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대표 해안선 트레일. 그레이트 오션 워크. 3

조금 열어놓은 문틈으로 아침햇살 대신 파도소리가 먼저 스며 들어옵니다. 지난밤 제법 얼큰하게 마신 술기운 탓에 그냥 소파에 잠들어 버렸더니 이렇게 자연의 소리로 아침을 열게 됩니다. 종주길이 이제 종반으로 접어드니 미지의 길을 나서는 초반의 그 흥분은 가라앉고 마음이 차분해져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몸과 마음이 이제 걷는 것에 집중하고 자연 풍광에 완전히 동화되었습니다. 번다한 삶의 생각들을 내려놓고 그저 무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주어진 몫의 삶을 살듯 오늘만큼의 걸음의 길로 한 발 한 발 들어가 묵묵히 걸어갑니다.  잡다한 영혼의 찌꺼기들이 걸러지니 머리가 맑고 가벼워지며 무상의 경지에도 접어드는 듯합니다. 걸음의 철학. 걷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많은 선험자들이 이를 예찬하고 권유하고 나는 또 왜 이 걸음의 작업을 멈추지 않는가? 사람은 저마다 인생관과 가치관이 다르고 철학도 다르며 삶의 방식도 다르며 추구하는 방향도 다릅니다. 나에게는 걷는 작업이 내 삶을 이어주며 나의 존재 가치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며 그 길위에서 느낀 그 당시의 진솔한 마음을 미천한 글로 남기며 만족하는 내 생의 장입니다. 언제나 트레킹의 여행에서 그렇듯이 평소 볼수 없는 독특하고 빼어난 자연 풍경속에 빠질 때면 그제서야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삶의 의미를 다지게 됩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바다와 숨바꼭질 하며 계속 이어지는 길은 오늘만큼은 지친 발을 위로하듯이 양탄자 같은 길을 내어줍니다. 흙과 모래가 쌓인 길에 풀잔디가 덮고 누웠으니 발을 닫는 촉감이 매우 순하고 부드럽습니다. 때로는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진 길 옆에는 장쾌한 파도가 포말로 부서지고 하늘색에 비례한다는 똑같은 바다색의 푸르름이 깊어가고 점점이 떠있는  하얀 구름.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색의 향연입니다. 이제 우리들 키만큼의 크기로 자라있는 숲길로 들어서니 지난 몇군데 처럼 걷는 도중 보호 구역을 벗어나거나 진입할 때 신발을 닦는 시설이 몇 군데 설치되어 있습니다. 신발에 묻은 흙들을 솔에 대고 문질러 닦아낸 후 용수철 작용으로 내려앉는 발판을 밟으면 흘러나오는 세척액으로 소독을 하는 것인데 병원균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지 못하도록 해놓은 장치입니다. 시드니 인근의 부시 트레킹의 고향인 블루 마운틴 같은 유수한 명소에서 보듯 천혜의 자연을 보호하는 그들만의 방법입니다. 아름다운 해안 길은 언덕으로 이어지고 싱그러운 기류가 온누리에 은총처럼 가득하고 바람에 하늘대는 풀꽃들의 환대를 받으며 걸음의 희열을 이어갑니다. 동행들을 출발시키고 변함없이 오늘의 예정 종착지로 신나게 달리면서 오늘의 루트를 다시한번 그려보다가 문득 요한나 비치를 떠올리고선 황급히 와이파이가 터지는 지역에 차를 세우고 오늘의 해양 날씨를 검색해봅니다. 기겁을 하고 지금 이 시각이면 동행들이 다가올 정도의 지점으로 되돌아 갑니다. 잠시 후면 만조 시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오션 워크를 종주하며 세구간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필요로 합니다. 길은 백사장을 걷거나 해안선 언덕길로 되어있는데 대부분의 도보자들은 파도소리와 흰물결을 애호하여 전자를 택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당연 물때를 확인 점검하고 간조 시기에 지나가야 합니다. 해변 입구에 Decision Point라는 경고판이 서있는데 다시한번 확인해보라는 의미입니다. 주차하고 달려가보니 이미 걸음이 빠른 사람은 요한나 해변을 향해 제법 내려가버려서 워키토키로 되돌아 오기를 요청하여 모두 모였습니다. 상황을 설명하고 절벽길을 걷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내 모래사장 전체를 덮어버리는 파도가 밀려듭니다. 아찔한 순간을 잠시 생각하며 진저리를 치고선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1800년도 중반에 이 지역을 지나던 거함이 난항을 피해 이 해변 가까이 정박했다가 높고도 험한 파도에 전복된 역사를 품은 악명높은 요한나 비치인데 그 때 그 선장의 이름입니다. 이 오션 워크는 1974년 처음으로 트레일을 만들고자 제기되었으나 환경보존의 이유로 무산되었다가 이후 1990년대 호주 에코투어리즘 협회를 발족하여 철저한 관리 감독하에 지금의 자연상태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건설하도록 하는 안으로  재계획되었다 합니다. 가능한 한 기존에 나있던 해안 산책로 등을 이용하면서 2006년 초 전구간을 개통하게 되었고 이후 호주 에코 투어의 상징으로 부상되었으며 정부의 두터운 후원아래 체계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는데 잘 정비된 캠핑장에 전문 가이드 없이도 걸을 수 있도록 완벽한 안내 표지판이 내밀하게 세워져 있어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 바닷가길 걸음의 축제는 단연코 포트 캠벨 국립공원의 자랑이자 코스의 하이라이트로 해안선 따라 늘어선 12사도상에서 휘날레를 장식하며 빛이 납니다. 예수의 열두 제자와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12사도상이 있는 해변에서 갈무리됩니다. 이곳 까지 7-8km 남은 겔리브랜드 강에서 잠시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식히다가 내일 다시 오느니 오늘 마감을 해버리자는 대다수의 의견에 다시 완전무장을 합니다. 그동안의 산뜻했던 기온이 어제부터 상승하여 대낮의 기온은 상상 이상입니다. 열두 사도상 주차장은 북새통이라 제법 떨어진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워두고 거슬러 가는데 한낮의 열기가 가히 사막같습니다. 숲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 이런 길을 걸어올 동행들을 생각하니 물이 더 필요할 듯하였습니다. 퀸스타운에 하나밖에 없는 가게로 가서 맥주와 얼음을 구입한 뒤 내 배낭속의 내용물을 죄다 비워버리고 맥주 한상자를 담고 얼음을 가득채워 다시 거슬러 갑니다. 등으로 느끼는 시원한 촉감. 얼음 녹은 물이 엉덩이를 타고 종아리로 흘러내리고 일부는 앞부분까지 시원하게 적셔줍니다. 종주길에서 오다보면 마지막 고개를 오르면서 펼쳐지는 장관을 감상하며 기념 촬영을 할수 있도록 준설된 전망대. 반대편에서도 낑낑대며 경사길을  올라야 하는 그 곳 까지 가서 시선을 내려보니 도반들이 하나둘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도착하는 이마다 일병씩 권하니 갈증에 목이 무척 말랐던지라 단숨에 들이키는 동행도 있습니다. 평생 이 세상에서 이렇게 맛있게 맥주를 마셔본 적이 없다는 촌평들을 남기고 기념 촬영을 합니다.   발아래 펼쳐놓은 바다 풍경화 속으로 우리가 들어갑니다. 다가가는 순간마다 변하는 각도마다 놓치지 않고 사진으로 남기며 깁슨 스텝을 밟고 내려가 백사장을 밟고 사도상들 앞에서 종주를 신고합니다. 바람이 쓸고 지나간 거칠면서도 극적인 풍광의 해변에 서서 낮시간인데도 옅은 해무에 가려진 석회암봉의 12사도상을 바라보노라면 기나긴 종주길 위에서 품었던 단상들이나 함께 나눈 우정에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수천만 년 전에는 본토와 연결되었었다는 사도상들이 파도와 바람이 절벽을 뚫어 동굴이 형성되고 이 동굴을 세월이 깎아 아치를 만들었고 결국은 아치가 무너지며 45미터 높이까지 솟구친 기둥들만이 남게 되었답니다. 신이 설계하고 자연이 빚어낸 그 오랜 인고의 작업.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하지만 이 기둥들은 풍파로 인해 1년에 약 2cm씩 지속적으로 침식되고있고 2018년 1월 현재 파도에 쓸려가버리고 단 8개의 기둥만이 있답니다. 런던 아치(London Arch)는 파도가 뚫은 천연 구멍으로 이루어 진 2개의 아치형 다리의 일부였는데 1990년 이 전에는 이 위를 걸어 바다 끝까지 나갈수 있었는데 육지에 가까운 쪽의 아치가 무너지면서 지금의 형상이 만들어졌고 그 사고로 2명의 관광객이 바다 쪽 아치위에 갖혀버린 사건이 설화처럼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붕괴는 50미터 높이의 암봉 사도로 2005년에 무너져버렸다 합니다. 거센 바람과 광대한 바다가 해안선을 쓸어내는 모습은 종주를 마감한 우리에게는 특별한 감흥으로 다가옵니다. 가볍게 얼굴에 부서지는 물보라를 맞으며 바위 사이로 전해오는 대양의 표호를 들으며 종주의 기쁨을 한껏 즐깁니다. 걸음의 축복을 모르거나 하고파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탄 헬리콥터 몇대가 부조화한 풍경과 소음을 내며 어지러이 날아다니니 그제서야 정신줄을 잡아당기며 깁슨 스텝을 다시 올라옵니다. 마침내 종주를 마치고 아폴로 베이로 되돌아갑니다. 그동안 우리가 보행으로  지나왔던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 길마다 그 순간마다 있었던 작은 기억들이 이제 추억으로 변해버린 아쉬움에 전망대 마다 내려서 다시한번 회억의 시간을 가져봅니다. 길 마다 미려한 풍경. 아찔했던 순간. 동행들과 웃고 울었던 순간들이 베어있는데 아마도 어떤 길은 세월이 흐르고 나면 살다가 문득문득 그리워 지겠지요. 바람이 잦은 거친 남극해를 바라보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그 해안선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었던 Great Ocean Walk가. 뭍으로 향한 바다의 그리움이 파도가 되어 밀려오면 바위가 멍이 들 정도로 부딪히고 하얀 포말로 부서져버리던 물결이 그리고 함께 했던 아름다운 도반들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