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대표 부시 워크 타즈마니아 오버랜드 트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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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지구의 이방을 걷기 위해 타즈메니아는 호주에서도 매우 독특한 환경을 지닌 섬으로 특이한 식생은 물론 다른 곳에는 없는 동물들도 서식하고 있고 특히  남서부에는 원시 야생의 지대가 분포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두발로 걸으며 이들을 확인해볼 수 있는 북서부의 오버랜드 트랙(Overland Track)은 타즈메니아가 품은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구간입니다. 빙하 작용에 의해 빚어진 원뿔형의 바위산, 허물을 벗어내며 독특한 향취를 풍기는 유칼립투스 숲과 싱그러운 초원, 세계에 세 곳뿐이라는 온대우림 등 다양한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트레일로 호주에서 가장 깊은 세인트 클레어 호수(깊이 190m)에 이르러서 종주는 끝이 납니다. 성수기라 지정한 10월 에서 5월까지는 방문자가 한꺼번에 몰리는 것을 방지하고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일 출발 인원을 제한하며 트레킹 종주 허가증(유료)도 발급 받아야하고 북쪽에서 남쪽으로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종주 길에 제법 비지땀을 흘려야 하는 구간은 가파른 크레이들 산과 반 블러프 그리고 호주의 최고봉 오사(1,617m) 산을 오르는 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비에 젖은 산행인데 이 지역 연평균 강수량이 3백 미터에 이르니 많은 구간 나무 덱으로 길을 내 놓았다해도 비에 젖고 물에 잠기기 일쑤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연이어 추적추적 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림 기후라 한바탕 쏟아놓고 지나가는데 그 보상이라도 하듯이 비갠 후 목전에 펼쳐지는 맑고 투명한 풍경은 매우 드라마틱합니다. 마지막 빙하기의 빙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고원에는 호주 내륙에서 볼 수 없는 전혀 다른 식생들이 펼쳐 집니다. 곳곳에 흐드러진 버튼 그라스와 쿠션 플랜트 등 야생 식물을 비롯해 호주에서만 서식하는 고유종도 볼 수 있는데 캥거루와 비슷하지만 크기는 좀 작은 왈라비를 비롯해 고슴도치 처럼 생긴 바늘 두더지와 귀엽기 그지없는 코알라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자연 속에서 또 그 자연의 일부가 되어 타즈메니아의 독특한 기후와 환경에 적응해온 시간들이 모여 오늘의 이 풍경을 그려놓습니다.  블러프 산장에서 하루를 유하고 청아한 바람이 이어져 불어오는 아침 기류에 실려 길을 나섭니다. 본격적인 트레일에 들자 키 낮은 관목 지대와 버튼그라스가 빽빽하게 들어찬 초원이 펼쳐집니다. 종주 중 늘상 반가운 얼굴로 맞이해주는 버튼그라스는 꽃잎 가운데서 나오는 열매가 단추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초원을 지나니 오랜 세월동안 모이고 모인 크고 작은 호수를 끼고 이어지는 태즈메니아 특유의 신비로운 풍광이 더 가깝게 다가서고 인적 드문 원시림 속엔 삶의 길이만큼 두터운 이끼로 뒤덮인 숲이 청량한 기운을 뿜어냅니다. 타즈메니아의 오버랜드 트랙은 5박 6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80km를 걷는 트레킹 코스입니다. 완전한 백패킹 형태로 진행하니 고스란히 6일간 먹고 자고 입을 짐을 직접 본인이 메고 가야하는데 우린 또 한식을 고집하니 무게가 제법 묵직합니다. 잠은 우리네 대피소 같은 산장(Public Hut)과 야영지 텐트에서 해결하는데 가장 기초적인 시설만 제공되기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해야하니 체력과 야생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이들에게는 버거운 트레킹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버랜드 트레킹 코스는 선정한 기관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세계 10대 트레킹 코스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오버랜드 트레킹은 직접 땅을 밟으며 걷는 게 아니라 땅을 보호하기 위해서 거의 전 구간 설치해 놓은 데크로드를 따라 걸어야 하는데 실낱같이 뻗어 있는 트랙을 따라 나아가는 길이 독특합니다. 뿐만 아니라 진흙길은 오버랜드 트랙을 포함한 대부분의 타즈메니아 트레킹 코스의 특징인데 때문에 스패츠는 선택이 아닌 필수 장비로 여겨지는데 이처럼 이 천혜의 자연을 보호하고 보전하기 위해 그들은 일곱가지 원칙을 준수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LNT(Leave no Trace) 운동. LNT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미국 국립산림청과 환경단체의 주도 아래 시작된 슬로건으로 자연을 손상시키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자는 이 운동은 물론 타즈메니아 국립공원 전 지역에서도 적용됩니다. 사전에 계획하고 준비하기. 지정된 구역 탐방하고 야영하기. 쓰레기 확실하게 처리하기. 본 것 그대로 두기. 모닥불 최소화. 야생동물 존중하기. 다른 방문자들 고려하기 등등. 이처럼 세계 각국의 트레커들이 수긍하고 동참함으로서 타즈메니아의 변치않는 자연미를 느끼며 오늘도 우리는 진한 감동으로 걷습니다.  고도를 높일수록 키 큰 나무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고 키작은 관목들과 어깨동무하며 걷는데 갑자기 눈앞엔 하이얀 눈길이 펼쳐지며 시공을 초월한 다채롭고 이색적인 풍광이 눈에 잡힙니다. 광활한 초원과 이끼로 가득한 원시림과 보석처럼 빛나는 산중 호수들을 지나며 대자연의 품속으로 깊숙하게 들어서면  우리들의 아름다운 시간들도 함께 영롱하게 빛이 납니다. 다시 드넓은 초원 사이를 헤집으며 가는데 점점이 맑은 물 고여있는 호수와 그 뒤로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바위 봉우리들이 어우러져 장엄하고도 비범한 풍광을 선사하니 하루해가 어찌 저물어가는지 산중에서의 시간은 가늠할 수 없습니다. 특히 나흘째 키아 오라 헛까지 가는 길은 9km에 불과하지만 넘어야하는 펠리온 갭과 이 오버랜드 트랙의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 오사산을 추가 산행으로 다녀오면 거의 하루해가 넘어갑니다. 오버랜드 트랙을 찾는 트레커의 대부분은 이 오사산을 등반하는데 왕복 4~5시간이나 걸리는 녹녹치 않은 코스지만 타즈메니아 최고봉에 선다는 의미와 그에 대한 포상으로 주어지는 거룩한 풍경은 분명 남다를 것입니다. 평탄치만은 않았던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거대 바위와 함께 정을 나누며 한몸이 되어버린 이끼 덩어리와의 조화가 돋보이는 정상부의 풍광은 부드러우면서도 장엄합니다. 힘들여 올라와 얻게되는 역시 이 오버랜드 트레킹의 꽃이라 불리는 오사산의 풍경입니다.  번다한 일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만끽하는 이 삶의 여유가 우리에게 내려진 선물처럼 느껴지는 순간인데 초원과 너덜지대 계곡과 이끼 가득한 원시림 등 다채로운 풍광을 누비며 얼마나 걸었을까. 오랜 자연의 세월을 말해주듯 하늘로 높이 솟은 유칼립투스 군락이 트레커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멀리 조망되던 오클리산이 어느새 지척에서 한껏 선명해져 있습니다. 계속 남쪽으로 메마른 경엽수림과 탁 트인 버튼그래스 평원을 지나 세인트클레어 호의 나르시스 헛까지 소풍나선 초딩처럼 신나게 걸어갑니다. 이제 종주는 남반구에서 가장 깊은 이 천연호수에서 보트 크루즈로 마무리됩니다. 선창가에서 배를 기다리며 물가에 앉아 마지막 아껴둔 밥에 라면을 끓여 점심을 나눕니다. 밀린 숙제를 일시에 폭풍처럼 마쳐버린 이 홀가분함. 그래서 백팩킹 종주는 이런 맛에 하나 봅니다. 보트에 승선하니 맑은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며 우리의 기억처럼 오버랜드의 풍경들도 시야에서 멀어집니다. 호반을 가르는 보트에 몸을 기대어 가는데 종주를 마쳤다는 안도감에 나른해지면서 지나온 시간들이 꿈처럼 아른거립니다. 호수에 비낀 바위 산군들이 무척 화려한 시간입니다. 잠시 잊고 살았던 문명의 세계로 돌아오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도착지점인 신시아 호수 만에 있는 세인트 클레어 호수 방문자센터와 그 부속 건물들이 낯설고도 왜소하게 여겨집니다. 우리같은 트레커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대다수 관광 목적으로 찾은 방문객들 인파를 헤치고 종주를 마감한 이들을 배려한 기념 촬영 장소에서 기록을 남기고 우리들의 여정은 끝을 맺습니다. 길이란 것이 이어져 끊이지 않듯이 나의 이 트레킹 여정은 간단없이 이어집니다. 영겁의 세월이 휩쓸고 간 땅을 걷는 특별한 여행. 그곳에서 대자연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사람과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산길 호주의 오버랜드 트랙. 그 신비롭고도 경이로운 풍경 속에서 지낸 행복한 기억을 품고 다시 또 다른 지구의 이방을 걷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