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의 변방 에크랑 국립공원. 그 길 위에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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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차려진 아침을 먹고 걸음의 축제를 이어갑니다. 지난 밤에는 매운 것 못먹을까 싶어 만들어준 간장 떡볶이의 댓가인지 한상 차려줍니다. 그래야 손이 가는 것은 항상 정해져 있지만.. 짧은 시간 정이 들어 문밖까지 나와 손을 흔들어주는 그 친구를 뒤로 하고 Vallette(2,670m) 고개를 넘어 더욱 에크랑의 심장부로 들어가 Chaumette(1,790m) 산장으로 향합니다. 그 후 길은 산악마을 La Chapelle로 이어지는데 몇개의 고개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부지런히 걸으면 GR54의 남쪽으로 들어가 더욱 산세가 수려한 풍경속으로 인도합니다. Vaurze(2,500m)를 넘어 생경한 La Desert(1,255m)의 사막같은 지형을 건너 예쁜 마을 Villar-Loubière을 지나고 그림엽서에나 나올법한 Souffles(1,975m) 산장 테라스에 앉아 차한잔의 휴식과 점심을 해결하며 알프스 변방의 풍치에 빠져듭니다. Gouiran 패스를 넘으면 Vallonpierre(2,607m) 고개까지 대체적으로 평탄한 계곡을 따라가는데 이곳은 사진을 찍지않고 지나가기에는 아까운 에크랑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로 회자되는데 Sirac(3,441m)산의 서쪽사면의 전망은 놀랍고도 인상적입니다. 더불어 발롱피에르(Vallonpierre) 계곡과 샤브네우(Shbournéou) 계곡의 풍경 또한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데 이길이 꽃피는 계절이었으면 하고 아쉬움의 상상을 해봅니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는 포기해야하는 것이 숙명이거늘 어찌 두가지를 모두 취할수 있겠습니까. 고색 창연한 Valsenestre(1,300m) 숙소에 들어 야외 테이블에 앉아 저녁밥 주문해놓고 지는 노을 바라보며 한잔의 와인을 나누는 늦은 오후의 여유를 만끽하는 우리의 자화상. 트레킹 여행의 기쁨입니다.  Valsenestre(1,300m)에서 종주의 마지막 밤을 보내면 귀에 감기는 숲속 새들의 노래소리가 우리를 깨우면서 알프스의 아침이 열립니다. 상큼한 기류와 맑은 새소리가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만년설산에서 발원한 계곡과 폭포 그리고 시냇물소리는 귀를 맑게 하고 인기척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한적한 시골 마을은 영혼을 정갈케 하고 더없이 높고 푸르러 감동마저 안기는 코발트빛 알프스의 하늘은 마음을 함께 정화시켜줍니다. Muzelle(2,530m) 고개를 향하여 꾸준히 올라 루비텔 호수(1,530m)를 거쳐 La Danchere로 하염없이 하산하여 Bourg d’Oisans(720m)으로 입성하면 종주는 완성됩니다. 길을 알리는 이정표는 구간마다 잘 정비돼 있어 길을 잃을 우려는 없지만 선택경로가 있으므로 내가 어떤 길을 걸을지에 대한 선택과 숙지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초원위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알프스의 소들과 양떼들 그리고 푸른하늘 위로 유유히 흐르는 하얀 구름 또 그 뒤로 펼쳐진 설산들. 알프스의 전형적인 목가적 풍경입니다. 에크랑 국립공원은 어디를 가든지 빙하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계곡을 흘러 초원을 적십니다. 이제 서서히 고도를 올리며 모습을 드러내는 봉우리마다 만년설과 크고 작은 빙하가 매달려있고 눈으로 뒤덮인 험준한 계곡에는 가을이 곱게 내려앉았습니다. 이 다채로운 경치를 바라보며 영원히 이곳에 머물고 싶다는 욕심도 잠시 부려봅니다.    고개마루에 올라 숨을 돌리며 간식을 먹고 있는데 2명의 젊은이들이 쫒아올라와 함께 쉬어갑니다. 남루한 행색이 단번에 종주팀인 것이 감지됩니다. 백팩킹으로 오늘이 9일째라니 아주 빠르게 진행한 것이며 훌륭하다고 칭찬을 해주었더니 해맑은 미소로 답하고 급하게 달리듯 내려갑니다. 그런 그들을 또 다시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고.. 종주길 마지막 구간에 숨겨놓은 절경. 라비텔 호수까지 지겨울 만큼 내려갑니다. 너덜지대에 생겨난 호수는 주변으로 만년설로 뒤덮인 거대한 산이 도열을 하니 정말 환상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욱한 안개가 우리가 접근할수록 조금씩 걷히더니 호수에 다다를 때는 거의 벗겨지고 따뜻한 햇살 아래 매혹적인 물빛을 자랑합니다. 다시 구름안개로 덮일까봐 전망대에 멈춰서 신속하게 풍경사진 열심히 찍어댑니다. 이곳도 당일 산행로로 유명한지 많은 이들이 반대편에서 올라옵니다. 왁자지껄한 초로의 20여명 그룹 하이커들도 만나는데 단체 관광객처럼 보입니다. 늘 청년들만 보다가 늙수그레한 우리 또래들을 만나니 반갑기 그지 없어 한사람 한사람 모두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그러다 지쳐 바위위에 퍼지고 앉아 긴 한숨을 몰아쉬고 호수를 응시합니다. 생각해보면 이 GR54 에크랑 둘레길은 유럽을 두달간 돌며 세계 100대 트레일을 해나가는 이번 여정중에 별 기대를 하지도 않고 잡은 일정인데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매력에 빠지고 풍경에 취하고 만족감에 행복해했습니다. 이곳도 나의 영원한 아름다운 동행들과 다시 한번 제대로 즐겨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어질 GR5의 가장 수려한 구간 제네바 레만 호수에서 알피니즘의 산실 샤모니까지 이어걷기 위하여 제네바로 달려가야 함을 떠올리고 동행과 함께 힘찬 하이파이브를 하고 하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