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안나푸르나. 그 길위에서.. 1
>

시간에게 시간을 주라했던가? 히말라야. 그 신의 영역. 트레커들의 로망이며 트레킹의 보고로 알려진 히말라야 트레킹. 태평양 너머 산다는 지리적 이유로 등한시 해왔던 이 곳. 마침내 마음을 다잡아 먹고 단출한 식구로 행장을 꾸렸습니다. 세계의 지붕이라 일컫는 대산맥 히말라야는 네팔과 인도, 티벳, 부탄, 파키스탄 국가들을 모두 걸치고 있으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K2 등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8천미터 이상급의 산이 14개나 자리잡고 있어 14좌라 부릅니다. 이곳에서는 해발 7천 미터가 넘지 않으면 산(Mountain)이라는 그 흔한 대명사도  겨우 봉우리(peak)라 부르며 심지어 세계 3대 미봉이라 일컫는 수려한 자태의 마차푸차레도 그러합니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로도  유명한 인더스 갠지스와 양쯔강은 모두 히말라야에서 발원합니다.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의 원래 이름은 '사가르마타'이지만 영국 식민지 시절에 에베레스트로 바뀌어 네팔 현지인들조차 에베레스트로 부릅니다. 그런 내 마음 속 그리움의 대상 히말라야에 왔습니다.    긴 긴 항공 끝에 카트만두에 내렸습니다. 일국의 수도에 준설된 카트만두 국제 공항은 꼭 시골의 간이 기차역 수준이라면 너무 혹평일까. 그래도 어쩐지 그 옛날의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시간여행이 나를 참 푸근하게 해줍니다. 도심이래야 온통 비포장 도로에서 일어나는 먼지들로 숫제 회색으로 치장하고 있는데 무질서한 차량은 차선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참고하라고 있는 듯이 곡예를 하며 빠져나갑니다. 세상 가장 높은 산을 지닌 네팔은 800km의 히말라야 산맥에 조금 걸쳐있는 고산족인 셀파를 비롯 문화와 언어가 다른 30여 종족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로 불가 석가모니의 탄생지여서 2000년 이어론 찬란한 불교문화는 물론 현재 세계유일의 힌두 왕국으로서 힌두교와 관련있는 고고한 문화 유산이 전국적으로 즐비합니다. 분지형 도시 카트만두는 약 2000년 전부터 융성한 문화를 꽃 피우며 살아왔는데 15-18세기에 걸쳐 대승불교를 비롯한 종교문화가 창궐하여 도시 곳곳에 유서깊은 사원이 가득 세워졌습니다. 이어 18세기 후반 구르카 족이 나라를 평정하고 오늘날의 네팔 왕국을 건설하여 지금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로써 2,500만명 가까운 인구가 산속 곳곳에 터를 잡은 마을에 고루 흩어져 살고 있으며 수도 카트만두 분지의 주민이 150만명 정도라 합니다. 남부의 인도 아리안 계통과 북부의 티베트, 버마 계통으로 세 주요 민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서로 종교적인 대립보다는 조화를 잘 이루어 살아가는 평화로운 곳입니다. 혼재하는 상반된 요소들을 조화롭게 어루만지며 행복을 지어가는 네팔. 히말라야의 찬바람에 의지하고 신이 빚은 자연과 신을 닮은 사람들을 만나면 네팔은 그대로 산이 되고 그리움이 된다기에 가난하지만 순수한 나라를 가슴으로 만나려 합니다. 또한 그 작지만 큰 나라 그 거대한 나라의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을 만나러 히말라야로 왔습니다.    카트만두에서 네팔 제 2의 호반 도시 포카라까지 25분간의 비행으로 도착합니다. 포카라은 원주민어로 호수를 뜻하는데 서쪽 히말라야 트레킹 출발의 본거지로서 아열대 지방의 온난한 기후덕에 네팔 최고의 휴양지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의 품에 안기기 위해 나야풀로 가기전 시간의 여유가 있어 페와 호수로 갑니다. 포카라에서 보는 히말라야. 또 다른 경이로 다가옵니다. 신이 산다는 그래서 인간의 등반을 허용치 않는 마차푸차레가 네팔에서 두번째로 큰 페와 호수에 허리숙여 얼굴을 씻고 있고 줄지은 설산 고봉들이 길손을 맞아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반겨줍니다.    터덜터덜 비포장길을 아니 포장이 벗겨져 다시 맨살을 드러낸 도로를 따라 덜컹이며 달려가 입산 신고를 하고 안나푸르나의 영역에 들어서니 마을 순례길이 시작됩니다. 어느 트레일이든 강을 넘어 다리를 건너면서 시작되는 히말라야 모든 트레킹과 마찬가지로 푼힐 가는 길도 예외는 아닙니다. 히케룬다 밸리를 따라 하염없이 걷는 길은 오랜 옛기억에서 조차도 가물거리는 우리의 고향같은 마을들이 향수를 자극합니다. 겨울이 존재하지 않는 이 땅에서는 방풍을 위한 구조물이 필요없으니 아무렇게나 비나 피할 지붕만 있는 허술한 외양간에서 풍겨나오는 시골 냄새. 식육으로 가능한 물소들이 싸질러 놓은 배설물. 수시간 걸어 등하교 하는 교복입은 어린 학생들. 냇가에선 바위들을 해머로 내려쳐서 기절한 물고기잡는 천렵하는 아이들. 먼지 뽀얗게 쌓이고 색까지 바랜 과자들과 코카콜라 파는 구멍가게. 그 앞 나무 평상에 누워 배를 드러내고 그냥 자고있는 촌할배 할매들. 타인의 침범을 막기위함이 아니라 그저 경계의 표식으로 쌓아올린 가지런한 돌담들. 지나는 길손들의 목을 적시고 가게 해둔 가상한 마음의 배려인 약수터. 그 아래서 빨래하는 아낙네. 내 유년의 향리와 너무도 흡사합니다. 우리에게 산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도전의 대상이지만 이들에게는 삶 그 자체며 생계를 이어주는 곳입니다.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과거를 반추할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아주 고약한 냄새가 혐오스럽기 까지 한데 가이드가 아마 사자를 화장하는것 같다합니다. 누군가 생과 이별을 한듯.. 한 생명이 자연으로 귀의하는 시간. 숱한 기쁨과 슬픔으로 점철된 그만의 세월은 이렇게 자연속으로 스러집니다. 죽어 영원히 산다고 믿는 이들이기에 지금 이 순간은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그저 두 영역의 경계에 있을 뿐입니다. 옥수수 그루 가지런히 심겨진 다락논이 가득채운 계곡을 오르다가 문득 먼저 가신 어머님이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나야풀에서 시작한 길. 오늘은 500미터를 오르며 네시간을 걸어 티케통가에서 마감을 했습니다. 마지막 돌계단 길을 헉헉거리며 올라 마침내 로지에 들어서 깊은 숨 몰아쉬니 그제서야 그동안 참았던 하늘이 울어버립니다. 한자락 광풍과 함께 많은 비가 쏟아지는데 한발걸음만 늦었어도 비를 흠뻑 맞았을 뻔. 뒤를 이어 들어서는 서양인들의 몰골은 보기에도 안스러울 정도. 사려깊은 히말라야의 하늘에게 고마운 우르럼을 행하고 온수가 제공되는 샤워를 마치고 나니 몸도 마음도 새의 깃털처럼 가볍습니다. 저녁식사까지는 시간의 여유가 있어 처음 나와 함께 동행한 일행들에게 카드놀이인 훌라게임을 가르쳐줍니다. 여유있을 때 마다 이 게임을 해서 곡차 사 먹을 재원을 마련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정종을 증류시켜 한층 독해진 히말라야 산촌 전통주인 럭시라는 독주를 한잔씩 음미하다가 저녁 정찬을 받아들고 바리바리 싸서 셀파에게 맡긴 정구지 김치랑 장아찌 고추장 등을 곁들여 자칫 달갑지않은 향신료 첨가로 거부감을 주는 현지식을 우리네 음식으로 개량해서 즐깁니다. 이곳에 어울리는 에베레스트 맥주와 함께 말입니다. 어두워졌다 밝아졌다를 반복하며 그네를 타고 있는 삼십촉 전등불 아래 동행들의 얼굴에는 홍조가 물들고 산삐알 빼곡이 들어찬 촌가들도 하나둘 불을 밝히니 차분하고도 그윽한 히말라야의 첫날밤이 모락모락 익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