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가는 길. 그 길위에서..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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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스테레. 세상의 끝. 세속의 지명은 피스테라입니다. 어느 길을 택하든 한 달 넘게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했으면서도 여전히 순례의 갈증이 해소되지 않은 이들은 또 다시 배낭을 걸쳐 메고 120km의 거리를 더 걸어 대서양의 끝 피니스테레로 향합니다. 산티아고를 방문한 순례자들의 의미있는 종착지로 피스테라로 가는 이유는 헤로데 왕에게 죽임을 당한 성 야고보의 시신을 돌로 만든 배에 실어 바다에 띄웠는데 그 유해가 흘러와 발견되어 산티아고로 옮겨서 안치 시켰다고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카미노 피스테라로 불리는 이 길은 천동설을 신봉해왔던 중세 시대에는 그저 바다로 막혀버리는 이곳이 끝이었을 것이라고 여겨온 ‘세상의 끝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태양이 서녘 바다로 떨어지는 풍경이 기필코 또 다른 감동이 가슴에 물결칠 것이고 산과 들과 마을을 보며 걸어왔던 길이 마지막 해안선에 다다르면 진정한 끝의 의미가 전해 올 것이라고 여기고 우리도 그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산티아고 대 성당에 다시 들러 오늘 도착하는 순례자들의 격한 감동에 한 번 더 동참하고 광장 한편에 개축된 파라도르(국영 호텔) 야외 식당에서 점심을 시켜 먹습니다. 유리로 지어진 야외 테이블에 앉아 푸른 하늘과 오래된 성곽 모퉁이를 배경으로 속속 도착하는 이들의 독특한 세레모니를 흥미롭게 보면서 식사를 즐깁니다. 메뉴 델 디아(Menu Del Dia). 스페인의 독특한 식당문화로 오늘의 요리 라고 할 그날 선정된 특별 식단을 코스 요리로 나오며 요금은 일반 주문보다 매우 싼 형태입니다. 얄팍한 음식 지식으로 자칫 후회스런 주문을 하느니 편하게 이 한마디 외치면 알아서 쭉 나오는 순서대로 먹을 수 있어 좋습니다. 와인에 맥주에 낮술을 즐기다 보니 버스를 타고 가려고 터미널로 갔는데 아차 차는 떠나버리고 하루에 단 세 번 있는 다음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무려 6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버스를 포기하고 택시를 타고 달려갑니다. 대신 두 세 시간 걸리는 버스길을 한 시간 만에 도착했으니 어촌 마을을 더 즐길 수 있게 되었죠. 산마루 이어지는 곳에 지어진 숙소에다 여장을 풀고 발아래 가득 채워지는 어촌의 풍경을 감상하며 간단한 요기를 합니다. 남향으로 난 넓은 유리창을 통해 따스한 햇살이 푸짐하게 드는 명당자리입니다. 깊이 휘어져 들어온 만에는 좌측으로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 소담스런 백사장이 이어지고 마을의 중심부에는 부족하지 않은 어부의 삶을 이어오게 해준 선박들이 가득 정박되어진 포구가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더해줍니다. 그리 깊지 않은 바다는 바닥에 깔린 바위들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맑고 투명합니다. 청정한 어촌 피스테라. 정감이 전해오는 예쁜 마을입니다. 피니스테레 카미노 길은 해안선을 따라 이어집니다. 숙소에서 나와서 작은 어촌 마을 피스테라의 가장 번잡한 곳에 세워진 성 야고보의 동상을 이정표 삼고 무수한 배들이 정박한 정겨운 포구를 지나 고도의 건물과 어우러진 풍경 속으로 들어가면서 언덕 망루가 설치된 모퉁이를 돌아서면 저 만치 세상의 끝이 가물거립니다. 민가를 지나 밭길을 조금 오르면 포장도로로 이어지고 신작로 갓길에 난 카미노 길을 따라 걷는데 눈에 잡히는 시원한 바다의 풍광을 감상하며 올라갑니다. 이 길에서는 여러 사람들을 만납니다. 세상의 끝이니 이 길 만이라도 걷기 위해 온 큰 무리의 가족들, 얼마나 오랜 시간을 걸었는지 모를 덥수룩한 수염에 마치 걸인의 행색을 한 길손들, 수월치 않은 고갯길을 차마 페달을 밟아 오르지 못해 자전거를 끌고 가는 무리들. 어쨌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세상을 품기 위해 오르고 있습니다. 3월의 대서양 바다 바람은 아직 손끝이며 귀 끝이며 말초부위를 따끔하게 자극하고 해님이 구름에 가리면 땀에 젖는 오름길이라도 한기로 전율을 하게 합니다. 뭍으로 봄을 전하기 위해 달려가는 그 바람에 잔잔한 파도가 일면 오후의 햇살은 바다에 부딪쳐 생선의 비늘처럼 반짝입니다. 제법 가야하는 3.5km의 오름길인데 잠시 쉬어가며 사진이라도 찍으라는 듯이 휘돌아가는 길 곶에 순례자를 형상화한 동상을 세워두어 모두들 빠짐없이 출사지로 선택 합니다. 아마도 그 옛날 조가비를 달고 걸었을 첫 번째 순례자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바람에 대적하여 꽁꽁 싸맨 옷과 모자 그리고 의지하며 걸었던 외 지팡이가 동류의식을 자극하여 참 편하게 여겨졌습니다. 지역을 이동하는 것이 쉽지 않은 그때는 일종의 고행길이었을텐데 어쩌면 이 자리에서 죽어간 순례자도 있을 것이고 그 고된 여정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쉬어가는 마음의 안식처도 되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드디어 세상의 끝에 이르렀습니다. 0.00 km라 기록된 표시석. 이 숫자가 주는 느낌은 오랜 날들을 걸어온 이들에게는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올텐데 휴일을 맞은 이곳은 방문자의 발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차량들은 끝없이 밀려와 주차 전쟁이 극심하고 언덕부터 채운 인간 행렬은 또 다른 의구심을 일게 하는데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곳으로 오게 하였나 하는 것입니다. 높은 언덕이니 항로를 이끌어주는 등대가 있음은 당연하겠지만 왠지 오늘 만큼은 저 빨간 지붕의 등대가 우리의 혼미한 인생길을 밝혀주는 지혜로운 존재로 부각 되어옵니다. 오른 편 거벽에는 부조상이 조각되고 당연 성 야곱의 것이라 여기며 옷깃을 여미고 지나가 건물 내의 작은 박물관을 둘러봅니다. 예상외로 순례를 주제로 한 것들이 아니라 조금은 낙심을 하고 계단을 따라 두발로 갈수 있는 곳까지 다가갑니다. 그곳에는 바위 위에 올려놓은 청동으로 조각한 신발 한 짝 동상이 바다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 작품의 의도는 헤아릴 수 없지만 그 풍경을 보는 나로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세상의 끝에서 바다와 육지를 동시에 그리워하는 마음 한 조각을 남겨두고 떠난 애달픔이 느껴집니다. 왜 달랑 한 짝일까? 한 짝은 그곳에 남겨두고 한 짝만 챙겨서 삶으로 돌아가 언제나 카미노 길에서 가진 마음의 각오를 잊지 말자는 것은 아닐까하는 자문자답을 해봅니다. 이 부근에는 여기저기 불로 그을린 바위들이 제법 있습니다. 순례자들에게는 그들이 순례하는 동안 입고 신었던 의복과 신발 등을 태워버리는 의식이 전해져 오는데 지니고 온 모든 것들을 불태우며 카미노 길의 마지막을 기념하며 무욕의 땅으로 돌아가리라는 의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으로 우리의 순례는 끝을 맺습니다. 절벽 한 귀퉁이 한적한 곳에 앉아 오랜 시간동안을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봅니다. 지난 시간들이 하나둘 꼬리를 물며 주마등 스치듯 지나갑니다. 해냈다는 보람과 긍지 속에 또 이제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 새로운 의문 같은 숙제.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법. 그저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날들 중의 어느 하루 일 뿐인 오늘이 이다지 깊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순간입니다. 그러면서도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이율배반으로 떠오릅니다. 과연 오늘 이 넘치는 감동이 그 얼마나 이어질 것인가? 경이로웠고 때론 감동적이었고 때론 너무도 행복했던 이 순간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그저 한 장의 사진 속 프레임에 갇히게 될 기억일 뿐 모두가 사라지고 풍경만이 남아 무덤덤하게 시간의 흐름을 이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세속의 순례 길, 내 삶의 카미노를 걸으며 결코 이 날의 감동과 각오를 잊지는 말자고 자신에게 다짐을 합니다. 조용히 맞잡은 동행들의 손. 아무런 말은 없어도 함께 숨결을 느끼던 여정이었기에 서로를 이해하고 기쁨도 환희와 더불어 아픔까지도 느낄 수 있습니다. 조용한 웃음만이 우리들의 모든 대화입니다. 표시석 마다에 걸어둔 내 인생의 혼돈, 십자가 아래 소중히 내려놓은 내 삶의 미련들, 힘겹게 넘던 언덕마다에 남겨놓은 내 일상의 그리움들. 이런 것들이 이제는 다시 시작하는 내 인생의 카미노에 선명한 이정이 되리라 믿으며 갈무리한 마음을 챙겨서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