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의 변방 에크랑 국립공원. 그 길 위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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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쓰 마을을 벗어나 인애로운 알프스의 햇살을 등에 업고 Souchet(2,365m) 고개를 향해 제법 기나긴 오르막 길을 오릅니다. 가을빛이 사뿐히 내려앉은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서서히 나무들은 사라지고 목장지대를 지나는데 이때 양치기 노릇을 하는 Patous라는 개들의 공격에 대해 긴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들 두세마리가 몇백수의 양들을 몰고다니며 풀을 뜯게 하는 광경을 보며 놀라지 않을수 없으며 잘 키운 개한마리가 사람 몫을 충분히 해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착한 놈들은 우리들 곁으로 다가와 꼬리를 흔들며 친한 척합니다. 저도 얼마나 외로웠으면.. 서서히 차오르는 메이제 산군의 위용. 빙하와 그 주변의 만년설봉들이 우리 눈높이에 와있는데 이 광경이 현실이라기에는 너무 환상적이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장쾌한 풍경 바라보며 점심을 해결하고 천천히 이동하는데 Clavans로 하산을 하며 걷는 Emparis 고원은 거대한 녹색 초원으로 펼쳐집니다. La Grave로 향해 하강하면서 GR54의 길 위에서 자주 만나듯 Chazelet이나 Les Terrasses와 같은 예쁜 마을을 통과하는데 길위에서 만나는 작은 산촌 마을들은 크든 작든 어김없이 교회당이 우뚝 솟아있고 또 예외없이 시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캐톨릭의 나라인지라 그러할텐데 수도 헤아릴수 없는 십자가 상이 길 곳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Les Terrasses 마을 아래서 도깨비 상을 하고 있는 돌무덤을 발견합니다. 성서속의 수호신인지 샤머니즘적인 형상인지 마을을 굽어보는 언덕에 세워져 있는데 자신들을 지켜주길 바라는 소망은 동서 구분이 없나봅니다. 라 그하브로 향하는 하산길에서 농부들을 만납니다. 땅콩을 수확하는지 세명의 남정네들이 열심히 손길을 주고받는데 곁에 모셔둔 사륜구동 지프차로 출근하신 듯. 새참 대신에 동네 다방에서 커피 시켜먹는 요즘 우리네 농촌풍경과 겹치면서 웃음이 새어나왔습니다. 마침내 라 그하브 동네로 들어서니 또 다시 키큰 종탑의 성당이 반겨줍니다. 차라리 공동묘지라 해도 손색이 없을 성당은 마을 사람들의 묘터가 되어버렸고 넓지 않은 가든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열심히 구슬 땀을 흘리며 채전을 일구던 신부님이 느닷없이 방문한 이방인을 위해 목도를 건네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메이제(Meije) 산군(3,983m)을 가깝게 볼 수 있고 또 그것을 감상하러 올라가는 케이블 카가 설치되어 있는 이유뿐만 아니라 빼어난 주변 풍경의 수려함으로 여름이면 방문객이 넘친다는 라 그하브를 떠나 스키의 메카인 몬티에르(Monetier les Bains)으로 향합니다. Arsine(2,340m)고개를 넘어 가야하는데 상쾌한 아침기류를 흡입하며 오늘 하루치의 숭고한 걷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고개로의 등반은 별 어려움이 없으며 신속하게 이루어지는데 정점에서 바라보는 반대편 눈덮힌 Meije 산군의 거대한 모습이 찬란하고도 인상적입니다. 이 에크랑 국립공원엔 3,000m 이상 봉우리만 100여 개가 넘는다 하니 그 위용을 짐작하고도 남을것입니다. Villar d'Arene의 드넓은 고산 평원과 계곡을 가로질러가면 이제 제법 많은 등산객들이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습니다. 꽤나 유명한 코스려니 짐작했는데 계곡이 끝나고 하산길에 접어들면서 알게됩니다. 작은 연못 사이즈의 호수가 하나 누워있는데 빙하수가 고여 그 짙은 에메랄드 색이 참으로 예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산군을 한바퀴 크게 도는 이들과 그저 이 두쉬호수(Douche : 1,901m)까지 올라와 소풍처럼 즐기는 이들로 나눠집니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과 친구들과 동행한 그룹들. 모두 저마다 함박웃음에 행복을 한배낭씩 메고와 풀어놓습니다. 전문 산악 가이드를 대동한 이방인들의 산행 행렬도 감지됩니다. 주위를 물들인 가을 단풍색에 방문객들의 총천연색 의상이 더해지니 이 계곡에는 오늘 색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이내 떨어질것 같은 빙하와 만년설을 이고 있는 주변 산들이 아슬아슬한데 경치 하나는 일품입니다. 우리도 가벼운 간식을 나누고 짙은 숲길을 걸어 카세(Casset) 마을을 거쳐 오늘 하루를 접을 Monetier(1,500m) 마을까지 가볍게 내려갑니다. 어느새 산그늘이 길고 짙게 드리우고 석양을 등에지고 걷는 동행의 뒷모습이 더욱 아득해집니다.    Monetier의 아침이 열리고 나그네는 또 길을 나섭니다. 프랑스인들은 스키와는 각별한 연을 맺고 삽니다. 왠만하면 모든 산악마을은 스키 리프트가 설치되어있고 국가적 스키 산업의 육성으로 온 국민이 즐기겠금 했습니다. 과거 귀족 스포츠였던 폴로 처럼 스키도 그랬으나 국가적 지원으로 대중화되면서 아무리 작은 시골마을이라도 스키샾 하나 이상은 모두 갖고 있습니다. 스포츠를 통해 심신을 단련하며 선진국민의 면모를 갖추게 하는데 이른 아침부터 어린 아이들이 도로에서 스키 지치는 연습을 하고 있는 광경을 뒤로하고 우리는 산으로 오릅니다. 오늘은 l’Eychauda(2,425m) 고개를 향한 위대한 등반후 Vallouise(1,165m)로 하산하다가 유명한 빙하호수 Arsine을 만나게 됩니다. 이 호수로 가는 길은 양자택일 길 중 하나라서 길을 잘 잡아야 합니다. 마을을 지나서 강을 건너 산길로 이어지는데 주변 양지바른 곳에는 철지난 야생화들이 이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숲길을 지나 고도를 높일수록 잔돌이 많고 먼지가 일며 황량한 느낌마저 주는데 고개를 향한 묵묵한 전진은 수도자의 심정으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여름이면 이길을 리프트타고 올라갈수 있는 옵션이 있고 겨울이면 스키장으로 변합니다. 프랑스인들은 풍치 좋은 곳에는 어감없이 피크닉 테이블을 설치해놓았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잠시 쉬어가며 이 위대한 자연을 마음껏 즐기라는 정부의 사려깊은 배려입니다. 산을 사랑하지 않을수 없도록 인프라를 잘 구축해둔 나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고개를 오르면 끝없이 펼쳐진 고산 평원이 나오고 가득 채운 푸른 잔디들이 이제는 색이 바래고 있습니다. 이 빙하 호수로 가는 길은 사람들이 제법 왕래가 많습니다. 그만큼 명소라는 뜻이겠죠. 호수에 거의 다다를 쯤에 길가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어린 소녀를 봅니다. 곁에는 젊은 엄마가 함께 하는데 나이를 물어보니 이제 다섯 살이랍니다. 제대로 배낭과 등산화로 무장한 최연소 산악인이라며 엄지를 세워지고 격려를 해 주니 그 앙증맞은 고사리 손을 흔들어 줍니다.    호수는 빙하가 녹은 담수호인데 수만년 세월동안 품고있어 곁에서 보면 석회질 때문에 색깔은 온통 잿빛입니다. 그러나 좀더 올라가 전망대에서 보면 햇빛을 받는 곳은 무척 고혹적인 옥색으로 변해갑니다. 가장 양지바른 전망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점심을 먹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진도 찍어 주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솔로 하이커 하나가 우리 곁으로 다가 옵니다. 내심 사진을 하나 찍어 달라는 듯해서 그 마음을 알아 차리고 몇 컷 찍어주고 말을 섞습니다. 이곳에서 몇 시간 떨어져 있는 에어버스 항공기 제작사가 있는 도시에서 온 50대 초반 남성으로 엔지니어라 합니다. 왜소하지만 얼마나 다람쥐처럼 잘 걷는지 그는 걸음의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면서 호수 너머 사이드 트레일까지 하고 오겠다며 작별합니다. 우리도 펠부(Pelvoux)를 지나 발루이즈(Vallouise)로 향하는데 올랐던 만큼 내려가는 지리한 하산길입니다. 하지만 장대한 계곡과 4천미터에 가까운 발루이즈 산을 위시한 설봉들의 산물결을 보면 가슴이 설렙니다. 당일 산행을 즐기려는 이들을 위한 주차장 곁에는 카페와 식당이 있는데 시즌이 끝나 모두 철시를 했습니다. 띄엄띄엄 가옥도 보이고 작은 예배당도 있습니다. 모두 주변 돌들을 이용한 석조 건물인데 주변 환경과 참 잘 어울린다 여겨집니다. 비록 아무도 없지만 우리끼리 야외 식탁에 앉아 지고온 맥주 한병씩과 소대가리표 치즈 안주로 산행후의 갈증을 달래며 이 에크랑 산군도 함께 마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