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셰난도어 국립공원 트레킹 3. 올드랙 마운틴 일출등반.

한 해 더 다가선 죽음 앞에서 한해가 저물어 가고 새해 새날의 찬란한 아침을 품은 짙은 어둠이 온 세상 여백도 없이 덮고 있는 시간.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일출을 보기위해 하나둘씩 그 어둠을 헤치며 모여듭니다. 찬연하게 시작될 새해 아침의 영광을 잉태한 채 성스럽기 까지 한 정적이 여명을 넘어서기를 재촉하고 있습니다. 변혁은 고통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고 새로운 시작은 항시 변화를 수반하는 법. 또 어둠이 짙을수록 아침은 그 빛은 더욱 밝게 여겨지는 법. 그 빛의 고마움을 되새기며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며 먼 길을 떠납니다.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며 한 해 더 다가선 죽음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까 하는 고뇌의 배낭을 지고 우리네 삶의 방향을 재정립하기 위해 우리는 산으로 향합니다. 인도에서는 쉰 살의 나이를 산을 바라보는 나이라고 표현한다 합니다. 산이 그저 산으로만 보이지 않고 삶이 보이고 인생이 보이니 그런 철학을 논할 수 있는 나이가 이정도 살아야 하는 가 봅니다. 차 안을 둘러보니 모두 농익은 인생의 깊이가 차분한 표정들 속에 스미어 미륵의 온화한 미소가 풍겨 나와 한 겨울 내달리는 버스 안은 오히려 따스하기만 합니다. 차창에 서리는 성애 위에 인생이란 글자를 새겨봅니다.   출발 세 시간을 넘어서야 다다른 올드랙 트레일 헤드 주차장. 언제나 등산은 길이 끝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어둠속에서 해드 램프 전등의 춤사위가 현란하기만 한 가운데 몸을 녹일 죽 한 그릇씩 나눠먹고 장비와 배낭을 챙기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살아가면서 특히 산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 하나하나 인연을 맺어 친해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나이가 들면서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그런 만남 속에서 상처도 많이 받지만 또 가슴이 따스한 아름다운 동행을 만나 상처 난 내 마음을 치유 시켜주는 것도 또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런 소중한 만남이기를 소망하며 30여명의 인파가 한줄 띠를 만들어 이동하며 연출하는 불빛 예술을 경탄하며 잘 닦여진 초반 소방도로를 따라 기분 좋게 올라갑니다. 예년과 다른 이상기온으로 한 기십 분을 오르니 어느새 몸에서는 열이 나고 몸이 풀리는 과정의 고통 뒤에 수반되는 안락함이 아주 좋습니다. 달마저 진지 오래 전. 오로지 손에 들고 이마에 단 전구 빛에 의존하여 조심스레 서로의 안위를 챙겨가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마음은 이미 보내버린 정상을 향해 동반 길을 갑니다. 침묵의 산에서 나지막한 대화들이 오가며 걷는 밤길. 문득 우리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우리 삶이 온갖 규칙 속에 묶여 있는데 이렇게 일시적이지만 온전히 삶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 등산이 아닌가 합니다. 내가 마음대로 목표를 정하고 내 재량으로 걷고 내 계획 속에 등정을 이루어내는 이 나만의 작업. 자족의 기쁨이 충만한 일입니다.   이젠 구불구불 이어지는 바윗길이 시작됩니다. 한층 더 긴장하며 걸어야 하는 구간입니다. 오르막이라 더 힘들기도 하지만 낙상의 위험도 배제할 수 없는 터라 무작정 속도를 낼 수 만은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주위를 환기시키며 안전을 주문합니다. 산행은 보이는 것을 보는 것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는 것이라 했습니다. 비록 어둠속에 아무런 산의 형체를 볼 수 없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산을 바라보니 수려한 산세가 그대로 가슴에도 머리에도 새겨지며 떠오릅니다. 산을 아무런 생각 없이 건성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산은 그저 산일뿐이지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온 마음으로 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우리도 산이 되어버립니다. 산이 되는 우리는 더 이상의 욕심도 없으니 더 이상의 좌절도 고통도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의 굴레에서 허덕이며 살아갈 때는 산이 저만치서 비웃듯이 우리를 보고 있지만 욕심을 버리고 마음이 그윽할 때는 우리가 오히려 산을 바라보며 웃게 됩니다. 오늘처럼 이 빈 겨울 산이 내 마음이라면 하는 해탈의 경지를 동경하며 자신을 다그치며 정상을 향합니다.   정상에 가까워지니 어둠이 하나둘 걷혀가며 감춰둔 보석 같은 경관을 보여줍니다. 셰난도어의 산정들은 비록 일천미터에 불과하지만 수종이나 분포 그리고 그 형태가 다른 수천 미터의 그것과 같다고들 합니다. 대륙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버티다 못해 죽어간 고사목과 그 한랭한 기류에 성장을 멈춘 관목들이 마치 수천미터 고도의 수목한계선에서나 볼 수 있는 표징을 갖고 있다고 해서 말입니다. 깊은 겨울 빈하늘에는 솔개 한 쌍의 힘찬 나래 짓에 어둠이 걷혀집니다. 조급한 마음에 발길은 잰걸음이 되고 뒤따르는 일행들에게 서두르길 주문합니다. 이 지난한 밤길을 걸어 오르며 그만큼 욕심을 버리자 다짐했었는데 또다시 일출을 못 볼까봐 다그치는 자신을 돌아보며 쑥스런 쓴 웃음을 지워봅니다.   마침내 정상에 섰습니다. 아직 차오르지 못한 태양은 동편 하늘만 붉게 물들이고 오늘도 간절한 기도를 외면한 채 구름이 가득 한 곳에 숨어있기만 합니다. 그토록 기대한 찬연한 해의 솟구침은 올해도 못 볼 것 같아 아쉬움에 가슴이 쓰려옵니다. 일기예보에는 이 시간 시속 3~4마일의 잔잔한 바람이 인다 하더니 어디서 불어오는지 산정에는 세찬 바람이 휘몰아칩니다. 그 바람에 쫓기듯 구름이 서둘러 파도처럼 굽이치는 능선들의 물결 위로 흘러갑니다. 비록 힘찬 태양의 솟구침을 보진 못한다 하더라도 오늘 이 고난의 여정이 주는 의미와 워싱톤의 지붕이라 일컫는 명산 올드랙 정상에 서서 새해를 맞이하는 기쁨과 환희가 충분한 자족으로 남을 것입니다. 어둠에 쫓겨 보지 못했던 산의 온전한 모습을 이제야 휘이 둘러봅니다. 산의 나신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며 간간이 솟아오른 기암들, 헐벗은 산하엔 다시 채워질 비움의 넉넉함과 미학이 가득합니다. 바람에 대적하며 서있는 정상. 저렇게 타오르는 태양빛처럼 나 자신을 불살라 버리듯 올 한해도 열심히 살 것을 다짐하면서 오늘의 이 각오를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 새기고 돌아갈 것입니다. 멀리 촌가 마다 피어오르는 아침 밥 짓는 연기가 새로운 시작임을 알리는 듯 잠든 상념을 깨워줍니다.   평화가 깃든 내 마음에 작은 소망 하나 심고서 하산을 서두르며 길을 잡습니다.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이 음악이 없어도 규칙적으로 흔들리며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다시 산 아래 동네로. 비록 아비규환의 속세일지라도 발붙이고 살아야 하는 곳,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친하게 지내는 동료들이 있는 정들었던 곳입니다. 산 시인 이성선님의 도반이라는 시를 읊조리며 비워버린 내 배낭보다도 더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벽에 걸어놓은 배낭을 보면 소나무 위에 걸린 구름을 보는 것 같다. 배낭을 곁에 두고 살면 삶의 길이 새의 길처럼 가벼워진다. 지게 지고 가는 이의 모습이 멀리 노울 진 석양으로 하늘 속에 무거워도 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는 혹은 걸어가는 저 삶이 진짜 아름다움인 줄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중심 저쪽 멀리 걷는 누구도 큰 구도 안에서 모두 나의 동행자라는 것. 그가 또 다른 나의 도반이라는 것을 이렇게 늦게 알다니... 배낭 질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지금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