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빙하위를 비상하는 콘도르. 그 길위에서.. 2
>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집니다. 여명의 시간에 산악지대로 오른 버스의 차창에는 뽀얀 성애가 끼어있습니다. 호호 입김을 불어 소매로 닦고 밖을 봅니다. 스쳐가는 산촌의 풍경이 황량하고 허허합니다. 엘 코쿠이에 뿌려놓고 떠나는 버스의 뒷꽁무니에는 새카만 매연이 뿜어져 나오고 그 너머로 오픈 사인이 선명한 카페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침을 먹기 위해 자리에 앉아 일정을 계획합니다. 원래는 6~7일이 걸리는 코쿠이 종주 백팩킹을 계획했으나 이것은 2014년 이전에나 가능했고 이 후 아예 공원내 트레킹을 모두 금지시켜버렸습니다. 높은 원성과 탄원으로 다행히 2017년 부터 다시 트레일을 오픈했으나 모든 캠핑은 금지시켜 종주가 불가능하고 단지 당일로 갔다오는 데이 하이킹만 가능합니다. 공원내의 모든 숙소들도 문을 닫았고 한때는 트레킹조차 허용되지 않았다고 하니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수 밖에 없습니다. 자연보호라는 미명아래 샤머니즘적 숭배의 대상인 산에 대한 경배의 시발이라는 점이 지배적인데 그들은 당연 부정하고 있습니다. 끗발 좋은 주변 사유지 소유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이 더 큰 요인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 이유로 방문객들의 목적지는 단연코 악마의 제단이라는 뜻의 풀피토 델 디아블로와 고산 빙하호수인 라구나 그란데 이 두곳으로 압축됩니다. 물론 4,600m 고도의 리타쿠바 빙하의 언저리를 밟고 내려오는 리타쿠바 트레일이 리스트에 올려져 있지만 너무 높고 가파른 돌길이라 다들 꺼리는 길입니다. 상대적으로 많이 유순한 길을 품은 디비노 니뇨 트레일로 대신할까 하는 말성임이 지금 이 순간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간 코로나로 발이 묶여 고산을 다녀온지도 오래 되었고 두달전에 하와이의 4천미터 마우나 로아산 등정이 고작이라 오늘은 푹 쉬고 내일도 고산 적응을 위한 좀 가벼운 길인 코치야 로스 아이레스(Cuchilla Los Aires)를 걸을까 합니다. 카페를 나와 부식과 개스등 트레킹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면서 코쿠이 마을을 돌아봅니다. 남미는 어딜가나 구시가지가 다 있듯이 이곳도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성당은 그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광장에는 코쿠이 공원의 축소판을 조형물로 만들어 뒀는데 지형을 살펴보며 여정의 감을 잡을수 있습니다. 다양한 모양의 만년 설봉들이 포진한 코쿠이의 웅대한 산군이 자못 가슴을 두근거리게 합니다.    어차피 종주는 불가능하니 그래도 종주길의 시작과 마감은 맛보고 싶어 한시간 넘게 걸리는 구이칸(Guican)으로 택시를 타고 달려갑니다. 여기서 마음이 바뀌어 아예 공원입구에 위치한 카바나 카나와라(Cabanas Kanawara) 숙소까지 내달려갔으나 주인의 부재로 기사의 도움을 받아 한시간을 기다린후 체크인 할수 있었습니다. 비수기도 아닌데 너무 이른 시간이어선지 호텔을 비운채 나돌아다니는 그들 삶의 여유가 빨리빨리를 외치고 살아온 나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배낭을 내리고 잠시 풍경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합니다. 이미 3,900m까지 올라온지라 현기증에 아찔한테 여주인이 내주는 따스한 코카차 한종지를 감싸고 발코니로 나옵니다. 시원스럽게 펼쳐진 산하의 빼어난 경관을 보니 기분도 좋아지고 고산증도 이내 풀립니다. 가까워진 하늘은 더욱 깊어지고 청자색으로 빛이 납니다. 흰구름 옅게 흐르니 푸른 물결에 하얀 파도가 넘실대는 쪽빛 바다 같은데 설산과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남주인에게 부탁해서 호세라는 가이드를 소개받고 내일부터 네곳을 안내받기로 하고 제반 준비를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콜롬비아 정부는 꼴에 까다롭게들 구는데 요구되는 3가지는 반드시 미리 해결해야 합니다. 6명까지의 트레커를 안내할 가이드 고용과 공원 입장 패스 구매하기 전에 사고 보험을 드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주머니를 털려는 노력이 참으로 가상합니다.  엘 코쿠이 종주를 시작하는 첫날 길에서 만나는 제단바위와 그란데 호수는 3,4일째 트레킹때 접하게되니 오늘은 종주를 마치고 빠져나오는 날머리 길을 걸어보기 위해 숙소를 나섭니다. 6일간의 종주 일정중 마지막날은 로스 베르데스(Los Verdes)호수에서 출발해 오늘 숙소 카나와라(Kanawara)까지 걷는 길인데 지금 그 반대방향으로 걸어보는 것은 마음만이라도 초대받지 못한 종주길에 올려두려는 정직한 욕심 때문입니다. 연중 건기로 분류되는 12월부터 4월의 어느 날인 2월 중순에 방문한 오늘도 푸른하늘 받쳐주는 만년설산들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콜롬비안 안데스의 진수를 확인하며 걷는 이 엘 코쿠이 국립공원의 산군은 비록 접근성이 뒤쳐지는 오지중의 오지지만 때묻지 않은 정갈한 풍경이 그 수고를 갚아줍니다. 가을로 접어드는 계절에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평탄한 지역을 통과하고 이제 오르막길을 치고 오릅니다. 거대한 암반위를 걷게 되는데 철분 때문인지 붉은색으로 물든 바위들이 생경합니다. 파타고니아를 제외하고는 남미에서 엘 코쿠이만큼 아름다운 산악풍경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더욱 자연의 경이로움이 풍성해지는데 장엄한 절벽, 화려한 색조의 빙하호 그리고 계단식 폭포가 대표적입니다. 조금은 희박해진 산소의 농도를 몸이 먼저 인지하고 가벼운 두통을 느끼게 됩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돌위에 걸터앉아 심호흡을 합니다. 폐부 깊숙이 산소가 전달되게 해주어야 합니다. 숙소로 돌아와 마구 별이 쏟아지는 데크의 피크닉 테이블에 자리잡고 이 고칠 수 없는 질병같은 식성을 치유하기 위해 버너불을 피워 라면에 햇반 그리고 김치로 저녁상을 마련합니다. 소주 대신 커피보다도 맛없다는 콜롬비안 맥주로 나머지 밤을 채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