역을 발견하고 산봉우리 모양을 따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날카롭게 서 있는 고봉들은 빙하가 남기고 간 아름다운 호수와 어우러져 아찔한 풍광을 제공하는데 공원 안에 들어가면 수려한 하이킹 코스들이 산객들을 반가이 맞이합니다. 침렵수들의 기세에 눌려 주눅이 든 키작은 활엽수들의 앙증스런 단풍을 귀엽게 봐주며 수많은 산객들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 올라가니 저만치서 다시금 평화의 상징처럼 어느 달력에서나 봄직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빙하가 보탠 강물이 굽이굽이 흐르다 멈춘 넓은 삼각주엔 모래톱이 바람과 물결이 지나면서 새겨져 있고 휘돌아 가는 물줄기를 따라 만들어진 둔덕에는 갈대가 바람에 일고 있습니다. 찬란한 가을 햇살 아래 거대한 무스 한마리가 한가로이 눕다시피 앉아서 산수를 희롱하다 취해버린 몽롱한 눈으로 우리의 일행을 별 생각없이 쳐다보고 있습니다. 갖은 색의 물감을 죄다 뿌려놓은 듯한 현란한 색의 향연이 저 산중턱에서 펼쳐지고 맑고 고운 물결은 때로는 황급히 때로는 여유롭게 산 아래를 향해 간단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태고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그 모습을 간직한 채 말입니다. 이처럼 내 마음도 항상 평화로울 수 있다면 하는 소박한 꿈을 빌어보고 길을 재촉하니 어느새 매리언호수에 당도하였습니다. 호수곁의 숲과 바위산으로 어우러진 한폭의 풍경화속에서 야영을 하며 그윽한 밤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