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돌길. 마요르카 드라이스톤 루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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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uc 마을을 벗어나 도로를 따라 걷다가 고개길 명당자리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급격히 꺾이는 산길을 치고 오릅니다. 무장을 단디하고 치고 오릅니다. 이길은 GR222 길입니다. 길섶 양편으로는 철지난 야생화들이 분홍으로 피어 출정을 환영합니다. 비에 젖은 나무들이 우거진 산길을 이리저리 휘돌아가며 분지로 들어서는데 철조망과 게이트를 치고 검문소가 있습니다. 산악경찰이 나서서 입장료를 내야한답니다. 6유로. 그 정도 값어치있는 길이야? 하며 기대를 품고 안개를 헤치며 오릅니다. 평탄하고 넓은 임도가 끝날 즈음 오른쪽으로 산을 치고 오르는 좁은 경사길이 시작됩니다. 오를수록 길은 가파라지고 돌이 많아지는데 물기를 먹으니 더욱 미끄럽고 위험합니다. 경찰의 경고. 산정 바위구간은 치명적이니 무리하지 말라던.. 헥헥대며 어렵게 경사길을 치고 오르는데 이놈들의 산양 가족 네마리는 우리 앞길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신이 나서 인도합니다. 이 지대는 온통 상수리 나무 군락지인데 좀 날씬하고 길쭉한 도토리가 지천으로 깔려있어 이 또한 실족을 야기하는 불안요인입니다. 빨간 페인트를 성의없이 찍어두고 길을 알리는데 그나마도 좀 선명하게나 하지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지 빛이 바래서 작부의 루즈처럼 분간이 어렵습니다. 다시 갈림길에 섰습니다. 정상으로 가는 두개의 길인데 좀 길며 느슨하고 좀 짧고 가파른.. 그냥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잠시 더욱 짙어진 비안개에 가려진 산하를 내려다 보며 생각을 해봅니다. 하루종일 이런 비오는 날씨라고 예보했는데 어차피 정상 풍경을 볼수도 없는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지.. 그것도 이런 치명적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잠시 회의적인 갈등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종종 이런 갈등의 시간을 가질때가 있습니다. 현실적인 선택을 요구받기도 하고 그래도 최선을 다하다보면 하늘도 감읍하리라는.. 일행들에게 다시 힘을 내서 오르자고 합니다. 단 10%의 완치 확률에 희망을 걸고 수술대에 오르는 암환자의 마음처럼 그 간절한 소망을 품고 오르는 것입니다. 설사 그 갈망을 이루지 못한다하더라도 그동안의 노력의 과정은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심을 알아준건지 하늘 한쪽이 살며시 열리며 희미하지만 분간이 가능할 정도의 산세를 열어보입니다. 바람이 더 몰아쳐서 저 비구름을 걷어주길 기대하면서 정상을 향한 순례를 이어갑니다. 길은 더욱 가파라지고 바람도 더 거세집니다. 이제 수목한계선을 지나고 너덜지대로 들어섭니다. 길의 표식도 눈에 띄지 않아 그저 정상을 향해 알아서 바위길을 개척해 오릅니다. 이제사 정상에서 내려오는 한커플에게 방향을 확인하고 길을 잡습니다. 거의 네발로 기어오르듯이 하여 마침내 정상에 도착합니다. 그나마 바위지대라 시야가 약간은 확보가 되니 기념촬영둘을 합니다. 이제 시장기가 몰려오고 바람을 등지고 점심을 먹습니다.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면서.. 그러는 동안 서너팀을 만나고 인사를 나누고 국적을 물어봅니다. 프랑스. 영국. 독일. 스웨덴.. 대부분 유럽에서 온 친구들입니다. International Hikers인 것입니다.  종주의 마지막날의 아침입니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비는 걷혔지만 바람은 아직 잠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환한 얼굴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나서는데 우선 고색이 창연한 Lluc 마을을 떠나기 전에 수도원 주변도 걸어보고 기념품 가게도 들러보며 여유를 갖습니다. Pollenca로 향하는 종주의 Ruta de Pedra en Sec도보길은 매우 아름다운 산책로입니다. 수령 100년이 넘는 떡갈나무들이 도열한 조용한 숲길을 따라오르면 정점에 서게되고 이곳에 서면 마지막으로 Tramuntana산군의 인상적인 산봉들을 모두 보게 됩니다. 이 지역의 산들은 점점 낮아지지만 벌집형태의 특이한 모습이라 새로움으로 다가옵니다. 그 후 하산길로 들어서고 탄광지역이었음을 알게해주는 마른 석재로 만든 오래된 건물을 통과하고 5시간 후에 최종목적지인 Pollença에 도착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종주를 마감합니다. 자축의 세리머니를 제각기 표현하고 숙소가 있는 해변리조트인 Port de Pollença로 이동합니다. 마지막 밤을 의미있게 보내기로 작심한 숙소는 항구 해변 팬션이라 밤바다의 풍경이 화려합니다. 활처럼 휘어진 포구는 불빛으로 찬란하고 생각나면 밀려와 철썩대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쌀쌀하지만 베란다 테이블에 앉아 와인으로 축배를 나눕니다. 그저 해안선이나 걸으며 힐링할 것이라 치부했던 마요르카의 드라이 스톤 루트(Dry Stone Route) 트레킹. 도전적인 석회암 산길을 오르내리며 매력적인 옛마을의 품에서 쉬어가는 종주길이었습니다. 머지않은 미래. 이 코로나 사태가 끝나는 그날. 나의 영원한 아름다운 동행들과 함께 다시 찾아와 또 한번 걷고싶은 정말 멋진 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