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안나푸르나. 그 길위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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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런한 아낙이 어둠을 쓸어내며 아침을 여니 한없이 게으른 기재개를 켜면서 히말라야 산들이 하나 둘 일어납니다. 새벽 4시에 깨어나 글을 써내려가다 다섯시 반에 맞춰둔 알람 소리에 일행들을 깨우고 뜨락으로 내려갑니다. 로지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일과로 분주한데 잊지않고 나마스테하고 반가운 아침 인사를 건네옵니다. 내 안의 신이 당신 마음의 신에게 인사드립니다라는 나마스테. 미소를 잊지않고 나마스테 인사를 돌려줍니다. 5월의 히말라야는 6월 부터 시작하는 우기에 걸쳐있어 오전에는 대체로 화창한 일기가 지속되다가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비를 뿌립니다. 비록 지나가는 소낙비일지라도 비에 젖는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허접한 산행때야 비가 온다 하여도 상념에 빠져보는 운치있는 시간을 향유할수 있다지만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오랜 시간을 투자해 온 세계 유명 트레킹에서 불순한 일기 때문에 명경 감상 기회를 놓친다는 것은 시쳇말로 사실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한시각이라도 이르게 길을 나서 비가 내리기 전에 다음 목덕지에 도달하자는 것이죠. 물론 온전히 우리들의 바람일 뿐이지만 말입니다. 아침 식사 대충하고 세안하고 양치하고 또 쭈구려 앉아 10분도 버틸수 없는 푸세식 해우소에서 고민을 해결하고 오늘길을 시작합니다.    셀파에게 맡길 것들과 내가 짊어질것을 분류하여 여장을 다시 꾸립니다. 어제의 경험을 교훈 삼아 내 지극히 개인적인 사용품 마저도 셀파의 백에 담았다가 순간의 갈등을 겪고 치졸한 내 행위에 수치를 느끼며 다시 나의 배낭에 옮겨 담습니다. 수행을 자처한 이 길 위에서 얄팍한 계산으로 내짐을 줄인다면 오롯이 그 안스러운 셀파들의 몫인데 어찌 그 부끄러움을 감당하려 했는지.. 하루 이만원도 안되는 박봉으로 거의 25kg이나 되는 짐들을 머리띠로 둘러메고 천미터를 넘는 가파른 고갯마루를 넘는 이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는지... 오히려 마음을 고쳐먹고 그들과 함께 나눠먹을 간식들을 따로 챙겨 담습니다. 오늘은 길고 제법 힘든 여정으로 고레파니까지 1,300미터 고도를 올리며 최소한 6시간은 걸어야 합니다. 2,852미터에 위치한 고레파니. 개인의 상태에 따라 고소의 전조가 나타날 수 있는 시험의 고갯마루입니다.    고단한 순례자의 길이 시작됩니다. 싱그러운 히말라야의 아침 기류속으로 흘러들어가는 우리들의 모습. 아침 안개가 서서히 걷혀지며 오늘 우리가 쉼없이 올라야 할 계곡과 계단들을 예고편처럼 펼쳐 보여줍니다. 고산 지대에 사는 민족들이 다 그렇듯이 별 연장없이도 돌을 다루는 솜씨들이 빼어난데 이곳의 고산 셀파족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기에도 길의 훼손이나 범람이 없도록 전체적으로 얇은 돌을 이어 깔았고 다락논을 지탱하기 위한 돌담들이 풍경을 더욱 멋스럽게 해주는데 신장이 짧은 그들 방식일까 계단의 높이도 우리 순례자들에게 전혀 부담이 없도록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그 가파른 길을 아무렇지 않게 말로 달리고 짐 실은 무리의 나귀들을 몰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칩니다. 나귀는 이 산촌에서 최대의 운송수단이며 이를 휘파람 소리로 다루는 마부들은 19세기 말 그 위용을 사해 만방에 떨쳤던 바로 그 이 나라 출신 영국 용병들의 후손임을 잘 각인시켜 주는 모습입니다.    슬슬 힘에 부친 구간이 지속되고 한갖진 풍경이 여유로운 로지에서 차한잔의 여유로 한 시름을 풉니다. 공을 들여 좌판에 깔아둔 공예품들. 좋은 세상 좋은 나라에서 태어나버린 이방인의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감추려는 의도로 팔찌며 목걸이며 열쇠고리며 하나씩 사주고서 마을 학교 발전을 위한 모금함에도 적지만 정성을 보탭니다. 올레리 꼴래리라며 외운 울레리 마을. 이쁜 지붕들 색칠하고 히말라야의 산자락에 고즈넉히 누워있습니다. 수많은 경전을 새긴 마니석이 마을 입구에 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후손들이 세워둔 탑 같은 것인데 대개 2층으로 쌓았고 낮은 곳은 이 길을 지나는 나그네들이 쉬어가거니 셀파들이 무거운 짐을 내리고 쉬어가도록 높이까지도 배려해 두었습니다. 서로 돕고 이해하며 살아가는 삶. 참 아름답습니다. 마니석이 있는 길은 두갈래인데 반드시 오른쪽으로 가야한다는것은 종교적 기본 예의랍니다. 천년의 바람을 이겨내고 살아온 돌집들이 가지런하고 일손이 바쁜 아낙들의 거친 손등에 봄 햇살이 부처님의 자비처럼 잠시 쉬어갑니다. 달콤한 오수가 그리운 한 나절입니다. 문도 담도 없는 한 가정집에서 할머니부터 강보에 싸여 칭얼대는 어린 아이까지 3대가 함께 봄 햇살 아래 무슨 푸성귀를 돌에 대고 찢고 있습니다. 네팔식 김치를 담는 중이랍니다. 이시기에 김장처럼 많이 담궈서 겨우내 즐긴다합니다. 양해도 구함이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도 낯선 우리에게도 미소를 띄어줍니다. 자연이 주는 그대로를 받으며 살아온 이들. 행복은 마음의 속도에 반비례한다고 했던가! 조급하게 살면 늘 부족하지만 느긋하게 살면 늘 풍요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이제 바짝 곁으로 다가온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의 설봉을 바라보며 힘차게 오르다 지친 몸 어느 풍치 좋은 로지 레스토랑에 자리잡고 점심을 주문합니다. 오늘의 선택이 제대로 되었을까 조바심으로 기다리게 되는데 그 동안 블루투스 스피커를 이용해 음악을 감상합니다. 마침 틀려진 노래 베사메 무초. 폴란드에서 왔다는 고운 아줌마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며 호들갑을 떨기에 그 이후로 밑천이 바닥 날 때까지 스페니쉬나 이탈리아등 유럽노래만 듣게 되었습니다. 한시간 반이면 오늘의 종착 로지에 도달할 수 있다하니 일행 모두가 긴 휴식을 요구합니다. 낮잠까지도. 한시간 쯤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오후 길은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물론 오전의 트레킹과의 비교치이지 힘들기는 별 차이없이 마찬가지. 그러나 시간의 여유가 넘치니 걸음을 늘리고 주변의 풍경과 사람 살아가는 모습들을 더욱 주의깊게 보게 됩니다.    이끼낀 고목들이 가득찬 숲길로 들어섰습니다. 한자리에서 오랜 풍파를 견뎌내온 고목들의 곁을 지나면 푸른 숨소리가 들립니다. 울창한 나무들의 원시림 구간인데 그 오래묵은  향기를 오감으로 흡입하면서 당연 자연에 순화되는 우리들입니다. 고개 숙여 길섶을 보니 키작은 들꽃들이 앙증스런 몸짓으로 환하게 웃습니다. 이 모진 땅에서 언제나 웃으며 인사하는 얼굴 작은 야생화. 어느 바람에 실려왔을까. 저 이쁜 꽃잎 하나. 가파른 길 언저리를 에도는 길에 화려하게 뿌려진 빨간 꽃잎들이 발길을 잡습니다. 다름아닌 화려함이 남다른 우리네 진달래같은 네팔의 국화 랄리구라스의 낙화입니다. 네팔 산골의 봄은 2월부터 시작이 되는데 3,4월이면 히말라야의 산하는 랄리구라스가 연등처럼 붉게 피어 찬연합니다. 초등학교 조차도 월사금을 내고 가야하는 배고픈 아이들은 이 달싹한 랄리구라스 꽃잎을 따 먹으며 학교를 오간답니다.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지못하는 숫처녀의 나뭇짐에 랄리구라스 꽃을 얹어 주는 네팔의 총각들. 김소월의 진달래를 가시는 길에다 뿌려주며 구애도 하겠지요. 꽃잎은 거의 빨강이지만 드물게 흰색이나 분홍색, 또는 노란 색이나 보라색도 있다합니다만 아무래도 입술 연지처럼 새빨간 꽃이 아름다워 네팔의 국화로 제정됐다고 합니다. 물론 랄리구라스의 랄리는 붉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종착지. 삼천에 가까운 고지 고레파니는 푼힐 전망대로 가는 거점이기도 하거니와 삼각지 로타리의 고개입니다. 비에탄티. 간드록 등 세곳에서 열심히 달려와 목적하는 길로 갈라지는 곳으로 그 높디높은 고갯길을 힘들게 올라와 지쳐버린 사람도 말과 나귀도 잠시 목을 적시며 쉬어가는 곳입니다. 고레는 말을 뜻하고 파니는 물이라는 뜻이니 그 옛날 우리네의 말죽거리에 해당하는 마을입니다. 내일 푼힐 전망대에 올라 히말라야 설산 기봉들을 보기 위해 로지에 들어 방을 차지하니 창문으로 그림같은 다울라기니의 위용이 그려집니다. 한동안 그 풍경에 압도되어 시선을 꽂아둔채 묵묵히 바라보다 식사 준비를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갑니다. 오늘은 특식을 마련할 참입니다. 비록 네팔리 음식에 우리 찬을 곁들여 먹어 왔으니 그런대로 견딜만 합니다만 그럴수록 더욱 간절해지는 마늘향 짙은 우리 음식. 그래서 비록 인스탄트 제품이지만 칼국수를 준비하고 고레파니 오는 길가에 풍성하게 자란 풋마늘 두어 뿌리 슬쩍 서리해서 꼬불쳐와 채썰어 고추장과 설탕 참기름으로 버무려 무침으로 내놓습니다. 더불어 주문한 닭구이 요리 마저 우리 입맛에 맞는데 매콤달콤한 풋마늘 무침이 슬며시 찾아오는 고산증세마저 한방에 날려 보내고 영혼마저 깨끗하게 해준다는 너스레로 즐거운 식사를 합니다. 고된 하루 탓이었는지 너무 이른 기상 시간 때문이었는지 저알콜 도수의 맥주가 쉽게 취해옵니다. 내일 푼힐의 일출을 보기 위해 3시에 기상하여야 한다는 부담이 작용한지도 모르죠. 고산이라 뚝 떨어진 기온을 달래느라 거실이자 다이닝 룸에 설치한 따스한 대형 장작난로의 유혹마저도 뿌리치고 차가운 침낭속으로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