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가장 아름다운 계곡. 랑탕 밸리. 그 길위에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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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뜨면 걷고 지치면 자고 또 해가 뜨면 걷는 이제 습성이 되어버린 이 기인 긴  작업. 생각마저도 지극히 단순해지면서 머리가 맑아져 옵니다. 하산길은 더욱 그렇습니다. 랑탕 계곡의 정점을 찍고 주변 가네쉬 히말(Ganesh himal)산군의 화려한 설봉들을 감상하고 난뒤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아무 생각없이 라마 호텔까지 한달음에 내달아버립니다. 이른 아침 강으로 내려가 머리 속이 텅 비어버리는 빙하녹은 강물에 머리를 감습니다. 트레일을 벗어나 강으로 오가는 짧은 길에도 그들의 모진 삶이 담겨져 있습니다. 인간과 동물과의 그 삶의 경계가 모호한 곳. 구정물인지 식수인지도 전혀 분간이 가지 않는 이 비위생적인 생활이 있기에 이렇게 척박하고 험한 자연과 맞싸워 살아남을 수 있는 저항력을 키워온게 아닌가 하고도 넘겨줍니다. 우리도 한시절 모진 가난속에서 살아봤고 이를 잡는다고 몸에 DDT를 뿌려가며 살아봤던 적이 있었으니...   오늘은 이 라마 호텔에서 내려가 Domen에서 길을 꺾어 다시 툴로 샤브루(Thulo Syabru) 까지 치고 올라 가야 합니다. 그래도 오늘은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예약된 로지의 주인이 우리 팀 가이드의 인척이랍니다. 왕복 여덟시간 걸려서 오가며 로지에 속한 구멍가게에서 판매할 물품들을 배달하는 인편으로 미리 닭을 두마리 주문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로지에 도착하자마자 주방을 빌려 요리가 시작되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에 옥상 테라스에서 우리들만의 히말라야 판 잔치가 시작됩니다. 일정의 반을 마감한 지금까지 수고한 가이드와 셀파들 그리고 넉살 좋은 젊은 주인 내외까지 동석시켜 거나한 술판이 벌어집니다. 술기운 탓인지 아쉬워 서산에 걸린 채 불타고 있는 황혼빛에 물든 탓인지 모두들 만면에 홍조를 띄고 분위기는 고조되니 가이드며 포터들도 친근감을 보이더니 도를 넘어 감히 위아래를 몰라봅니다. 그 벌로 가이드에게 우리네 아리랑 같은 네팔리 노래 레쌈삐리리를 부르게 하니 기다렸다는듯이 마지막 소절까지 부르는데 산촌의 밤은 점점 흥이 무러익습니다. 우리도 포크송으로 시작해 결국은 젓가락 장단에 흘러간 옛노래를 부르며 향수를 달래게 됩니다. 내일까지도 고산증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감히 접할수 없을 것 같은 기막힌 우리네 안주가 있어 맥주며 럼주며 위스키며 이 로지가 보유한 알콜은 모두 떨이를 해버립니다. 그나마 히말라야 그들 로지중에서는 5성급 호텔격인 오늘밤 숙소.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우리 음식에 포식하고 얼큰한 안주에 한잔 취하니 이제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후담이지만 동행이 말합니다. 맛있는 한끼 식사가, 온수 샤워가, 판자때기로 막아서 옆방에서 코고는 소리에 몇번씩 깨어나도 눈바람을 맞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내 생에 이렇게 사무치게 감사한 것인지를 몰랐다며 아내에게 전화하며 울었다 합니다.  평소보다 아주 늦게 작정하고 일어들 납니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진탕 마셨으니까요. 장안에 내노라하는 거포들 셋이 뭉쳤으니 상상을 초월합니다. 늘 동이 트면 길을 떠나다가 9시 경에 출발했는데도 마치 해가 중천까지 떠오른 느낌입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1,200미터 높이를 한번도 꺾지않고 싱곰파까지 꾸준히 올라야 하는 오늘의 일정입니다. 마을을 벗어나 산길을 치고 오르는데 참 죽을 맛입니다. 가장 늦게 까지 또 가장 많이 마셨을 막내가 뒤쳐져서 힘들게 올라옵니다. 그럭저럭 어느 전망이 좋은 쉬어가는 로지에 도착해서 한시름 풉니다. 바람이 붑니다. 고난도 고통도 잠재우며 기분이 상쾌해지는 이 습기 하나없는 쾌적한 바람. 백만불짜리 바람이라 평가합니다. 따가운 햇살에 골을 채운 아련한 안개로 시야가 투명하지 못한데 멀리 히말의 산들이 빛바랜 그림처럼 풍경을 만들어 보입니다. 그 풍경 아래 산자락 한뼘 땅만 있어도 정착한 촌락들이 산마다 골마다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가고 서로 소통하기 위해 낸 길들이 이리저리 휘어져 선을 두텁게 그어 놓았습니다. 크게 자라지 않는 산죽이 터주는 길을 따라 조그만 동네로 들어갑니다. 이곳 산비탈 작은 채전에도 때가 되니 보리가 영글고 콩밭인가 싶은 무성한 작물 아래서 닭들이 사랑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연속에서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는 농익은 큰애기들 총각들 할매 할배들.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던가. 히말라야에 기대어 사는 그들은 부족하고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늘 그렇게 행복해 보입니다.    해발 3천을 훌쩍 넘긴 싱곰파로 들어서니 이곳에는 계절이 늦게 찾아와 이제야 봄꽃들이 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네 개나리 같은 노란 꽃들이 화사하게 흐드러져 있고 종이를 만들어낸다는 이곳의 페이퍼 플랜트가 그야말로 산기슭을 모두 채우고 화려한 보랏빛으로 오후 햇살에 지천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야생화 천국이며 미려한 꽃동산입니다. 이곳에도 분홍빛 랄리 구라스가 마지막 생을 마감하기 전 절정의 짙은 색을 토해냅니다. 이미 길 위에 가득 떨어져 우리들 발길에 밟히는 랄리구라스의 낙화와 새롭게 생을 여는 화려한 들꽃의 만개. 꽃들의 윤회를 봅니다. 꽃향기에 취해 평탄한 오솔길을 걷는데 주체할 수 없는 흥에 레쌈삐리리를 선창하니 우리 포터들 뿐만 아니라 짐을 진 모든 이들이 따라 부르게 되고 급기야는 산전체에 메아리 되어 울려 퍼집니다. 그런 흥겨움도 잠시 이제 다시 4,400미터 높이에 누워있는 고사인쿤다 호수 까지 고소와 싸우며 올라야 합니다. 바람도 매섭게 몰아치며 손과 얼굴이 시려옵니다. 더욱 무거워진 발걸음. 깊은 숨을 몰아 쉬고 고개를 넘는데 어제의 로지에서 올려다 보던 그 설산들이 이제 우리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니 목전에 펼쳐지는 그 장쾌하고도 미려한 풍경에 저절로 발길이 멈춰집니다. 이 거룩하기 까지 한 풍경을 다 마셔버리고 싶은 충동과 욕심은 지나친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