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안 드림을 품고.. 1. 카우아이섬의 칼랄라우 트레일.

세상에서 모여든 트레커들이 호놀룰루에 여장을 풀고 시차를 극복하지 못한 우리들처럼 와이키키 해안의 파도도 잠들 줄을 모르고 밀려왔다 밀려가는데 아직 여명의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는 시간에 여장을 꾸립니다. 5시 비행기로 칼랄라우 트레킹을 위해 카우아이 섬으로 날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른 시간이 아니면 오늘 일정으로 잡힌 칼랄루아 트레킹을 완주하기가 버겁기 때문입니다. 6시를 넘어서 카우아이 섬의 제일 큰 도시 리후에에 내려 이것저것 1박 야영을 위한 준비물을 마련하고 한 시간 정도 더 운전하여 칼랄루아 트레일이 시작되는 하날레이에 당도하여 트레킹을 시작하는 시간이 늦어도 9시. 그래야만 10시간 내외가 요구되는 길을 완주하여 그림 같은 칼랄루아 비치에서 야영준비를 하고 저녁이라도 따시게 지어먹을 수 있으니까요.    하와이 제도의 최북단에 자리 잡은 카우아이는 네 번째로 큰 섬인데 '정원의 섬'이라는 별칭이 참 어울리는 곳으로 가장 먼저 생성되었고 크게 연록색이 매력적인 계곡과 뾰족한 산, 깎아지듯 솟아오른 기암절벽들로 가득한 산군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매혹적인 미를 발산하는 해안선으로 나누어 감상할 수 있습니다. 와이메니아 산군으로 가면 영겁의 세월의 흐름 속에 다듬어진 열대 우림과 아름다운 지류를 형성하여 흘러가는 강물들, 태초의 신비를 품고 그림처럼 낙하하는 계단식 폭포들이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우리가 감히 상면을 요청한 칼랄루아 해변 같은 카우아이 일부 지역은 보트를 타거나 헬기를 타고서야만 접근할 수 있으며 이곳에서는 우리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치명적인 미려한 자연 경관을 선사합니다. 이런 천연의 수려한 경관을 즐기는 이 외에 적당한 모험심을 품고 일탈의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는 카우아이는 이채로운 아웃도어 어드벤처를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를 헤치며 항해하는 와일루아 강의 카약킹이나 레프팅, 포이푸 비치의 스노클링과 스쿠바 다이빙, 코케에 주립공원의 와이미아 캐년 트레일을 걷는 하이킹을 빠트릴 수 없으며 캐노피 짚라인 줄타기로 카우아이의 경이로운 계곡을 날아다니며 느끼는 그 짜릿한 전율. 일상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삶의 에너지를 충전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지상 낙원입니다.   하와이 칼랄루아 트레킹의 시작. 케에 비치의 트레일 헤드에서 힘찬 구호와 함께 무사하고 행복한 트레킹이 되기를 소망하며 첫발을 내디딥니다. 칼랄루아 트레일. 편도 18킬로 왕복 36킬로미터(22마일)의 해안 절벽을 따라 왕복으로 걷는 길로 오로지 발길에 의지하여 그 장엄한 자연의 풍광을 볼 수 있는 세계 가장 아름다운 트레일 중 5번째 이자 가장 위험한 길 8위에 랭크된 죽기 전 꼭 한번은 가봐야 하는 트레커들의 로망입니다. 트레일의 종착지는 칼랄루아 비치. 이곳은 계절적 제약이 따르는 카약이외는 오로지 두발로 걸어서만 닿을 수 있는 곳이며 지명마저도 절벽이라는 뜻의 Na Pali 코스트를 걷는 길인데 거저 수사적 의미가 아니라 수천 길 낭떠러지를 아슬아슬하게 에두르는 길이 연이어진답니다. 이 장대한 길을 걷는 내내 한편에는 끝없이 펼쳐지는 고혹적인 코발트블루 바다가 한편에는 문호 마크 트웨인이 “태평양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찬미했던 장엄한 와이미아 캐년이 시야를 가득 채웁니다. 화산작용으로 빠져나간 용암 때문에 대협곡이 만들어지고 수 억년세월동안 파도가 깎고 눈비가 누르고 바람이 다듬어 이러한 비경을 만들어냈답니다.   케에 비치를 내려다보며 산행을 시작하는데 울창한 숲길을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이 가는데 시원한 수풀이 품어내 주는 피톤치드가 가득 풍겨오는 축복의 길입니다. 하와이의 겨울 시즌에 속하는 2월은 우기로서 비가 예상되는데 지구의 환란인 슈퍼 엘니뇨 이상기온으로 청명한 날씨가 이어진다고 원주민들이 한숨과 함께 토로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걷는 길 비가 오지 않아 좋기는 하지만 먼 지구의 장래를 위한 생각까지 미친 순간에는 함께 한숨을 길게 내쉬어야 했습니다. 초반 하나카파아이 해변까지의 3킬로미터 구간은 일반 관광객들도 다녀오는 길인데 길섶에는 불의 꽃 오히아가 우리를 반겨주고 자연 상태로 나무에 매달려 있는 과실들도 풍성한 참으로 여유있는 길. 넉넉한 길입니다. 초반 9킬로미터를 걷는 구간에는 두 가지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하나는 초반 이어지는 3km의 진흙탕 길. 우기가 아니더라도 시나브로 뿌려대는 소나기가 고여서 훍 길이 되어 참 불편하고 힘이 듭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카파아이 계곡을 건너는 일입니다. 우기에는 계곡물이 범람하여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는 두려운 곳입니다. 열대 수림들이 울창하게 이어지고 일행들은 열심히 재잘거리며 잰걸음을 더하는데 갑자기 물방울이 떨어지는 느낌에 잠시 어두워진 하늘을 보니 커다란 야자수 잎들 사이로 비가 뿌려집니다. 잠시 어떻게 대응을 할 것인가 주저하며 배낭을 내려 방수복을 챙기려는데 이내 햇살이 드는 것 같아 다시 하늘을 봅니다. 거짓말처럼 맑아졌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습니다. 카우아이의 연중 기온은 거의 변함이 없고 바다 수온 또한 내륙과 차이가 없는데 22~28도를 유지합니다. 연강수량은 내륙이 10미터에 달하는 반면 해안 지역은 40센티미터로 훨씬 적으며 주로 비는 밤에 많이 내리고 열대 우림 기후의 영향을 받아 낮 시간에는 어쩌다 한번 씩 소나기가 내립니다만 거의 더위를 잠간 식혀주고 지나가는 정도며 이때는 어김없이 영롱한 무지개가 은총처럼 펼쳐진답니다. 카우아이를 산뜻하게 해주는 일등 공신이 있다면 바로 무역풍인데 소슬한 미풍이 습한 해안을 말려주고 트레커들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어주고 해안 모기들마저도 쫒아내 주기 때문입니다.   곁에서 따라오며 들락날락 모습을 보여주던 바다가 몸을 숨기는 하나카파아이 계곡에 들어서고 맑은 물에 잠시 땀을 닦아내면 하나카피아이 비치로 연결되는데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한시름을 풉니다. 정신없이 서두른 아침 일정에 쉼표도 찍고 재대로 채우지 못한 위장에 간식거리로 보충을 시켜줍니다. 정신을 차리고 아직도 시작단계에 불과한 이 지점에서 너무 지체할 수 없어 일행을 독려하며 산행을 이어갑니다. 이제는 끝없이 이어지는 오름길. 모두 말수도 적어지고 깊고 가픈 숨결 소리들이 들여옵니다. 그 힘든 노정을 조금이라도 들어줄 마음으로 우스갯소리 하나 진하게 풀어내니 끊겼던 웃음소리가 카우아이의 산하를 공명하고 돌아옵니다. 하루를 꼬박 걸어 칼랄루아 비치에서 야영을 하고 또 다시 같은 되돌아와야 하는 여정. 그 이틀간 먹고 자고 마셔야 할 것들을 모두 메고 가는 녹녹치 않은 고행의 길. 그러나 수반되는 그 자연의 장엄함을 보면서 얻는 힐링이 충분한 기쁨으로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한참을 무심하게 오르다 보니 통제 철문이 쳐진 24km 나팔리 코스트가 시작되는 고개를 넘게 됩니다. 스페이스 락이라고 명명된 돌출 부분이 있고 여기서 왔던 길 갈 길을 되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봅니다. 문득 시계가 밝아오는 듯한 느낌. 이제 광활한 협곡이 별안간 나타나는데 날카로운 능선이 파도를 타며 푸르게 펼쳐지고 영화 킹콩이나 주라기 공원 등을 촬영한 원시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자연의 대 서사시가 써지는 곳입니다. 열심히 그 숲을 헤쳐 나가니 산허리 돌아가는 바위 위에 서서 풍경을 바라보니 오른 편으로는 침잠한 태평양이 옥빛으로 누웠고 해변에는 부드럽게 하얀 파도가 모래톱을 핥고 돌아가고 마치 물들인 손톱을 깎아 던져버린 것 같은 카약들이 형형색색으로 아스라하게 떠있습니다. 달음질치듯 하산하여 이르면 이쯤이 절반을 걸은 9킬로미터 지점의 하나코아 계곡. 하나코아 폭포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시원스레 흘러내리는 곳입니다. 모두 신발들을 벗고 족욕을 통해 노독을 풀게하고 꿀맛 같은 점심을 먹습니다. 오늘 아침 준비해온 각자의 도시락. 여기에 즉석에서 끓여낸 어묵찌개가 더해지니 이 순간만큼은 황후장상이 부럽지 않습니다.    나그네의 여정은 멈출 수 없으니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떠나야 합니다. 칼랄루아 초반 9킬로미터의 길은 숲길이지만 오후가 되면서 시작되는 후반 길은 작렬하는 태양 볕이 순수한 자연의 시공에 조금의 여과됨도 없이 내려쬐기에 더욱 고통스러워집니다. 당연 물이 많이 먹히고 또 그렇게 충분하게 마셔줘야 합니다. 트레킹 동안에 7개의 내를 건너게 되어 수원지로서는 충분한데 산양이나 야생동물의 배설물이 섞여있어 반드시 정수제를 풀어 마시기를 권장합니다. 몸의 중심은 흔들려도 하중의 느낌은 두 발에 다 모여들고 많이들 지친 모습이 역력한데 차라리 구름이라도 가려주고 비라도 뿌려줬으면 하는 이율배반적 발상이 드는 것은 그만큼 혹한 더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한결 씩 불어주는 태평양을 건너온 바람과 좌우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그 아픔을 치유해주기도 한답니다. 명산은 험산이고 명경보러 가는 길은 험로임은 당연한 일인데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이유는 마지막 얻는 트레킹의 보상이 일시에 모든 아픔을 치유해주기 때문입니다. 마의 7마일 구간. 고소 공포증이 유별난 사람들은 차마 걷기가 두려운 발아래 천 길 절벽길이 가마득하게 이어지고 마치 수장을 시켜버리려는 듯이 파도는 밀려와 굉음으로 부서지니 한발 한발 내딛는 걸음마다 모골이 송연함을 느낍니다. 잠시 더위도 잊은 채 말입니다.    곡예를 하듯이 바위산을 타는 검은 산양들과 함께 춤을 추며 다다른 9마일 지점. 장대한 풍광이 펼쳐지는 전망대에 이르렀습니다. Honaho Hill이라 부르는 이곳에 서서 아무렇게나 던지는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드라마틱한 해안선 풍경이 굽이치고 있습니다. 인간의 발길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이곳. 우리는 기어코 고집스런 의지로 발을 디뎠습니다. 우리들 발아래 해안에는 이 나폴리 코스트를 관광하기 위해 타고 온 보트 하나가 떠 있어 평화스런 코발트빛 바다 풍경을 더욱 고요하면서도 조화롭게 해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저쯤에 내려다보는 칼랄라우 비치. 마침내 우리는 그 곳에 도달하였습니다. 인간의 발길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이 와이미아 산군을 품은 나폴리 코스트는 신비로움을 더해주며 미친 듯이 달려왔다가도 사장에 이르러 분을 죽이고 잔잔해지는 파도가 흐르고 아련한 해무가 깔려있는 그 한적한 해변에는 물새 한 마리 촘촘한 자국을 남기며 종종 걸음으로 달려갑니다. 한 쌍의 바다 밍크도 해변 모래톱에서 게으른 애정 행각을 벌이고 있고 어미 찾아 나선 야생 고양이 한 마리 뒤뚱거리며 모래 언덕을 넘는 평화로움이 잔뜩 묻은 풍경이랍니다. 바다 속으로 막 잠기려는 해는 마지막 붉은 빛을 조금씩 토해내며 이윽고 주변을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작별을 고하는 시간. 이 멀고 험한 길을 걸어 아무나 오는 곳이 아니기에 고즈넉한 칼랄루아 해변은 서산낙조에 비끼어 눈부시도록 아름답습니다. 이 길의 마지막 종점에 나팔리의 내밀한 속살을 숨겨놓은 칼랄라우 비치. 인간의 손으로 결코 그릴 수 없는 풍경화 하나 화폭에 가득 펼쳐놓은 해안 비경이 눈에 잡힙니다.    그 위에 서면 영혼이 불러주는 뚜렷한 영감이 떠오르고 그 길을 걸으면 변화무쌍한 이어짐으로 많은 상념에 젖게 하는 칼랄루아 트레일. 주라기 시대가 아바타 시대가 길마다 펼쳐지는 아름다운 길로서 깎아지른 절벽이 내 발길을 따라 가니 이 길에서 얻는 행복은 무한하다 하겠습니다. 태초에 빚은 자연의 모습으로 격한 산군이 펼쳐져 이어지는 해안 길 나팔리 코스트는 하와이의 자랑이자 하와이의 또 다른 면목을 지닌 곳입니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바다를 향해 뻗쳐 나간 해안선이 극치의 풍경을 만들었는데 숱한 세월동안 신의 손길에 깎고 다듬어진 도전의 길이기도 합니다. 등산은 도전입니다. 도전은 그 목표를 이루었을 때만이 성취감이 충만한 것이 아니라 그 도전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니 비록 이 길을 완주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결코 낙심할 일만은 아닙니다. 남겨둔 동행들에 대한 안타까운 소회가 이는 순간입니다.   겨울 하와이도 시간의 섭리는 거스를 수 없는 법. 6시가 넘으면 일몰이 시작되고 밤이 찾아옵니다. 휴식을 취할 틈도 없이 부지런히 텐트를 치고 이부자리를 만들고 한쪽에서는 저녁상 차림에 여념이 없습니다. 어느새 해는 지고 어둠도 짙어져 가는데 모두 이마에 램프 불을 밝히고 둥글게 한자리에 모여 앉았습니다. 저녁 정찬을 즐기는 시간입니다. 힘들게 지고 온 삼겹살 구이에 김치까지 덤으로 구워 코펠 밥에 돌이라도 소화시킬 것 같은 식성으로 식사를 하는데 멀리 조국에서 품고 온 원산지 소주가 곁들여지니 어느새 모두들 말들이 많아집니다. 자연보호를 위해 오픈 화이어를 지필 수는 없어 전등 빛으로 모닥불을 대신하고 나지막하게 추억의 노래들을 불러봅니다. 이따금 모기들이 몰려와 성가시게 굴어도 조금만 참고 있으면 바람이 불어와 해결을 해줍니다. 여기저기 야영을 즐기는 이 트레킹의 동행들. 이 미답의 길 끝에서 느끼는 그 감회를 저마다의 방법으로 기억 속에 아로새깁니다. 어께를 나란히 하고 밤바다의 모래톱을 걷기도 나무사이로 해먹을 치고 여유롭게 흔들거리기도 백사장에 앉아서 영롱한 밤하늘의 별을 헤기도 합니다. 고단한 몸이지만 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풍경이 너무도 소중하여 쉽게 잠이 들지 않는 칼랄루아 해변의 풍경인데 조심스레 땀에 젖은 옷을 그대로 입은 채 물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잠잠해진 바다에 누우니 어느새 파도도 내 곁에 와서 눕습니다. 바다도 마침내 내 곁에 눕고 세상 모든 것이 다가와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란히 누워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