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머무는 산. 아우상가테. 그 길위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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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내린 비는 이 4천 고지 캠프장에는 눈으로 내렸고 움막을 기어나온 우리에게 아침 선물로 주신 경악의 풍광. 온누리가 흰눈으로 채색되었고 이미 활동을 시작한 라마와 알파카들의 삶을 위한 이동이 그림처럼 그려지는데 그 하얀 눈길위에 밤새 떨며 우리를 지켜준 말들이 의연하게 서있습니다. 국물하나 끓여먹고 여장을 챙기고 길을 떠납니다. 설원을 지나 산을 하나 넘기 위해 고갯길을 한참 오르는데 앞에서 짐 실은 말을 끌고 가던 마부가 갑자기 나를 멈춰서게 합니다. 자던 곳에서 중요한 것을 두고 왔으니 되돌아 가서 가져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라하며 내 말을 타고 갔다 오라 했더니 그냥 발로 달리는게 빠르다며 상의를 벗어버리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이미 한시간을 걸어온 왕복길을 40여분만에 되돌아 온 그의 손에는 낡고 찌그러진 코펠같은 남비가 쥐어져있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포기하고 버려버릴 하찮은 물품이었지만 그에게는 그토록 소중했나 봅니다. 그렇게 소중함의 가치는 저마다 다 다를테니까요.    이 아우상가테 산 종주길은 5천 미터 고개를 두번이나 넘는데 오늘 그 중 하나를 넘습니다. 말을 타고 넘게 되니 고산증의 고통은 잊게되어 나름 여유있게 풍경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어 좋습니다. 빙하가 흘러내려 고인 호수들. 어떤것은 에메랄드로 어떤 것은 갈색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대 설원이 펼쳐지고 눈 쌓인 산들이 병풍처럼 휘두르고 있는데 이런 기가 막힌 풍경과 만나리라고는 상상을 하지 않은 터라 그 환희와 희열이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5,100미터 고갯마루에 올랐습니다.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걸출한 파노라믹 뷰. 사진으로 열심히 찍어 남길수 밖에.. 그런데 이 산정에서 허름한 작업복에 장화신고 곡괭이 하나씩 들고 휴식를 취해는 젊은이 둘과 만납니다. 우리가 올라오며 확인했던 트레일을 보수작업한 인부들이었습니다. 쮜꼬리만한 보수를 받고 이 오천의 설산에 길을 다듬는 왜소한 깨추아 인들. 지니고 있던 간식거리 한주먹과 담배 몇가치 그리고 돈몇푼 쥐어주면서 그들의 수고를 감사해합니다. 그들이 땀흘려 다듬은 길이 선명하게 눈위에 그려져 있는 장대한 설경이 내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새 솟아오른 태양은 온누리를 평화롭게 조금의 여백도 없이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이 길 위에 서면 다양한 야생동물들과 조우하는데 하늘을 덮는 거대한 콘도르의 날개짓이 일품이고 잉카인들이 콘도르 다음으로 신성시 하는 푸마와 비쿠냐 그리고 살쾡이등도 만날 수 있습니다. 잉카인들이 만들어 먹는 전통술 치차는 옥수수가 주정인데 이들이 이 치차를 마시기 전에 꼭 세방울을 땅에 뿌린 후 마십니다. 이 풍습은 그들이 숭배하는 수호신 콘도르와 푸마 그리고 뱀을 위해 축성하는 것입니다. 여태껏 푸마와 뱀을 본적은 없지만 이 산에서는 종종 푸마를 본다는가이드의 말을 듣고 열심히 눈밭에 나타날 그를 확인해봅니다만 대신에 매우 경악스런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냥 집에서 기르는 개인 모양인데 내 목전에서 벌어지는 그의 야성을 똑똑히 확인하게 됩니다. 무리에서 벗어난 낙타과의 야생동물인 비꾸냐를 뒤쫓던 털이 복슬한 그리 크지도 않은 개가 몇분동안의 생사의 필주 끝에 뒷다리를 물어버립니다. 그러자 고꾸라진 비꾸냐의 목덜미를 물고 마구 흔들어대며 숨통을 조이더니 가슴을 물어 헤치면서 심장을 꺼내 먹어버립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이 믿지못할 풍경. 저 개의 잔학함. 그리고 저 가련한 순한 비꾸냐. 피가 솟구칩니다. 점점 다가선 우리를 보고 산으로 어슬렁 거리며 피해가는 그 개를 향해 우리는 돌을 주어 던져봅니다만.. 아직도 숨이 멎지 않은채 바르르 떨고 있는 저 슬픈 눈망울의 비꾸냐가 얼마나 불쌍한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립니다.    오늘도 오후 부터 내린 비가 우박으로 다시 눈으로 변하면서 도착한 야영지는 온통 물바다 입니다. 어디 마땅히 텐트를 칠만한 곳이 없어 여기저기 명당자리를 찾아보는데 불쑥 나타난 이방인의 행동이 이상했는지 수십마리의 라마들이 호기심어린 눈망울로 다가와 나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캠핑장에는 그래도 굳게 문이 닿긴 매점이 딸린 현대식 화장실이 설치 되어있어 내심 이곳에서 하루밤 보내기로 작심하고 마부에게 준비하라 지시합니다. 쓸고 닦고 방수용 깔개 펴고 하는데 꼬로모자에 펑퍼짐한 치마입은 깨추아 아낙 하나가 들이 닥칩니다. 꼴에 직책이 많습니다. 그 순진한 라마와 알파카들을 관리하는 양치기이자 이 캠핑장의 관리인이자 매점 주인. 빅 딜에 들어갑니다. 눈바람 피해 매점 바닥에 텐트깔고 잘테니 숙박비 이외에 다양한 식료품을 팔아줄테니 어떠냐고.. 딜은 성공합니다. 그래도 우리를 못믿는지 때묻은 장부에다 먼지쌓인 선반의 몇안되는 물품들을 확인하며 리스트를 작성합니다. 그 물건들 다 합해봐야 입고있는 자켓 하나 값도 못미치는 것을.. 또 한번 웃게 만듭니다. 아무튼 눈보라가 휘날리는 매서운 날씨의 4,300미터 고도에서 이렇게 호사스럽게 하루밤을 보낼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이겠습니까! 싸구려 그들 독주에 빅딜로 산 맥주 섞어 버너로 끓인 라면을 안주삼아 한잔두잔 주고받으니 추위도 제법 녹아들어 깊어가는 밤이 그리 춥지도 외롭지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