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이 함께 걸어온 길 차마고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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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머무는 곳 매리설산의 빙호와 신폭. 천국에 갈 수 없으면 우붕(위뻥)에 가야 된다라고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설왕설래한다는데 우붕마을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외도원으로 운남성 더친현에 속하며 매리설산의 여신봉 아래 고요하게 자리한 마을입니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채운의 남쪽 운남성에 성결하고 순미한 매리설산의 산기슭 동쪽에 서른채 남짓한 마을을 만들어 살아가는데 인간세상과 단절된채로 사바세계의 소란함과 번다함으로 부터 벗어나게 만든 것은 온전히 지리적인 이유입니다. 이곳으로 진입하는 길은 오직 3700미터 고개를 넘어야하는 산길이 너무 험분하여 건장한 장정들은 10킬로미터 고개길을 걸어서 넘고 연약한 이들은 말을 타고 접근해야합니다. 우붕 마을은 상우붕과 하우붕으로 나뉘어져 살고 있는데 상우붕 마을은 빙호로 가기 편하며 하우붕 마을은 신폭으로 접근하기 좋습니다. 비 우 자에 무너질 붕 자로 마을 이름을 명명한 이유는 설산 아래에 위치하여 사시사철 융설로 흩날리는 물방울이 마을을 촉촉하게 적시며 우수붕락 같다고 해서랍니다. 우붕마을은 고원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한데 뒤를 받쳐주는 설산과 원시림 폭포와 습지 그리고 빙하와 호수들이 수려하게 포진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솟아 있는 설산이 충직한 수호신같이 마을을 근엄하게 내려다보며 지키고 있으며 마을 안에는 개간되어 경작되고 있는 밭들사이로 듬성듬성 집들이 흩어져 떨어지고 있으며 소와 염소같은 농가축들이 초지에 방목되어 있는 목가적 풍경이 무척 평화롭습니다. 지금은 다수의 세대들이 여행객들을 위한 숙소들로 집을 개조하거나 신축하여 저마다 장점을 선전하는데 문명의 그림자가 제법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장전 불교의 8대 신간 중에서도 으뜸이 되는 산인 매리설산이 이 우붕마을을 감싸고 있는데 티베트인들이 일생에 한 번은 꼭 가야 하는 장소로 꼽는 성지입니다. 주봉인 가와격박봉은 높이가 무려 해발 6,740m로 운남성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늘 안개에 휩싸여있는지라 그 높이를 완전히 드러내는 날이 많지 않아서 더욱 신비로운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외계와 척을 두고 살아온 지리적 환경 덕분에 오히려 성스러움이 가득하고 매리설산의 여신봉에서 쏟아지는 빙하수인 신폭이 마를줄을 몰라 매년 티베트인, 참배자, 순례자들도 참배를 위해 끊임없이 들어옵니다.    차마 잠자리를 박차고 나오기 싫은 포근한 샹그리라의 객잔을 떠납니다. 정성스럽게 마련한 아침상도 그러하거니와 떠나는 발길을 막고 손위에 올려주는 작은 선물. 이 지역에서 만들었다는 수제 비누입니다. 열악한 트레킹 여정에서 긴히 필요한 물품인데 세심한 배려가 결국 이틀 후 다시 찾게 만들었습니다. 이 세상 그 넓은 곳 갈곳이 어디 한두군데이며 평생을 돌아도 미처 다 방문하지 못할 지구촌 이름난 곳들이 수두룩한데 이런 감동은 다시 그 길위에 서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나그네의 약속은 지키기 힘든지라 굳이 다시 오겠다는 인사는 없이 그들 오누이와 작별을 합니다. 비래사와 더친을 거쳐 서당촌으로 달려갑니다. 전용차량으로 이동하기에 설산 풍경이 좋으면 정지해서 사진도 찍고 마음내키면 서서 쉬어도 가며 거의 느낌으로만 정하는 방법이지만 맛집을 찾아 식사도 하면서 벼랑길로 꼬불꼬불 이어진 길을 따라 4시간을 달려갑니다. 우뚝 솟은 설산을 배경으로 탁 트인 초원길을 달리다가 가난한 잎새들을 덮고있는 숲과 어우러진 산길을 돌고 또 돌아갑니다. 장엄하지만 섬세하기까지한 아름다움이 있는 티베트 마을의 정취를 느끼며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흐르는 누런 강물은 이 자연의 모습을 만들어낸 길고 험한 세월을 말해주고 있어 가슴이 아립니다. 서당촌에 내려서 우리 전용차량 기사의 도움으로 4륜 구동차를 전세내어타고 말과 도보만으로 넘어야한다는 해발 3700미터의 남종 고개를 넘어 상우붕마을로 내려갑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문명의 입김이 작용해 조금씩 편리해지는 것인데 다른 중국의 서비스 시세에 비해 짚차 요금이 거의 바가지 수준이라 많은 여행자들이 거의 걸어서 고개를 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나마 가장 나아보이는 상우붕마을의 한 숙소를 잡고 각자의 방을 배정받아 들어가는데 이내 모두들 난로가 피워진 로비로 모이게됩니다. 한겨울 날씨를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난방시설이 없으니 외투들을 그대로 입은채 난로곁에 쪼그려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냅니다. 바람은 차고 진눈깨비도 흩날리는 스산한 산촌의 풍경입니다. 무엇인가 따뜻한 것이 늘 필요한 시간. 아름다운 동행들과 나누는 열정의 대화와 주거니 받거니하는 한잔술이 그 허기를 해소해줍니다. 밤은 고요하게 깊어가고 주변의 불들을 하나둘 꺼져가니 실내온도도 급격히 떨어져 방으로 들어가 차가운 이불속으로 구겨집니다.    날이 밝고 점심거리를 챙겨서 빙호를 보러갑니다. 마을을 벗어나는 곳에 마니탑이 타르쵸를 두르고 우뚝 솟아 있습니다. 한바퀴 돌며 염원을 빌고 과수원길을 따라 고소증을 달래며 등반을 시작합니다. 매리설산의 빙하가 녹아 고여 형성된 옥빛 호수인 빙호(Glacier Lake)는 우붕 마을의 주된 식수원이자 농용수이기도 하니 귀하다귀한 존재인데 종교적 의미가 부여되면서 성스런 호수로도 회자됩니다. 해발 3,800미터 쯤에 신성하고 평화롭게 고인 푸른 빙호는 비취처럼 짙푸른 빛을 발하며 설산으로 포위되어 있습니다. 빙호는 전형적인 모레인 호수로 호수의 반대 쪽의 암벽위에 걸려있는 유백색의 빙하와 에메랄드빛 호수가 서로 어울려 그 풍경이 아름답게 빛납니다. 자연을 구성하는 최고의 아이콘인 설산과 빙하, 꽃과 구름 그리고 호수가 모두 존재하는 빙호를 바라보면서 그 풍경속에 비치는 내 여정을 함께 되돌아봅니다. 푸르른 하늘과 순백의 설산, 유백색 빙하가 마련한 풍경을 보면 그저 해맑아지고 아무 생각이 없어지며 아름답다는 감정 하나만 존재하는데 순정한 그 호수물을 한모금 마시면 비록 내일이면 몸은 이곳을 떠나도 영혼만큼은 영원히 남겨질 것이라 여겨집니다. 귀환하면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정말 평화롭기 그지없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수백수천년동안 농경과 목축이란 전통생활방식으로 유지해왔으며 목제 가옥의 고색창연함이 돋보이는데 흩어진 산석으로 쌓아올린 낮은 울타리가 정겹기만 한데 타인과의 거리둠이 아니라 내가 타인에게 범할 과오를 차단하기 위함이라하니 더욱 존경스러워집니다. 아무 생각없이 흙길을 걸어 들판을 배회하는 가축들을 품은 풍경은 이 마을이 세상과 동떨어져서 살아온 고립의 평온과 무지의 행복을 표현하는듯 합니다. 저들 속에서 그저 장작을 패고 말을 먹이다가 차한잔 마시며 낮은 톤으로 노래하는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설산 정상의 구름을 바라보며 허투른 시한수 끄적이며 살아가는 미래의 내모습이 보입니다.   천국아닌 천국 우봉에 오는 이유는 빙호보다는 신폭을 보기위함이 더 우세합니다. 상우붕 마을보다 더 오래되고 발전되지 않은채 고유의 모습을 지닌 하우붕 마을을 가로질러 매리설산에서 흘러내려온 냇물에 따라 신성한 설산을 향해 다가갑니다. 찻집을 지나가면서 까다로운 등반이 시작되는데 신폭은 카와꺼뽀붕의 남쪽에 위치하여 수백길 낭떠러지를 따라 쏟아내리는 광경이 압권입니다. 티베트인들은 우붕 신폭의 아래서 목욕하는 것으로 심령을 깨끗하게 씻는 수련이라 여기고 마음으로 성수로 삼아 폭포를 세바퀴 돌면 평생의 죄업을 씻을 수 있다고 믿고있습니다. 신폭이 위치한 지점은 해발 3400미터이며 매년 여름이면 매리설산의 빙하가 녹아 한가닥 물줄기로 쏟아져내리면서 만필의 비단처럼 유장하게 흐르는데 전설에 의하면 신폭의 아래에 서 있으면 악한 이들에게는 한방울의 물도 묻지 않는데 선한 이들에게는 움직이는데로 무지개가 따라간다고 전합니다. 신폭의 경치는 계절에 따라 변하는데 우기나 봄과 여름이면 빙설이 녹아 폭포의 수량이 불어나 그 풍경이 더욱 웅장하며 지면에 떨어지면 다시 솟구치듯이 튀어오르는 폭포수가 장관을 이룹니다. 물이 마르는 가을과 겨울의 폭포는 물줄기가 가늘어지는데 산바람 한결 지나가면 가볍게 흔들리면서 비단처럼 내리거나 거의 벽에 붙어서 내릴때는 천변만화하면서 가까이서 보면 마치 명주가 흘러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순례자들은 폭포 아래 담지로 뛰어들어 서로 다투어 목욕재계하고 음용도 하며 심지어 병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간다고들 하니 신에 대한 무한 경배는 거저 순박할 따름입니다. 7,8월은 우기라서 비가 잦으니 피하고 한겨울은 너무 춥고 물도 메마른데 그나 모두 얼어붙어 볼품이 없다하여 이 때를 피한 4월-6월 그리고 9월-11월에 가면 적절하다고 합니다. 상우붕 마을 숙소로 돌아오는 길. 다시 진눈깨비 흩날리는 바람속에서 어린 아이들이 좁은 공터에서 공놀이를 합니다. 바람도 다 빠져버린 너들한 공으로 발길질 하며 놀다가 지나가는 우리를 보고 손바닥을 벌리며 다가옵니다. 코를 훔친 자국이 선명한 언듯 탄듯한 작은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겸연쩍게 머금고 애처로운 눈빛을 하는 동네 아이들. 히말라야나 남미의 고산마을에서 어김없이 보던 같은 얼굴들을 여기서 다시보니 느낌이 새롭습니다. 그만큼 세상의 오지에 와있다는 실감이 들게 하는데 그들의 가난을 감히 우리가 구제해줄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지고 있던 모든 주전부리들을 내어줍니다. 예상치않던 전리품을 얻고 마냥좋아하는 아이들. 행복이란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듯 합니다. 저녁밥을 짓는 상위뻥 마을의 굴뚝마다에는 연기라 아스라하게 피어오르고 여정을 마친 길손들은 긴 그림자를 이끌고 객잔으로 꾸역꾸역 들어 갑니다. 아무도 없는 인색한 화력의 난로가에 모여앉아 향좋은 보이차 한잔으로 어두워지는 창밖을 아무 생각없이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물끄러미 한참을 응시하고만 있습니다. 바람은 더욱 세차고 눈발은 하나둘 더 늘어가는데 틀어놓은 문명의 이기속에서는 격에 어울리지 않는 팝송이 잔잔하게 흐릅니다. 이별의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