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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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습니다. 내 삶의 길을.. 어둠을 비집고 햇살이 스며들 때 순례자들은 서둘러 여장을 꾸립니다. 우리도 오늘 만큼은 일찍 길을 나서야 합니다. 내일 오전 여유롭게 산티아고로 입성하기 위해서는 35km의 거리에 있는 고조에 까지 이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기분이 잡치는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나이 사십이면 그 인생 얼굴에 다 써진다고 인애로움 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초로의 백인 여성이 감히 우리의 심기를 건드립니다. 나를 포함한 우리 일행들의 코골이 때문에 잠 한 숨을 자지 못했다며 인상을 구깁니다. 처음엔 미안한 마음에 자세를 낮추고 사과의 뜻을 표하니 기대한 이해의 반응은커녕 더 기고만장하여 목소리의 톤을 높입니다. 만만하게 보았는지 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느니 치료를 넘어 수술을 해야 한다느니 그 정도로 심한데 어떻게 다인실을 이용하려 했느냐는 둥 도를 넘는 지적에 지난 밤 옆에서 코고는 백인 남성 때문에 조금은 신경이 그슬린 나로서도 치명적인 한마디를 쏘아줍니다. 이 순례 길에서 함께 단체숙소에서 자며 이런 불편함을 당연히 감수해야 하고 코골음의 소음조차도 품고 가야 할 일인데 그렇지 못한다면 뭐 하러 순례는 하러 왔느냐? 그리고 또 이런 이유로 잠을 못잘 정도이면 돈 좀 더 써서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숙소를 구해서 잤어야지 왜 당연히 열악한 환경이 예상되는 이런 단체숙소를 이용하느냐며 힐난을 하고 우리는 모든 숙소를 그렇게 예약해서 지내 오다가 어제 단 하루만큼은 일부러 단체 알베르게를 경험해보기 위해서 이곳에서 잤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더니 그때서야 깨갱하고 꼬리를 내립니다. 비굴한 웃음을 억지로 흘리면서 말꼬리를 흐리는데 생각할수록 무시당한 느낌에 더욱 날카로운 시선으로 끝까지 째려보니 결국은 서둘러 동료들을 데리고 방을 떠나고 맙니다. 별 유쾌하지도 않은 승리의 쾌감을 느끼며 남은 우리들은 오붓하게 봉지 칼국수를 끓여서 아침을 해결하고 길을 나섭니다.   아르수아를 지나 전체적으로는 하산길이지만 계속 낮은 구릉을 올랐다 내리는 길을 반복하며 열심히 걷습니다. 안개가 제법 깔린 이른 오전의 길을 많이 걸어두어야 남은 오후 시간이 힘들지 않기에 대화는 끊이지 않아도 발길을 쉬지 않고 분주히 옮겨갑니다. 오늘도 일단은 변함없이 푸른 하늘과 맑은 바람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11킬로 지점인 살세다도 지나고 이어서 산타 아이린도 지나니 점점 줄어드는 산티아고와의 남은 거리. 좁혀지는 거리만큼 마음도 본의 아니게 급해집니다. 어떤 모습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우리를 반겨줄 것인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주하듯 달려가니 어느덧 순례자의 천국이라고도 평하듯이 온 도시 전체가 알베르게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점점 어두워지던 하늘에서 후둑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패드로우소에 도착합니다. 3월의 순례길이기에 성수기처럼 숙소 예약에 대한 부담이 없고 더욱이 우리는 이미 인터넷 상으로 다 도착 지점을 추정하여 예약을 해둔 탓에 긴장할 이유는 없습니다. 여름 시즌 초 성수기에는 마치 순례가 알베르게를 먼저 차지하기 위한 경주와 같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라 하니 가히 상상이 됩니다. 가는 길에서는 서로 친근함으로 말동무가 되고 필요한 것들 기꺼이 무상으로 내어주던 그 관계가 그날 종착지쯤에 이르러서는 보이지 않는 알베르게 쟁탈전으로 적이 되어있었다는 고백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노상 카페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주문합니다. 에스텔라 별 맥주를 먼저 시키고 이것저것 음심들을 메뉴를 보며 주문했는데 안주 개념인지 빵이며 예의 그 감자와 계란을 층으로 올린 스패니쉬 오믈렛을 잔뜩 가져다줍니다. 괜히 음식 많이 시켰다며 핀잔을 듣게 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또 풍성하게 내어오는 접시들을 결국을 다 비우지 못하고 남기게 됩니다. 음식 인심은 참 좋은 곳이다 여기며 후한 점수를 주면서 다시 남은 맥주를 한숨에 마시고 다시 길 위에 섭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스페인 서북부는 추적추적 내리는 차가운 비에 촉촉이 젖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비는 순례자들에게 내려주는 마지막 축복이 아닐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얼마나 많은 우리 한국인들이 이 길을 걷기에 간판이나 안내문에 심심찮게 한글 표시를 보게 됩니다. 심지어 “컵라면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보면서 참 우리의 가려운 곳을 긁어도 주는구나하고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어쨌거나 이 이방의 땅에서 친근한 우리글을 대한다는 소회는 반가움이 우선이랍니다.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들이 늘어나면서 길을 따라 생겨난 마을과 도시들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종교와 민간 건축물이 무수히 포진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로마와 캐톨릭 양식에 8세기경 이슬람의 우마이야 왕조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후 그들 문명의 영향을 받아 더욱 다양하고 향상된 문화와 건축물들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돌로 깎은 조형물이나 심지어 건축물들이 하나같이 오래된 역사적 유물이며 예술품입니다. 더불어서 근대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멋진 작품까지 큰 도시에서는 선을 보이니 이들을 감상하며 걷는 소소한 재미도 있답니다. 더군다나 지역마다의 민속 축제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고 다양한 음식과 풍물을 접할 수 있기에 더욱 현실로 다가오는 여행이 되는 것입니다. 허다한 자신만의 이유를 품고 걷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직접 체험하는 것은 정말 흥미 있고 가슴에 여운이 남는 모험인데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갈리시아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향해 길어가는 9개의 루트를 통해 북부 스페인을 발견할 수 있는 색다른 여행입니다. 수려한 자연미를 선사하고 시간이 정지된 듯 숨겨진 오래된 중세의 모습 등을 펼쳐 보이는 이 순례길은 그런 독특한 매력으로 199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순례하는 과정에서 닥쳐오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축복의 은총이 가득한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이 여정을 모두가 충분히 해볼 만 한 가치있는 여행이라고들 합니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이 길은 수 십 년 동안 걸은 이들이 순례의 상징인 조가비 문양과 더불어 노란색 화살표를 그려두었습니다. 혼자 가더라도 그들과 함께 걷는 둣해 그래서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언덕을 넘을  때마다 나타나는 그림 같은 작은 마을들. 뾰족한 첨탑들이 반기는 고풍스런 거리들. 이방의 다채로움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지만 그 옛날에는 그야말로 고행이며 고난의 길이었다 합니다.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당시 이 길은 제대로 정비되지도 않았고 천연의 길이어서 풍경은 아름다울지 몰랐어도 어떤 구간은 치명적으로 위험하기도 하고 스페인 북부 겨울의 황당한 날씨에 많은 순례자들이 죽어간 사례도 허다했고 더군다나 순례자들만을 노리는 비적들이 들끓어 목숨을 고스란히 내어 놓기도 하였다고 하니 자못 숙연해지는 순간도 가져봅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해 비교하면 지금 나의 길은 그저 호사스러운 것이기에 어쩌면 가슴 깊은 간절함이 조금은 덜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숙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산티아고에 대한 열정이 더한 만큼 그 그리움 때문에 발길에 나도 몰래 속도가 붙었나 봅니다. 고조의 언덕을 내려오면서 아련하게 보이던 산티아고 대성당의 첨탑들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는 듯합니다. 겨우 5km를 남겨두고 그 기다림으로 여장을 풀고 지새우는 하루 밤이 묘한 감정으로 채색됩니다. 유독 침실의 공간이 적은 유럽의 호텔 룸. 그 작은 공간이지만 밥을 짓고 된장냄새 폴폴 풍기며 찌개도 끓여 모두 한방에 모여 맛있는 저녁을 지어먹습니다. 짭짤한 젓갈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우리에겐 진수성찬. 어김없이 백, 적포도주를 곁들여서 말입니다. 이놈의 식성은 30년을 외국에서 살아도 변함이 없고 오히려 더욱 더 짙어진 향수처럼 간절해지는데 우리 음식 두 끼를 거푸 건너뛰면 성질마저 짜증스럽게 변해버립니다. 한 순배씩 더 돌아가는 와인 잔은 산티아고 입성 전야의 축복을 더욱 감동적으로 만들어주고 쉬이 잠들지 못하는 고조의 밤도 우리와 함께 합니다. 대성당 광장에 마지막 도착한 우리들의 모습 우리들의 감동은 어떤 식으로 나타날까? 어떻게 기쁜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 것일까? 이제는 개서 맑아진 저 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만큼이나 생각이 꼬리를 무는 밤. 고조의 그 밤이 속절없이 깊어만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