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도 수려한 풍경. 돌로미테 Alta Via 1 종주 트레킹. 4

살아있는 갤러리 돌로미테 터널.  하얀 암산들에 비치는 황홀한 일출. Lagazuoi 산장 베란다에서 향기 짙은 아침 커피를 한잔 음미하며 일출을 즐기고 시작되는 하루. 수세기 동안 격리되어 살아온 이 계곡의 사람들은 독일어와 라틴어가 결합된 Ladin(라딘)이라는 언어를 쓰며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유지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돌로미테의 등반사는 전쟁과 함께 이어져왔듯이 봉우리 곳곳에 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군 진지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던 동굴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산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휴식처가 되기도하며 흥미로운 등산로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세계 1차 대전시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간 전투의 선봉이 되었던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지금도 돌로미테를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은 색다른 문화와 이색적인 사람들과 삶이 있습니다. 서알프스 처럼 만년설과 침봉으로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암봉과 구릉 같은 산으로 형성된 이지역 산세이지만 돌로미테가 주는 의미는 큽니다. 과거 로마를 넘본 모든 민족들은 돌로미테를 넘어야 했습니다.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롬바르디평원을 내려다보며 일갈했고 켈트족 고트족 등 로마로 향한 모든 이민족들도 한니발처럼 이 동 알프스를 넘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넘은 알프스가 돌로미테 자락입니다. 로마가 세상으로 나갔던 길이기도 하고 로마를 품으려는 민족이 넘어온 산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돌로미테는 역사와 자연을 품고 있는 길입니다.    오늘은 라가주오이 산장 바로 아래에서 그 치열했던 세계 1차 대전의 격전지인 오스트리아의 제 4 요새를 보실 수 있습니다. 요새에 아직 남아있는 대포가 향하고 있는 저 아래 친퀘토리의 이탈리아군의 진지를 보고 있으면 그때의 긴박함이 자연 느껴집니다. '비아 페레타'라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산악부대의 이동 경로를 볼 수 있는 구간으로 사령부와 대포 진지나 참호 등의 전쟁 시 모습들과 파괴된 흔적들이 남아있는 암반 슬로프를 지나는데 역사의 처참함이 아름다운 자연미 속에 스며있으니 묘한 감정이 입니다. 특히 자연 갤러리가 되어버린 길을 걷다가 돌연 길이 없어져 버리면서 여기가 트레일의 끝이구나 생각하고 되돌아 나가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길은 이어지고 이곳에는 쪽문 같은 출입구가 하나 있어 터널로 들어가 지겹도록 내려가는 하산길의 굴로 된 통로임을 알게 됩니다. 거의 5백 미터나 되는 굴로 암반을 뚫어서 낸 군사용 땅굴입니다. 기묘하기도 하고 그 엄청난 대역사가 가히 놀랠만 합니다. 곳곳에 감시용 망루가 설치되고 대포 거치대. 지휘부 동 등 군사활동을 위한 시설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더욱 춥고 을씨년스럽게 만듭니다. 기나긴 땅굴을 무릎이 시큰하도록 내려와 바깥 세상으로 나오니 인간들의 살아 남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을 배워 야생화들도 벼랑 끝에서 더욱 화려하게 피었습니다.    약 1시간 가량의 하산 길이 끝나면 이제 길은 부드럽고 평탄해지며 향기 내뿜는 솔밭길을 통과하는데 운좋으면 영양 샤모아의 환영도 받게 됩니다. 다시 높은 돌로미티 산군으로 향하여 Falzarego pass를 지나서 Nuvolau 정상을 오르고 넓고 아름다운 전망이  펼쳐지는 산장에서 한잔의 시원한 생맥으로 목을 축이고 휴식을 갖습니다. 까마득한 절벽에 세워진 돌로미테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산장 Nuvolau(2575m)을 오르기 위해 숨고르기를 하는 참입니다. 누워볼라우?로 회자되는 이 산장은 1883년에 지어진 러스틱한 건물로 자연석을 이용하여 더욱 창연한 맛이 나는데 대신 한정된 편의 시설이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두 기숙사형 숙소에 24 침대가 있는 소형인데다 화장실은 바깥에 있고 씻을 물도 찔찔찔.. 그래도 텐트에서 자는 것 보다는 낫다고들 하겠지만.. 이 벼랑 끝 명물 산장 전망대에 서서 산하를 굽어보면 협곡에 펼쳐놓은 물길과 폭포 그리고 간헐적으로 얼굴을 내비치는 알프스의 설봉들 그리고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들. 천상 극치의 풍경을 마음껏 즐기실수 있습니다.   하산 길에 어느 후미진 꽃밭에 터를 잡고 중식을 즐깁니다. 버너불 지펴 물을 끓여 건조밥과 건조 김치에 부어 준비해놓고 라면을 끓여 우리들의 정찬을 즐깁니다. 황제가 부럽지 않은 이 순간. 푸른 초원 뒤로 솟아난 돌로미테의 바위산군은 너무 거대해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데 그 바위봉우리들 사이로 길은 이어져 끝없는 띠를 두르는데 차마 갈수 있을까 하는 곳까지 개척해낸 인간의 발이 얼마나 위대한지 새삼 경외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마냥 쉴수 만은 없는 종주 길. 하산하며 다시 세계 1차 대전의 흔적을 보게 되는데 Cinque Torri에서는 거대한 바위 자연그대로의 아름다움과 그로인해 요새화 된 주요 격전 지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Rhododendron 철쭉밭이 조성된 Cinque Torri을 지나며 계절이 발하는 꽃향기에도 취해봅니다. 5개의 탑이라고 명명된 친퀘 토리. 그 명소를 방문할 수 있도록 Scoiatolli 산장까지 케이블 카는 간단없이 방문객들을 실어나릅니다. 오늘은 우리도 그들이 되어 일찌감치 산행을 접고 주변 경관을 즐기는 구경꾼이 되어봅니다. 예약에 얽메이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스케줄.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