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가장 아름다운 계곡. 랑탕 밸리. 그 길위에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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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우리들의 보금자리를 떨치고 나서는 이탈의 근원적 매력에 떠나는 여행은 늘 새로운 체험을 얻게합니다. 새롭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즐거운 것이기도하고 공포스럽기도하고 아니라면 적어도 긴장은 하게합니다. 이번처럼 고산설봉을 오르는 히말라야 트레킹에서는 이런 두 감정의 농도가 더 짙습니다. 그러나 막상 현지에 들어가서 걷노라면 한층 마음이 놓이게 되는데 그것은 그 땅들을 지키며 살아가는 원주민들 때문입니다. 자연과 동화되어 원초적 삶을 살아가는 히말라야 사람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고 신에게 복종하며 욕심 없이 무던한 삶을 살아가는 산중 사람들. 설산 녹은 물처럼 맑고 빠질듯 깊은 하늘처럼 깨끗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본성을 깨닫게 하니 오히려 별 특별할 것도 없는 나의 존재도 저 산하에 흩어져있는 목석초화와 같지 않느냐 여기면 푸근해지고 이렇게 나를 낮추면 아무런 공포도 근심도 사라집니다. 이제 코사인쿤다를 향한 그 고행의 오르막길을 오릅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산소가 점점 줄어듬을 경험으로 느끼는데 끝없이 험한 길을 무엇하러 오르려하느냐고 내 몸이 내 영혼에게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 답은 단하나 산이 거기에 있고 거기에는 세상 가장 귀한 풍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길을 재촉해 4,400미터 고지에 성스럽게 누워있는 빙하호수 고사인쿤다(Gosainkunda)를 만나고 처녀골이라는 순다리잘(Sundarijal) 까지 무릎이 시리도록 끝없이 내려가는 여정이 남아있습니다. 랑탕과 헬람부 사이에 위치한 코사인쿤드 호수는 시바신 등 힌두의 신들이 거주한다고 믿어지는 신성한 곳으로 매년 8월이면 힌두 축제를 위해 많은 인도인들이 방문하는 힌두교의 3대 성지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코사인쿤드는 룸비니, 자낙푸르, 묵티나스와 더불어 네팔 4대 불교 성지이기도 합니다. 네팔인들도 85%가 힌두교 신자들이라 하는데 그래서인지 거의 모든 포터들이 우리는 보는 것 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고 전율이 일어나는 고사인쿤다 호수 냉수욕을 합니다. 아직도 녹지않은 얼음들이 둥둥 떠다니는 이 신성한 호수에 몸을 던져 몸도 마음도 영혼까지도 세척을 합니다. 시바신에게 바치는 경건한 그들만의 의식인듯 합니다.  이른 새벽. 서둘러 배낭을 꾸려서 탈출하듯이 로지를 떠납니다. 같은 건물 안에 있는 원시적 재래 화장실의 악취가 참기 힘들고 다락방에 꽉채운 가이드와 포터들의 움직임과 소음이 쥐새끼들의 내달음 같고 옆방의 소곤소곤 얘기 소리도 선명하게 죄다 들려오고 곳곳에 구멍난 곳으로 눈보라가 쳐들어와 새우잠을 자게 하는 이 열악한 환경. 한달 이상은 몸도 씻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았을 것 같은 로지 주인과 주방장. 그들의 파커 자켓의 소매와 목 가슴등 돌출부는 겨우내 한번도 갈아 입지 않았는지 덕지덕지 붙은 때 자국의 윤기가 찬란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걸 보고는 음식을 주문해 먹을수 없어 곡기 하나 채우지 못하고 술만 마시다가 자고 출발한 새벽. 마지막 정점인 4,800미터의 고개를 넘는데 죽을 맛입니다. 칼바람은 뺨을 도려내고 바람에 흩날리는 폭포에서 내리는 물방울이 결빙으로 길을 채워 몸을 가누기가 힘이 들고 뱃가죽은 등짝에 가서 붙었는데 설원을 오르는 우리의 하체는 그저 후들후들 떨립니다. 비틀비틀 힘겹게 올라가는 이 고행의 시간이 언제 끝이 날까 두렵기까지 합니다. 배낭 속에는 아이젠이 들어 있건만 그것 하나 꺼내서 신을 기력조차 없어 그냥 그대로 밤새 다시 얼어버린 비탈진 길을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한발한발 눈을 차며 천천히 이동합니다. 그 긴긴 고행의 길. 어둠을 걷고 차오른 태양이 산마루를 올라설 즈음에야 바람도 칼추위도 한풀 꺾입니다. 바로 눈앞의 작은 언덕에는 무심한 마니탑이 울긋불긋 경전으로 치장을 하고 세찬 바람에 깃발을 날리며 히말라야의 잔인함을 일깨워 줍니다.  바람을 막으려고 쌓아놓은 최정상 돌 무덤 뒤에 몸을 숨기고 긴 한숨을 쉽니다. 이제사 메마른 갈증과 공허한 허기가 어깨동무하고 밀려옵니다. 수통의 물을 반은 단숨에 마셔버리고 비스킷 두어쪽으로 시장기를 속이고 담배 한 모금 깊게 들이킵니다. 그리고 우리가 걸어온 길을 내려다 봅니다. 하이얀 설원 위에 남아 있는 우리의 족적. 이다지도 힘겨운 길을 걸어와 이번 여정의 정점에 서서 돌아보는 멀고 험했던 히말라야 산길과 내 삶의 길. 잠시 설국에 머물게 하며 주는 신의 선물. 이 아름다운풍경. 그 고난의 길 끝에서 와락 달려드는 이 허무함. 우리네 인생도 그러하지 않았던가!  이제 내려가야 합니다. 길은 올랐던 거리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재수 없으면 120살 까지 산다면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 할 날이 남아 있는 것 처럼 말입니다. 후련하면서도 착잡한 정상에서의 소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감정도 바람에 흩어져 버릴 것이고 세계 전도를 펴놓고 또 다른 도전의 길을 찾게 되겠지만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여행을 통하여 히말라야가 품은 네팔과 이 산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네팔리들과의 평생 사랑의 시작이 되기도 할것입니다. 그래서 히밀라야는 한번도 안가본 사람은 있어도 대신 한번만 가고 만 사람은 없다라고 하나봅니다. 이 여정을 함께한 동행들. 본인 인생 최대의 시련을 겪고 무엇을 버리면 무엇을 얻을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고 안일하게 살아온 자신에게 모진 벌을 주면서 이제 다시 세상에 나아가 자신있게 살아갈 삶의 힘과 용기를 얻었기를 바라며 변함없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이길 염원해봅니다. 함께한 후배. 50을 맞아 살아온 반생을 되돌아 보고 남은 생의 반을 멋지게 살아갈 삶의 이정을 세웠기를 또한 바랍니다. 나? 나는 약해지는 심신을 추스리고 세계 100대 트레킹의 완주를 위해 더욱 정진하리라는 나 자신과의 굳은 약속을 하며 우리는 그 히말라야를 떠납니다. 다시 만나길..