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도 수려한 풍경. 돌로미테 Alta Via 1 종주 트레킹. 6

그리움의 시간이 장작불에 녹아들고.. 분주한 산장의 아침을 맞이하고 오늘도 이어지는 걸음의 축복. 그러나 오늘은 비늘과의 동물을 싫어한다면 매우 조심스레 길을 걸어야 합니다. Forcella Ambrizzola (2277m)으로 이어지는 풀밭과 좁은  돌길에는 도롱뇽들이 이리저리 폴짝폴짝 날아다니니까요. 헌데 지난 밤. 그들 만큼이나 달갑지 않은 불청객들 때문에 잠을 설쳐버렸습니다. 배드 버그(빈대)에게 몇군데나 물려서 긁느라고 선잠을 자서 아침이 무겁기만 합니다. 관리 책임자에게 지적을 해도 내 소유가 아니라서 그런지 이탈리안 특유의 무뚝뚝함인지 별 대꾸나 반응이 없습니다. 다음 게스트들을 위해 조치를 취하라 했는데도 멀뚱멀뚱. 아침부터 열받기싫어 나와버립니다. 산장에서 고개를 넘기 위해 가는 길이 또렷하게 이어져 있음이 보입니다. 완만한 경사로 2-3km 되는 거리. 벌써 차오른 햇살을 등에 지고 오르는 이마엔 어느새 방울방울 땀이 맺혔다가 고개 한번 떨구면  몇줄기로 나뉘어 얼굴로 솓아집니다. 방목된 소들의 침범을 막기 위해 설치한 특별한 문을 열고 고개를 넘으며 서로 기념사진을 찍어줍니다.  호수가 품은 라고 산장과 그 뒤에 버틴 거벽. 저 멀리 목가적인 산촌들도 평화롭게 누워있는데 그 위로 아침안개가 포근하게 덮어주고 있습니다. 또 그 반대편으로는 스타울란자 고개로 이어지는 산과 길 그리고 발아래 아득한 촌락과 옥색 호수. 신이 그린 풍경화입니다.    그런 감회에 젖어있는데 열심히 반대편에서 올라온 한 노년의 등산객이 인사를 건네옵니다. 답례로 말을 붙여 보지만 영어는 거의 구사할 줄 모릅니다.  그런데 본인의 나이가 80이란 표현은 해오니 참 놀라울 일입니다. 어쩌면 당연할 것도 같은 것이 산에서 나서 산에서 자라 산에서 죽어갈 돌로미테 사람들에게는 이 산이 삶이며 친구며 기대어 사는 의지 가지가 아닐런지...함께 기념 촬영을 몇 컷하고 그 노객은 왔던 길로 되돌아 내려갑니다. 우리도 슬슬 여장을 다시 챙겨서 그 분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는데 되돌아 보던 그가 우리를 확인하고선 황급히 되돌아 뛰어 올라옵니다. 그리고는 손끝을 다른 고갯길을 가르키며 따라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지도를 펴서 확인해보니 정말 태무심하고 노객을 따라 내려갔던 것입니다. 어제도 딴길로 들어 버렸었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그 벌로 다시 오르막길을 참회와 성찰로 올라야 했습니다.    알파인 슬로프에 대비된 푸른 목초지에서 Staulanza산장 이름과 동일한 스타울란자 고개를 넘는 좁은 바윗길을 따라 가면 돌로미테 종주 중 가장 드라마틱한 풍경을 내어놓게 되니 마음껏 즐기라고 산도 하늘도 권장합니다. Pelmo (3168m) 산 고봉을 바라보며 수월하고도 평화스런 길을 나폴나폴 바람이 전하는 노래를 들으며 종주길은 기쁘게 이어집니다. 동토에서 태어나 혹독한 기후속에서 버티며 생명을 유지하다가 이 짧은 여름을 불사르고 생을 마감하는 돌로미테의 야생화들.  고독한 산길을 지키던 이들이 낯선 산객들의 방문에 무척이나 기쁜지 그 작은 얼굴들로 요리조리 도리질하며 함빡웃음으로 환대를 해줍니다. 그 모습 슬프도록 너무 이뻐 가만 자세를 낮춰 이꽃 저꽃 머리들을 쓰다듬어 줍니다. 마냥 좋은지 더욱 머리를 흔들어대며 고운 향기를 내뿜어 주는데 그 향기가 우리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는 듯 합니다. 그 길로 스타울란자 산장까지 단숨에 내치고 생맥 한잔으로 나그네는 목을 축입니다. 그제도 어제도 너무 수월하고도 나태한 선택을 다그치기라도 할듯이 오늘은 콜다이 산장까지 치고 올라갑니다. 거대한 바위산 펠모산을 끼고 울창한 숲을 걷기도 하면서 또는 오르막 내리막 걸으며 알프스 산맥에 자생하는 식생들과 수인사하며 이어갑니다. 열심히 걷고걸어 산그늘이 드리워진 시각에 마지막 투혼을 발휘해 오르는 콜다이 산장 가는 길. 4백 미터의 마지막 고지가 지친 몸을 뒤로 잡아 당기는데 돌틈사이로 흐르는 찬물 받아 마시고 몸을 식히며 올라가 산장에 이릅니다. 무슨 죄 짓고 온것도 아닌데 조심스레 묻습니다. 방있냐고. 오늘도 로또 당첨입니다. 이 엽서에나 나올 만큼 예쁘고 아담한 Coldai 산장(2132m)에서 하룻밤 정을 쌓고 가게 되었기에 말입니다. 1968년 이래 같은 주인 가족들이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는데 정성을 들여 모든 것을 운영하는 것 같긴하나 너무 돈냄새를 많이 맡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수 없도록 눈쌀 찌푸리게 하는 몇가지 불만 요소들이 눈에 보입니다.     펠모산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콜다이 산장에는 모진 바람이 불어닥칩니다. 계곡처럼 모여진 산장어귀에 돌로미테의 모든 바람이 집결하는 듯 몰아치고 체감온도도 빙점으로 뚝 떨어집니다. 반소매 반바지 차림으로 노을을 보려고 나왔다가 벼락맞은 듯 황급히 실내로 다시 들어가 따스하게 지펴놓은 장작 난로 곁으로 바짝 다가가 앉습니다. 한없이 여유로운 산장의 시간. 자유롭게 풍광을 감상하고 그 풍경안에서 따스한 정찬을 맞이합니다. 밤도 함께 말입니다. 장작 난로의 포근함이 참으로 좋은 밤입니다. 그런 밤. 오늘 따라 그 사람이 유난히 그립습니다. 그 사람의 환한 웃음도 그 사람의 포근한 손길도 그 사람의 따스했던 체온까지도 말입니다. 하늘 한구석 타오르는 붉은 석양빛이 너무 아름다워서인지 강하게 옷깃을 여미게 하며 지나는 바람 탓인지 아니면 종반으로 치달은 백팩킹의 하중에 눌린 골반의 통증 때문인지 쌓이고 쌓인 노독과 심산을 떠도는 외로움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오늘 따라 불현듯 솟구치는 사무친 그리움. 헤어날수 없는 노스탈쟈에 한없이 빠져보는 센티멘탈한 황혼의 시간입니다. 그 핑계로 볼수록 신뢰가 가는 무쇠 장작난로의 매케한 불냄새를 맡으며 산장 가득 퍼지는 온기에 의지한 채 한잔 두잔 술에 취해 갑니다. 물병에 담아 여기까지 메고온 동행의 고량주까지 합해서 마시니 밤은 더욱 더 흔들리며 그렇게 속절없이 깊어만 갑니다. 음악이 흐르지 않아도 내 귓 전에는 그녀의 감미로운 음성이 들려오고 덧문을 두드리며 몰아치는 바람이 세차게 불면 불 수록 장작불의 심지는 더욱 오릅니다. 내 마음의 연정과 그리움도 함께 저 불처럼 타오르는 산장의 고즈넉한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