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머무는 산. 아우상가테. 그 길위에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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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모험이란 불확실한 가능성과 운명과 우연에 모든 것을 맡기고 인연의 고리를 끊은 채  안개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시도가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자신감과 그 과정에서 얻게되는 그 엄청난 만족감과 자부심으로 그 모험을 정당화한다고 했습니다. 남미 페루의 잉카 트레킹이야 산 좀 다닌다는 사람들이야 모두 알고 있고 꼭 한번 해보고 싶은 동경의 대상임이란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산타크루즈 트레킹하면 모두에게 생소하게 여겨질텐데 우리 팀은 이 시그너쳐한 종주를 해내고 이구동성으로 페루비안 안데스를 제대로 보았노라 했습니다. 그 후 이어진 모험의 여정인 월드 100대 트레킹을 완주하기 위해 동행과 함께 밟았던 미답의 트레일들. 정열과 혁명의 나라 볼리비아 라 파즈에서 볼리비안 안데스의 양대트레킹 Condoriri 트레일과 El Choro 트레일과 티티카카 호수의 태양의 섬(Isla del Sol) 종주 트레킹을 완주하고 페루로 다시 넘어가 깊은 협곡인 콘도르의 성지 꼴카 캐년을 종주하고 마침내 이번 여정의 마지막 행선지인 페루비안들의 마음의 지주이자 그들의 신과 정령이 머무는 산이라고 지금까지도 숭상해오는 아우상가테 마운틴 종주 트레킹을 위하여 틴키(Tinke)라는 작은 산촌을 밟았습니다.  종주를 시작하는 마을 끝쪽 들머리로 들어서니 길 안내자 겸 마부와 말한마리씩 배정받고 짐을 꾸려 대망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도보와 승마를 합한 형태로 종주를 하는데 이것으로 조금은 지쳐있는 내 육신에게 배려하는 차원도 있지만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않아 허락된 4일간에 무지개산까지 마치기 위해서는 승마 트레킹과 도보 트레킹의 조합이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마을길을 벗어 나는 동안은 걸어서 가는데 이미 눈앞에 다가온 성산. 비록 비구름에 가려져 산자락들만 넓게 보여주는데 그 위로 솟아올라 케추아족들에게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숭상받아온 거룩한 산세가 충분히 상상되고도 남습니다. 그런 연유로 또한 아우상가테 산은 정상등정을 불허하며 다만 오늘의 우리처럼 산군 가장 가까이서 4천에서 5천 고개를 넘나들며 에둘러 걷는 것만이 가능합니다. 이 산은 잉카인들이 정착하기 이전부터도 기복 신앙으로 숭상받아온 장소로 오늘날 까지도 그러한 전통은 남아 있습니다. 매년 5 월말 경이면 Cordillera Vilcanota의 반대편인 Sinaqara Valley에서 개최되는 Qoyllur Rit'I Festival은 주목할만 한데 이 축제는 해마다 만 명 이상의 순례자를 불러 모으고 산의 정기를 구하고 신의 강림을 기원합니다. 물론 이 때를 맞춰서 트레킹을 계획한다면 이런 귀한 볼거리를 접할 수 있겠죠!    주위가 점점 어두워지며 비가 내릴 조짐. 말을타고 신속히 이동하자고 합니다. 그동안 걸어오면서 나름 내 말과 친숙해지려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며 일심동체를 꾀했으나 모르겠습니다. 저놈이 어떻게 나를 받아 줄지.. 마부는 앞서서 저만치 가며 빨리 오라고 독촉은 하는데 이 놈은 충청도 출신인지 느릿느릿 한없이 여유를 부리며 길섶의 풀을 뜯어먹기 까지 합니다. 안되겠다 싶어 옛날 배운 솜씨로 양발 뒤꿈치로 그놈의 옆구리를 차며 끼랴하고 고삐를 흔들어 봤으나 요지부동. 그래서 고삐의 끝을 말아 엉덩짝을 매섭게 후려치니 그때서야 제법 달리기 시작합니다. 역시 맞아야 말을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시간을 종종걸음으로 이동하니 점심먹을 만한 야영장이 나옵니다. 수세식 화장실이며 수도 시설등이 제대로 갖춰져 있었지만 막상 들어가보니 폐가였습니다. 여름 짧은 한철 빼고는 늘 빙점 이하의 기온인데 수도관을 관리하려고 그랬는지 물이 나오지 않는데 그들의 짧은 소견에 투덜거리며 목동들이 거쳐하는 셸터에서 비를 피해 점심을 끓여 먹습니다. 이들 목동들에게도 문명의 바람은 불어와 비록 허물어가는 토담집이지만 태양열 집전판을 설치하여 조명과 난방은 가능하게 해두었습니다. 4천 이상 고원에서만 살아가는 라마와 알파카들이 초원에 가득합니다. 방목해 키우는 그들을 돌보는 목동들이 산자락에 흩어진 동물들과 함께 있는데 바람을 피하기 위해 세워진 돌무더기 참호들이 이색적입니다. 털모자에 또 그 위에 중절모를 쓴 채 이 모진 안데스를 넘어오는 찬바람에 그저 돌담하나 세워놓고 버티는 그들이 안쓰러워 위스키 한잔에 담배 한개피 전해주기도 해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무슨 이 모진 자연앞에 맞서 싸우는 해결책이 되겠습니까만 적어도 그리함으로써 불편한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게 하려는 또 다른 내 이기심의 발로겠죠.    비는 개고 이제 부터는 다시 말에서 내려 내 두발로 걸어 고개 하나를 넘어야 합니다. 내리막길이 깊게 이어지며 제법 가파르거나와 우측은 수백길 낭떠러지입니다. 마침 엉덩짝도 쑤시고 불편하여 차라리 걷고싶어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있게 걷는데 여기서 풀어놓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좌로는 아우상가테 설산군이 몇갈래로 빙하를 풀어내리고 그 끝자락에는 물빛 고운 호수들이 받쳐주고 있습니다. 우로는 화산지역처럼 산이 풀한포기 없이 황토로 덮여 유황내음을 풍기고 있는데 그 아래 기슭에는 연록색 이끼들이 무성하게 깔려있어 마치 지구 태초의 신비한 모습을 보는듯 했습니다. 이런저런 풍경에 취해 걷다보니 어느새 해는기울어가고 오늘의 야영장에 도착했습니다. 성산의 빙하 한자락이 호수에 빠질듯 이어져있고 드넓은 초원에 물새들만 총총거리며 이방인의 침범에 뭐라고 조잘댑니다.    텐트를 치기 위해 장소를 물색해봤으나 모두 습기와 물이 고여있는 곳이 대부분인지라 살짝 언덕을 걸치고 있는 헛간같은 목동들의 대피소로 가보니 쓸만했습니다. 초가 지붕은 한쪽이 뻥하니 구멍이 나있지만 텐트를 덮고 자기로 작정하고 그저 큰비나 내리지 말기를 빌며 이부자리를 마무리 하고 식사 준비를 합니다. 목동들이 밥을 지어먹던 자그마한 아궁이가 만들어져 있어 불이라도 지펴볼 양으로 나무가지들과 지푸라기를 모아 몇번 시도해봤으나 젖은 이것들을 불붙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냥 버너로 불붙여 라면 한그릇씩 삶아내서 볶은 김치 한통으로 식사하면서 곡차한잔 곁들여 서로 부딪히며 성산아래 첫밤을 그렇게 맞이합니다. 약간 어지러운 정도의 고산증이 잦아든 후 뚫린 구멍으로 올려다 본 밤하늘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은하수를 흐르는 밝은 별들이 우리들 눈동자를 가득 메울 정도로 채웁니다. 별자리를 확인하는 그 순간 사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유성을 발견하고 우리의 소원을 빌기도 했습니다. 쏟아지는 별들과 함께 빗방울도 들어오고 세차게 물흘러가는 소리에다 간헐적으로 우르르쾅쾅 들려오는 빙하의 붕괴소리. 이방의 밤이 잠못드는 동지달 기나긴 밤이 되어 수없이 깨기를 반복하다가 더 자기를 포기하고 새벽 두시에 일어나 이글들을 씁니다. 초가에 고인 빗물이 여기저기서 방울되어 떨어지고 한번씩 내 이마에도 떨어지는 빗방울을 훔쳐내며 잠든 동행의 내놓은 얼굴위에 한자락의 타프로 가려주는 심산의 허물어진 돌집안의 밤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