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안나푸르나. 그 길위에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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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오르려고 하는지 뭔가 음산한 느낌이 듭니다. 참았던 소피보러 뜨락에 나섰다가 잠든 산하를 굽어 봅니다. 세계 3대 미봉으로 추앙받는 마차푸차레의 산세가 작은 별하나의 빛에도 뚜렷하게 보입니다. 그 너머로 붉게 달구어지고 있는 히말의 큰 태양. 장엄한 산세에 압도되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세상의 지붕 언저리에 있는데도 아침은 이르게 찾아오고 네시를 조금 넘겼는데도 여명이 깃들며 개벽을 독촉합니다. 오늘은 이곳 2,540m 높이의 타다파니에서 2,210m 높이 시누와까지 이동하는데 산술적 계산으로는 330미터의 하산길입니다. 하지만 히말라야의 길을 걸으면서 서양의 길과 많이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한국의 산길도 그러하듯 매우 드라마틱합니다. 서구의 길이 트레킹 마지막 도달 지점까지 원만한 스위치 백 형태로 별 굴곡없이 이어지는 반면 히말라야의 산길은 끊임없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합니다. 그 수없는 오르내림에 실질적인 고도차는 변화무쌍한 길임을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해야합니다. 그 만큼 길마저도 다이나믹한 민족성의 소산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다시 길을 나섭니다. 히말라야의 길은 인간이 살아가는 원초적 삶을 통해 내 자신을 비교해보거나 대입해보면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지혜를 구하는 길입니다. 그런 길 위에서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홀로 자유여행을 즐깁니다. 물론 그들의 얇은 지갑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젊음의 열정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의 정신이 넘치는 우리 대한민국의 아들 딸들입니다. 배낭에 태극기를 감싸기도 소형 깃대를 팔랑거리도 하면서 자랑스러워 합니다. 그 대견함에 마음의 성원과 박수를 보냅니다.    히말라야 산비탈에 기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코리아를 모르는 이들이 없고 한국어를 제법 구사하며 또 한국을 무척 사랑한다 합니다. 한국을 다녀간 이들도 적지 않고 한국 노래도 음식도 문화도 즐기며 동경한다며 대중가요 한자락씩 어색한 발음이지만 구성지게 늘어놓습니다. 이 순간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내 보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났음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다는 깨달음이 듭니다. 내나라. 내조국. 비록 지도자 하나 잘못 뽑아서 세계적 망신거리가 되고 우리 국민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게 했지만 그래도 우리 국민들은 흔들림이 없이 대처해왔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맡은 바 소임을 다해 버텨왔고 앞으로도 새희망을 품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을 경주 할 것입니다.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으로 진정 국민들만 바라보고 국민만을 위하며 억울한일 일 없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가 되도록 힘쓸 대통령이 나타나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깨어있는 민주시민의 단합된 힘으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서 남아 항상 감시와 참여를 해야 할것입니다.  깊은 계곡 저 건너에서 큰 음악소리가 들려오는데 바로 결혼식이 있어 그렇다 합니다. 흥겨운 우리네 휘몰이 같은 장단으로 빠르게 연주하는데 하루 종일을 음주가무를 즐긴다 합니다. 새롭게 탄생하는 커플들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 Resham Firiri(레쌈 삐리리)  네팔인들에게 우리의 아리랑 같은 전통민요가 있다면 바로 이 노래입니다. 단조로운 음률이라 이방인들도 즐거이 따라부르기도 하는데 깊고먼 계곡을 건너 내 사랑이 전해지기를 염원한다는 사랑노래입니다. ‘ 레쌈’은 비단손수건, ‘삐리리’는 흔든다는 뜻으로 네팔 사람들이 모여 노는 자리에선 항상 즐겨 부르는 이 노래는 사랑의 감정을 ‘사냥’에 비유해 만들어진 노래라 하는데 내용은 한 방의 총알 두 방의 총알을 날려보지만, 내가 진정 쏘고 싶은 것은 사슴이 아니라 사랑하는 내님의 마음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히말라야의 길은 눈이 심심하지 않습니다. 물론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설산군의 최고 비경을 보러가는 것이 주 목적이지만 던지는 시선마다 다락논의 목가적 정경과 오랜 세월의 풍파에 견뎌낸 비틀어진 고목들과 오래된 정겨운 촌가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순박한 사람들과 수려한 자연 풍광들 더욱이 아름다운 설산들이 펼쳐지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걷는 풍요로운 길입니다. 발아래 펼쳐진 끝도 없는 깊은 계곡. 이리저리 흩어지고 꼬부라진 기인긴 내리막길. 두시간을 내려가야 한답니다. 생각만 해도 벌써 무릎이 시큰거립니다. 전망좋은 산장을 지납니다. 평소에 이 예쁜 로지 마당에 서면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운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를 또렷이 볼수 있는 지점인데 오늘은 자욱한 안개에 가려 산세의 선만 감상할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날입니다.  추이레를 지나 외딴 촌가 하나를 지나는데 연세 지긋한 노파 한분이 판에 글을 써서 들고 서있습니다. 늙고 병들어 의탁할 곳이 없다는 내용의 구걸입니다. 내 하나의 적은 적선이 그녀의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변화시킬수 있으랴만 지폐하나 건네줍니다. 의외의 큰돈에 연신 나마스테를 주문하는 그녀를 뒤에두고 다시 가파른 하향길 발을 헛디딜세라 조심스레 땅을 보고 걸어가는데 갑자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해옵니다. 올려보니 푸른제복을 입은 열명은 쉬이 넘는듯한 네팔 경찰들인데 어떻게 한국 사람의 특징을 알아차렸는지 대견해서 웃으며 인사를 받아줍니다. 범죄없는 순수하고 맑은 이 심심유곡 산골에 다수의 경찰들이 왠 순찰을 돌까했는데 다름아닌 선거 때문이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부락마다 실시하는데 공정선거를 위한 감시단으로 참관하며 이동한다 합니다. 옛날 우리네 고무신. 막걸리 선거 때가 연상되며 과연 부정없는 선거가 이루어질까 의구심이 솟는데 마지막 따르던 두명이 제일 신참인지 짐들을 챙겨 들고 오느라 뒤쳐져옵니다. 박봉에 수고하는 이들에게 우리 일행들이 먹으려고 담아온 간식류 일체를 전해줍니다. 조금 있다가 위에서 감사합니다 라는 소리가 들려와 올려다보니 녹색 견장을 찬 대장이 손을 흔들며 답례를 해오는것이어서 우리도 함께 손을 흔들어 보입니다.    시누와에 가까와지니 이제사 과일을 파는 로지들이 나타납니다. 비타민 C의 부족함을 토로하는 일행들을 위해 흥정을 붙여 그리 비싸지 않게 산 오렌지와 사과. 한입물은 사과가 과즙도 풍성한게 제법 단맛이 가득하여 홍로사과가 아니냐는 탄복이 나올만큼 맛이 출중했습니다. 네팔의 사과마을은 마르파라 하는데 네팔의 모든 사과는 여기에서 재배되어 판로로 흩어집니다. 불모의 벼랑에서 생을 근근히 이어온 과실들이기에 그만큼 달고 맛이 있습니다. 맛있다고 칭찬을 해줬더니 제법 한국말도 할줄알아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데 본인은 이 로지에서 종업원으로 일을하고 남편이 돈벌러 한국가 있는지 5년째라 많이 보고싶다고 눈물을 글썽입니다. 가난이 갈라놓은 생이별. 안스러워 내눈에도 안개가 서리고 맙니다. 네팔 국가 재정의 가장 큰 부분은 외국으로 나가 벌어들이는 외화벌이이고 그 다음으로  관광 수입이라합니다. 그만큼 가족간의 생이별이 많다는 뜻이며 한집 건너 이러한 슬픈 사연을 가슴에 품고 사는 현실이랍니다. 남은 과일 떨이해 사주고 그 윗집으로 이동하니 유난히도 큰 글씨로 '한국음식 팝니다. 백숙. 김치. 김치찌개. 기타...' 이란 간판을 걸어두었습니다. 어느 로지마다 신라면 안파는 곳이 없을 정도로 한국인들이 이들의 주요고객임이 분명합니다. 오가며 한글 글귀만 보아도 반가운데 한식까지 취급하다니 더욱 놀랍기도 해 확인해보고 싶은 궁금증으로 김치맛 좋으냐고 물으니 시식해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젓갈이 많이 들어가 곰삭은 맛이 제대로인 영락없는 전라도 김치맛입니다. 해서 저녁식사용으로 20불어치를 달라했더니 에게게 그야말로 코딱지 만큼만 줍니다. 그야말로 금치였습니다. 그래도 이곳을 찾은 한국인에게 비법을 전수받아 고향의 맛이 그리운 우리들에게 선사하니 여간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내친김에 눈길을 잡는 통마늘과 양파를 추가로 주문해서 산자락 휘어지는 지점에 뚜렷이 세워진 오늘의 숙소까지 마지막 피치를 올립니다.  오늘의 수확물을 총동원하여 된장찌개를 끓입니다. 집 된장에 멸치가루 청양고추 고추가루 양파를 다져넣은 만들어간 된장 믹스 한스푼에 오늘 밭에서 산 양배추. 풋마늘. 마늘. 양파등을 넣어 끓여내니 1% 부족하지만 그 금치로 맛있는 저녁을 즐깁니다. 다행히 이번 일행 모두가 신토불이 식성이라 죽이 잘맞습니다. 식사를 마치자 마자 닥치고 취침입니다. 9시간의 강행군에 몸도 지치고 온수 샤워장 앞이 기다리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치길래 냉수 마찰을 했더니 몸도 으슬으슬 추워오고 포식후의 식곤증이 파도처럼 밀려오니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방이 부족해 남녀 혼숙으로 네명이 자게 되었습니다. 남자라는 이유로 유리창 옆에서 자게 되었는데 밤새 다운자켓 입고서 창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을 몸으로 막으며 자야했습니다. 그러나 시선 가득히 보이는 마차푸차레의 모습을 보며 잘수 있었네요. 날이 저물면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고 그 별빛으로 바라볼수 있는 마차푸차레가 있는 밤풍경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