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가는 길. 그 길위에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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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o. 나는 왜 산티아고로 가는 것인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는 무욕의 땅. 그 험난하고 장대한 길을 걸으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미처 보지못했던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다시금 생의 이정을 세워보는 길. 자신과의 끝없는 대화로 세상을 모두 품고 처음으로의 나로 되돌아가는 여정으로 천년을 이어온 힐링의 길이며 자족의 순례길이라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간 이 길을 걷기 위해 간단없이 모여들었고 오늘도 그 길 위에는 끝없는 인간띠를 이어 걷고있고 또 내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 숱한 사람들을 이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 서게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넷 검색에서 우연히 손끝에 걸려들었을 수도 이었겠고 이 시대에 가장 사랑받는 작가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의 연금술사나 순례자란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며 아니면 그저 지나치다 눈에 찬 방송매체들의 영상을 보며 꿈을 꾸었을 수도 혹은 그곳을 다녀온 이들의 SNS상의 넘치는 순례기들을 보고 나도 하고 욕심이 일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믿는이들은 남에게 보여주는 신앙의 깊이가 이걸로 가늠되어 진다는 체면이 깔렸었을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천년을 넘게 종교적 이유로 걷든 개인적 이유로 걷든 이 길을 30년 전부터는 일반인들이 특히 우리 한국 사람들이 저리도 열광하며 걷기 위해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나는? 나는 무슨 연유로 산티아고로 가려하는 것일까? 기실 나는 천주교인입니다. 그런데 흔히 말하는 날라리 신자라 할수도 있고 또 냉담중인 상태입니다. 그래서 더욱 냉담의 세월이 길어졌는데 과연 이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으며 얻을 수 있는 답은 있을까하는 희망같은 의구심. 빛바랜 내 신앙심의 색채를 다시 원색으로 채색하고 내 안에서 떠나간 신심을 다시 거둘 수는 있을까하는 기대로 어느정도 가슴 부푼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일단은 걷기로 작정을 하니 어서 하루라도 빨리 날아가서 걷고 싶었습니다. 오뉴월부터 구시월까지 가장 붐비는 적정시기를 비켜서 조금은 스스로에게 형벌같은 고통을 주며 자신을 꾸짖고 싶은 마음에 가능하다면 겨울 카미노를 걷고 싶었습니다. 그런 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일인 성탄절에 종주를 마감하고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미사를 참석한다면 아마도 내가 간절히 원하는 소망이 이루어지며 나를 감싸는 더욱 더 큰 감동이 몰려오리라 생각이 미쳤으나 그러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겠기에 아득한 큰 날숨을 쉽니다. 그러면서 무심코 달력을 펼쳐 한장씩 넘기다보니 문득 와락 시선이 꽂히는 부활절(Eater Day)이란 빨간 글씨. 부활이라는 의미가 새로운 시작과 탄생을 의미한다면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루트로 더 많이 알려진 성 야고보(St. James)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 당시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고난의 길을 걸었던 걸로 모두 알고 있습니다. 9세기경 ‘별들의 들판’이라는 뜻을 가진 스페인 북부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지역에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유럽 전역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걷기 시작했던 길입니다.   배낭을 꾸립니다. 그동안 순례길을 걷는데 필요한 모든 정보들을 규합하여 정리해놓은 점검표를 앞에 두고 말입니다. 가는 목적부터 어떻게 실행하며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하는 빼곡한 열거. 사실 어떤 것을 버리고 다시 어떤 것을 줍고 또 무엇을 비우고 또 무엇을 담으며 또 어떻게 걷고 무엇을 느끼고 어떤 결과를 얻겠다고 준비를 하고 다짐을 하는 자체가 무욕의 땅을 걷자고 가는데 반한 오히려 욕심을 부리는 이율배반적 행위가 아닌가? 다 버리고 비우겠다고 한 사람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 이리도 많으니 결국은 세속의 이를 버리지 못해 덧 뺄셈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집니다. 정갈한 순례가 되려면 온전히 비우고 아무런 생각없이 그리고 별다른 준비없이 그냥 훌훌 털고 떠나야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성찰같은 반문에 순례의 길을 걷기 위해 세세하게도 작성한 준비물 리스트를 보다가 그만 실소를 흘리고 맙니다. 알베르게는 별의 별 인종이 한 공간에서 함께 자는 것이 불편하다며 따로 호텔방으로 미리 다 예약해놓았고 멜리데 지역을 지나면서는 뿔뽀라는 문어 요리와 지나는 각 마을마다 오늘의 요리로 시켜먹고 끼니마다 찌개며 국을 포함한 호화스럽게 짜둔 한식단을 보면서는 더욱 큰 쓴웃음을 지우게 됩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짐을 줄이고 그냥 가장 기본적인 것만 챙겨서 그저 길 위에서 부닥치는 현상에 그 때마다 대응하며 걷자고 자신을 다독입니다.  진정 이 길 위에 섰다고 그리고 그 길을 완주했다고 내 인생의 모든 번민과 아픔과 갈등이 해결이 되거나 그에 대한 묘답을 얻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세상에 나가서 예전과는 다른 마음과 각오로 살아가리라고 다짐하는 마음을 품고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선택이 아닐까하는 자긍심을 지핍니다. 삶이던 사랑이던 신앙이던 아직도 흔들리지않을 향방을 잡지못하고 갈등하는 내 삶의 길. 지금의 내 자신 앞에 놓인 이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걷는 길. 그런 길이 되도록 신발끈을 동여맵니다. 찬비 잦은 북부 스페인. 종주동안 제법 비가 예상된다합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볼려고 해보면 그깟 그리 큰 문제도 아닐듯하고 오히려 자욱한 안개비에 젖은 산촌의 풍경은 운치가 더 할 터이고 차가운 비바람에 온몸이 얼어도 진정한 순례의 호젓함과 고독과 명상이 필요한 영적인 순례를 위해 여전히 눈까지도 예상되는 봄날 산티아고의 풍경속으로 들어가보렵니다. 제법 늦은 밤 마드리드 공항. 이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어께를 나란히하고 걸어가기 위해 먼 길을 날아온 아름다운 동행들을 맞이하여 잠 못드는 마드리드의 하루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서둘러 이른 시간 기차를 타고 팜플로냐로 달려갑니다. 언제였던가 싶은 아득한 옛날 완행열차 간이역에서 따뜻한 국물 후루룩마시며 먹던 역전 우동이 회상되는 추억속의 기차여행을 하며 한촌 들판을 무적소리 울리며 달립니다. 저녁 무렵에야 프랑스 남서부 스페인과 이웃한 산촌인 생장피에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에 도착하고 이 아름다운 소읍에서 장도의 순례길을 걷기 위해 출발하는 지점입니다. 저녁을 준비하는 소담스런 산촌마을은 가랑비사이로 가늘게 피어오르는 굴뚝연기가 수채화처럼 그려지는 풍경에 그저 가슴이 저려옵니다. 안개 자욱한 생장의 아침은 은은하면서도 힘있는 성당의 종소리로 시작합니다. 믿는 이가 아니라도 자연스레 마음이 경건해지고 옷매무새를 다듬고 그 종소리를 향하여 머리숙이게 합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돌다리를 건너 순례자 사무소에 들러 순례자 여권과 하얀 조가비 하나씩 구매하고 출발준비를 합니다. 친절한 요원의 도움말을 듣고 함께 기념촬영까지 해주고 우리에게 행운까지도 빌어줍니다. 괜스레 의기양양해지는 것 같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떠나면 다시 오지 않은 종주길. 모든 것이 만나자 이별인 길과 풍물과 그리고 사람들. 회자정리만 있고 거자필반은 없는 이 길의 숙명. 스치는 모든 것들에게 안녕을 묻고 또 안녕을 전합니다. 짙은 안개를 걷어내며 오래된 도시길을 걸어 농로를 거쳐 산길로 접어들어 이 종주길에서 가장 높은 1,500미터의 피레네 산맥을 넘습니다. 천년고도 ‘생장’에는 바스크 지방의 특색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사암 벽돌로 지은 바스크식의 아름다운 가옥들. 건물마다 이름을 새겨놓은 것도 바스크의 전통인데 언덕에 올라 한시름 풀며 바라보는 마을이 마치 그림같습니다. 성당의 종탑에서는 아침 미사의 종소리가 울리고 맑은 니베강이 마을을 가로지릅니다. ‘생장’을 벗어나 ‘운토’ 마을에 이르면 넓은 호밀밭이 펼쳐지고 야트막한 푸른 언덕에 그림 같은 집들이 군데군데 들어선 모습은 가히 한 폭의 풍경화입니다. 이 지역은 고도여서 사람 살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었지만 유목민이던 현 거주자들은 자연 조건이 좋아 일찍부터 사람들이 정착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고원의 풍경에 빠져 걷다 보면 첫 번째 사설 알베르게인 오리손을 만나 짙은 안개에 젖어버린 우리들은 한 종지의 따스한 커피로 몸을 데우고 잔잔하게 흐르는 오래된 팝송을 음미하며 고단함을 푸는 휴식을 갖습니다. 안개가 걷히고 다시 순례자가 됩니다. 이제부터는 민가 한 채 없는 허허벌판과 가파른 산길만 있어 걷는 길이 힘겹지만 가끔 벗이 되는 것들이 있어 좋습니다. 군데군데 피어난 야생화 군락지에 노란 꽃을 피워내는 가시 박힌 나무가 온 산하에 펼쳐지는데 1,344m의 벤타르테아 언덕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서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한국의 깊은 산에서만 보던 보랏빛 얼레지와 흡사한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기 때문인데 이 같은 동토의 피레네 산맥에 피어난 야생화들이 오늘처럼 찬비안개에 젖은 채 여린 꽃잎을 파르르 떨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