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트레킹 5. 북섬 화산길 통가리로 노던 알파인 서킷.

Tongariro Northern Alpine Circuit. 피터 잭슨의 유명한 연작 영화 반지의 제왕(Ring of Lord) Mt. Doom을 더욱 극적으로 승화시켜준 Ngauruhoe 화산을 만나기 위해 영화 속 프로도와 샘이 되어 우리는  뉴질랜드 북섬으로 향합니다. 통가리로 노던 서킷. 뉴질랜드 9대 트랙(9 Great Walks) 중 가장 우선 순위에 두고 있는 이 길은 세계 50대 트레킹의 반열에 올라 완벽한 원추형 대형 화산인 나우루호에(2,291m)를 보며 에둘러 걷는 길인데 실은 통가리로 화구의 하나로서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 ‘운명의 산’(Mount Doom)으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휴지기에 들어가 있으나 1839년 이래 61회 분출하여 뉴질랜드에서 가장 활동적인 화산으로 꼽히는데 일주 첫날은 뉴질랜드 최고의 당일 하이킹 코스로 알려진 유명한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 루트를 따라가게 되니 따라서 트랙을 완주나 종주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당일 하이킹을 하며 절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레이크 타우포와 마운트 타라나키의 멋진 전망을 보며 경이로운 화산지형을 걸어가는 코스로 매년 여름철이면 약 7만명의 산행객이 거쳐가는 곳이지만 조금 더 연장해 4일 코스의 통가리로 노던 서킷을 루프 형태로 종주하면 뉴질랜드의 자존심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최초의 국립 공원이며 세계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국립공원으로 문화 유산과 자연 유산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 복합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으로 3개의 대단한 화산을 품고 있는 통가리로 국립공원 안을 가로질러 횡단하는 이 길은 화산지대가 만들어 놓은 에메랄드 빛깔의 호수와 수증기가 솟아오르는 분화구, 굳어진 용암, 이 지대에서 자라는 이름 모를 독특한 식물 등의 광경을 보며 트레킹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 길 위에는 일만오천년전에 폭발한 루아페후 산의 용암이 만들어 놓은 지형과 무성한 너도밤나무 숲, 고산지대의 드넓은 평야, 빠르게 쏟아져 내리는 급류 등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 지루할 틈이 없답니다. 활화산 하이킹은 우리에게 일생 동안 잊을 수 없는 체험이 되는데 특히 그 산 정상을 밟았을 때의 성취감은 어느 무엇에 비할 데 없는 자존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뉴질랜드의 모든 9개의 트레킹이 그렇듯이 셀프 가이딩 트레킹 숙소에는 온수나 냉수 샤워 시설이 없어 자연 속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이미 루트번과 밀포드 종주를 한 우리는 이 통가리로 만큼은 문명의 혜택을 좀 누리면서 하기 위해 일일 트레킹으로 하이라이트만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위에 소개한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과 루아페후 화구호 스카이라인 트레킹. 마운트 루아페후(Mt Ruapehu)는 통가리로 국립공원에 위치한 세 개의 산 중에서 가장 높은 2797m의 높이를 자랑하는 산으로 현재도 활동 중인 화산인데 정상까지 가는 길에 다양한 화산지형과 만년설을 만나볼 수 있으며 마침내 정상에 올라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루아페후 정상과 거대하면서도 아름다운 화구호 Ruapehu(2,670m)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곳 경이로운 대자연의 속살을 파 헤치러 들어갑니다.    뉴질랜드 북섬의 심장 같은 거대 호수. 타우포. 아우이 족들의 말로 크다는 타우와 물이라는 뜻의 포. 오랜 옛날 상상하기 어려운 거대한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뉴질랜드 최대 호수로서 크기가 인접국 싱가포르와 맞먹고 최대 수심이 160미터에 이르는 바다같은 곳을 지난 산촌에 베이스캠프로 삼고 오랜만에 아파텔에서 시큼한 김치와 더불어 우리 한식으로 든든히 먹고 900미터의 고도를 높이고 왕복 20km를 6~8시간 걸어야 하는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 트레킹에 나섭니다. 한시간 남짓 운전해 도착한 트레일 들머리 주차장 Mangatepopo. 네시간 이상 주차해두면 어떤 조치를 하겠다는 경고문. 시작부터 욕나오게 합니다. 볼모의 광대한 땅이 쓸데없이 많은데 주차장 넓게 설치하면 될것을 손바닥 만하게 만들어 놓고 대신 셔틀을 이용하라 합니다. 그래서 차비 받아먹고 일자리 창출하겠다는 잔머리를 굴린 쪼잔한 새끼들. 우리는 개무시하고 차 두대 가장 명당자리에 주차하고 산행길에 오릅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통가리로. 세월이 덮어버린 화산지대 들머리엔 제법 흙들이 쌓여 억새풀이 장대처럼 자라나 황금 들녘을 만들어 냈습니다. 고운 자갈길을 바람에 몸을 맡기고 사뿐히 걷는 초반길. 푸른 창공을 업고 있는 설산 나우루호에를 향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들판을 걷습니다. 개울물이 흐르는 습지로 들면서 길은 모두 보드 워크를 설치해두고 자연을 보호하고자 합니다. 혹 길손들이 걸으며 미끄러질까 나무에는 그물같은 쇠망을 깔아 두었고 떨어지거나 헤진 곳은 이내 보수를 한 흔적이 보입니다. 물길은 모두 황색으로 물들어 있는데 과거 솟아오른 뜨거운 온천수가 흘렀다는 증거이며 그 역사의 흔적을 보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흐르지 않으면 물인지도 모를 수정처럼 맑은 물이 흥겹게 흘러갑니다. 길섶마다 흩어져 있는 돌들이 색색의 이끼를 입고 있어 그 빛갈이 꽃보다 고우며 길 위에 티끌같은 쓰레기라도 하나 떨어져 있을 법한데 문명이 버려진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이러니 차마 돌 하나 마음대로 차버리며 걸을 수 있겠습니까!   길은 고요하면서 거칠게 아름답고 또한 풍요롭습니다. 구름이 모여들고 하늘이 낮아지면서 고즈넉한 만추의 서정이 보라색 야생화에 얹혀져 있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꽃들이기에 그 빛깔이 더욱 화려합니다. 황량한 들판.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의 물결. 빈 하늘에 매 두어마리 휘휘 날아 돌고 시간이 정지된듯한 이 적막한 길.  아직도 온천수가 솟아나는 Soda Springs를 지나며 이제는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됩니다. 빤히 보이는 길이지만 그래서 얼마나 힘들여야 하는지도 예감할 수 있는 길 위에 울긋불긋 가을이 영근듯이 인파의 흐름이 보입니다. 검은 용암 산으로 난 길이기에 사람들이 꽃보다 더욱 화려하게 눈에 띕니다. 한참을 씩씩대며 올라가다 다리도 제법 묵직해지고 숨도 찰 무렵 쉬어가라며 산중임에도 관리가 잘된 깔끔한 화장실을 설치해두었는데 절묘한 타이밍입니다. 방뇨까지도 함부로 하지 말라는 이 묘안. 이제 하늘은 더욱 낮아지고 바람마저 한기를 품고 있습니다. 제법 땀을 흘리며 분화구 안으로 들어가기 전 바람을 막고 있는 산등성이에서 간식과 함께 휴식을 취합니다. 발 아래 휘어진 길위에 뚜벅뚜벅 걸어 올라오는 동행들이 보입니다. 아름다운...   한 고개를 꺾어 South Ctater로 들어섭니다. 대형 분화구로 들어서는 것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다듬어져 광대한 평원을 이루고 무수한 이름모를 들꽃들이 함초롬히 피어있습니다. 지구 태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 길을 걷는데 고요해진 사위가 너무 적막해 방금 걸었던 길이 내 발 뒤꿈치에서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서서히 몰려오는 구름 안개. 미려한 호수가 누워있는 정상은 아직 아득한데 그 물빛 고운 호수를 제대로 볼수 있을까 조바심에 안달이 나는데 이제 다시 매우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합니다. Red Crater 산마루에 올라 한숨돌리며 안개속으로 몸을 숨기는 에메랄드 레이크를 애써 확인하고 다시 정상을 향해 오릅니다. 어디서들 왔는지 많은 인파들 특히 주말을 이용해 찾아온 어린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맑은 날이면 창연하게 빛을 내는 블루 레이크가 반겨줄터인데 오늘은 짙은 안개로 시야가 막히고 그래도 하는 마음에 모두들 산정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대고 있습니다. 우리도 쎅쎅 소리를 내며 삐쳐나오는 화산 수증기 옆에서 그 온도로 몸을 녹이며 샌드위치와 과일로 점심을 해결하며 기다려 봅니다. 성마른 동행들은 기다리질 못하고 근접해서라도 호수를 보려고 비탈진 미끄러운 자갈길을 달려내려 갑니다. 한참을 기다리니 잠시 하늘이 열리면서 옥빛 고운 호수와 멀리 타우포 호수의 장엄한 풍경을 보여줍니다. 그나마 얼마니 다행스런 선물인지..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 하산하기로 합니다. 다시 드넓은 남 분화구로 들어설 즈음에 쌀알보다 큰 우박이 하나둘 떨어지더니 이내 마구 쏟아져 내립니다. 그냥 속수무책으로 맞기에는 제법 살갓이며 머리통이 아파서 모자와 장갑을 착용하고 비옷까지 덧입고 무장을 합니다. 내린 우박은 그대로 쌓여가는데 발길에 채이는 입자들이 흩어지고 사각거리는 소리가 참 생경하면서도 느낌이 좋습니다. 이 여름의 끝자락에서 별안간 맞이한 겨울의 맛. 한 시공에서 계절의 순환을 한꺼번에 경험을 해본 오늘의 통가리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