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되어 걷는 길. 스웨덴 쿵스레덴(Kungsleden) 3.

왕의 길은 자연과의 동화 그 자체.  쿵스레덴은 하이랜드의 높은 산들이 들어찬 계곡길을 걷는데 그 계곡이 때로는 너른 들판으로 펼쳐진 곳도 있어 가슴이 탁 터이게 해주기도 합니다. 그런 고갯마루에서 시야를 넓게 잡으니 작은 관목들이 모두 장병들이고 나는 천군만마를 지휘하는 왕이 된 기분이 듭니다. 왕이 된 착각으로 자연들을 신하와 시녀로 여기며 짐짓 거나하게 여유를 부리며 하향길을 걸어가는데 영롱한 무지개 아래 잔설위에 흩어진 일단의 순록무리들이 달려가니 이 또한 쿵스레덴 만의 기막힌 풍경이 되고 드넓은 계곡 벌판에 곳곳에 쳐둔 원색의 텐트가 예쁘기 한이 없습니다. 고개를 넘으면 천국의 풍경인데 늦게 피어난 야생화들과 이들과 대화하는 예쁜 새들이 계절을 찬미하고 있는 거룩한 정경이 빼어납니다. 아침 아홉시를 넘겼지만 이제 일어났는지 아침밥을 짓느라 버너와 코펠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곧 자유를 표현하는 것 같고 자연과의 일치 혹은 동화를 이룬 것 같습니다. 이들 백팩커들에게서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언제 내릴지 모르는 날씨에 대비해 방수 배낭 커버를 꼭하고 다닙니다. 그런데 무쓴 뽕배낭도 아니고 위에는 텐트 아래는 매트리스나 침낭을 길게 해서 엉성해보이도록 대형 커버를 씌우는데 뒤에서 보면 엄청 커보이고 대단하게 여겨집니다. 여기에 바로 그들의 경험에서 익힌 지혜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애써서 커버를 배낭에 딱 맞게 졸여주는데 사실 배낭 커버가 완벽한 방수는 불가능하죠. 특히 지치도록 내리는 비라면 밀착 커버한 배낭은 이내 속으로 젖어들게 마련인데 공간을 뻥하니 둔 경우는 비가 스며들 겨를도 없이 굴러내려 버리기 때문에 대단한 방수 효과를 냅니다.    쿵스레덴. 스웨덴어가 주는 포스 넘치는 어감. 그 우리말로의 해석은 왕의 길입니다. 쿵스레덴의 역사는 스웨덴 관광 협회(Svenska Turistföreningen / 약자로 STF)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협회는 웁살라의 과학자들에 의해 스웨덴의 명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1885년에 결성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이 협회는 스웨덴 라플란드의 산을 통과하는 왕도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안된 경로는 현재 Abisko를 Kvikkjokk에 연결하는 것이었습니다. 1902년 Kiruna와 Narvik 사이의 Malmbanan 철도 노선의 건설은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하게 되고 역이 건설되면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찾게되는 관광 스테이션으로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또한 1907년에는 Abiskojaure와 Kebnekaise에 산장 숙소를 건설하고 중간중간에 있는 호수를 건널수 있도록 보트도 선착장과 함께 두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트레일이 표시되거나 이름이 지정되지 않았는데 1928년에 어떤 의식이나 명명식도 없이 Kungsleden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Kvikkjokk역이 걸리게 되었고 그 후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대중들에게 빠르게 인기를 얻고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의미를 떠올리며 무심하게 걷는 것에만 충실하다 보니 예정한 산장을 너무 이르게 도착해버렸습니다. 날씨도 쌀쌀한게 더 걸을만 해서 서로 합의를 보고 다음 산장까지 진행합니다. 여전히 싸늘한게 Sälkastugan 산장에 도착하니 진눈깨비가 흩날립니다. 매점도 없고 사우나 시설도 없는 열악한 환경의 산장이라 몸도 많이 지쳤고 추위가 엄습해와 바로 방마다 설치된 난로를 피우려니 갖다놓은 장작이 없습니다. 바깥 마당에는 톱질해 놓은 장작더미가 있고 창고안엔 쪼개놓은 것들이 비축되어있는데 한아름 안고 들어가는 나를 보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나를 까칠한 표정을 하고 산장지기가 불러세웁니다. 장작을 패고 가져다 써야한다는 겁니다. 뭐 안좋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제법 무시하고 격앙된 어조로 질타하기에 상식선의 이탈을 하는 언행을 보이면 나 또한 결코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몇마디 해줍니다. 먼저 패든 쓰고 나서 패든 장작을 채워놓으면 되는 것이지 먼저 패야한다는 규정이라도 있느냐. 문서화 된 걸 나에게 보여달라. 그리고 이렇게 추워진 날에 이 정도 늦은 시간이라면 게스트들을 위해 산장내에 훈기가 돌도록 산장지기가 미리 불을 지펴놨어야지 너는 뭐하는 놈이냐고! 안그래도 험상궂은 얼굴이 화나면 더욱 헐크화 되는 내가 무서웠는지 그제서야 맘대로 하세요입니다. 동행들을 위해 난로불이 활활 타도록 해두고 나가서 장작을 패기 시작합니다. 그들만의 방식의 도끼가 있는데 체질에 안맞아 신토불이 우리식으로 팹니다. 내 야영 생활의 역사가 얼마인데  또 한동안 산장을 운영하며 날마다 장작패서 난방해결했었기에 장작패기와 불피우기는 가히 신의 경지에 올랐거늘... 결이 곧아 아주 쉽게 쪼개지는 자작나무라 삽시간에 무덤크기로 하나 쌓아놓고 저혼자 사무실에서 난로 앞에 구겨져있는 지기를 밖으로 끌고나와 보여줍니다. 갑자기 친밀감을 넘어 비굴할 정도의 태도변화를 보이는 그자에게 똑바로해 하고 한국말로 한마디 던져주고 돌아섭니다. 산장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어두워지면 촛불을 밝히니 더욱 운치도 있습니다. 태양열 집전으로 상주하는 지기나 사용하고 무선 크레딧 카드 단말기 사용등에 씁니다. 그런데 일기가 고르지 않으면 연결이 좋지않아 기다려도 결재가 더디게 되어 오래동안 벌써고 있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 때 현금으로 결재할 건데 먼저하자 그러면 받아들여지고 우리는 모두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줄써서 기다리지 않고 신속하게 해결합니다. 현금의 위력이 발휘되는 이곳 산장들. 귀찮아도 현금들을 제법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칼칼한 우리 입맛의 그것은 아니더라도 이곳에서 파는 라면은 우리 브랜드인 삼양라면이 백퍼센트 점유하고 있어 소소한 것이지만 기분도 우쭐해지고 제법 자부심마저 생긴답니다.  한없이 아늑한 산촌의 아침을 맞이하고 제법 긴 여정의 하루를 시작합니다. 묵었던 산장을 정리하고 길 떠나 Singi STF Hut에 도착해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잠시 차 한잔의 여유를 갖고 동쪽인 Nikkaluokta 방향으로 꺾어 갑니다. 그리고 다시 오전에 걸었던 만큼 더 걸어가면 오늘의 안식처인 Kebnekaise 마운틴 스테이션에 도달하고 여기서 오늘주어진 하루치 걸음의 축제를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Singi 산장에서 점심을 해먹고 맥주 한캔씩 마시며 갈증을 풀고 진한 휴식을 취합니다. 비록 길이야 험하진 않아도 길다보니 지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런 곡차 한잔이 또 새롭게 걸음을 시작하게 해주는 힘입니다. Singi를 기점으로 갈라지는데 장대한 쿵스레덴 완주길은 길 위에서 맺었던 인연들과 이곳에서 작별하고 직진해가게 되고 피엘라벤 클래식만 종주하는 이들은 왼쪽으로 꺾어서 가는데 Kebnekaise 산장을 지나 이 지역 원주민인 사미족들의 마을이 있는 Nikkaluokta에 이르면 110km 길이 마감됩니다. 너른 들판에 깔린 고색이 창연한 바위들을 헤치고 오름길을 이어갑니다. 삼각지의 이곳에는 계곡마다 불어오는 모든 바람들이 모여들어 제법 스산한 느낌을 주니 한번씩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제법 몸이 달아올라 자켓을 벗을까말까 하는 지점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스웨덴 랩랜드 최고봉을 가진 Kebnekaise산의 환상적인 산세를 감상할 수 있는데 그 산그림자가 드리운 호수를 끼고 걷는 길의 풍경이 또한 압권입니다. 한고비 고개를 넘어 느슨한 하산이 이어지는데 쉬고 싶다는 피로감이 덮칠 때쯤 Kebnekaise 산장에 도달하여 오랜만의 호사를 누립니다. 긴 걸음 후의 음식은 답니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하나씩 시켜놓고 조금씩 서로 나눠먹는데 이 고장에서 나는 순록고기며 양고기 등 방문 기념으로 맛도 봅니다.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그간 5일 동안 누적된 노독을 풀며 하루를 마감하는데 별빛이 유난히 맑고 밝아 우리는 랩랜드 대자연의 일부가 되고 함께 밤이 되어 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